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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지식의 그 끝은 어디인가? 그것을 자신에게 물어보는 책읽기가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인 지식으로 가지는 아날로그적인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인간의 사고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인가를 언어의 기반 위에 탑을 쌓아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시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던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디지털적인 시간은 우리 곁에서 자꾸만 흘러가 현재를 과거로 밀어낸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의 시간은 결코 흐르지만은 않는다. 멈추기도 하고 되돌려지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인슈타인에게서 가져왔다.
시간은 상대적이란 말이 마음에 선뜻 와 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인할 만한 용기도 없다. 빛을 통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현재 만든 모든 현상들은 빛으로 화해 현재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누가 빛의 속도로 진행을 한다면 그의 현재는 시간이 멈춘 상태가 됨을 인지할 수 있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행동이 이루어진다면 과거를 볼 수도 있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현재 과학적인 능력으론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론상으론 안 될 것도 없다. 이제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과학에서는 그렇다. 과학의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간의 개념도 우주 빅뱅이론을 가지고 생각한다. 공간의 밀도를 가지고 과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공간이 파동과 입자의 운동으로 생긴 전자기파의 증폭과 상쇄의 작용으로 빛이 산란해서 사물이 존재하고 보이는 것이다. 공간의 밀도는 전자기파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니 사물이 머물고 있는 공간의 존재가 밀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 공간은 늘 변화하고 있다. 허공은 비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원자의 세계를 허공이라고 한다면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원자로 형성되어 있다. 즉 현존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도 실상은 비어있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도 실제론 없는 것과 진배없다는 말이다. 불교의 색즉시공공즉시색이 적확하게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여기에서 나란 존재에 대해서 궁구할 수 있다. 나도 이 지상에 머물러 있는 하나의 가시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나도 물리적으로 보면 원자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세상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뜻이고, 시공간적인 존재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렇기에 죽음을 다루는 학문에서 나도 생성과 사멸의 문제를 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질의 생성과 사멸이라는 것에 바탕을 둔 원론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원래가 인간의 세포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수시로 생성 사멸하는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어제의 내 몸의 부분이 오늘의 그것이라 할 수 없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나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특히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말이다.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된다면 생성과 사멸이라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되고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30년 전에 내가 하던 행동을 떠올려서 찾는다 하자. 그가 과연 나일까? 나는 나날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 있는 이 책의 논리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생성과 죽음에 대해 그리 애착을 가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현상은 근사(입사)체험에도 나타나, 이를 특이한 전생체험, 혹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 표현합니다. 이 현상의 특징은 시간을 느끼면 감각이 변화하거나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거나 어두운 터널을 통해 밝은 곳으로 나가는 느낌을 가집니다. 이런 경험과 더불어 과거 죽은 사람들 또는 신비로운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 대화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후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뇌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뇌 내 현상의 일종으로 바로 이때 감마파가 감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게 시간에 대한 상대적 현상도 함께 나타나는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을 느끼거나 유체이탈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신을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을 가지는 일종의 해리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p123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근사체험으로 얘기하고 있다. 종교인들과는 각도가 엄연히 다르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구하는 종교인들과 달리 뇌의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인간의 뇌가 가지는 특별한 요인이 유체이탈, 해리현상 등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말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다른 세상의 사자와는 다른 개념이다. 논리적으로 죽을 때 일어나는 재 현상을 언급하면서 죽음과 시간의 관련을 말하고 있다. 죽음의 현장에서 시간은 변모한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즉 죽음은 시간이 정지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본다.
저자의 생각으로 믿음으로서의 영생은 존재한다고 봅니다. 영생이 있다는 건 희망이 있는 것이고 그 희망 속에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영생이나 사후세계를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빠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자취를 남김으로써 삶의 의미와 생존 시 보여주었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해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신체 장기나 조직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사후세계에도 충분히 가치 있고 보람된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불확실한 영생과 사후세계에 자신을 맡겨 안심하기보다 자신의 흔적을 남겨 후대에 전하는 것은 설령 다시 환생하더라도 더 의미가 있으며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가치를 더 크게 하는 것입니다. p126
죽음과 관련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에 따른 생각을 얘기한다. 죽음의 가장 큰 소망이 영생인 줄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하지만 영생을 불가해한 일로 여기고 맹신에 의해 가지는 것은 옳게 보지 않는다. 진정한 영생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죽음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았느냐하는 실천의 문제라 보고 있다. 죽음을 아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고 있고 그것이 긍정적인 사고로 보람과 가치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갈구로 현실의 고통을 잊으면서 살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죽음과 관련되는 삶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다.
