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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야자수 잎'이라는 책의 원제목은 고대 불교 경전에서 따왔어요. 부처의 가르침이 공기에 스며드는 야자수 잎의 향기와 같다고 묘사한 것이죠.
틱낫한은 자신의 글이 가르침의 표현이며 평화, 기쁨, 연민의 감정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젊은 틱낫한의 일기>는 그의 영적 여정 초기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수행자의 눈을 통해 진실한 자아에 대한 존재 의미를 탐구하며 불교의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책은 틱낫한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전쟁과도 같은 내면의 투쟁을 담고 있어요.
나와 사회가 규정한 나 사이의 경계, 두꺼운 벽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수행자의 삶을 돌아보면서 바쁘게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게 해요.
부당함과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도승의 성찰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향기가 납니다. 진리를 향한 고결한 마음이 생생하게 다가와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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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평화를 위한 가르침을 펼치신 '살아 있는 부처' <틱낫한> 참여 불교를 설파하고, 걷기 명상, 마음 챙김 명상 수행 등으로 불교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온 틱낫한 스님이 2022년 1월 우리 곁을 떠나 입적하였다.
이 책에는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던 스승 틱낫한이 우리에게 남긴 젊은 날의 발자취. 삼십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연구하던 시절의 삶과 수행,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이후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와 전쟁이 진행되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번민까지, 틱낫한이 진솔한 마음을 담아 적어 내려간 일기가 담겨있다.
책을 읽고 있으니 시공간을 이동해 '프엉보이(향기로운 종려나무 잎)에서 스님과 함께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독재 정부의 탄압과 전쟁의 공포 앞에서도 꺾이지 않던 평화를 향한 기원과 진리를 향한 마음을 틱낫한 본인의 목소리로 전달하여 독자에게 생생하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
마음이 어지러워 잠이 오지 않는 고요한 밤. 틱낫한 스님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면 어느새 내 마음도 스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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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서포터즈 16기로 활동하면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젊은 틱낫한의 일기 나를 만나는 길 1962~1966
작가_ 틱낫한 출판_ 김영사
만약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살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죽어야 한다. 우리는 삶을 가능하게 만든 폭풍우 속에서 거듭거듭 소멸되어야 한다. (…) 나는 계속해서 성장해야만 한다.105페이지
『젊은 틱낫한의 일기』는 '셜록'으로 유명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제작하고 내레이션을 맡은 영화 <나를 만나는 길 Walk with me>에 책 속 문장이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틱낫한 스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일기를 통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프린스턴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연구하던 시절(1962~1963), 베트남으로 돌아와 평화 운동에 헌신하던 중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조국을 떠나기 직전(1964~1966)까지 쓴 스님의 일기를 엮은 책이지요. 안타깝게도 틱낫한 스님은 남과 북 가운데 그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오직 평화를 원했다는 이유로 39년 동안 조국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셨습니다. 2022년 1월 입적하시기 전까지 한 평생 평화를 위해 헌신하시며 '참여 불교'를 설파하신 스님의 가르침은 종교를 떠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 볼 것
숲은 매우 넓었고 우리는 아주 작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가 전혀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는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과거에 우리에게 강요되어 온 수많은 사회적 관습에서 해방되기 위한 하나의 몸짓이기도 했다. (…) 우리는 사회적 규제를 산산조각 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달리고 소리쳤다. 40페이지
나는 전쟁터가 되었다. 폭풍우가 끝날 때까지 내가 살아남을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육신의 삶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핵심 자아라는 더 깊은 의미에서 말이다. 나는 파괴에 파괴를 거듭 경험했다. (…) 마침내 폭풍우가 지나가자, 내면의 단단한 층들이 부서져 있었다. 104페이지
틱낫한 스님의 서른 중후반 정도의 삶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깊은 사유를 안겨주리라 생각합니다. 서른에서 마흔 즈음의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각자 처한 상황과 위치는 다르지만 생을 살아간다는 대명제는 동일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번만이라도 스스로를 증명해 내기 위해 노력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증명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 위한 증명, 스스로를 제대로 알기 위한 증명이지요. 서른 즈음 그 과정을 거친다면 마흔 이후의 삶은 좀 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본연의 모습을 깨달아가는데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겠지요. 처연하고 처절하리만치 냉철한 스님의 시선을 따라 그 과정을 밟아보고 싶습니다.
