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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性)스런 책 리뷰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내 블로그에 오시는 글벗분들이 날 어떻게 보건 말건, 나는 이런 책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내 주된 관심사는 역사 분야다. 그런데 서양 중세사 읽다보면 모순된 부분이 보인다. 남성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왜 그러면서도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하여 정조대를 만들고 종교 교리에 그런 내용을 넣고(이브와 뱀이 한 세트로 욕 먹는 것 등) 심지어 마녀 사냥 같은 일종의 제노사이드까지 벌였을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여성은 성적으로 수동적 성인데 왜 그리 여성의 성욕을 무서워할까?
또 이상하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고, 법적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현재 대한민국은 물론, 거센 68혁명을 거친 현대 서구에서까지 왜 '여자의 성욕은 약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참기 힘들다.'‘남자는 처음 만난 상대와도 섹스를 할 수 있고 그게 당연하지만, 여자는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섹스를 할 수 있다. 여자는 섹스보다 정서적 친밀감을 더 좋아한다. 그건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성담론이 상식으로 되어 있을까? 같은 동물인데, 남녀 없이성욕은 다 똑같고(성 차이보다 개인차가 더 클걸?), 누구에게나 가장 흥분되는 상대는 처음 본 상대 아닌가?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욕망하는 여자>는 성과학자 메레디스 시버스(Meredith Chivers)가 실험한 질내 혈류측정기 결과를 논한다. 시버스는 피실험 여성들에게 밀실에서 다양한 경우의 섹스 장면을 담은 포르노 영상을 틀어주고 흥분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장치를 사용하여 질내 혈류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있는 사실과 달리, 여성들은 안정적 연인이나 남편과의 관계로 설정된 섹스 보다 낯선 남자나 동성과의 섹스, 심지어 보노보의 섹스 장면 등에 더 흥분했다. 하지만 지필 조사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실험 여성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실험 여성들은 진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단지 여성의 질과 두뇌가 각각 다른 말을 할 뿐이었다.
이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남성만큼, 어쩌면 남성 이상 성욕이 강하다고. 다만 그간의 문화와 훈육 때문에 욕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 예가 하나 더 있다. 여성들이 성적 욕망을 품을 때 떠올리는 장면은 낯선 남자를 덮치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이 낯선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왜 이럴까? 분명 현실에서라면 끔찍하고 공포스러우며 여성 아무도 원하는 상황이 아닌데. 여기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강간 판타지는 죄의식과 관계가 없다. 여성은 소녀 때부터 자신에게 부과되는 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신들을 옭아 맨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강간 판타지를 매개로 삼는다. - 135쪽에서 인용
그렇다. 자신의 능동적 성욕을 인정할 수 없기에 여성은 자위를 위해 성적 환상을 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장면을 상상해서 죄의식을 피하려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좀더 알고 싶지만, 이 책은 이 정도에서 더 진도 나가지 않는다. 아마 여성 성과학 분야는 별로 많이 연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 성과학 분야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약하고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는 것을 그냥 진리로 상식으로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성을 통제하고 싶은 남성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아그라에 비해 플리반세린(여성용 핑크 비아그라)의 개발과 시판이 훨훨 어렵고 늦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
책은 꽤 유머러스하다. 여성용 비아그라인 리브리도와 리브리도스를 이른바 '일부일처해독제'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섹시한 여성의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여성의 심리를 일종의 나르시즘으로 보는 시선에 감탄했다. 누드 사진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남성 입장과 달리, 여성은 그런 사진 속의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남성의 시선을 받는 나르시즘의 충족을 느껴서 흥분한다니!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진화심리학자들이 하는 말, 즉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길러야하기때문에 가정을 돌볼 성실한 남성과 섹스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여 일회성 성관계보다 장기적 정서적 관계를 더 좋아하도록 진화되었다,,,, 는 것은 다 남성 위주의 냉혹한 현실을 살면서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속아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욕을 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춰 질과 두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 아닐까?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진짜 궁금하다. 왜 남성들은 굳이 그렇게 여성의 성욕이 약하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까? 단순히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혹시 먼먼 인류의 조상들이 발정기의 암컷들을 보고 무서워했던 기억(서유기에 나오는 서량여인국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등 남성들이 기빨려 죽는 전설이 세계 각지에 있는 것, 먼 옛날 발정기 여성 무리에 혼자 떨어져 분투한 남성의 고통스런 기억이 반영된 것 아닐까? )이 수컷만의 Y유전자에 전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아시는 분 혹은 관련 책 소개해주실 분들 대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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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엉망이다.
