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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919년 뉴욕에서 유대교도 아버지와 기독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성적불량으로 중학교에서 퇴학당한 경력이 있었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듯하다. 자자한 명성에 비하면 감동은 적었다. 재미가 없었던 편은 아니지만. 퇴학을 당하게 된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며칠 동안의 방황을 다룬 글로써, 미숙한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와 그 사회를 이끄는 어른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상당히 인상적인 제목과 그 제목이 잘 드러나는 주인공의 대사를 그대로 옮긴다. 이 대사는 주인공이 아주 좋아하는 여동생 피비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어린아이들이 다같이 어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단다. 몇 천 명의 애들이 있을 뿐 주위엔 아무도 없어. 나 이외에는 어른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나는 위험한 벼랑 끝에 서 있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못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지. 말하자면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잡아주는 거야. 하루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고.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것밖엔 없는 걸.> 다음은 주인공이 그나마 존경했던 앤톨리니 선생이 학교에 다시 다녀야 한다며 주인공을 하룻밤 재워주며 하는 말이다. <교육을 받고 지식 있는 인간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하지만 교육이나 지식이 있는 쪽이 발랄한 재치와 창조적 능력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발랄한 재치와 창조적 능력만을 가진 인간보다도 훨씬 더 가치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야. 그런 교육이나 지식이 있는 인간 쪽이 자기의 생각을 끝까지 규명해 나가는 정열을 가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제일 중요한 것은 십중팔구 그런 학식이 없는 사상가보다도 겸허하다는 점이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일이 생기면 고귀한 죽음을 선택하려는 경향에 있다. 이에 반하여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일이 생기면 비굴한 삶을 선택하려는 경향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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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의 일은 판박이 스티커처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지. 투명 셀로판지에 새겨진 다양한 그림들을 공책의 여백에 대고 엄지 손톱으로 박박 문지르면 순식간에 선명한 그림이 새겨지는 판박이 스티커 말이야. 간혹 힘이 약한 저학년 꼬마들이 문지르면 채 반도 새겨지지 않거나, 귀퉁이가 잘려나가곤 하지만.
아무튼 너도 그날 오후의 일을 잊지 못할거야. 뭐라고? 생각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가 있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들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을 해댔던 그날을 말이야. 펑퍼짐한 바지를 골반 위에 간신히 걸쳐 입고 다니던 국어 선생님은 기억하지? 그래, 맞아. 만나는 학생들마다 머리 깎았냐고 질문하던,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자켓 주머니에는 항상 분필가루를 묻히고 다니던 그 국어 선생님.
9월 초의 어느 날이었을 거야. 운동장 한켠에 있던 등나무 벤치에서는 말매미 몇 마리가 살려달라는 듯 악을 쓰며 울어대고 있었지. 목청을 돋구어 우는 꼴이라니. 점심 도시락을 5분 내에 해치운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지. 그날 5교시는 국어시간이었거든. 그날 5교시에 우리는 조금 얼띤 국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다들 자거나 잡담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 늘 그래왔지만. 그런데 뜬금없이 야외수업을 하겠다는 거야. 음악이나 미술 시간에 야외수업을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국어는 그렇지 않았잖아.
야외에서 작문 시간을 갖겠다는 국어 선생님의 발표는 그야말로 난데없는 폭탄발언이었지. 노트와 볼펜을 들고 학교 뒤편의 논둑길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꼴은 마치 젖도 떼지 않은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라가는 형상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야외수업을 하던 장소는 논둑길을 따라 5분쯤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솔밭이었잖아. 땀도 씻지 못하고 끌려갈 때의 심정은...
솔밭 그늘은 그나마 시원한 편이었다구.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도자기 문양처럼 작은 구름만 떠다니고 있었지.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신경질적인 선생님도 일 년에 서너 번쯤은 아주 관대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지. 천사처럼 말이야. 그날 국어 선생님도 그랬어. 마치 '애기는 어떻게 생겨요?' 하고 실없는 질문을 던진다 해도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그런 표정이었지. 선생님은 그때,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읽어본 사람 있나?" 하고 물었어.
다들 멀뚱멀뚱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지. 나는 사실 읽어본 적은 있었지만 괜히 엉뚱한 질문을 받을까봐 손을 들지는 않았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잖아. 뭐랄까, 그냥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어줍잖게 나섰다가 망신만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눈치만 보던 그때 너가 손을 번쩍 들었던 거야. 나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도 친 줄 알았어.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놈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하필 너라니.
