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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관 아담한 판형입니다. 일반판형이 아닌 다이어리 느낌입니다. 만듦새도 그렇습니다. 표지는 매끈한 편이고 별도의 덧표지 없이 바로 책이 시작됩니다. 겉표지의 사진은 앞에는 작게 뒤에는 크게 인쇄되어 있는데, 후드티를 입고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채 운동화를 신고 이슬 맞은 도로위를 걷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아예 사진을 뺐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담한 크기의 양장본인데 가름끈은 없습니다. 375쪽짜리 책이니 아쉽습니다.
2. 표지 표지에 메리셀리(MARY SHELLEY)라 적혀있는데 중간이름인 "울스턴크래프트(wollstonecraft)"가 빠졌습니다. 메리셀리의 어머니가 그 유명한 메리울스턴크래프트이고, 이 책이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에게 헌정되었음을 감안하면 울스턴크래프트(wollstonecraft)를 한 줄 추가함으로써 더 많은 정보제공이 가능했을듯 합니다.
3. 번역 가장 중요한 번역. 2018년 펭귄판을 저본으로 삼았고 모든 주석을 옮긴이가 달았다고 써있는데 주석은 거의 없고 번역은 직역투입니다. 그래서인지 이해가 어려운 문장도 눈에 띕니다. 예컨대 서문 시작하자마자 "하지만 그러한 상상력을 허구의 근본이라고 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초자연적인 공포담을 잇달아 엮어가는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았다."는 문장은 무슨 뜻인지 아리송합니다.
같은 구절을 문예판에는 "하지만 상상력이 환상적인 작품의 기본이라고 가정하기에, 나는 단순히 일련의 초자연적인 공포를 엮어내는 것에 그칠 생각은 없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읽기에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지 고르라면 저는 후자입니다. 하지만 어느 편이 원문에 충실한 것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조금만 더 옮겨보겠습니다. 이 소설의 본문 가장 첫 문장은 이것입니다.
"You will rejoice to hear that no disaster has accompanied the commencement of an enterprise which you have regarded with such evil forebodings."
이 책의 번역은 이렇습니다. "누님이 그렇게 불길해하셨지만, 이 여행을 시작한 후로 제게는 아무런 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문예판 번역은 이렇습니다. "네가 그토록 불길하다고 여겼던 이번 모험을 아무런 사고 없이 시작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rejoice가 첫 번째 번역에는 나타나지 않네요.
그 다음 문장은 이것입니다. "I arrived here yesterday, and my first task is to assure my dear sister of my welfare and increasing confidence in the success of my undertaking."
이 책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어제 이곳에 도착했어요. 무엇보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마음에 품은 계획이 성공하리라는 확신도 점점 강해지고 있고요. 이런 사실들을 사랑하는 누님께 제일 먼저 알리려고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문예판은 이렇습니다. "나는 어제 이곳에 도착했어.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사랑하는 누이동생인 네게 잘 지낸다는 안부와 함께 계획했던 내 일도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더욱 더 확고해진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해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문장을 임의로 쪼개거나 단어나 문장의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책이 의역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두 번역 다 "편지를 보낸다."는 문구는 무엇을 근거로 갑자기 튀어나온건지 알기 어렵네요. 본인에게 더 맞는 번역이 어떤 것인지를 기준으로 골라야 완독가능성이 높아지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예판과 비교할 때 이 책은 문장호흡이 더 짧고 구어체 느낌이 납니다.
4. 구성 특이하게도 이 책은 서문에서 이 소설을 쓴 동기를 밝히고(200여년 전에는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 모양입니다), 액자구성으로 시작합니다. 편지글이 나오고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로 등장해 직접화법을 펼치는 구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편지글로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편지글을 이 책에서는 누님께 보내는 경어체로 번역했습니다. 문예판은 여동생에게 보내는 평어체로 번역했고요.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Mrs.라는 호칭으로 편지를 시작하니 이 책처럼 경어체로 옮기는게 적절하겠습니다.