230 ~ 236쪽까지, 한 쪽의 마지막 문장과 다음 쪽의 첫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편집 디자인 과정에서 틀에 앉히면서 마구 단어를 잘라먹은 것 같다. 편집팀은 각성하시길. 한번도 아니고, 이거 너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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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욕망하는 여자
요즘 즐겨보는 티비 프로가 있다. 종편 JTBC에서 하고 있는 <마녀사냥>이라는 19금 토크쇼다. 성에 관해, 연애에 관해 말하는 토크쇼인데, 지금껏 봤던 프로와 너무 다르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했나,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다. 프로 엠씨들이야 그런다 치지만 이원생중계로 일반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지금 세상은 정말 프리 섹스를 당연하다고 믿고 사는 것 같아 보인다. 결혼과 상관없이 연인이면 둘이 20살만 넘었다면 당당하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인것처럼 그렇게 다들 이야기 한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변해 보인다. 결혼 하는 배우자가 순결을 지키고 있는 것이 이상해 지는 세상이 된것 같다. 이 프로를 보면서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일반인 여성들의 반응이었다. 예전 같으면 20대 초반의 여성이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누군가라도 알까봐 숨기는 것이 일반인데 방송에 나와서까지 이야기 하다니 말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여성들도 변하고 있다. 나는 성적인 존재인 여성에 관해 알고 싶었다. 욕망하는 여자!! 과학적 접근이라서 더욱 신뢰가 갔다. 하지만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많이 불편했다. 과학적인 접근으로 실험을 한 자료지만 그것이 다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인간은 행복해지길 원한다. 예를 들자면 초코렛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감을 주고 그것이 뇌파로 감지 된다고 인간이 느끼는 욕구가 초코렛으로 해결될까? 몸이 원하는 욕구로만 이야기 하자면 몸이 원하는대로 다 하다보면 잠재적으로 인간의 삶에 어떤 나쁜 영향을 줄지 알면서 초코렛을 무한정 먹어도 괜찮을까? 단식과 자기절제를 통해 욕구를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인간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이 책에 실망스러웠던것은 과학적 접근으로 실험한 자료가 인간의 욕구에 대해(여성의 욕구)에 왜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의 주장대로라면 여성의 성적인 욕구는 동물도 상관없고 소아기호증도 가능할지 모를일이다. 범죄가 아니라 몸이 원하니 원하는 욕구라고 말이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과학적 접근이고 이것의 결과 그랬으니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로 무엇을 중심으로 잡고 실험 결과를 돌출해 내는냐에 따라 결과에 대한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껏 우리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터부시 했다. 하지만 여성의 성을 이런 논리로 접근하는 건 마땅치 않아 보였다. 내 가치관에서 볼때는 그랬다.
좀 더 걱정스럽게 이 책을 보자면 이책의 근거로 여성은 강간을 원하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여러명이 여성을 유린하는 판타지에서 여성이 흥분을 한단다. 집단 강간을 하고 피의자들이 피해 여성이 원했다고 우기는데 자료로 이 책이 쓰이진 않을까?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원하고 이 책을 썼을까? 이 책 대로라면 여성은 안정적인 가정을 버리고 낯선 남자, 혹은 친구의 남편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일탈을 꿈꾸는 것이 여성의 성적인 욕구인것처럼 그렇게 쓰고 있다.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있는건 사실이다. 여성은 성적인 욕구가 있는 존재고 남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것을 억압하다보니 표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좋은 쪽으로 욕구를 풀고 진정 행복해 지는 방법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미명아래 불륜, 일탈과 난교, 집단강간등이 여성의 잠재된 욕구인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남성도 원해서는 안될 일이다. 머릿속 생각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고 해도 본능이라고 당연시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어야 할 생각이다. 이것이 진짜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쳐죽일 놈이라고 전 나라가 욕했던 아동강간 사건의 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 아동포르노를 보고 스스로 욕구를 키워 왔는지 아는가?
몸이 원하는대로만 살면 그것이 진정 행복일까? 이미 그렇게 살아본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본능이라고 올라오는 욕구의 근원이 무엇인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 혹시 어떤 문제가 있어서 왜곡된 욕구가 진짜처럼 자신을 장악하는건 아닌지 말이다!!