"어, 그래 재민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뭘 느꼈지?" 선생님은 더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널 호명했어.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구요. 호밀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오, 맙소사! 그걸 대답이라고. 호밀이 뭐냐구? 그건 마치 초등학교 1학년 꼬마가 판박이 스티커를 어설프게 문지른 거랑 다를 게 없었어. 정말 그랬다구. 덩치는 산만한 놈이 그런 대답을... 주인공 홀든이 그렇게나 경멸하던 애클리보다 너는 한참이나 지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어. 만약 애클리가 그 시간에 있었다면 천재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 후로 너는 국어 선생님께 완전히 찍혔던 거야. 홀든이 생각하는 여자 애들처럼 국어 선생님도 그랬으니까.
"여자 애들의 문제점은 일단 어떤 남자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면, 그놈이 어떤 쓰레기 같은 놈일지라도 열등감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반대로 싫은 사내애라면 아무리 좋은 놈일지라도, 아무리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놈을 가리켜 거만하다고 말한다구. 머리가 좋은 애들도 그렇다니까." (p.199)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너도 많이 변했겠지. <호밀밭의 파수꾼> 정도는 까맣게 잊었을 테구. 그나저나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어. 홀든이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카알 루스를 불러내어 그에게 전공이 뭐냐구 묻지. 혹시 '변태 성욕'이냐구. 물론 농담으로 물었던 거야. 너는 국어 시간마다 턱을 괴고 졸았고, 선생님은 그런 너를 여지없이 혼내곤 했었어. 그랬던 네가 어떻게 교수가 됐니? 뭘 가르쳐? 혹시 졸음학? 물론 농담이야.
그런데 말이야. 너는 정말 시력이 좋았어. 인정해. 인정한다구. 그걸로 대학에도 들어간 거잖아. 너는 아마 50미터 밖에서도 남의 답안지를 훔쳐볼 수 있었을 거야. 네가 만약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쯤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순전히 실력으로 합격했다고 허풍을 떨겠지. 너뿐만이 아냐. 다들 그렇더군. 그런 걸 생각하면 웬일인지 슬퍼져.
네가 그때 정말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이 대목은 기억할 수 있겠지? 펜시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이 아무도 몰래 집으로 들어와 잠들어 있는 여동생 피비를 깨웠던 장면 말이야. 그때 피비는 어린애였지만 오빠가 고등학교에서 또 쫓겨났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지. 수요일에 오기로 돼 있었던 오빠가 일찍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거야. 피비가 물었어. 오빠는 뭐가 되고 싶으냐구. 그때 홀든은 이렇게 말하지.
"나는 넓은 호밍밭 같은 데서 어린아이들이 다같이 어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단다. 몇 천 명의 애들이 있을 뿐 주위엔 아무도 없어. 나 이외에는 어른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나는 위험한 벼랑 끝에 서 있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못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지. 말하자면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구.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p.248)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면 까닭없이 울적해지곤 해. 그렇다고 슬프거나 울고싶은 건 아니야. 그런 거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뭐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래. 그리고 작문 야외수업을 하던 그날, 네가 했던 대답은 정말 더럽게 유치한 것이었지만 가끔 그날이 그리워지기도 해. 네 눈꺼풀에는 항상 50톤의 졸음이 매달려 있었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구. 실제로 토할 뻔했다니까. |
| 이 책의 처음문장부터 마지막문장까지를 읽고나서 내가 느낀점을 적어보면, '도대체 이 책의 저자는 우리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와 '코울필드는 왜 이렇게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까?'이었다. 첫번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두번째 의문이 생겨났다. 아직도 나는 두번째 의문에 대한 납득할만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추정을 할 따름이다. 코울필드에게 있어서 어린 동생 앨리는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앨리는 더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코울필드와 연극을 보러가거나 공원에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함께 타러 가지 못한다. 코울필드는 앨리의 어리고 그러므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마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앨리가 떠난 후로 코울필드는 그런마음을 가진 것과 거리가 먼 친구들이나 어른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줄곳 가진다. 그러면서 자연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마는데 그런 상황을 잠시나마 탈출시켜줄 수 있는 존재가 코울필드의 막내 동생 피비이다. 코울필드는 피비와 대화하고 연극보러가고 스케이트 타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 그것은 피비가 앨리와 마찬가지로 아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울필드는 자신이 고립된 자기자신 또는 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언제든지 보호하고 싶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원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미국에서는 아주 훌륭하게 평가되고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번역본에서는 절대적으로 미세한 감동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번역이 아주 미숙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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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은 중학교때 교과서에서 접하고 무슨내용인지 통 이해가 되지않던 책이었다. 