삶을 더 깊게 누리게 해 줄 자양분이 있나요
얼음같이 찬 겨울은 어리고, 여리고, 불안한 모든 것에게 가혹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음의 불확실성을 넘어 성장해야 한다. 성숙함과 결연함이 필요하다. (…) 조국은 지독한 폭풍을 뚫고 나아가려고 한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무력에 의존하는 이 억압 체제는 너무도 많은 불의를 낳았다.82페이지
고국의 전쟁과 독재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내면의 성찰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틱낫한 스님. 세상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참여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위대한 발걸음의 서막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면의 평화와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고요와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세상을 향한 그 어떤 외침도 진실하게 가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스님의 가슴속에서 결코 꺼지지 않는 하나의 불꽃, 희망과 꿈을 키워주는 영적인 자양분. '프엉보이' 사원을 떠올려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을지언정 마음에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성스러운 그곳. 프엉보이를 향한 스님의 절절한 마음이 책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더 깊이 있게 누리게 해줄 '프엉보이'같은 곳을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국 베트남을 위한 스님의 위대한 행보
베트남은 갈라졌다. 전쟁은 믿음과 희망 그리고 과거의 모든 생산적인 노력을 모두 파괴했다. 사람들은 선한 의도를 가진 모든 행동과 약속된 모든 것을 의심했다. 종교는 통합과 사회적 책임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기관이었다. 172페이지
베트남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스님의 행보는 그 자체로 끝없는 고행입니다. 언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스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안으로는 마을 재건 사업을 추진하며 베트남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입니다. 밖으로는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베트남의 평화를 위해 헌신합니다.
시대의 어른으로 위대한 스승으로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준 틱낫한 스님의 젊은 날의 기록을 만나 볼 수 있는 『젊은 틱낫한의 일기』
스스로를 증명해 내고 싶다면 내 안의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나누고 싶은 문장. 덧붙인 생각들.
이곳에 올 때 책 몇 권을 가지고 왔는데 읽을 시간이 없다. 숲이 이토록 고요한데, 호수가 이토록 푸른데, 새들의 노래가 이토록 맑은데 내가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겠는가? 어떤 날 아침에는 내내 숲속에 머문다. 나무 아래를 느긋하게 걷고, 부드러운 이끼 위에 누워 팔짱을 낀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런 순간들에 나는 다른 사람이다. 아마도 '진정한 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나의 지작, 느낌, 생각은 뉴욕에 있을 때와 같지 않다.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더 밝고 기적 같다!15페이지
_자연의 깊은 고요 속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책에 내어줄 시간이 없다는 스님의 말씀이 놀라웠습니다. 때론 경쟁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책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내어보지 못했던 날들을 떠올려 봅니다. 책 속 세상이 아닌 눈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되짚어 봅니다. 세상의 모습에, 변해가는 자연에 마음을 내어보고 싶은 날입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진리와 같은 화려한 이름을 가졌으니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리가 물었습니다. 나는 다시 진리를 바라보며 추하지 않다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 진리가 물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보았으니 오늘 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근엄하게 대답했습니다. "배고플 때 먹겠습니다. 고단할 때 자겠습니다."52페이지
_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배고플 때 먹고 고단할 때 자는 것처럼 때로는 단순한 진리가 삶을 가치있게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느라 잉여 부산물이 몸에 축적됩니다. 고단할 때 쉬지 않아서 여기저기 잔고장이 납니다. 삶은 단순합니다. 삶의 진리를 따라야 할 이유가 명확합니다.