5. 결론 초록색 표지에 야무지고 단단한 책, 이미 다른 번역본을 읽었다면 조금 낯설 수도 있는 책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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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뮤지컬 영화 '영웅'을 드디어 봤습니다. 극중 OST가 다 좋았으나 '누가 죄인인가'가 지금 딱 떠오르네요. 프랑켄슈타인을 네 번째 읽게 되면서 '누가 괴물인가'로 변주해 봅니다. 아아! 정신 차리고 영웅에서 빠져나와 프랑켄슈타인에 집중할게요.
20살인 그녀는 장마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지인들과 창작한 괴담을 돌아가며 이야기 하기로 합니다.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되자'시체를 모아 전기의 힘으로 되살린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죠. 놀라운 그녀의 이야기에 친구는 소설 집필을 권하고 그렇게 22살의 메리 셸리가 세계 최초의 SF 소설을 쓰게 됩니다.
당시 전기로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는 학설이 존재하지 않았고 죽은 개구리 다리에 전기 자극을 주었을 때 움직인다는 정도의 지식만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발상이 놀라울 뿐입니다. 와~ 진짜 이거시 천재라죠.
<프랑켄슈타인>은 지식을 갈망하는 젊은 선장의 항해로 누이와 주고받은 편지로 시작해요. 얼마 후 조난자를 구하게 되는데 그와 친구가 되면서 놀라운 사연을 듣게 되죠.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에 대해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조난자이고요. 우리고 알고 있는 인조인간은 이름이 없는 괴물입니다. 이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의 욕망으로 만들어낸 생명체를 무책임하게 버린 프랑켄슈타인이 엄청 욕먹었더랬죠. 수십 번이라도 재수술해줬어야죠. 그 외모를 누가 만들었게요. 본인이잖아요. 아놔.. 열받아.
백아연의 노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의 제목과 첫 소설이 딱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몇 번을 읽어도 프랑켄슈타인을 탓하게 되네요. 물론 인간을 해한 프랑켄슈타인이 잘했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늘 더 나쁜 놈을 가려내잖아요. 그래서 전 늘 빅토르가 더 나쁜 놈이에요.
얼마 전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그러데요. 괴물이 원하던 대로 짝을 만들어줬다면 그들이 번식하면서 일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요. 와... 전 '번식'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역시 작가님!!
<윌북 클래식 첫사랑컬렉션>에 이어 내게로 온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이미 세트미가 주는 고급스러움이 있는데 거기에 디자인과 색상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멋졌어요. 이거슨 반칙이지 말입니다. 아껴주고 싶잖아요. 저 진짜 책 더love게 읽거든요. 손상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어요. 고딕체가 아닌 현대스러운 대사로 고전 입문자가 보기 더 쉬운 번역이었고요. 얇은 책이 아님에도 금방 끝낼 수 있었답니다. 재미와 소장미를 두루 가진 <윌북 클래식 컬렉션> 욕심 낼만 하죠. 다음은 컬렉션도 기대됩니다.
P.74 명심하라. 이 이야기는 광인의 망상이 아니다.
P.278 "이 노예여, 과거에 나는 이성으로 너를 설득했어. 그런데 너는 내가 겸손하게 대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어. 내게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지금 자신이 비참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너무 불행하고 비참해서 한낮의 빚 줄기도 증오하게 만들 수 있어. 너는 내 창조주야. 하지만 나는 네 주인이다. 그러니 복종해!"
P.350 가끔은 프랑켄슈타인에게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과정을 알아내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절대 입을 열지 않더군요. 그가 말했죠. “제정신인가요, 친구? 그런 경솔한 호기심으로 뭔가를 해볼 작정인가요? 당신과 이 세상을 위해 악마와 같은 적을 만들어내려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말하지 말아요. 제발! 내 불행에서 교훈을 얻어요. 그리고 당신의 불행을 자초하는 짓은 부디 관둬요.”