영혼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생명체는 죽으면서 흔적을 남긴다. 또 그 흔적은 그 잔재를 남기고 지구, 우주 속으로 흩어진다. 영혼이 있다면 분명히 질량이 있을 것이다. 영혼이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우주 공간에 그 잔재가 있을 것이고 확인될 것이다. 영혼의 진량은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런데 진량이 없다면 그것은 빛이나 전파 에너지가 된다. 그들은 존재에 대해 유무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윤회에 대해서도 말한다. 윤회에 대해 구태여 맹신으로 현재의 삶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다시 돌아온다면 좋은 삶을 살았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저자는 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실상이 아니라 착각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에 매료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주의 원리이며 사람도 우주의 한 존재이기에 우주적 법칙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살고 죽는 과정 또한 우주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주어지는 대로 수용하면 된다. 이것을 다른 세상과 결부해 현재의 삶을 구속할 필요는 없다. 죽음이 내세를 염두에 두면 그것은 종교가 된다. 종교는 종교일 따름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대략 1028개 정도이 원자로 구성되고 이 원자의 구성은 외부와 계속 변환하므로 대략 1년 정도면 대부분 다른 원자들로 순환합니다. 이를 세포 수로 계산하면 약 60조에서 100조 개의 세포이며, 이 세포들은 지속적으로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쳐 계속 변하면서 신체를 이룹니다. 사람의 장기나 기능적 세포들은 각각의 수명을 가지고 매일 변하는데, 위장세포는 2-3시간의 짧은 수명을 가지고 계속 탈락, 생성합니다. p229
결국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어제의 생명체는 오늘은 그 생명체가 아니다. 다른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세포의 사멸이 그것을 증명한다. 결국 존재의 유무에 대해 그리 힘들어 할 이유가 없음을 말한다. 냉동인간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병에 의해 죽은 자들을 미래에는 깨울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냉동인간을 만든다. 지금 600여구의 냉동인간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뇌를 냉동상태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을까 는 의문이다. 미래의 종교에 대해서도 말한다. 미래에는 종교가 현재보다 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겠지만 나름 새로운 자구책으로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내 그 명맥을 잘 유지할 것이라고 본다. 대형 종교단체는 세분화하고 사회관계망을 통해 생각을 같이 하는 좀 더 밀착된 신도들의 종교로 분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가상세계의 영생을 논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속에 살아있는 과거들, 동영상 속에 존재하는 삶들, 가상세계에서는 쉽게 죽기도 하겠지만 죽음의 환경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죽음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생을 찾아가는 방법도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단상들을 ‘죽음의 스케치’란 책을 통해 그려낸 바가 있다. 이 책은 그 책에서 진일보해 죽음에 관해 전반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책은 과학과 시간 그리고 죽음에 아우르는 현대 물리학을 이용한 시공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죽음과 시간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내용이 깊은 사고를 요해야 하는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모호한 점이 많다. 종교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얘기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은 마음에 와 닿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주어진 생명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순리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는 공감이 간다. 그렇게 살 때 보다 나은 삶이 되리라 확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죽음도 자연의 한 현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 관점이 동의가 된다.
인간이 가장 다루기가 어려운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책이다.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학문, 죽음을 논리적이고 언어적으로 조각하는 일이야말로 가지 않은 길이기에 어렵다. 그 문제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언어라는 토대가 있다고 해도 기초가 없기에 쉽게 무너질 수가 있다. 이 책은 그 죽음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물리적인 재료를 제공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일이야 가능하겠지만 정신적인 영역인 영혼, 윤회 등의 문제까지 명확한 답을 얻는 것은 아직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누구나 그랬듯이 저자도 우주에 하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일 따름이다. 우리에겐 죽음을 학문적으로 논해 죽음에 따란 감정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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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곁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목격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죽음과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죽음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 되었고,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추모의 형태로 죽음과 대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추모와는 별개로 죽음은 우리에게 실감있게 와 닿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죽음은 우리의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우리는 애써 죽음을 소환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부각되면서 연명치료나 호스피스 등 죽음의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죽음학’이 새롭게 생겨나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제고를 다루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여전히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다.
