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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스스로를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른다. 아마도 처음으로 겪었던 수영선수로서의 삶에서도 그랬었고, 예원학교에 진학하고서도 마치 악보를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듯이 게으른 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자신이 무엇인가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에 대해 더욱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고, 더욱 그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하는 무슨 일인가에 대해 게으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분야에 관해 진정한 천재는 아닐 것이다. 그저 단순히 그 분야에 약간의 소질이 있을 뿐.
사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서도 그렇다. 뭔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가장 오래 공부한 사람일 것이다. 어느 독서실에도 쓰여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사람이 그 독서실에거 가장 늦게 남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공부라는 분야에, 특히 수학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국민학교 5학년이었을 것이다. 나름 학교에서 산수를 좀 한다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보강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6학년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들에게 6학년용 문제를 칠판에 내셨다. 다른 학생들은 공책에 받아 적고, 문제를 푸느라 난리였다. 그런데 내 눈에는 풀이방법이 보였다. 머리로 암산을 하고, 몇 가지 계산을 적어 바로 답을 구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답을 말했다. 물론 정답.
6학년에 들어서 지방 시 대회에 출전을 했다. 나름 괜찮은 성적이긴 하지만 1등은 아닌 금상, 2등이었다. 그래도 도 대회에 참석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청 소재지로 가서 또 시험을 봤다. 그런데 이때도 또 금상, 2등이었다. 학교 내에선 내가 1등이긴 하지만 시 대회나 도 대회를 나가니 1등을 하지 못했다. 중학교때도 그랬다. 2학년, 3학년 모두 교내에선 내가 1등이긴 했지만 시 대회에선 대상을 차지 못했다. 나는 그저 수학에 조금 소질이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대상, 대통령상같은 것은 못 받아봤다. 늘 금상, 장관상에 그치는 수준,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 운이 없게도 돈을 밝히는 그런 담임을 만났고, 소위 촌지를 찔러줄 여력이 없었던 우리 집 형편에 나는 그 선생한테 제대로 찍히고 말았다. 별것 아닌 일에도 교무실에 불려가기 일상이었고, 별 일이 아닌 것에도 혼나기 일수였다. 덕분(?)에 공부에 손을 완전히 놓았다. 수업시간을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보냈고, 시험을 앞둬도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결국 전교에서 한 자리 숫자였던 내 등수는 세자리까지 내려갔다.
그녀에겐 그래도 자신을 지원해 주는 어머니는 계셨다. 비록 아버지께서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는 것에 반대하시기는 했지만 어머니라는 원군이 있어서 미국으로 유학도 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첫 독주회를 그녀의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연을 관람하셨다. 아버지게에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자 신의 축복이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이 모두 내 편이 아니었다. 뭐 어쩌랴, 내 복이 그 수준인 것을,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지만 위대학 업적을 이룬 사람 뒤에는 그를 가르쳐 준 스승이 있다. 물론 청출어람처럼 스승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업적이란 것 자체로만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론 그 업적을 이루기 위해선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베토벤에게는 하이든이라는 스승이 있었고, 살리에르라는 스승도 있었다. 과학에 있어서도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발견, E=mc²이라는 질량이 곧 에너지가 된다는 법칙과 상대성 원리가 있지만 그 역시도 그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풀이를 해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에서도 그런 구절이 있다고 하더군. "당신과 나의 공통점은 수학을 못한다는 것이잖소"
삼성의 이건희회장은 한때 마누라와 자식을 빼곤 모두 바꾸라고 하면서 혁신의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많이 혁신하는 사람은 많이 기여하고, 조금 혁신하는 사람은 조금 기여하지만, 절대 다른 사람의 뒷다리를 잡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이건희도 처음 경영자 수업을 받으면서 삼성전자를 큰 회사로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다음 세대는 전자산업이 미래를 이끌 것이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처럼 반도체 사업이 잘 되지 않자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이 일본의 NEC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반도체란게 뭐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NEC 회장이 '당신은 그런거 잘 몰라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가 뭔가 대단한 것이라서 저렇게 대답한 것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이건희의 사업을 도워줬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본 이건희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단순한 한 문장만으로 사업의 성격을 꿰뚫어 본 이병철 회장은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다.
백혜선이 위대한 피아니스트라 불릴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안정적인 자리인 서울대 교수라는 자리를 떠났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에 안주하는 이상 사람은 더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세상에 뒤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정된 자리를 떠나 세상을 떠돌며 공연을 하고, 자유롭게 연주를 하면서 기량을 연마하고, 그러면서 후학을 기르는 것이 그녀를 이렇게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만들 수 있었으리라 본다.
나는 이렇게 그녀가 보여준 삶의 작은 일면들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되돌아 본다. 혹시 지체하는 것은 아닌지, 세상을 따라가기는 하는 것인지 말이다. 위대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엔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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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뵀던 교수님의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네요 지난날 아픔을 책으로 새삼알게 되어 놀랐습니다 평소에 말씀 없이 지나가셔서 늘 응원합니다 서울대 음대 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교수가 되었지만 더 활발한 연주 활동을 위하여 10년 만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홀로 광야로 떠난 단독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홀로 갓난아이들을 키우는 생계형 피아니스트였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명문 음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두 아들딸을 모두 하버드 대학교에 보낸 교육자.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백혜선의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