*출판사 서포터즈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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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의 메리 셸리는 여행을 하던 중 폭풍우로 인해 일행들과 함께 별장안에 갇힌다. 이때 무리 중 한 명이 '자기만의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자'고 제안하고, 메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공한다. 메리는 이때 우연히 '갈바니즘' - 죽은 개구리 뒷다리가 전기 자극을 받고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의사 갈바니의 실험 - 에 대해 듣게 된다. 이것이 현재 독자에게 소개되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시초다. 저자 메리는 연구가 집적된 괴물 앞에 무릎 꿇은 한 과학자를 떠올린다. 바로 책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자연과학에 고무된 그는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일'에 집중한. 식음을 전폐한 채 논문을 읽고 실험을 반복하다 결국 괴물을 만들어낸다. 창조자 자신도 두려운 피조물(괴물)이다.
책은 북극을 항해하는 배에서 시작한다. 누이에게 보내는 월튼 선장의 편지에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학자와 피조물을 대립시킨다.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피나는 열정과 몰입으로 '창조 연구'(p.81)에 성공한다. 그러나 연구의 지난한 과정과 달리, 프랑켄슈타인은 너무 쉽게 피조물을 내버린다. 흉칙한 얼굴과 엄청난 힘이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반면, 피조물은 자신 존재에 대해 물으며 답을 구한다. 타인의 대화를 관찰해 언어를 학습하고, 책을 읽으며 난해한 과학적 원리를 습득한다. 인간의 사랑과 온정을 갈구하던 피조물은 인간 세계의 일원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창조자와 별 다를 것 없는 냉혹한 인간세계. 피조물에게 주어진 건 끈임없이 '존재'를 의심하고 '산다'는 것에 대해 묻는 일 뿐이다. 결국 창조자에게 요구하기에 이른다. "나에 대한 의무를 해."(p.159)라고.
책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건 무엇인가? 창조할 수 있는가? 창조는 인간의 영역인가?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사랑은 꼭 필요한가? 여성과 남성은 필수불가결인가? 나의 행복이 다른 누군가의 담보가 될 수 있는가? 이야기 속 피조물은 한 농가를 오랫동안 지켜본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살피고 배려하며, 걱정하고 아끼는 가족. 따뜻함에 경도된 피조물은 동일한 가치를 꿈꾼다. 창조자를 쫓으며 꿈을 실현하기를 원한다. 다소 집착적인 괴물의 몰입과 추격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반면, 창조자의 책임의식에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프랑켄슈타인은 오로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창조'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고 방기한다. 어쩌면 피조물을 '더 공포스럽게' 만든건 창조자의 무책임한 행동일지 모른다.
나는 통과해야 할 도시의 이름도 몰랐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어.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네. 당신에게는 오로지 증오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가 도움을 기대할 만한 사람도 당신밖에 없었으니까. 무정하고 무자비한 창조자! 내게 통찰력과 열정을 불어넣고는 그대로 내팽개쳐 나를 사람들에게 경멸과 두려움을 받는 대상이 되도록 했어. 하지만 나는 오직 당신에게만 동정을 바라고 이 상황을 바로잡을 보상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의 형상을 한 다른 존재에게 요구했다가 결국 손에 넣지 못한 정의를 당신에게 받기로 했어. (p.228)
결국 책은 '진짜 괴물'이 누구인가를 묻는다. 아마도 진짜는 욕망에 집착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이고, 겉모습만 보고 배척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또 한 걸음 나아가, 존재의 의미를 (괴물처럼)외부에서만 찾는 누군가일 수도 있겠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건 다름아닌 그의 피조물이다. 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창조자와 같은 마지막을 생각한다. 그에게 자신의 시작과 삶과 끝은 결국 창조자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리라. 푸른 얼굴 곳곳에 못이 밖힌 얼굴이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였다. 아니었다. 호러 소설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의외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정답은 없다. 피조물의 선택처럼, 창조자의 결정처럼, 모든 답은 스스로에게서 내재되어 생성된 그 무엇일 것이다. 그래도 희망도 읽힌다. 피조물이 바랐던 사랑, 배려, 친절, 온화, 인정 같은 것.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모두 '탄생된' 피조물일지 모른다. 책 속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면 '세계'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살뜰히 살펴야 할 이유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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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한 내용은 몰라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책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은 괴물로 흔히 알고 있지만 괴물의 이름이 아닌 괴물을 만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다.