베트남 전쟁이 확전되고 있다. 고국의 사람들은 궁지에 몰렸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나라는 화염에 휩싸인 채 두 동강이 났다. 프엉보이조차도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서로가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혼자일 수 없다. 우리는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서기를 원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끔씩이라도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해 생각했으면 하는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과 존중을 원한다.97
마음의 어두운 고립을 쫓아버리는 가장 좋은 처방은 삶의 고통과 직면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공유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외로움은 거짓된 껍데기 속에 자신을 가두는 데에서 기인한다.195페이지
나는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내 친구들은 그들의 믿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는 토대나 신비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쌓아 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람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은 그 어떤 보답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배신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22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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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지러워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술 발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반면 인간의 존엄성은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불평등은 심해지고,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평온은 점차 잊어버리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이렇게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 세상일수록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스승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틱낫한은 한평생 평화를 위한 가르침을 펼치며 걷기 명상, 마음챙김 명상 등으로 불교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어요. 독재 정부의 탄압과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평화운동으로 길고 길었던 망명 생활을 하는 등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진리를 찾고자 했고, 플럼 빌리지라는 명상 공동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휴식을 주려 노력했던 그는, 2022년 1월 96세로 입적했어요.
책의 원제는 '프엉보이(Phuong Boi)‘로, 틱낫한을 포함한 몇몇이 불교를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며 1957년 베트남 중부 산악지대에 일군 사원의 이름이에요.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더 깊이 누리고자 만들었다고 해요. 책은 1962~1963년 미국의 프린스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가난한 유학생으로 연구와 공부를 하던 시절, 1964~1966년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와 평화운동을 하던 시절, 두 시기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2022년 5월 국내 개봉한 틱낫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를 만나는 길'(베네딕트 컴버배치 제작)에 이 책 속 문장이 내레이션으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끔씩이라도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해 생각했으면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오직 이해만이 사랑에 이른다." (P. 97~98) 현실에 치이다 보면 제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틈이 없을 때가 있어요. 책이나 기사를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때때로 두 개의 상반된 자아, 즉 사회가 강요하는 '거짓 자아'와 내가 '진정한 자아'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갇혀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둘을 헛갈리고, 사회가 강요한 틀을 진정한 자아라고 추정하는가. 우리는 지금 가장 외롭지만, 폭풍우 끝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이와 같은 폭풍우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의 나일 수 없다." (P. 100) 사회적 자아의 모습을 진정한 자아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그렇게 살다 보니 진정한 내 모습을 알지 못한 채 폭풍우가 몰아칠 때마다 그대로 휩쓸려 혼돈 속에서 헤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폭풍우 속을 지날 때마다 껍질을 하나씩 깨부수려는 저를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살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죽어야 한다. 우리는 삶을 가능하게 만든 폭풍우 속에서 거듭거듭 소멸되어야 한다. 나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P. 105) '변화'라는 것 참 쉽지 않아요. 매번 다짐은 하지만 실제 행동해서 변화하는 것은 1%나 될까요.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 삶에 맞는 옷은 내가 만들어야겠죠. 한번 만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를 주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요.
"오늘날의 사람들은 쉬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주의를 빼앗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으로 자유시간을 채운다. 사람들은 몇 분간의 여유 시간도 참지 못한다." (P. 150) 최근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뜨끔했어요.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쉴 수 있는 시간조차 무엇인가를 하면서 채우려고 하는 제가 보여요. 마음이 한시라도 조용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 지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한 번씩 찾아오는 것 같아요.
