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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메넌드가 본 인문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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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이 "The Marketplace of Ideas: Reform and Resistance in the American University"인 이 책은 하버드 대학 영문과 교수인 루이스 메넌드가 쓴 책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알고 보니 그 유명한 "메타피지컬 클럽"의 저자였다. 이 책의 원 제목의 Maketplace가 의미하는 바는 역시 미국 내 고등교육기관이다. 미국에는 4000개가 넘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1800만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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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이 "The Marketplace of Ideas: Reform and Resistance in the American University"인 이 책은 하버드 대학 영문과 교수인 루이스 메넌드가 쓴 책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알고 보니 그 유명한 "메타피지컬 클럽"의 저자였다. 이 책의 원 제목의 Maketplace가 의미하는 바는 역시 미국 내 고등교육기관이다. 미국에는 4000개가 넘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1800만명이 넘는 학생과 100만명이 넘는 교수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고등교육기관에서 만들어내는 지식의 상태와 그러한 지식을 교육시키는 시스템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있다고 하면서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교수들이 시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오늘날 고등교육에서 제기되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왜 교양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두 번째는 왜 인문학과의 존재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되었는지, 세 번째는 간학제성(interdisciplinary)은 마법의 단어인지, 네 번째는 교수들은 왜 똑같은 정치적 견해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지 이다.

 

 

사실 모두 다 만만치 않은 질문이지만 이 책은 이러한 문제들이 제기되는 것은 공통적으로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이 100년 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19세기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학체제는 1차 세계대전 이래로 구조적으로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요구되는 긴급한 교육적 과제는 직선적인 지식 전달 모델을 채용하고 있는 현재 관행을 해결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10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심오한 지식 대부분을 위키피디아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고, 고등교육의 부가가치를 구성하는 가장 큰 조각은 더 이상 순수한 지식이 아니게 되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우선 현재 미국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문제점은 교양교육이 반드시 필요한가와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관련된 것이라 한다. 일단 교양교육은 모든 교수가 함께 나눠 먹어야 하는 커다란 밥그릇인데다가 모두 확고한 견해가 있기에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얽혀있어서 개혁이 쉽지 않다고 한다.

 

 

또한 교양교육의 문제점은 교양교육을 인문과학 교육에 삶에 대한 준비라는 임무를 추가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때 발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시도의 이론적 근거가 인문학 전통을 수호하는 자유 교육이 스스로 내렸던 전통적인 정의와 반대되기 때문이라 한다. 이 책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시작된 배분모델과 핵심모델의 교양교육 체계 및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대학 등 다양한 교양교육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분열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국민에게 필요한 일종의 문화적 공통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정의된 교양교육의 역사를 일별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현실과 관련된 어떠한 지식과 기술을 교양교육을 통해 제공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어서 인문학의 존폐논란과 관련하여 저자는 20년전부터 불어 닥친 인문학의 당위성 문제는 일종의 강박적 행동이라 치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전보다 인문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은 줄었지만 문학, 예술, 음악 및 철학 강좌를 수강하는 대학원생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따라서 인문학 분야가 구조조정 기간을 거칠 수는 있어도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비록 인문과학 교육이 이를 대체하려는 다른 과목들의 확산과 매력에 밀려나고 있지만 이러한 원인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대학에 진학하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데 인문학에 대한 위기설의 근원에는 인문학 교수들 사이에서조차 인문학 연구의 패러다임에 대해 제대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는 한계점이 도사리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인문학의 정체성 논란을 통해 등장했던 것이 바로 간학제성이라고 하면서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간다. 21세기 고등교육에서 간학제성보다 큰 잡음을 일으키는 요소를 지닌 단어는 없다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간학제성은 본질적으로 체제 전복적이거나 반관습적이거나 변혁적이지 않으며 새로운 개념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게다가 학제성에 대한 반발로 나왔다면 엄밀하게 탈학제성이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간학제성이 화두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사회 전체에서 전문 직업의 권위에 대한 존경을 상실한 것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집단보다 교수나 학자들이 의미심장할 정도로 훨씬 진보적인 이유에 대해 교수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도록 훈련 받기 때문에 그렇고, 교수라는 분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지적 범위가 비슷하고 따라서 다양성이 감소되며, 교수라는 직업 자체가 점차 자기선택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점차 똑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미국 대학의 인문학과와 그 학문에 대해 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미국 학제를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미국의 상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인문학의 위기뿐만 아니라 내가 대학을 다닐 1990년대에도 이 책에서 말하는 간학제성이 큰 화두가 되었다는 사실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인문학 교수라서 대학 안에서 본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현실감이나 위기감이 좀 떨어질 수도 있으나 고민의 틀은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d****o 2014.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