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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지리학이 환경결정론적 시각에 매달려 왔다면 풍수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교감에 중점을 두어왔다. ‘땅이 좋아야 인재가 태어난다’는 뜻의 '인걸은 지령'이란 말은 3세기 중국 동진 시대의 곽박이 쓴 풍수서 『금낭경』에 처음 나온다. 얼핏보면 환경결정론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의 문화적 원형이 땅과 공간에 있다는 것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풍수가 비록 자연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것이고, 더욱이 양자는 상호공생적이다. '지인합일(地人合一)'이야말로 풍수의 기본정신이다. 국내 최고의 풍수 전문가 최창조는 풍수가 '인간의 지리학'임을 강조한다.
저자는『한국풍수인물사』(민음사, 2013)에서 우리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한국 풍수 계보를 소개하고, 자생풍수(自生風水)의 이론적 기틀을 설명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상생 조화를 강조하는 '풍수적 삶'의 회복을 주장한다. 최창조가 정의한 자생풍수의 특징은 다음 열 가지다. 1.주관성: 마음이 중요하다. 2. 비보성: 고침의 지리학이다. 3.정치성: 새로운 세상, 개벽을 지향한다. 4. 현재성:지금, 이곳에서 적용하라. 5.불명성: 비논리의 논리이자 논리 뛰어넘기이다. 6.편의성: 이상보다 현실에 충실하라. 7.개연성:그럴듯하게 보인다. 8.적응성:모든삶의 분야와 연결된다. 9.자애성: 내가 중심이다. 10.상보성: 인간도 주인이고, 자연도 주인이다.
자생 풍수의 가장 큰 특징은 개벽 사상과 비보 사상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도선 국사, 고려의 묘청과 신돈, 조선의 홍경래와 전봉준 등은 부패한 왕조의 개혁과 혁명을 꿈꾼 자생 풍수가들이었다. 비보 사상은 '병든 땅에 침이나 뜸을 하여 고쳐드리는 일'과 다름 없다. 그래서 자생 풍수는 '고침의 지리학' 혹은 '치유의 지리학'이다. 국토의 효율적 관리와 균형 발전을 꾀하는 비보 풍수는 특히 고려왕조에서 유행했다. 조선 시대 광화문 앞 해치나 숭례문의 세로쓰기 현판 등도 비보 사상의 예다. 환경 파괴나 오염이 그곳 주민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가져다준다는 현대적인 관념과 맞닿아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풍수는 발복(發福)만을 바라는 중국 풍수와 다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국 풍수를 우리 풍수의 전부로 오해하고 있다. "풍수가 찾고자 하는 터는 어떤 곳일까? 한마디로 불안이 없는 땅이다. 그런 땅은 어디인가? 바로 어머님의 품속 같은 곳이다. 안온하고 안정되어 있으며 근심 걱정이 없는 터, 바로 어머님의 품 안 같이 생긴 땅에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았다. 풍수는 그렇게 생긴 터를 좋아한다. 그래서 명당 좌우의 청룡과 백호는 어머님의 양팔이 되고 주산主山인 현무사玄武砂는 어머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가 바로 명당이니 명당은 바로 어머님의 품속이 아니고 무엇인가."(116, 117쪽)
이 책은 자생풍수의 비조인 도선에서 묘청, 신돈, 무학, 최호원, 박상의. 땡추, 홍경래, 전봉준 등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에서 활동한 자생 풍수가들을 소개한다. 도선의 풍수는 고려까지 이어져 각종 국역(國域) 비보 풍수를 낳고, 땡추들이나 묘청 등에 의해 개벽 사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개벽의 중추는 땡추 세력이었다. 도선 국사나 무학 대사는 각각 땡추의 시조와 중흥조에 해당한다.
"그들 땡추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출신 성분이 미천했다는 점, 당대의 집권 세력에 끼지 못했다는 점, 많이 돌아다녔다는 점, 당나라·원나라를 비롯한 중국에 유학하지 않은 비非엘리트 층이라는 점, 그리하여 반골 기질이 강하였다는 점, 그런 경향성이 그들에게 개벽의 꿈을 키워 주었다는 점, 개벽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려 했다는 점이다."(241쪽) 도선과 무학의 자생 풍수의 정신은 다시 최호원과 홍경래, 그리고 '동학 삼걸'이라 불린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까지 이어진다. 이외에도 조선 중기의 풍수가인 격암 남사고, 토정 이지함, 광해군 때 '교하천도론'을 주장한 이의신, 박상의 등의 사적도 소개된다.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란 말이 있다. 무결점의 완벽한 땅이란 없다. 결국 객관적인 좋은 땅이란 없는 셈이다. 있다면 땅과 사람이 상생의 조화를 이루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이제 전통적 풍수에 근거해 명당을 찾던 시대는 갔다. 도시 밀림 또는 아파트 수풀 속에서도 명당을 찾을 수 있고, 단칸방도 명당이 될 수 있다. 자연적 풍수에 완벽한 명당이란 없으며 이상적인 명당은 언제나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생 풍수는 주관적 명당론이다. 제 눈에 안경이고, 저 좋아 잡으면 그곳이 명당이다. 그러니 공연히 어려운 이론에 빠질 것이 아니라 그저 땅과 찬해지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정서를 가꾸는 것이 좋다. 일본의 경영의 신으로 충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했다.
"감옥과 수도원은 둘 다 세상과 고립되어 있지만 죄수들은 불평을 하고 수사들은 감사를 한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수도원으로 승화시키느냐, 감옥으로 전락시키느냐는 본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감사할 수 있다면 감옥도 수도원이 될 수 있다."(53쪽) 중국 풍수는 크게 두 개의 유파가 있다. 하나는 형세론(형세파)이고 다른 하나는 이기론(이기파)이다. 형세론은 형기론, 형법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당나라 양균송이 형세파의 개창조이고, 중국 강서 지방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기에 '강서파'라고도 한다. 이기론은 방위파, 이법 등으로 불리며 주로 복건 지방이 중심이 되었기에 '복건파'라고도 한다. "우리의 국도國都는 산간 분지 지형에서 산지와 평지의 점이漸移 지점으로 진전되어 나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삼한의 수도를 비롯하여 경주, 개성 등이 분지에 속하는데, 이런 곳을 풍수에서는 장풍국藏風局의 땅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양은 동쪽과 북쪽은 산지이지만 서쪽과 남쪽은 강에 면한 평야인 점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 이런 곳을 득수국得水局의 땅아리 한다. 즉 수도는 장풍의 땅에서 득수의 땅으로 헤쳐 나온 셈이다."(420쪽) 풍수는 땅을 어머니 혹은 생명체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한 물질로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땅이 소유나 이용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풍수는 이기적인 발복(發福)의 수단이나 부의 과시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리고 대중들은 발복을 기원하는 이기적인 술법 풍수나 음택풍수가 풍수의 전부이자 우리 고유의 사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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