나에게 이 책은 너무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여성은 성적인 존재고 욕구가 있지만 그것이 이책이 말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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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 보고서는 지루했다. 재미삼아 읽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타인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가고 그 내용이 얼마나 유명한 것이든지 간에 결국 만족과 불만족은 나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므로 내게 킨제이 보고서는 지루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서적들도 예전에 비해 여성들의 성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도발적으로 때로는 섹슈얼리티하게 여성들의 성문화나 성전반에 대한 관심들을 표면 밖으로 표출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문란하거나 음난하거나 개방적이지는 않았다. 오백년이라는 세월동안 교육받아온 우리 사회 내에서 여성의 성은 여전히 그 울타리 근처에서 들락날락하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되어진다.
[욕망하는 여자] 역시 생각대로의 책은 아니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연애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그 사례들을 보여준 것과 달리 대니얼 버그너의 책은 피험자들의 연구사례와 적당히 학문적인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가독성부분은 아쉽게도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훌렁훌렁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읽다가 자꾸만 멈추어서 근처부분을 반복읽기를 해야만 이해되는 부분들이 적잖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책보다 정독의 자세로 읽어나갈 수 있었던 장점도 있었다.
90초짜리 포르노 영상을 보면서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흥분하고 두근거린다는 사실은 굳이 실험결과를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더랬다. 어쩌면 호기심은 여성들이 더 많은 부분 가지고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순결이라는 부분과 생활밀접형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성에 대해서는 더 무지하거나 많은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해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지 않으며 살아왔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성욕은 여성들에게도 존재하는 감각이었다. 남자 못지 않게 성욕이 충만했으며 단순한 삽입이 아닌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건강한 관계를 대다수의 여성들은 원하고 있었다. 다만 성적 판타지 속에 '강간'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모든 여성이 강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어졌다. 소수의 여성이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흥분전이효과를 느끼는 것이 여성 전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드라마[성범죄수사대]에서는 모든 여성이 실제로는 강간을 좋아하며 노라고 외치는 것은 거절이 아닌 튕기는 것이라고 착각한 남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변호하는 부분이 등장해 화제가 된 바가 있다. 여형사 벤슨이 방청객석에 앉아 어이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내용은 흥미롭게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이처럼 몇몇 부분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나타난 특징이 아닐까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후미에 저자는 이렇게 덧붙여놓고 있다. 이 책에 담고 있는 견해들은 하나의 시작이라고. 과학자들 누구도 여성의 성욕에 대해 결정적이고 완전한 대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성욕'이라는 주제는 어쩐지 껄끄럽게 느껴진다. 어제 본 드라마처럼 다음날 아침 커피브레이크 타임에 쉽게 꺼내지는 주제로 등장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는 반갑다. 미성년이 아닌 성인들 대다수가 어울려 살아가야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성이 주도되지 않는다면 성은 부끄러워지고 숨겨져서 오히려 변태적이거나 가학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사실 코스모폴리탄의 섹슈얼기사들처럼 자극적인 부분은 없었다. 다만 읽으면서 '성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좋은 기회를 가졌다는 것과 같은 나이때의 친구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들을 얻어냈다는 점이 오늘 이 책 읽기를 잘했다고 나 스스로에게 칭찬할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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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청소년들의 성의식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면 의아한 점이 있었다. 매체마다 수치가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학생의 비율이 여학생보다 2배 가까이 많다(2013년 서울시 청소년의 7.4%-남 9.5%, 여 5.4%-는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한다)는 점이다. 통계가 사실이라면 일대일 대응이 성립하지 않는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매치되니 양다리 걸친 여자쪽이 수치상으로는 더 많은 남자를 상대하고 있는 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아니면 초등학교 때 남자 여자 짝을 맞추면 뒤에는 여자가 모자라서 남자들끼리 짝이 됐던 것처럼, 성겸험에 있어서도 그 차이만큼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몫이라는 얘기일까? 물론 반드시 또래끼리 짝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니면 친구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남자애들은 부풀려서 말하고, 부끄러운 여자애들은 줄여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성에 대한 조사는 항상 '설마'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걸로 봐서 그런 심리적 압박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수컷은 최대한 많은 씨를 뿌려야 하고, 암컷은 우수한 씨앗을 고르기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진화론적인 해석이다. 본능이 그렇게 설계됐다고 하니 문화도 그렇게 굳어져서 남자가 많은 여자를 거느리는 것은 힘과 권력이고, 여자는 정조를 지켜야 정상이라는 식으로 정해버렸다. 정상이 아니면 마녀라 부르며 전염되기 전에 화형시켜야 했던 때도 있었다. 어디에나 개인차라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이불송사에까지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침대 길이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늘려 죽인 셈이다. 그것도 여자에게만 가해지는 형벌이었으니 여성이 욕망을 말하기란 쉽지 않았다. 성과학에 있어서도 남성의 성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이어서 여성의 성은 늘 무시되어왔다. <욕망하는 여자>는 여성도 성에 있어서 수동적이지만은 않다고 주장한다.