"위대한 자비의 눈에는 왼쪽도 오른쪽도, 친구도 적도, 가깝고 먼 것도 없다. 위대한 자비의 눈에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구별도 없고, 따로 떨어진 자아도 없다." (P. 236) 위대한 자비에 이르는 길... 저에게는 한참 멀었네요. 저는 아직 차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어요. 도대체 왜 저럴까?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죠. 제 생에 저런 경지가 가능할까 싶어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분들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틱낫한이 선택해서 간 길이 얼마나 가시투성이였는지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어요. 쉬운 길을 마다하고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한 그의 내면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독재 정부의 탄압과 공포 앞에서도 평화를 기원하고 진리를 향한 그의 마음이 잘 느껴졌어요. 그가 진정 바랐던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르겠죠. 그런데도 그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최근 어지러웠던 제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두 아들 방학이라 혼자 조용히 있을 시간이 없어 어느새 많이 지친 제가 보였어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마음의 평온은 잊어버렸고, 조급함은 느끼지만, 의욕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봐야 할 시간을 의도적으로라도 가져야겠죠. 틱낫한이라는 스승의 삶을 통해 제 삶도 돌아볼 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분주한 현실에서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분께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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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2월 도서 두 번째! 이 책이야말로 서평 활동 덕분에 내가 만나게 된 새로운 세계다. 평소 궁금했던 불교와 관련된 책이기 때문. 베트남의 승려인 틱낫한 스님 (안타깝게도 22년에 세상을 떠나셨다)의 기록이다. 틱낫한이라는 스님이 궁금해 찾아봤다. 놀랍게도 4대 생불(=살아있는 부처) 중 한 분이셨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캄보디아의 고시난다, 한국의 숭산 스님까지. 틱낫한 스님을 주제로한 다큐멘터리 <나를 만나는 길> 역시 작년에 개봉했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레이션을 했다. 나는 불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늘 궁금했다. 인간을 향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속적이기도 하고 범지구적이기도 했다. 심지어 무척 독립적이다. (깨우치기 위해 선 禪과 같은 자기 노력과 자아실현이 필요하다.) <젊은 틱낫한의 일기>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스님이 남긴 일기다. 베트남과 미국을 오간 일상적 내용을 포함해 스님의 가치관도 많이 등장한다. "현실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것도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의 경험에 의해, 우리의 지각에 의해 즐겁거나 즐겁지 않은 것이 된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지각이 고통의 세계를 만든다" 이런 문장들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음... "인간이 변한다는 것은 옷을 갈아 입는 것과 같다"라는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변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없다. 달리 말해, 살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죽어야만 한다. 삶의 폭포 속에서 거듭거듭 소멸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옷은 향기롭고 친절하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옷을 입을 순 없다. 기억의 가방에 간직한 채 나에게 맞는 더 큰 옷을 입어야 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이미 만들어진 사회의 옷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다른 새 옷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진리는 어제의 진리와 다르다
p. 118 꿈에서 깨어나자 마음이 평화로웠다. 나는 어머님의 태어남과 죽음이 개념일 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실상은 태어남과 죽음 너머에 있다. 어머니는 태어남 때문에 존재하신 것이 아니고, 죽음 때문에 존재하기를 멈추신 것이 아니다. 나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았다. 존재는 오직 존재하지 않음의 관계 속에만 있다. 그 어느 것도 존재하기를 멈출 수 없다. 어떤 것이 무에서 생겨날 수는 없다. => 이건 정말... 놀라웠다. 존재와 비존재의 상호성. 존재는 비존재와 대비될 때만 정의될 수 있다. 고통이 있어야 삶이 있고, 상처가 있어야 빛도 있다. 지금의 우리가 누구인가는, 부분적으로 우리가 겪은 즐겁지 않은 경험의 결과이다. 생사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같다. 최근 내가 자주 인용하는 비유가 '孝와 不孝'인데 (상대적인 개념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 존재와 비존재성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겠다 싶었다!!
p.150 미성숙한 영웅은 언제나 계속 바쁘다. 끊임 없이 바쁘다는 것의 파괴적인 힘은 핵무기에 버금가고 아편만큼이나 중독성이 있다. 그것은 영혼을 텅 비게 한다. 그들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작 무엇을 할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주의를 빼앗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으로 자유 시간을 채운다. 모두 내면의 공허가 그 무서운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 바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들 내면을 본다면 황량함을 볼 것이다. => 공감... 계속해서 뭔가를 읽고, 채워넣으려 하는 것은 내면의 공허함 때문이다. 성숙함이 있어야 습관적 바쁨에서 벗어날 수 있음.
부정적 에너지가 생겨나면 빨리 반응하지 않는다. 단지 미소 짓고 알아차림으로써
에너지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본격 불교 서적보다는 더 쉽게 접근 가능한 것 같다 ㅎㅎ 사실상 책의 갈래는 수필이니! 나는 왜 항상 관심사가 변하는가? 인간은 왜 항상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에 조금은 답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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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틱낫한의 일기를 받았다. 김영사 서포터즈를 하면서 책을 고르면 그 책을 보내준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읽고 느낀 바를 포스팅한다. 내가 고른 책은 젊은 틱낫한의 일기다.