이 책을 고등학교 때 내신 공부를 하면서 한 번 더 접한적이 있었는데 그당시에 나 스스로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주인공 남자아이의 불안정한 심정에 감정이입하여 읽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은 ' 나 여기있어요 나 많이 힘들어요'를 끊임없이 속으로만 되내이며 밖으로 얘기하지 못해 일탈하고 반항하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맨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그 주인공아이인 홀슨에게 행복한 결말이 주어진다면 그는 참된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라고한다. 이 책에 나오는 말 중에 제일 내가 오래동안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위해 하지만 절대로 이해할 수 있는 너를 위해' 라는 문장이었는데 고등학교 당시에는 도통 무슨말인지 이해를 할 수 가 없었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모순적이면서 나의 얕은 생각으로 섣부르게 짐작하기에는 너무 큰 의미를 담고있는 말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성인이되고 다시 이문장을 읽은 지금도 여전히 작가의 마음을 완잩히 이해할순 없지만 세상 아무도 내가 되어주지 않고 내편이 없을 때 나만이 나의 목소리와 마음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고민하고 위로해주어야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을 때 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고 문장 하나하나 해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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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에서의 좀머씨는 항상 "날 좀 내버려 두시오,"하며 지팡이 하나를 짚고 끊임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닌다. 좀머씨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며 끝내 자살하고 만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의 홀든도 이와 비슷한 증상-증상이라 해야 하나?-을 보이고 있다.이 이야기는 홀든 콜필드라는 열일곱 살 소년이 고등학교를 쫓겨난 후 사흘 반 동안 뉴욕의 언더그라운드를 배회하며 겪는 갖가지 모험을 그리고 있다.
결벽증, 세계와의 분리 이것이 홀든의 특징이다. 어찌 보면 추잡한 사회로부터의 홀든의 도피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홀든의 소망은 몽상적이며 저돌적인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지만 돈키호테처럼 희화화되지는 않는다. 샐린저가 그린 세계는 결벽적인 홀든이 살기에는 너무나 더러고 추악하다. 동성애적인 선생과 더러운 낙서의 학교 벽, 환멸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친구들 가장 기본적인 사회화 기관인 학교에서부터 홀든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 또한 홀든에게는 가정이라는 가장 인간이 그리워하고 편할 수 있는 장소가 억압받고 부자연스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장소이다.
어쨌든 홀든은 낙제를 하고 영원한 부적응자로 남을 수 밖에 없지만 그의 반어적인 몸짓은 더러움에 대한 저항으로 남겨질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못해서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지 말하자면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잡아주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구.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는 걸. 바보 같은 짓이란 건 알고 있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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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부터 계속 읽고 싶었었다. 누군가가 추천해주기도 하였고, 세계명작에 대한 동경으로... 앞으로 이러한 책들을 많이 읽어나가겠지. 코울필드 홀든, 방황하는 아이.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그럴수도 있지, 이럴수도 있어. 근데 얘는 뭐야 ?' 우선적으로 삐딱하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든 친구들, 어른들은 다 가짜이고 위선자인 것 같다. 학교의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안들고, 왜 거기에 순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오는 혼란일 뿐, 수녀들에게 10달러를 기부하고 더 주지 못 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의 동생을 끔찍이 여기는 여린 ‘아이’였다.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낭떠러지도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을 걱정하고 돌볼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아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이렇게 방황해볼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이러한 과정에서 최소한 자 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에 대해 고민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홀든은. 어느덧 20대 중반 이 되었지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방황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고, 어서 빨리 나를 확립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 책이 아쉬웠던 것은 번역이 너무 오래전 것이라 어색한 부분이 많아 완전한 몰입이 어 려웠다. ㅠ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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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란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곳인 것으로 만들려고 정해져 있는 규범들, 머리를 어느 이상 기르면 안된다, 무조건 흰 양말만 신어야한다, 또는 치마는 무릎 아래 길이여야 한다. 그런 규칙들은 무의미하다는 걸, 학교를 다니면서 다들 느끼지 않나요? 선생님들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를 갖게 만들려고 해도 사람들은 같을 수 없고, 평등한 곳인양 모두를 같게 대하려 해도 우리들은 스스로 그 속에서 계급을 만들지요. 아니면 교사들이 만들어주던가.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행동해요. 하지만 그것들 또한 알게 모르게 어른들에게 배운것이죠. 이 책 안에서 여드름투성이 애클리를 아무도 방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아하는 것처럼. 내면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그 한겹의 표피에 집착하는 모습들을 보고요.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낀 대로 똑같이 하나의 사회를 만들죠. 학교 안에는 인기 있는 운동선수가 있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죠. 또한 이도저도 아닌 공부도 못하고 조용한 아이들도 있구요. 나눠진 계급에 맞추어 서로 그룹을 만들어 끼리끼리 어울리죠.