이 책은 그런 죽음을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고 있다. 현직 산부인과 의사인 저자는 [죽음학 스케치]와 [죽음학과 임종의학개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죽음과 관련하여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사람들은 급사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죽을 때 서서히 나빠지는 변화를 보이면서 죽음에 이른다. 저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공통된 현상은 노화이다. 노화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자연현상으로 이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시간을 환자 자신의 것으로 만드냐에 따라 삶의 질과 만족도, 고통과 불행이 엇갈린다. 영생을 얻기 위한 인간의 희망과 노력은 자연수명을 끌어 올렸지만 노화라는 과정을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진정한 영생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라고 저자는 죽음학에서 말했다. 다시 말해 죽음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죽음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권의 책이 우리가 마주하는 죽음과 그에 대한 준비에 관한 책이라면, 이 책은 죽음과 죽음 이후를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지금까지 죽음을 나와 주변의 이야기로 이해했다면 이 책에서는 더 넓은 우주의 시공간으로 확장하여 시간의 역할과 모습을 통해 죽음과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모습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느낀다. 따라서 시간을 되돌리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죽음은 한 개인의 시간을 멈추는 가장 큰 사건이다.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것이 아쉬워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하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사람들의 사고가 만들어 낸 지극히 지구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람의 상상력은 사후에 대한 구체적 세계관을 만들었지만 이런 과정에 모순이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절대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멈추는 사후에 대한 고민이 영혼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이것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간이라는 변수가 함께해야 설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문제라며 죽고 사는 과정이 우주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임을, 죽음에 대한 한가지 법칙은 영원불멸의 영속한 생명체는 없다는 것을 이해할 때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해 올바른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또한 근사 체험이나 윤회, 영생, 영혼 등 죽음 혹은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물리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근사 체험이나 우리가 경험 하는 수많은 영혼의 이야기는 대부분 경험자의 과거기억에 의해 재생산된 잔상이기 쉽다며, 이는 그 사람의 사후관과 연결되고 죽음 후에도 생을 이어가고픈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위안이라고 말한다. 죽음 체험과 죽음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적 구원으로써의 영생이나, 영혼, 사후세계의 문제는 구별되어야 하겠지만, 노화와 평온한 죽음에 대한 이해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결국 죽음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에 차이를 가져오고, 이것은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죽음을 주도하는 죽음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는 말과 같다.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관한 여느 책과는 다름을 느낀다. 책 제목 마냥 죽음을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기 위해서겠지만 우주의 탄생이나 생명체의 진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을 구성하고 좌우하는 현상들을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즉 죽음과 죽음 이후에 일어난다고 우리가 믿는 사건들이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는 우주라는 시공간 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결국 죽음에 관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는 두려움이나 회피가 아니라 마주 보는 용기이지 싶다. 죽음이 친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라는 사건 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일상에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거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현자들은 ‘모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했을 게다. 저자의 죽음학에 관한 책 중 [죽음학과 임종의학개론]은 아직 읽지 않았다. 이제 그 책을 찾아 읽으며 죽음에 관한 생각을 다듬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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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현대물리학의 시공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죽음과 시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1장 시간과 2장 광자(빛)에서는 물리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3장 죽음부터 7장 미래까지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이 순간까지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가 이해한 바를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시간관(時間觀)과 죽음에 대한 입장
시간의 흐름에 대한 관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직선적인 시간관’으로 시간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관점이다. 즉,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원형적인 시간관’으로 시간이 순환한다는 관점이다. 여기서 직선적인 시간관은 서양의 기독교와 연관되고, 원형적인 시간관은 동양의 불교와 연관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시간관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 문화, 종교 등과 연결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직선적 시간관에서는 죽음은 한 개체의 끝이고, 종말이다. 당연히 죽음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원형적 시간관에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죽음을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남을지언정 굳이 서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윤회(輪廻)’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저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의, 죽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윤회’가 아닌 현재 살아가면서도 가능한, 내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윤회’에 주목한다.
윤회는 특별한 게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할 것도 아닌 우주의 자연 순환 원리입니다. 나의 흔적을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 기억 속에 남기는 것이 올바른 윤회의 접근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흔적과 나의 입김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기에 지금이라도 남은 생을 보람 있게 보내고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pp. 216~217]
이런 관점에서 윤회를 바라보면, 영생(永生)은 가능하다. 인간은 생물학적 개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도
석가모니 깨우침의 흔적은 불경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은 성경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들의 행적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생이며 그들이야말로 진짜 영생을 얻은 것이라 봅니다. [p. 127]
라고 얘기한 것이 아닐까?