인간이기를 갈구하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에서의 폰트체, 단어 사용, 문장이 고전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젊은 과학자 빅터는 영리하고 탐구를 좋아하고 인텔리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광기에 빠지게 되면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게 되고 프랑케슈타인에 생명을 부여하게 되자만 자신이 만들어낸 이름 없는 그 괴물을 두려워하게 된다.
혐오스럽게 생기고 힘이 센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혐오를 받게 되고,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그 괴물을 버리고 도망을 간다.
과학자 빅터가 만든 소설 속의 괴물. 사람들은 소설 속의 괴물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닌 그 괴물을 만든 인간을 무서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 포스팅은 업체로부터 도서만을 무상 제공 받아 쓴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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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까.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 동향을 살펴 보면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합성생물학 연구자들은 이미 사람의 세포와 유사한 인공 세포를 만든 바 있고 지금은 자율적으로 복제하는 인공 세포 제작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인공생명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연구자들이 마침내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면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를 숙고하지 않는다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범한 잘못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므로.
소설에 나오는 피조물은 이름조차 없이 쓸쓸히 살다가 마음에 증오를 가득 품은 채 생을 마감한다.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조차 그를 '괴물'이라 부르고 멸시하니 그가 설 자리가 어디 있었을까. 지성이 있는 생명체를 버려두고 도망친 창조주라니!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어한 피조물이 그토록 바란 것은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것 하나였는데 왜 그렇게 외롭고 비참하게 지내야만 했을까.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 순수하게 사람들을 동경하던 피조물이 점점 악에 받쳐 사납게 변하는 모습이 가엽고 행복을 바랐지만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그가 안타깝다.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의 흉측한 모습에 기겁하지 않았다면, 곁을 지키고 보살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생명들이 떠오르기도 해서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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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정 이유 : 부끄럽게도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각종 매체를 통해서 많이 들어 보았지만 실제로 읽어본적은 없었기에 꼭 읽어보고 싶고 최근 반영된 알뜰인잡에서 프랑케슈타인에 대한 해석이야기를 해서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느낌 : 책 표지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각종 매체에서 들었던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런지 무서운 괴물/ 낯선 괴물이 딱 있는 것 같은 느낌. 얼른 책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책 내용 외적으로는 녹색의 하드커버가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책을 읽고 가장 충격적인었던것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사람이라는 것... 나의 무지함을 정말 반성하게 반드는 대목.. 나에게 프랑켄슈타인은 영상 매체속 네모난 얼굴에 못 같은게 막혀있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정말 충격었다. 다음은 전개가 굉장히 매끄럽다는 것이다. 아직 초반 전개가 초반에 편지형태로 전개가 되는데 누나에게 쓰는 동생의 편지로 몰입도와 간결도가 높았다.