불교신자가 아닌데.. 종교는 어렸을 적에 크리스마스에 취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노래와 춤을 추며 그날을 기리는 게 흥겨워서 교회를 잠깐 다닌 것 말곤 없는데, 왜 나는 이 책을 고른 것일까
시댁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였다. 이제는 김씨 집안사람이니 교회나 그런 곳을 가면 안 된다고.. 물론 무교였기 때문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은 가톨릭으로 모두 세레를 받았다. 그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을 순진하게 난 무교니 그런 곳에 갈 일 없다 싶어 안 그러겠다고 순순히 대답했던 것이다. 기싸움에서 진 건가? 아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종교는 그 누구에 의해서든 결정될 수 없다. 오죽하면 집안 모두가 가톨릭 신자인데 나만 무교일까.
변한 것은 나이가 먹고 나니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나에게 그게 다 똑같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에 대해 사유하고 싶어 젊은 틱낫한의 일기를 고른 이유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그러한데, 그래서 종교의 통합적인 이야기와 성찰 등을 기대하고 읽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젊은 틱낫한 승려는 내게 종교의 믿음보다 본인 자아에 대한 성찰과 당시 본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의 상황, 정치를 아우르는 시대상을 꼬집고 비판하고 있다. 승려이고 불교신자임에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집필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은 것에 대해 탄압을 받았다.
그런 일련의 이야기들의 지극히 한 인간으로서 담담하게 일기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그럴 수 있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불교의 승려로써 명성을 얻고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받을 것인데, 과연 나라면 정치적 의사를 내비쳐 탄압의 대상을 자초할 수 있겠냔 말이다.
젊은 틱낫한 승려는 한다. 다른 젊은 승려와 불자들을 모아 사원을 차리고 그곳에서 명상과 기도를 올리며 국민들을 위해 앞장서서 힘없는 자들과 함께 한다.
처음부터 그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불교 지도층은 보수적이어서 틱낫한 승려의 글(인본주의)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도층을 이해시키려 하였지만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지금 베트남의 상황에 눈을 감았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구하고 도움을 받고 노통을 하여 돈을 버는 등으로 사원을 짓게 된다. 그 사원이 프엉보이다.
'프엉'은 '향기로운' '드문' '소중한'이란 뜻이고, '보이'는 고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던 '종려나무 잎'을 뜻한다. <젊은 틱낫한의 일기> 중에서
그 프엉보이를 짓기 위해 땅을 사고 계약서에 서명한 것을 두고 부동산을 소유하였다고 공산주의자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틱낫한 승려의 핍박과 싸움의 시작이었다. 나는 베트남의 역사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하여 처음에는 젊은 틱낫한의 일기를 읽으면서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책의 중반을 지나 말미에 이르니 왜 틱낫한 승려는 반전평화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종교인임에도 독재정부에 맞서 싸워 망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안타까웠다.
미국으로 건너가 친구를 사귀며 함께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은 여타 다른 유학생과 같았다. 스티브와 같이 지내며 서로의 인생관 등, 입맛과 취향도 젖어들어 스티브는 꼭 베트남에 방문하여 프엉보이에 가보고자 하였다. 미국 생활에 염증을 느낀 스티브는 틱낫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베트남의 프엉보이를 같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젊은 틱낫한의 일기에서 스티브는 결국 베트남을 가게 되는지 가지 못하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틱낫한 승려는 그가 프엉보이에 오지 않길 바랐다. 그 부분이 적혀 있는데 베트남의 독재 정권, 전쟁으로 불안한 상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그렸던 프엉보이는 예전의 깨끗하고 조용한 프엉보이가 아닌지라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추억 속의 프엉보이로 간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는지도..
미국으로 건너갔던 틱낫한 승려는 그곳에서 본인의 조국을 위해 열심히 교리를 전파하였다. 현 베트남의 상황과 외국에 이 참상을 알리고 도움을 받고자 노력하였다.