사후세계(死後世界)에 대한 이야기들
이렇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면,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사후세계를 부정한다.
일부 사람들은 영혼을 보았다거나 사후 세상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가정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런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시간을 모아두는 방법이나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영혼들을 모아두기 위해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의 물리법칙을 벗어난 매우 강한 힘의 작용으로 모아야 하는 특별한 시공간이 따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혼공간이 없다면 모든 영혼들을 흩어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앞서 우주의 시공간에 대해 많이 언급했듯 비록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도의 질량이 존재하는 영혼이라도 빛의 속도에 근접한 빠르기로 우주로 흩어질 것입니다. 그것도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흩어지므로 원형은 곧 분해되고 우주의 한 구성 물질로 되돌아갈 뿐입니다. [p. 65]
나아가 근사(近死) 혹은 임사(臨死) 체험 등을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히 선을 긋는다.
사람이 죽기 직전 당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록 죽음 직전에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고,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났다 해도 그것이 진정한 죽음의 상태를 표현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죽음 후 이야기는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란 점입니다. 즉, 일반적인 제3자들의 뇌피셜일 수 있습니다. [p. 121]
저자는 이러한 현상들을 좀더 과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죽음 직전과 죽음 직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감마파가 나온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근사(입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에도 나타나, 이를 특이한 전생체험, 혹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 표현합니다. 이 현상의 특징은 시간을 느끼면 감각이 변화하거나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거나 어두운 터널을 통해 밝은 곳으로 나가는 느낌을 가집니다. 이런 경험과 더불어 과거 죽은 사람들 또는 신비로운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 대화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후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뇌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뇌 내 현상의 일종으로 바로 이때 감마파가 감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게 시간에 대한 상대적 현상도 함께 나타나는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을 느끼거나 유체이탈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신을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을 가지는 일종의 해리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pp. 122~123]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
저자는 <죽음학 스케치>(2018)와 <죽음학과 임종의학개론>(2020)을 통해 죽음과 관련하여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해 소개했다고 한다. 이 책도 결국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저자가 ‘죽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죽음을 이해해야 죽음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해’했다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마감시간을 앞두고 그 시간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된다.
죽음을 안다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에 참여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의 의미를 깊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 중략 ~ 만약 사람들이 죽음을 알기에 앞서 죽음을 이해한다면 죽음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죽음의 실체를 결코 알 수는 없겠지만 삶 가까이 두면 서 죽음을 우주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과 결과로 받아들이면 그로 인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pp. 280~281]
*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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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죽음의 패러독스 김달수 인간사랑/2023.1.14. sanbaram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에 대해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알려고 노력 했지만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종교에서는 내세와 윤회를 내세우며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모두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과 죽음의 패러독스>의 프롤로그에서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식 속에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지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알아보려고 합니다.(p.14)”라며 시간과 죽음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죽음을 나와 주위의 이야기로 이해하였던 시각을 좀 더 넓은 우주의 시공간이라는 광장으로 확대해 죽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시간, 광자, 죽음, 영혼, 윤회, 착각, 미래’등 7가지 주제로 죽음에 대하여 탐구한다. 저자 김달수는 한양대학교 전자과 졸업 후 순천향대학교 의학과 졸업 산부인과 전문의. 작가 및 유튜버로 ‘죽음학 스케치’ 강좌. 벤처운영자 및 시스템엔지니어링으로 활동. 저서로 소설 <그날은 온다>, <임상 소아 청소년 여성의학> <죽음학 스케치>, <죽음학과 임종의학 개론> 등 다수가 있다.
