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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찬 큰 목소리로 아멘을 외쳐야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일까? 믿음이 좋다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인들끼리 서로를 평가하는 말이 되었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말씀과 씨름하는 것이 믿음이 흔들리는 위험 신호처럼 느껴지고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레이첼은 나다나엘 같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레이첼의 의심은 진실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강렬한 욕구에서 나왔다. 성경을 자기 이익과 가치관에 따라 취사선택하기 거부하고 하나님께 질문하며 사람들과 토론하려 한다.
그녀가 던지는 질문과 의심을 환영하기로 했다. 믿음이란 무엇인지 나의 믿음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지 나의 원칙과 만족과 평안을 위한 믿음인지 헤아려 보고자 한다. 하나님을 오래 전에 만났던 감동과 추억만이 흔적처럼 남은 화석같은 믿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말씀과 씨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새로운 믿음으로 날마다 진화하면 좋겠다. 똑똑하고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남긴 선물에 깊이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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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믿음 리뷰입니다. 추천받아서 읽게 된 책인데 기성 교회에서 전통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분에게는 어떻게 보면 도전적인 이야기가 될수 있을거 같아요. 하지만 교회에 의문을 가진 분들에게는 좀더 신선하게 다가올 이야기입니다. 원서의 출판 자체가 좀 오래되었고 미국인의 관점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약간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내용도 있는 듯하지만 전반적으로 공감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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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답을 정해 놓은 채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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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세어본다는 것은 내가 받은 것이 많기 때문이거나 혹은 추억을 돌아보고 싶어서 하는 행동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들은 달콤하거나 아프거나 혹은 살콤한 시간이 아니었을지.
되돌아보면 너무나도 소중했던 순간들이 없어지기 전에. 내 곁에 담아둘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좋은 사람일 테다. 이런 향기(페퍼민트, 체리 아몬드, 향신료 등)를 각인해서 나에게 들려준 여성을 이번에 만났다. 레이첼 헬드 에반스다.
작은 것, 하나에도 시선을 두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그녀는 신정론의 질문을 던지는 여성의 신발을 바라본다. 또한 예수께서 신으셨을 샌들을 보게끔 만든다. 바이블벨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강력한 신앙과 교육을 받았던 그녀가 ‘헤아려 본 믿음’은, 삶을 과거에 멈추게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진화하도록 이끌었다. 신앙도 한 자리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돌이켜보면 믿음은 주어지는 것임을 쉽사리 놓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C.S.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이 생각나는 제목을 통해서 슬픔과 믿음은 어떤 면에서 같고 다른지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많아 보이는 슬픔(믿음)이 사실은 단 하나였음을 깨닫게 되고, 그 슬픔(믿음)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감을 배워가는 것이었다.
단순하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위처럼 여러 종류의 믿음과 삶을 보여 준다. 삶의 자리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습처럼 믿음은 가변적이거나 아니면 저자의 표현대로 ‘우주의 추첨’을 받아서 주어진 것일까.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책이기에 삶의 자리를 인정하는 글을 보게 된다. 근본주의적 신앙의 터전에서 복음주의로, 어느새 회의론자로 갔지만 다시금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은 험할 수도 있고, 절망적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만나주시는 그분임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다시금 질문하셨던 예수님을 성경을 통해 보면서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 믿음의 질문이 나를 보다 더 신앙인으로 진화(혹은 업그레이드)시켜 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 문장에 동의하게 되고 조금은 일찍 이 세상에서 떠나간 그녀가 아쉽기도 하다. 현대인의 신앙에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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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의 문제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붙드는 교리 하나하나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 여긴다면, 변화는 결코 선택지에 들 수 없다. 변화가 선택지가 될 수 없다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세상이 있는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은 기독교의 가장 좋은 특징이다. 비록 우리가 종종 그 사실을 간과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의심들이 내 믿음을 죽여 버리기는커녕 놀랄 만한 거듭남으로 이끌었다. 새롭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오래된 신념을 벗어 버리고 그 대신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했다. 내가 믿는 바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물려받은 신앙의 진흙탕 에서 안전하게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상태를 벗어나, 내 영적 경험의 진실 속에서 머리와 마음을 노출한 채 취약하게 서 있는 쪽으로 옮겨 갔다. 나는 진화했다. 내 주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더 개선되고 더 적응한 나로 진화했다. 나 자신의 생각과 의심과 직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 변화를 견뎌 낼 수 있는 믿음을 가진 나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