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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나 아렌트 《과거와 미래 사이》, 서유경 옮김, 한길사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
작년 경희사이버대학에 편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읽지 않았을 책이었을 것이다. 훗날 다른 기회에 읽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 책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권위자이자 후마니타스학부 학과장님이신 서유경 교수님의 번역서다.
역시 ‘철학’이란 쉽지 않는 학문이다. 사상이나 이념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철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난 학기 서유경 교수님의 과목을 수강하고 시험을 치루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단어’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기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펼치고 나서 ‘정초(定礎)’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되었다. 사전적의미로 ‘사물의 기초를 잡아 정함’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것에는 ‘처음’이라는 것이 있고, 그 처음은 시작을 의미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첫 단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이 첫 단추라는 것은 방향성이기도 하다. 시작할 때의 방향이 잘못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는 무한대에 가깝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 부제에도 있듯 이 책에서는 여덟 개의 단어에 대한 정치철학적 담론을 다루고 있다. 그 단어들은 전통, 역사, 권위, 자유, 교육, 문화, 진실, 우주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을 가지고 나눌 수 있는 담론의 범위는 어마무시하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정치철학자인 만큼 이 모든 단어들을 정치와 연계하여 풀어내고 있다.
일상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 왔던 여덟 개의 단어들에 ‘정치’라는 색깔을 덧붙이니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의 지평이 넓어졌다. 더불어 모든 단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게 되었다. 비록 사유의 깊이가 접시에 담겨 있는 물과 같지만 그 나름대로 새롭게 다가온 의미들은 내게 과거와는 다른 세계를 선물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전통’이라는 단어가 그러했고, ‘권위’와 ‘진실’이라는 단어가 그러했다.
개인적으로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내게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교육위기’는 크게 공감 되었고, 내 생각의 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육’이라는 텍스트는 분명 인류에 필요한 단어이다. 하지만 결국은 ‘정치’와는 결코 때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철학이라는 학문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그 기원을 찾아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모든 철학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정초(定礎)’가 되는 고서(古書)를 읽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서양철학에서는 적어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알아야 하고, 동양철학에서는 적어도 공자, 맹자, 노자, 장자를 알아야 한다. 어쩌면 ‘철학하기’의 어려움과 걸림돌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더 깊은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선현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문에 학문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한 층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할 때마다 넘어야 하는 능선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학문을 정복한다는 것은 우주를 정복하는 것보다 더욱 무모한 망령에 지나지 않다.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은 바로 학문의 깊이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결코 자만하고 오만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학문 분야이고,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하는 곳이 바로 학문 분야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겸손’이라 부른다.
따라서 겸손한 자만이 진정한 철학자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한나 아렌트의 《과거와 미래 사이》를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서유경 교수님께 이 서평을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자 한다.
아래는 책의 본문에 나오는 내용 중 내 마음에 작은 파도가 되어 준 구절들이다.
p232
“어떤 합법적 강제의 원칙을 발견하려는 플라톤의 시도는 원래 양치기와 양, 배의 선장과 승객, 의사와 환자, 주인과 노예 사이 같은 기존 인간관계의 여러 모델에 의해 인도되었다. 이러한 경우들에서는 [한쪽이 가지고 있는] 전문 지식이 신뢰로 전환되기 때문에 순종을 이끌어내는 데 힘이나 설득이 불필요하다. 아니면 완전히 다른 존재 범주에 속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경우, 양치기와 양 떼 또는 주인과 노예의 경우에서는 둘 가운데 한쪽이 이미 암묵적으로 다른 한쪽에 종속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는 전부 그리스인들이 삶의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한 곳으로부터 차용되었고, 《국가》, 《정치가》, 《법률》과 같은 위대한 정치적 대화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환자는 병이 나면 의사의 권위에 종속되고, 노예는 노예가 된 순간 주인의 명령 아래 놓인다.”
p240
플라톤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그가 정치영역에서 철학이 지니는 부적합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언제나 정치영역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이후의 거의 모든 철학자들과 달리 인간사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 나머지, 자기 사상의 핵심을 변형해 정치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정초작업, 로마적 삼위 ? 종교, 권위, 전통
p334
중요한 사실은 특정 이론들을 위해서,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아니든, 모든 건전한 인간이성(human reason)의 법칙들을 옆으로 제쳐놓았다는 것이다.
건전한 인간이성을 통해 정치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좌절되거나 포기될 때마다 우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이성은 실제로 우리와 우리의 오감이 모두에게 공통인 어떤 단일한 세계에 적합해지고 그 안에서 운신할 수 있게 만드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상식의 실종이야말로 위기의 가장 확실한 신호다.
상식의 실패는 마치 점괘(占卦) 지팡이인 양 그러한 함몰 지점을 [정확히] 가리킨다.
p336
미국에서 교육의 위기를 첨예화하는 것은 이 나라의 정치적 기질이다. 미국은 나이의 많고 적음, 재능 있는 자와 없는 자, 마침내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특히 학생과 교사 사이의 차이를 평등하게 하려고 하거나 가능한 한 그들 사이의 차이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한 평등화는 분명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학생들 가운데 재능 있는 자를 희생시켜야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p374
문화는 물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것은 세계의 한 현상이다. 반면에 오락은 사함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것은 삶의 한 현상이다.
p382
투키디데스가 페리클레스의 것으로 기록한 언명
“우리는 아음다움을 사랑하지만 절제하고, 지혜를 사랑하지만 유약하지 않다.”
페리클레스
“우리는 정치적 판단의 한계 안에서 아름다움(美)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유약성이라는 야만인들의 악덕이 부재한 상태로 철학한다.”
p391
칸트 《실천이성비판》
“항상 네 행위의 원칙이 하나의 일반 법칙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라.”
소크라테스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과 불일치 상태에 있는 것보다는 저 세계 전체와 불일치 상태에 있는 것이 낫다.”
p398
후마니타스는 그리스어 필란트로피아(인류애)를 번역하기 위해 사용된 것인데, 이것은 원래 신과 지배자들의 언어였으므로 전적으로 다른 함의를 담고 있다. 키케로가 이해했던 대로, 후마니타스는 본래 로마의 오래된 덕목인 플레멘티아(clementia, 침착함, 온전함)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라틴어인 그라비타스(gravitas, 무거움, 권위)와는 확실히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교양 있는 사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다음 설명은 우리의 문맥상 중요한데, ‘인간성(humanity)’으로 귀착된다고 믿어졌던 철학보다는 예술과 문학에 관한 학문이었다. - 각주 -
p399
키케로
“플라톤의 적대자들과 사실적 견해들을 같이하기보다 차라리 천국의 문 앞에서 플라톤과 함께 길을 잃는 것을 택하겠노라.(Errare mehercule malo cum Platone... quam cum istis vera sentire))”
p408
홉스 《리바이어던》
“그 어떠한 인간의 이득 또는 쾌락에 반하지 않는 진실만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다.”
p427
이성적 진실은 인간의 오성(惡性)을 계몽하고, 사실적 진실은 의견에게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p429
플라톤 《고르기아스》 〈대화편〉 소크파테스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보다 내가 해를 입는 편이 낫다.”
p451
몽테뉴
“허위가 진실처럼 오직 한 개의 얼굴뿐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의 반대를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의 반대는 수천 가지의 모습이고 무한정한 [활동의] 장을 가지고 있다.”
p454
“진실은 비록 무력하고 기존의 권력들가 정면충돌해 늘 패할지라도 그것만의 저력을 보유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무엇을 획책하든 간에 그들은 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거나 고안하지는 못한다. 설득과 폭력이 진실을 파괴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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