제일 먼저 시간에 대하여 “우주선의 속도가 빛의 속도가 되면 시간은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고 멈춥니다. 그러나 질량이 있는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가 될 수 없으며 만약 빛의 속도에 가까워진다면 이는 우주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겨우 가능하다.(p.26)”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한다. 현대물리학에서는 빅뱅에서 우주 탄생의 해답을 찾으려 한다. 우주는 한 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138억 년 동안 팽창하는 우주가 시작되었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랜 기간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진행하는 것이며, 공간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눈의 영역에서 보이거나 느끼는 범위 내에 인지하는 현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알려진 후 시간만 따로 얘기하지 않고 ‘시공간’이라는 두 요소를 함께 이야기해야만 세상 이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광자가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며 더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일까. 그 대답으로 “광자는 질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에서 가장 빠르게 이동이 가능합니다. 질량이 있으면 빛의 속도에 근접하지만 빛의 속도를 넘지 못합니다. 그것이 특수상대성 원리입니다. 그래서 빛의 속도가 진공에서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것입니다.(p.91)”라고 설명한다. 빛이나 전파는 초당 약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한 시간에 10억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이것이 현대 과학으로 밝혀낸 우주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대 과학으로는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고, 팽창하고 있는 우주간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다른 우주로의 여행이 실현 불가능 하다고 말한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인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어제의 별빛보다 오늘의 별빛은 조금은 더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넓어진 우주만큼 빛은 줄어들게 되고 언젠가는 우주는 완전히 어두워진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수면시간이 긴 동물일수록 수명이 깁니다. 사람의 뇌는 대부분 좌우 뇌가 동시에 수면에 작용하므로 수면 중 좌우 뇌는 활동이 저하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수명이 긴 이유는 깊은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p.96)”라며 수면과 수명의 관계를 설명한다. 과거 사람들은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깊은 잠을 자기 힘들었지만, 점차 거주지를 만들어 위험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동시에 좌우 뇌도 깊은 수면에 몰입할 수 있었다. 기억력은 집중하면 입력되는 정보량이 증가하고, 산만하면 정보량이 줄어들고 뇌의 기억 부위에 정확히 각인되지 못해 바로 기억이 흐려지며 장기기억이 안 된다. 이런 기억의 현상은 빛과 성질이 같아서 급격하게 압축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빛의 현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태어나 한번 겪는 큰 사건인 필연적 죽음에 참여한다는 걸 안다면 현실의 삶에도 충분히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기꺼이 죽음에 동참해야 합니다.(p.166)” 이 또한 기회는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진정 영혼과 영체가 존재한다면 동(식)물도 이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혼의 존재를 동물과도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은 영혼이 공간을 자유롭게 떠돈다면 이는 빛과 같은 성질의 모습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영혼이 시공간에 자유롭게 존재 한다지만 이런 공간 이동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빛보다 빨리 이동할 수 없기에 순간적으로 이곳저곳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빛보다 더 빠른 인간의 생각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수한 인식반응을 가져 순간적으로 우주의 이곳저곳을 상상 속에서 마음대로 이동한다.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이 자유로운 만남도 가능하고 대화도 가능하며 느낄 수도 있다. “단, 생각은 뇌의 공간속에서만 활동이 가능하고 뇌의 에너지를 받아야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p.178)”라고 한다. 간혹 새로운 다차원의 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3차원의 시공간 세상도 1,2차원과 함께 한 번에 생겼고 다차원에도 3차원적 모습이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문학적 윤회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특히 현생의 불행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상이고 희망이기에 윤회는 필요하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 활동이 가능하다고 봅니다.(p.215)” 많은 문학적 동기를 보면, 윤회의 바탕에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미술, 음악 등 예술작품들이 죽음을 찬미하거나 또 다른 유토피아를 표현한다. 이런 일련의 예술 활동은 윤회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증명이 없기에 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고 이는 창작에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윤회에 대한 믿음은 사람의 과업에 따른 육도윤회를 주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윤회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우주 전체가 끝없는 윤회의 순환과정이 활발히 일어나는 생명체라고 말한다.