책을 읽고 프랑켄슈타인을 호러의 고전으로 꼽는 이유를 설명하면 아마도 외관적인 모습보다는 주인공들의 행동과 감정 묘사에 나타나는 모습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에 대한 윤리문제는 시간을 관통하여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고, 차별이라는 밈역시 마찬가지다. 고전소설이라고 해서 다소 지루하고 재미없을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름 흥미롭고 다른 시리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해준 책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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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은 좋은 부모와 이상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그리고 귀여운 동생들과 훗날 결혼을 약속할 매력적이고 당당한 사촌 엘리자베스까지 부족함 없이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낸다. 그런 그가 잉골슈타트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생명의 근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치열한 연구 끝에 한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인간과 닮은 형태임에도 쭈글쭈글한 피부와 징그러운 외모 생김새에 공포와 혐오감을 느끼고 그 '괴물'이 세상 밖을 떠돌도록 방치하면서 모든 비극은 시작된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우리는 미디어로부터 전달받은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엄청 큰 덩치에 인간과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그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물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지 사실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원작 소설 속에서는 그저 악마나 괴물이라는 명칭으로 불릴 뿐이다.
과거에는 이 소설 속 '괴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었을 때 그는 전혀 '괴물'이 아니다. 그저 외모가 혐오스러운 형태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죄밖에 없는 이 '괴물'은 조금 더 튼튼하고 강할 뿐 허기와 갈증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부터 빛과 어둠이 가진 전형적인 이미지를 구분하고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따스한 감정을 알게 되면서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하고, 스스로 언어를 공부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호수에 비친 자신의 외모는 인간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리고 몇 번 인간과 마주쳤을 때 반응이 어떠했는지 학습이 되었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도 선뜻 나설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럼에도 다정한 가족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온화한 눈빛을 보면서 자신을 받아들여줄 인간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는다.
이 생명체는 '괴물'이라는 단어만 빠진다면 반려동물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어린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혹은 외모가 다른 이방인 정도로 여겨도 무방한 감정을 가진 존재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 생김새에 두려움을 느끼고 소리를 지르며 공격하고 도망간다. 행복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 들어가는 자신을 꿈꾸다가 결국 모든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자신은 몰래 인간들을 돕기까지 했는데,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외견으로 인해 미움받는 고통은 너무나 컸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애정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오로지 공포와 혐오를 느낀다. 나와선 안 되는 존재가 탄생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이 존재를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저 일이 알아서 해결되기를 방관한다.
가족들에게나 대외적으로 좋은 사람인 프랑켄슈타인이 진정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나에겐 거의 한순간도 없었다. 가족들까지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면 그는 무슨 행동이든 나섰어야 했다. 끝까지 그저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며 자기합리화를 반복하고, 그거 신에게 뭐든지 맡기는 듯한 태도 하나하나에 화가 났다.
물론 나는 글로써 이 '괴물'을 만나는 거라 그 외모를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나도 괴물에게 돌을 던지는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괴물'을 만들었고 대화를 통해 지성을 제대로 갖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이 했던 선택들에 문제가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자신과 똑같은 여자 '괴물'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음에는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해쳤다는 점에서 분노를 금치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괴물'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 멋대로 세상 속에 던져 놓고,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을 깨우치며 성장한 그 '괴물'에게 마지막까지 고통만 안겨주었다.
이런 주인공의 태도에서 문득문득 학대를 당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창조주인 부모가 그들을 보살피고 아껴주지 않는다면, 사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자립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아이들을 생각하다 보면 다시금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함에 치를 떨게 된다.