2013년 청소년 성의식 실태조사를 살펴 보면 '처음 성관계를 한 이유'는 성별 간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남자 청소년의 60.2%는 '둘 다 원해서', 여자 청소년의 63.3%는 '상대방이 원해서'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2011년 조사에서 '성'하면 떠오르는 낱말에 대해서 남학생 73.0%이상이 '성관계'를 떠올린 반면, 여학생은 성폭력(13.1%)등을 떠올렸다고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상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사회에 성폭력 사건이 크게 터질 때면 남자들도 앞에 걸어가는 여자가 오해할까 신경쓰여 헛기침을 하게 된다. 난 내 갈 길 가고 있으니 놀라지 말라는 듯이. 남성은 음란하고 여성은 정숙하다는 고정관념이 꼭 여자에게만 불리한 것도 아니다. 남성의 성적 본능을 막기 위해 여성의 순결을 강요했던 잘못된 잠금장치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요즘 방송되고 있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성이 생각보다 많구나 느끼게 된다. 오히려 돌려 말하는 남자보다 자연스럽고 직설적이게 말하는 것 같다. 아버지와 딸이 같이 방청하러 간 것이 놀라웠던 걸 생각하면 내가 너무 보수적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칼럼니스가 말하길 여자들은 예쁘다 예쁘다 해줘야, 그러니까 친밀감이나 감정적 유대감, 그리고 안전감이 토대가 돼야 여성의 성욕이 발동된다고 했다. 하지만 <욕망하는 여자>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그동안은 그런 관점이 남성은 본능에만 충실한 원시적이고 단순한 종족이고, 여성은 좀 더 고차원적이라는 느낌을 준 게 사실이다. 특히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한 남성은 짐승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혈류측정기로 관찰한 결과 여성도 똑같이 흥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정신이 몸과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결과와 주관적인 결과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해부학적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규범의 억압이 더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168페이지-친밀감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한다고 해서 커플에게 서로에 대한 감정이입조차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녀가 돼서 돌을 맞지 않으려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남편 보약 해먹이고 다음날 반찬 바뀌는 것으로밖에 여성의 욕구가 표현될 방법은 없었을 거다. 샤워기 물소리를 무서워하는 남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남녀 모두 성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것 같긴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여성의 성욕을 당당히 주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겠지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성 성욕의 핵심이라거나, 여성들이 (좀 순화된 표현을 써서) '굴복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선 꽤나 격한 반대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 성감대에 대한 해부학적 논쟁이 남근중심의 섹스에 대한 페미니즘의 반론이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다. 그동안의 과학이 여성의 성욕을 수동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여긴 데에는 해부학적으로 보나 행위로 보나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폄하된 것 역시 사실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떨어진 성욕의 해결책이 '낯선 상대'라는 점은 씁쓸하지만, 책에 소개된 고민 사례를 들여다 보면 남자와 여자가 성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것도 분명 성에 대한 억압 탓일 거라고 본다. 이제는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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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본 여자 욕망 도발적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접근이다. 애써 감춰두었거나 자신도 모르게 숨어있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유교윤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사회에서 본능을 표현하기란 잠재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적 풍토를 뛰어넘기란 더 쉽지 않다. 욕망을 잠재우는 것을 넘어 죄악시하는 사회문화가 지배하는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 가능할까?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출발하는 ‘욕망하는 여자’는 모두가 금기시 여기는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시작한다. 남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리라고 예상되는 “여자의 성욕”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을 한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것은 과학적 접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학문적 접근이라고 하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회문화적 틈새를 파고들지만 동양 사회보다는 개방적인 미국의 학계에서도 지극히 조심스러운 분야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여자의 성욕”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만들었을까?