“근사체험, 자각몽, 종말체험 등은 절대 죽은 상태의 체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p.252)” 이것을 꼭 인지해야 하는데, 진짜 죽음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기는 오해도 크게 한 몫 한다. 죽음 체험과 죽음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의학의 발전은 점차 생명의 연장뿐만 아니라 생명의 시작도 길게 늘려주고 있다.(냉동정자, 냉동 배아 등) 이런 과정으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정의와 규정이 필요한 시기에 이미 도달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기존에 활성화된 유튜브와 같은 공유서비스를 이용한 조회수 이용료나 슈퍼쳇 등의 구독자 호응, 자발적 참여 신도의 성금을 통한 새로운 운영방식의 교회라든가 가상세계 종교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인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의 종교시대도 머지않은 듯합니다.(p.284)” 가상세계의 발전은 인간의 삶에도 커다란 변화를 줄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지구세계와 빅뱅 이후 펼쳐지고 있는 우주의 세계, 그리고 가상세계 또는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의 디지털세계가 3가지 축으로 이어지는 3중 세계를 형성하면서 사람들의 활동영역도 무한히 넓어지고 있다. 결코 지구가 좁지 않다는 의식으로 확장할 것이다. 특히 가상세계의 이미지는 꼭 시각적인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게 설계할 수 있다. 아직 그래픽을 통해 시각신경을 자극해 뇌에서 인식하는 것을 표현하지만, 앞으로는 시각작용을 거치지 않고 직접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진정한 가상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주에는 상대시간이 존재하고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이 있고 이것이 생명체건 무생명체건 모두 통용이 된다는 것입니다.(p.316)” 특히 대우주로 시야를 확대해보면 생명의 현상이 꼭 우리가 아는 생명체의 모습만이 아닌 우주의 수많은 별들인 항성이나 여러 우주물질 또한 나름의 살아있는 생명현상을 보이기에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 또한 큰 의미가 없기도 하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빅뱅 탄생 이후 꾸준히 진화하고 변화한다는 점이고 지금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는데 이 진화가 바로 우주의 생명을 유지하고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진화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진화란 아주 작은 차이에서부터 급격한 변화를 다 포함한 역동적인 현상이고 독특한 생명현상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살면서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숫자만큼 시간의 다양성과 공간의 다양성을 통해 작은 우주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내면 안에서 밖을 보며 살아갑니다.(p.318)” 이런 과정이 사회활동이고 문화 활동이 되는 것이기에 비록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나름의 질서를 찾아서 진화한다. 나 자신의 현재 위치와 시간을 잘 이해한다면 죽음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나와 내 주위의 모든 관계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죽음이라는 단절보다는 죽음을 통한 상호관계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들은 과학적 접근을 위주로 죽음에 대해 고찰하는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랑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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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앞서 출간된 죽음의 스케치와 죽음학과 임종의학개론에 이여 출간된 본문의 종합적 시각으로 과학과 현대물리학적 관점을통해 죽음과 시간, 엔트로피 등 평소 관심을 가졌던 과학원리를 적용해 삶의 순리와 정반합의 paradox 등 첨예한 이슈들에대해 통찰하고자 한다. 누구나 살면서 사춘기와 그 이후 등 두어번은 삶과 죽음, 과학, 우주, 영혼 등에 관심을 가졌던 개념들이었을듯 하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물리법칙들을 동원해 시간을 분해하고 이를통해 시간과 죽음의 인과적 관계를 정의하는 주관적인 성찰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시간과 삶과 죽음을 현대물리학의 스펙트럼으로 투과해 생각해 보고자 재정의 하는 것이다. 고전물리학을 통한 시공간의 개념은 현대물리학에 접어들며 절대적인 개념에서 상대적인 개념으로 판 자체가 뒤집혀 버린 것이다. 시간~에서는 특수상대성이론, 엔트로피(entropy), 파동함수, 과거현재미래, 빅뱅, 플랭크상수, 맥스웰 방정식, 시간의흐름, 과거만보는 시간 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시간의 방향에대한 개념은 볼츠만의 엔트로피 변화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알다시피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도를 말하는 것으로, 무질서는 항상 증가, 높은 방향으로 진행하며 반대로는 불가하다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우주와 관리가 필수적인 삶의 상수적 개념이다. 즉, 모든 자연 상태의 물질은 무질서의 계가 증가하는 방향, 늘어나는 쪽으로만(낮은쪽으로 축소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변화한다는 법칙이다. 열역학1법칙은 에너지보존 법칙’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 총량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제2법칙은 자연현상의 변화는 일정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는 비가역적이고 시간의 비대칭성이라는 의미다. 모든 불질, 사람, 도시, 물건, 삶과 관련해 예를들면 차량, 주택 등등 모든것들이 해당되고 설명된다. 엔트로피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류가 발견한 유일한 법칙이라고까지 찬사를 아끼지않는 법칙으로 불링는 이유다. #시간과죽음의패러독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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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 인류의 지성은 다시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속체이며, E=mc^2라는 공식은 기어이 핵에너지의 해방에까지 이어졌습니다. 발명가이자 산부인과 원장님이시며 원종와인샵 대표인 저자는 학부 시절 공대에서 전자학을 전공하신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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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학 스케치』와 『죽음학과 임종의학개론』을 이은 죽음학 3부작 [시간과 죽음의 패러독스]를 읽었습니다. 현대물리학의 시공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죽음과 시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E=mc^2 라는 짧은 공식이 의미하고 있는 바를 생각해보면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생각의 도구인 인간 지성의 자유로운 창작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상대적 개념으로부터 인간 문명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로 놀랍습니다. 시간에 대해 고찰하고 받아들였을 때 죽음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것일까요. 책에서는 한편, 불교에서의 상대성 이론과 윤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부분을 읽다보니 예전에 봤던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불교 다큐멘터리가 생각났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환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다시 만난 어린 스승에게 다음 생에는 다시 저를 찾아 주십시오 라고 하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과 죽음에 대해서 한 번쯤이라도 고민해 본적이 있으신 분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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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죽음의 패러독스
작가는 공대출신으로, 산부인과 의사이다. 이렇듯 굉장히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집필도 하시고, 강연도 하시며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계시는데, 이런 작가님이야 말로 1시간을 1년처럼 쓰고 계신것 같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로 이걸 보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공학적,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시간과 죽음에 대 말하고 있다.