한 번은 뜻을 관철시키고자 단식을 하는데 단식 장소를 제공받고자 하였으나 역시 미국은 미국이었다. 하루 대관료는 얼마임을 알리며 그것마저도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우여곡절 끝에 단식을 하게 되고 그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스티브가 눈에 그려졌다. 외국의 승려 친구를 위해 세심히 배려해 주는 모습에서 우정 이상의 존경심 등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름답게 비쳤다.
한 일화이다. 틱낫한 승려가 미국에 있을 때, 꼬마가 물어왔다. "불자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나요?"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불자들이 네 번째 달의 보름날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단다. 우리는 그날을 '붓다마스'라고 불러"
이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 생각했던, 그 부분이 해소된 듯한 느낌이었다. '종교는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결국 하나의 신으로 합치된다 것' 말이다.
나는 세상에 유일신이 있다고 믿는다. 종교나 계파는 중요치 않다. 결국 태초의 신은 하나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각기 원하는 이름으로 명명하여 부른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을 신을 믿고 따른다면 그 신도 우리를 보살펴주고 돌봐줄 것이라고 믿는다.
행운도 그렇게 흘러나오지 않을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무교다. 그러나 신은 있다고 믿는다. 부처님이건 하나님이건 알라신이건. 명칭은 알아서들 생각하시고.
그래서 나는 선행을 베풀면 그 복이, 행운이 돌아오게 된다고 믿는다. 억지고 이기고 살 필요 없이 조금 손해 보듯 살아가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리라. 다 내 자식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선행까진 아니더라도 악행은 절대 저지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같은 교육방침을 가르친다.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공부해서 남 주고. 남과 더불어 사는 게 좋고, 남을 배려하며 살면 가장 좋고 말이다.
배워서 남 주자에는 이 틱낫한 승려와 같이 정당한 일에 앞장서는 자세도 포함되어 있다.
서로를 이해하며 산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을 결혼이란 제도로 알게 되었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게 그 사람이 틀렸다가 아님을 아는데 본인 생각을 요구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니 관계는 틀어진다.
그러나 한 나라의 독재 정권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건 차이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들이 핍박받고 피해자가 된다. 그 고리를 하루빨리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바로잡는 데는 종교인이건 학생이건 편가르기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틱낫한 승려가 한 것이다.
틱낫한 승려가 한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처님은 어디에나 있다고. 절에 모시니 절간에 들어앉아 있는 분이 부처님일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부처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고 우리와 함께 땀을 흘리고 같이 아파하고 고통받는 이가 부처라고.
오늘은 세계에서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틱낫한 승려님에 대해 읽어 보았다. 그분은 2022년 입적하였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음을 느껴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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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태어나 열 여섯살에 불교 승려가 되었으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다양한 사회운동을 했던,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스승인 틱낫한의 젊은 날에 남긴 발자취에 대한 글이다. 글을 읽으며 베트남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해 상황을 이해하려 애를 써야만 했지만, 이후 상황을 통해 인문학적 지혜로 정제해내는 과정이 너무도 명쾌하고 이렇게 얻어낸 지혜들 하나하나가 모두 삶의 진리에 맞닿아있어 글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암담한 현실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상황을 진정으로 파악해 자신의 삶을 위해, 나아가 타인의 삶들을 위해 올바른 길을 개척해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우러나오게 된다. 독재 정부와 전쟁이라는 극도로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자연이 선물하는 아름다움과 진리, 그리고 고통 속에서 얻어내는 지혜들은 지금 우리가 겪는 삶에도 충분히 적용시켜 고통을 덜어내고 이상을 쫓아갈 수 있도록 한다. 글을 읽다가 카를 융의 '천국으로 가장 높이 솟은 나무는 반드시 그 뿌리를 지옥에 두어야 한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틱낫한은 이 글귀를 경험으로 증명해내었다는 것을 느꼈다. 온실 속 화초처럼 그가 평화속에서 살았다면 이런 깨달음들도 없었을 것이고, 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존경받는 스승이 될 일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성장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고통에 직접 몸을 던져야하고,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어른들이 이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말을 달고 다니던건가 싶다. 비록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나, 뉴욕에서 공부를 하던 틱낫한의 삶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그의 이야기에서 잘 걸러내어 만든 지식을 얻겠다는 목적 단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방황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