여자도 동물이다? 라는 전재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여자의 몸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그 반응을 데이터화시켜 이를 통해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학문적 풍토나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일부일처제라는 사회적 제도가 갖는 여자에 대한 일방적인 억압은 자신의 욕망자체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욕망의 표현은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여겨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숨겨진 욕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발현된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욕망을 현실화 시키는 도구로써 제약회사의 여자용 비아그라와 같은 노력에 이르기까지 살핀다.
행동과학자, 성과학자, 심리학자, 수많은 여성들과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기반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통해 "여성은 남성만큼 또는 그 이상 성욕이 강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욕망하는 여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사회적 환경이나 관습 등을 포함하여 개인적 성장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을 무시하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에 접근할 수 있을까? 철저히 계획된 조건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이 모색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믿을만한 데이터를 얻으려고 애쓴다.
언제부턴가 정설처럼 이야기되는 "남자는 동물에 가까워서 쉽게 성욕이 일지만, 여자는 친한 감정이 생겨야 섹스를 하고 싶다"는 말은 사실일까? 과학자들의 연구의 수많은 사례들이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결론에 도달하기는 아직 어려워 보인다. 이 책에 다분히 의도적이며 목적의식적으로 질문한 “여자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욕망의 대상이 될 뿐, 자신의 몸과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자신의 성에 대해 직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회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룬 문화적 배경에서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배려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자들뿐 아니라 그 상대방이 되는 남자들 역시 성의 욕망에 대한 깊은 사고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 아닌가 싶다.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유효한 답이 될 것이다. |
![]() 저자 대니얼의 과학칼럼을 일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아, 대니얼이 그 대니얼?? "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점에서 대놓고 읽기에는 조금 민망해서 조금 구석으로 들어가 책을 펼쳐보았다. ![]() 최근 심리학계에서 재조명되고있는 프로이트의 저서들이 성적인데에 치중되어있다는 사실. 이 책 또학 과학서적으로서 오랜 관념으로 자리잡힌 프로이트의 생각을 부수려 애쓰는 경향이 있었다. ![]() 지극히 과학적이지만 또 굉장히 자극적인 요소들이 군데군데 있기 때문에 구석에서 조금 보다가 책 구매를 결심한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성의 성적욕망이라는 주제에 이렇게 깊이 파고든 저서는 처음이였고, 과학적인 접근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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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소설 <은교>부터 시작해 보자. 은교는 과연 일흔의 시인을 유혹한 것일까? 아니면, 일반적인 남성들의 시각처럼 순수하고 순정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일 뿐인 걸까?
<은교>는 다분히 남성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졌다. 여체나 성행위에 대한 묘사 부분이 상당히 길고 자세하다. 이 책에서 '젊은 남성성'을 담당하는 서지우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키는 크지 않으나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다부진 몸매 정도로 짧은 반면, 여고생인 은교에 대한 묘사는 발뒤꿈치가 옴팍 들어간 곳이 어쩌니 저쩌니 등 매우 디테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독자가 혐오스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는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욕망하는 여자>에도 나오지만 여자에게 있는 '나르시시즘'은 미녀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이 마치 자기에게 향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여자 화장품 광고에는 예쁜 여자들이 숱하게 등장한다나.
은교는 발칙한 여자였을까? 일흔의 이적요 시인과 삼십 대 이혼남인 서지우 사이를 오가면서 그들을 유혹한? 아직 미성년이라는 선입견을 빼고 본다면(소설가는 다분히 그 부분을 이용했겠지만), 은교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은 문화적인 착각일지 모른다.
<욕망하는 여자>에서는 여자들을 훈육한 문화와 관습의 더께를 벗기면, 여자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동물적이라고 말한다. 포르노 등 시각 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일부일처제에 맞지 않게 여러 남성과 관계를 맺는 욕망 구조를 가졌다. 보노보나 쥐를 관찰해 봐도, 오히려 암컷이 수컷을 적극적으로 유인한다. 다만, 표면적으로 여성이 흥분한 것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 남친이나 남편에 만족 못한 여자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길거리로 쏟아져나와야 한다는 뜻인가? 다시 여의도공원에서 솔로대첩이라도 치러야 한단 걸까?