작가가 가진 과학적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해 접근하는데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 그것만은 누구에게다 다 공평하게 적용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지에 달린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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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왔군요. 캣츠맨은 이런 택배만 받으면 기분이 UP 된다는... 언제나 책을 처음 펼치면 앞장부터 마지막까지 한번 빠르게 속독으로 봅니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이제부터 책을 읽을 거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건데요. 뇌가 받아 들이는 거부감을 줄이는 사전 작업 같은건데요. 이렇게 하면 뇌가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안 그러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고 편하게 놀 생각만 하게 됩니다.
한양대학교 공대 전자과 졸업. 순천향대학교 의학과 졸업, 순천향대학교 의대 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산부인과 전문의 수와진. 순천향 의대 외래교수. 한국죽음준비교육 학회 이사. 네이버 카페 그리이프 와인 동호회 운영자. 작가 및 유튜버(죽음에 학 스케치 강좌) 시스템엔지니어링 발명가(수중분만, 처방전달 시스템 등 기술 특허 다수 보유) 저서. <그날은 온다> <엄마와 아빠의 갱년기 극복기> <임상 여성의학과 새로운 성 의학지> 저자는 상당히 다양한 경험과 이색적인 이력을 지녔습니다. 의학 대학교를 가서 의사가 되었고 의사인데 죽음에 대한 강좌를 유튜브에서 합니다.
책의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난후 세밀하게 읽어 나가면 설계도가 완성 되듯이 책 속의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자리 잡는데요.
1 시간. 2 광자(빛). 3 죽음. 4 영혼. 5 윤회. 6 착각. 7 미래. 에필로그. 앞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과학적인 영역에서 우주에서 시작해서 차츰 인간의 의학적인 영역과 육신을 넘어 영혼의 문제까지 넘나들면서 이야기합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원리가 나오고
이런 공식이 나오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공학도 출신의 이력이 과감없이 나타나는 부분인데요. 과학과 인문학을 버무리고 철학과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내용입니다. 저자의 앞선 저서에서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었다고 하는데요. 그 책들도 궁금하군요.
이공계나 자연 과학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괜찮습니다. 그래도 앞에 몇 페이지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겠지요?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다는 잘못된 상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나 과학책 매스컴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는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중 하나.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1억이라는 숫자를 헤아릴 일이 있을까? 과연 그런 시간과 여유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없겟지요. 한번 계산해 볼까요. 6×100000000 숫자 한 개당 6초를 1억에 곱한 시간은 6억 초. 6억 초를 밥 먹고 쉬는 시간 빼고 자는 시간 빼고 나서 하루 8시간 숫자를 헤아린다고 가정 해 봅니다. 6억 나누기 28800초는 약 20833일, 약 57년이군요. 평생 다 헤아리지도 못하는 1억이라는숫자 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지구 파괴 끝판왕 핵을 만들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시간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작고 초라한 인간이 나였음을 알게 됩니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구위의 인간은 한갖 스쳐 지나가는 티끝과도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지금보다 좀 더 많이 겸손하게 살아야 겟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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