그리고 홀든은 그러한 규범,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아이이죠.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도 그 아이들 중 하나 인양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지만, 그의 마음은 조각조각나고 있죠. 속으로 모든 이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비웃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는 누군가를 찾아요. 누군가를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죠.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괜찮냐고 묻지는 않죠. 그는 갑자기 길을 가다가 눈물을 흘리곤 해요. 이유없이 운다고 말하지만 그 눈물이 진짜 이유가 없는걸까요? 나는 그의 영혼이 점점 조각조각 나는 것 같아 두려웠어요.
그는 현실에 적응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망가고 싶어해요. 그가 커서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은 '호밀밭의 파수꾼'이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어른이 없는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벼랑을 향해 달려가면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사람이죠.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낭떠러지로 향하지 않게 해주길 바라는 것만 같아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겨도 이야기는 계속될거에요. 그는 이런 혐오감과 고통을 딛고 어른이 되야만할테니까요. 그가 바라든, 바라지 않던간에. |
| 열 여섯 살의 홀든 콜필드는 네 번이나 학교를 퇴학당한 주인공입니다. 이 주인공은 성격이 참 독특하고도 십대의 감수성을 잘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약간은 비뚤어진 시선이나(아니, 어쩌면 정확한 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회의 우스운점들을 잘 꼬 집고 있으니까요), 행동들을 보면 참 재미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성격의 이면에는 여리고 따뜻한 면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녀님들에게 헌금을 하고 그녀들의 헌신성을 존경한다거나 피비라는 어린 여동생을 대하는 장면, 그리고 변태적인 행동을 한 선생님에 대해 자신이 잘못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는 장면 등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홀든이 펜시라는 학교에서 4번째로 퇴학을 당하고 기숙사를 나와 겪는 몇일 동안의 이야기가 하나의 그림과 같이 잘 짜여져 있습니다. 아주 사실적이고도 유머스러우며 그러면서도 차분한.. 읽는 내내 즐거웠던 작품이었습니다. 현대 문학의 최고봉으로도 일컬어 질만큼 훌륭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수식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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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쇼의 <청춘>의 도입부는, 헌책방을 자주 가는 이들에게 상당히 매혹적일만한 내용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사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 그 칙칙한 가을 저녁 헌책방에 가서 H 전집을 사는 그 대목에서, 겸연쩍지만 친연성을 느낄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 도입부에는 번역하는 이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내용도 등장하는데, 바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아 이제는 헌책방에서 균일가로 판매되는 번역서의 역자 후기에 대한 언급. 이런 책들의 역자 후기에서는 '어린애같은 기쁨, 인생의 중대사에 관여하고 있다는 흥분에서 오는 쾌감'이 느껴진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문학사상사판 '호밀밭의 아이들'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 "앗, 번역이 왜 이래?"라 느꼈던 독자는 나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처럼 번역 '선진국'이었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런 번역으로 읽지 않아도 될텐데, 라는 아쉬움은? 문예출판사 판이라든가 다른 판본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문학사상사판의 결정적인 단점이라면 원작의 페이소스가 거의 다 사라져 있다는 것. 맨 처음 시작하는 문단들은 억지스럽다 못해 거의 우스꽝스럽다.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 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일전에 존경하는 어느 번역가 선생님에게서 전해 들었듯이 '역자가 작품을 완전히 이해/장악'하고 있었다면 막힘이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원작을 직접 읽을 때와 대동소이한 감상을 남기는 번역이 불가능할 작품은 또 결코 아닐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인상깊은구절] 만일 네가 정말 얘길 듣고 싶어한다면 말이야, 우선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내 하찮은 유년 시절은 어떤 꼴이었는지, 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부모는 뭘 하고 살았는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하자면 <<데이비드 코퍼필드(역주: 찰스 디킨스의 자서전적인 소설)>> 식의 시시껄렁한 것부터 들으려고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걸 털어놓고 싶진 않단다. 왜냐면 말이야, 첫째로 그런 얘긴 내게 아주 따분할 뿐만 아니라, 둘째로 우리 부모는 내가 당신들의 신변 얘기를 하려고 들면, 아마 두어 번쯤은 뇌일혈을 일으킬 게 분명하거든. (p.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