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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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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벌레 이야기.... 책도 얇고 글도 많지 않아 금방 읽었지만 읽고 나니 이상한 기분~ 자식이 살해당한 부인은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면 보내다고 이웃의 간청에 교회를 다니며 조금씩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그 살인자를 용서하고자 합니다. 그러다 가게 된 살인자의 면회....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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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벌레 이야기.... 책도 얇고 글도 많지 않아 금방 읽었지만 읽고 나니 이상한 기분~

자식이 살해당한 부인은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면 보내다고 이웃의 간청에 교회를 다니며

조금씩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그 살인자를 용서하고자 합니다.

그러다 가게 된 살인자의 면회....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확 바뀌게 됩니다.

살인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어 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본 피해자의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요?....

어떤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다 용서하고 털고 일어날수 있을까요.....

q**********4 2014.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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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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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을 아직 보지 않았다. 문득 스치듯 본 TV에서 영화 밀양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홀리듯 읽은 책이다. 원작의 제목이 "벌레 이야기"라니 왜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소설이 스토리도 잘 몰랐는데, 책을 읽으며 정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니, 정말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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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을 아직 보지 않았다. 문득 스치듯 본 TV에서 영화 밀양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홀리듯 읽은 책이다. 원작의 제목이 "벌레 이야기"라니 왜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소설이 스토리도 잘 몰랐는데, 책을 읽으며 정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니, 정말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감히 살인자의 입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나올수 있는지 여부가 진심 궁금해졌다.

 

알암이가 불연듯 사라졌고, 두달 후 살해된 채 얼굴도 못알아 볼만큼 부패가 된 후에 발견되었다. 그러다 잡힌 범인은 알암이를 알고 있었던 면식범 주산학원의 선생이였다. 아내는 절망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런 아내를 일으킨것은 묘하게도 이웃 김집사 아주머니의 권유로 나가게된 교회, 종교의 힘이였다. 아내는 종교의 힘으로 아이의 구원을 빌었고, 점차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말한 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를 한번 만나고 싶다고, 그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한 것. 그렇게 만나게 된 두사람. 살인자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자신은 이미 주님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 그래서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하다 말한 것이다. 

- 이제와서 제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제 영혼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거두어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p.98

그리고 살인자 김도섭의 사형집행이 있고 얼마후 아내는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등져버린다.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한다면 그 대상은 누구여야 할까? 나는 당연히 그가 저지를 범죄로인해 피해를 본 이들이여야 한다 생각한다. 감히 그 죄를 누가 대신 용서한단 말인가. 인간이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고는 그 용서는 왜 신에게 가서 빌고 있는지.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책에 나오는 김집사라는 인물 역시 신이라는 주체 뒤에 숨어서 그저 평가만 하는 인물 아닌가. 당사자도 아닌 인물이 감히 용서를 운운하는 것조차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역겨웠다. 살인자 김도섭도 김집사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이 계신다면, 정말 살인자 김도섭을 용서했을까? 싶었다. 적어도 교회에서 말하는 가장 기본인 십계명 자체를 어긴 인간이 감히 신앞에서 스스로 용서를 운운할 수 있는가 말이다. 

 용서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  진정한 용서는 자신의 죄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며, 그들의 용서가 있고서야, 신 앞에가 빌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정말 가슴 아프다. 실화였다는 글을 읽는 순간부터 피해자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을만큼.

 

 

YES마니아 : 플래티넘 t****s 2022.1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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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 영화보다 더 무시무시한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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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이 아이와 배우자를 한꺼번에 연달아 잃게 된다면 그 사연을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하게 될까. 아이와 배우자를 앗아간 세상과, 이를 막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는 한이 절절이 사무친 방식으로 서술되지 않을까. 작가 이청준은 <벌레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남편의 슬픈 감정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이청준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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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이 아이와 배우자를 한꺼번에 연달아 잃게 된다면 그 사연을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하게 될까. 아이와 배우자를 앗아간 세상과, 이를 막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는 한이 절절이 사무친 방식으로 서술되지 않을까. 작가 이청준은 <벌레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남편의 슬픈 감정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이청준은 아이와 아내를 잃은 남편을 서술자로 선택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한 방식으로 서술해 나갔다. 이 남편이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다. 소설을 살펴 보면 표현이 극도로 정제되어서 그렇지 남편은 분명 아이와 아내를 잃은 데 대하여 안타까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기독교의 본질을 오도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약국의 집사는 신애에게 “불쌍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소설에서 김집사는 "알암이의 영혼의 구원"이라는 아내의 소망을 용인하지만, 사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다. 필자가 신실한 크리스천이 아니라 온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히 피해를 입힌 이에게 용서를 구할 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처럼 인식되도록 행동한 것 역시 사실이지 않은가. <벌레 이야기>나 <밀양>은 비뚫어진 기독교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바로 그런 지점에서 어느 기독작가가 쓴 소설보다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나는 소설의 결말부를 읽기 전까지 이창동 감독이 각색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몰라도 영화를 이미 본 터라, 이 정도면 이청준 선생님 작품 중에서는 범작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내려가던 순간 무시무시한 결말이 펼쳐졌다. 작가 이청준은 감독 이창동 보다 훨씬 더 가혹한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내에게 사형집행을 앞둔 범인 김도섭의 사랑과 축복의 기원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다. 그런데 이 말은 아내에게는 끔찍한 흉기가 된다. 축복의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다니! 이처럼 폭력의 본질을 소름끼치도록 보여주는 작품이 있을까. 영화 <밀양>이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일상의 밀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할 신애의 모습을 통해 조그만 희망을 남겨두었다면, 소설 <벌레 이야기>는 이 작은 희망마저도 빼앗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청준이 희망을 두는 곳은 등장인물이 아니라 바로 독자이다. 자신의 신앙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 손쉽게 구원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 신을 자기 욕망의 대리자로 여기는 사람들, 바로 우리가 올곧게 살아갈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n*****k 2014.10.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