분명 결말을 바꿀 수도 있었음에도 그저 속으로 고통스러워만 할 뿐 전혀 행동하지 않았던 프랑켄슈타인에게서 나의 단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도로 상황이 흘러가길 그저 기다리고 모르는 척했던 내 태도가 얼마나 책임감이 없었던 것인지 주인공을 욕하면서 깨달았다. 내 인생이 그냥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채로 지켜보기보다는, 굴러갈 만한 장소에 가서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나무 받침대라도 하나 가져다 놓고 예상과 다른 길로 갈 때를 대비해 또 다른 곳에 울타리를 치는 노력을 하는 게 진짜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 '괴물'은 괴물이 아니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해서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한 어린아이였고, 마지막까지 불행한 삶을 살다 간 피해자였다. 그 '괴물'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보지 못한 채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고립시키다 못해 살인자로 만들어버린 인간들이 진짜 괴물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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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시킨 건 영화의 이미지를 통해서였다. 책은 우리가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 지금 모두가 생각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아닐 수 있었다. 나는 원작소설이 있으면 영상물보다 먼저 읽는 편이다. 안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 이미지가 굳어서 계속 그 역할을 한 배우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먼저 읽는데 이것도 나름 안좋기도하다. 어쨋든 이번에 프랑켄슈타인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나에게 타이밍이 적절했다. 프랑켄슈탸인은 예전부터 원작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선뜻나서서 읽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알쓸인잡'을 통해 언급이 되었고 책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서 신청도 했고 됐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빅토르의 가정은 이상적인 가정이자 현대에 필요한 가정이지 않았나 싶다. 서로에게 의지가되고 서로를 사랑해주는게 느껴졌다. 또한 메리 셸리가 이 책을 썼던 18세기를 생각하면 21세기에서 많이 필요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진다. P. 96. 법조인만큼 명예로운 직업은 아니라고 해도, 농사를 잘 지어서 부유한 농부가 되는 편이 어두운 인간 본성을 다루는 불운을 겪는 판사에 비하면 적어도 더 행복할 거라고 말이야.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다면 나는 어떤기분일까도 싶어졌다. 아무리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괴물로 불리고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무적이라도 명명하지 못한 기분이 자신에게 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요즘 많이 등장하는 괴물 부류 중 하나인 '좀비'가 각광받을 수 있는 건 아니가 싶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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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고전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창조자의 이름이라는걸. (나만 모르는 거였나 ㅡㅡ; 괴물은 이름이 없다.) 오래전 분명히 읽었는데, 수많은 매체의 세뇌로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 착각하며 그동안 살아온 거 같다는 변명을 해본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인체, 살아 있는 동물의 신체 구조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생명의 근원을 알아내려 죽음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납골당과 시체 안치소에서 보낸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신체에 생명을 불어 넣는 연구에 매달린 결과 인간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막상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아름다운 꿈은 온데간데없고 숨도 쉴 수 없는 공포와 혐오감이 밀려들어 실험실을 뛰쳐나가고 만다. 흉측하고 역겨운 그것으로부터 도망가야겠다. 소름 끼칠 정도로 흉측한 모습에 혼비백산해 도망가는 사람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호의를 베푼다면 적어도 매질은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내 인간들에게 거부당한 괴물은 외롭고 비참하기만 하다. 자신처럼 추하고 끔찍한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만큼은 자신을 거부하지 않으리라,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남동생의 끔찍한 죽음을 시작으로 복수의 서막은 시작되는데... 사람들에게 메리 셜리가 아닌 그녀의 아버지나 남편이 썼을 거라는 오해를 받았던 이 작품은 당시 열여덟 젊은 여성이 썼다기에 믿기지 않을 강렬한 이야기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지식과 문학작품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던 그녀를 그대로 담아내듯 과학과 수많은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소개 글에 나왔듯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슬픔과 고뇌, 욕망 앞에 처절히 무너지는 고독한 자아를 담아내고 있다. 