우선, 임상실험을 통한 성과학(Sexology)에 기초 한 <욕망하는 여자>를 읽는 독자들은, 고매한 이름이 빛나는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의 "남자는 워낙 성욕이 왕성하고 여자는 감정이 먼저"라는 주장을 통렬히 깨부수는 데서 쾌감을 느낄 것이다. 모든 면에서 남녀의 동등함을 외쳤던 여자들도, 그간 진화심리학의 그럴 듯한 주장에만큼은 맞서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버스를 폐차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데 프로이트를 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욕망하는 여자>의 과학자들 말대로, 너무 익숙해서 도저히 섹시함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부 클리닉에서 권하는 친절한 남편 되기, 설거지와 청소 도와주는 남편이 되어 여자의 감정을 움직이고 성적 욕망을 끌어내기는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익숙한 장소가 아닌 낯선 장소, 예를 들어 자기 일터에서 몰두하며 일하는 남편의 낯선 모습이 리비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글쎄, 상사한테 깨지는 걸 봤을 때는 부작용이 생길 지도 모르지만...
<욕망하는 여자>는 출간 즉시 미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륙을 막론하고 15개국에도 판권이 팔렸다 하니, 유럽이든 아시아이든 아직 여자들의 성욕은 베일에 쌓여 있거나 왜곡되어 왔다는 방증이다. 디테일한 묘사의 수위는 <은교>를 뛰어넘고, 또 여성 욕망의 기존관념을 뒤집어 놓는다는 점에서 특히 섹시하고 도발적인 책이다.
성인 남녀에게 강추다.
jtbc의 <마녀사냥>과 한패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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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남성들을 놀려주기 위해 여자 세 명이서 미스코리아 걸음으로 한 명씩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세 명 다 팬티 끈을 어깨에 걸쳤다. 처음엔 어헛? 이거 여자 보랏들인가 했다. 참고로 보랏은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의 주인공. 앞뒤 사정을 알고 보니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여자친구가 너무 얌전 뺀다고 험담을 하자 분연히 일어난 여성 동지;;들이 나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너희 얌전 빼는 남자들은 암 말도 못할 거 아니냐..는 그런 뜻.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그렇게 속옷이 신축성이 좋은가?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 두고두고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림도 없다, 미국은 안 그런가 보다.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서구에서도 여성들은 억압되는 중인가 보다. 암수를 구별해서 말하는 걸 쉽게 접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성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진지하게 취급될 수 있을까. 실제로는 얌전하든 화끈하든 다소곳하게; 말해야만 존중받는 여성의 지위를 획득하는 곳이 이 땅 아니던가 말이다. 내 친구가 생각난다. 실제로는 무척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지녔지만 입성은 무척 화려하고 과감하다. 이 친구를 만나는 모든 남자들은 첫 만남 때부터 매우 쉬운 여자로 취급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보수적인 친구는 그런 게 무척 싫다고 하는데, 과연 내 친구는 자신이 욕망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친구에게 한 권 보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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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언컨데! 나를 위한 책이었다. 나를 알고 너를 알면 "백전백승" 이라 했던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애써 누르고 감추고 솔직하지 못했던 성욕에 대한 욕망들, 내 자신을 마녀(?) 취급했던 욕망들에 대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알게되었고 이제 사랑하는 여자 ! 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실험에 근거하기 때문에 흥미롭고 알차다.
시작하는 연인! 습관적으로 만나는 연인! 또 부부들에게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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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여자.... 평소 해외직구를 즐겨해서 아마존(Amazone.com)에 자주 머무른다. 아마존은 최대 규모의 인터넷 서점을 갖고 있는걸로도 유명한데, 그 베스트셀러에서 이 책의 표지를 언뜻 본 것 같다. 아마 제목이.. What do Women want? 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살펴보곤 '또 성을 주제로 삼아 자극적인 이야기를 쓴 거겠지' 싶었다. 그러다 얼마 전 출판관련하는 친구로부터 한글로 옮겨진 동일한 책을 선물받았다. 이 책과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 싶어서 웃음도 나왔다. 그렇게 운명같이 받아든 며칠 후, 지난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과학적인 접근으로 쓰여진 책인데도 굉장히 흡입력 있었다. 날이 추워 집에만 있는 주말동안 정말 이 책에 몰입했다. 참 많은 여자들의 인터뷰가 담겨져 있었는데, 실로 그녀들에게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여자의 성욕 하나에 심리학자 뿐 아니라 과학자들도 열정적으로 실험한다는게 참으로 대단했다. ^^.. 여자를 알고 싶어하는, 탐구하고 싶은 그 마음이 책에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여자가 되면 알텐데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