메리 셜리는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얼마 전 알쓸인잡을 보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여러 해석을 듣게 됐다. 당시 영국은 노예 해방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가축처럼 부리던 노예들을 해방했을 때 노예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이들과 평등하게 살수 있을까, 해방된 노예는 인간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메리 셜리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인종 해방 문제를 다루면서 당신들은 그들과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지를 물었던 게 아닌가 추측한다. 그녀의 작품 의도와는 달리 당시 프랑켄슈타인 작품을 빗대 괴물을 풀어주면 이렇게 위험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노예해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 피부색이 다르다고 신체 조건이 다르다고 언어가 다르다고 차별하고 핍박하는 그들이 진짜 괴물이 아니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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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메리 셜리, 윌북/2022-12-20, p,376> 윌북 클클단의 호러컬렉션 중 두번째 픽은 “프랑켄슈타인” 재독이었고, 역시나 너무 좋았다. 마지막 세 페이지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좀 울보이긴 합니다..헤헷..)완전 몰입했었나보다. 처음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을 때는 사실 프랑켄슈타인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괴물같은 모습을 가진 이라고 생각했었고, 사실은 그를 만든 사람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대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슬펐던 감정들이 재독에서 피조물에 감정이 너무 이입이 되는건지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계속 냉소적인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재독이라 그런지, 스토리에 집중했었다면 이번엔 한 걸음 뒤에서 관망하는 느낌이라 그런지 이번엔 좀 더 글이 잘 보였다. 특히 월턴이 누님 마거릿에게 보내는 편지 초반에 선량한 사람들에 대해 기술한다. 인간답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초반의 이런 기술이 내게 좀 더 생각하게 해 주었다. 프랑켄슈타인 그는 대학에서 크렘페 교수에 대해서 이렇게적었다 “물론 추한 외모와 불쾌한 태도는 여전했지만 그렇더라도 그에게서 얻은 지식은 가치가 있었다. 작가가 여러 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겉으로 인격적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외양으로 이미 판단하는 마음도 있다는걸 보여준다. 과학만이 옹호되었을 때 겁도 상실한 그, 시신에 대한 경외도 없고, 실험체로만 대하는 그의 모습엔 다시금 질려버렸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이 조우했을 때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눈을 가리고 “이러면 당신이 혐오하는 내 모습이 보이지않겠지. 그래도 내 목소리는 들릴 테니 내게 동정을 보여줘.”이 얼마나 슬픈가.. 그가 지켜보았던,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던 한없이 선량하고 미덕이 넘치는 존재라고 여긴 드 라세 노인의 가족. 드 라세 가족을 지켜보면서 점점 문명인?지식이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그 욕구가 얼마나 절실해졌을까. 그리고 거부당했을 때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의 선택지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드 라세 가족을 지켜보면서 점점 문명인?지식이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그 욕구가 얼마나 절실해졌을까. ?? “타락한 천사가 악랄한 악마가 되는 법이지. 신과 인간적인 악마도 비참한 처지에는 친구와 동료가 있었어. 그런데 나는 고독한 신세야.” ?? “하지만 당신이 나를 얼마나 혐오하건, 나의 자기혐오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해. 죄를 저지른 내 손이 눈에 선해. 범죄의 발상이 잉태된 심장이 떠올라. 그리고 그들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내 머릿속을 떠돌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어.” 드 라세 가족에게서도 부정당하고 분노를 가지고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를 하러 가게 된 그의 심경의 변화.. 그 와중에 선의를 베풀고도 총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그, 그 처참함과 비참함. 그리고 마지막 선택까지... 정말 이 책은 3번째 읽을 때도 더 좋을 것 같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리뷰를 쓰는데 이번엔 책에 적어놨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적어서 좀 두서없지만, 결론은 아주 좋았다. 특히 윌북 출판사의 현대적인 번역이라 더더욱 와 닿았다. ?? 이제 더 이상 해나 별을 볼 수 없고, 두 볼을 간질이는 장난스러운 바람결도 느끼지 못하겠지. 빛과 감정, 감각도 사라질 거야. 나는 이런 상태에서 행복을 찾아야 해. 몇 해 전, 내 눈앞에 세상의 이미지가 처음으로 펼쳐졌을 때, 여름의 상쾌한 온기를 느꼈을 때, 나뭇잎이 살랑거리고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런 것들이 전부 내 것이었을 때 죽어야 했다면 나는 서러워서 울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죽음만이 위안이야. 악행으로 더럽혀지고 쓰라린 회한으로 산산이 찢긴 내가 죽음이 아니면 어디에서 휴식을 구할 수 있겠나? 진짜... 이 부분 눈물 펑펑..... 정말 좋았다 #프랑켄슈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