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를린 천사의 시'를 정말 좋아한다면 추천 "한참 오래전 문학과 철학에 빠져 허세(!) 부리던 그 시절에 읽었다면 ...' 페터 한트케,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강렬하고 시적인 언어로 펼쳐지는 환상의 편력 방랑과 여행 기행. 과거에 대한 풍자, 위트 돈키호테적인 발상과 낭만적 소재. 한트케의 이 모든 것을 한 텍스트 안에 섞어놓고 있다. 한트케가 난해한 작가라는 선입견 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아주 유쾌해질 수 있을 것이다._데이 슈탄다르트 책의 뒤표지에 열렬한 애정으로 쓰여진 이 책에 대한 찬사 중 부분적으로나마 동의할 수 있는 글이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는 딱 오늘 같은 날_몇 날 며칠 겨울의 찬바람과 예측할 수없이 내리던 눈 속에 답답하고 막막하던 차에 모처럼 비춰준 따뜻한 햇살에 잠시 마음을 놓았다가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다시 불어대는 세찬 바람 소리에 마음까지 추워지는 그런 날_에 어울리는 책이다. 페터 한트케를 그나마 가깝게 느낀 건 명성만 들어본 [관객모독]의 저자라는 것과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1993] 각본을 썼다는 것 정도다. 물론 [베를린 천사의 시]도 독일 원작이 아닌,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 [시티 오브 엔젤, 1998]을 봤을 뿐이다. 천사가 지상의 인간들을 가련하게 여기다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인간이 된다는 소재와 이야기가 신선했고 니콜라스 케이지를 좋아하는 팬심으로 괜찮게 봤었는데, 당연히 원작의 메세지와 깊이를 따라가진 못했다고 한다. _원작을 안 봐서 뭐라 할 말이 없다_ 이 이야기가 진행되던 당시, 탁스함은 거의 잊힌 곳이었다. _9쪽 주변의 다른 장소들과 달리 멀리서든 가까이 서든 모든 방문객으로부터 한결같이 외면당했다._10쪽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누구도 찾지 않고 잊혀진 전쟁난민들, 실향민들, 강제 이주자들의 식민지였을_12쪽, 탁스함의 약사다. 총 4장 중 1장은 오로지 이 탁스함의 모습과 이 탁스함과 닮은 듯한 약사인 화자의 일상이 그려진다. 문장은 아름답지만 지루함은 어쩔 수 없다. 점심때 약사는 습관대로 간단한 식사를 위해 탁스함과 잘츠부르크 공항 사이에 있는 숲으로 갔다._30쪽 그런 그에게 맨발로 땅을 직접 밟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제 막 떨어진 밤나무 꽃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발걸음마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이 숲길이 좋았다._32쪽 그리곤 뭔지 모르게 그와 딱 어울리게 틈틈이 영웅서사시를 읽는다. 오랜만에 현타가 제대로 온다. '한트케가 난해한 작가라는 선입견 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아주 유쾌해질 수 있을 것이다' 유쾌함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읽기가 꽤 지난하다. 대부분 책을 읽을 때 사전 정보를 보지 않는 게 원칙이긴 한데, 이 작품을 읽기에 적당한 동기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아, 과감하게 해설로 넘어갔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라는 제목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 불린 스페인의 신비주의자 시인으로 카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다가 반대파에 의해 9개월간 다락방에 감금되어 '어두운 밤'을 체험했던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차라리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면 훨씬 흥미진진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9개월간 어두운 다락방에 갇힌 시인의 이야기가 오스트리아의 탁스함이란 잊혀진 도시의 약사 이야기보다는 훨씬 마음을 끄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강렬하고 시적인 언어로 펼쳐지는 환상의 편력' 중 적어도 강렬한지는 모르겠지만 '시적인 한트케의 언어'는 잠시 마음을 잡는다. 먼지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비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제, 여명 속에 저 아득한 지평선이 어스름하면서도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는 특히 이런 날을 좋아해서 저녁때까지 쭉 이랬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기나긴 여름 해와 푸른색은 영겁의 빙하와 무언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_47쪽 하지만 아직 펼쳐지지 않은 환상의 편력이 내가 앞으로 읽을 어딘가에 나오긴 하려나. 그럼에도 조금 생뚱맞긴 하지만, '중세 서시시'를 읽는 주인공의 취미엔 뭔가 끌림이 있다. 이 뜬금없는 취미가 『목구멍 속의 유령』처럼,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뒤바꾸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기대를 갖게 한다. 그는 말을 잃어버렸다. 그 순간만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하지만 어째서 조금 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일격에다 다시 여러 번 타격을 당하면서도 경악은 커녕 죽음의 공포조차 느끼지 않았을까?_56쪽 그러던 어느 날, 밤바람 속에서 그는 실어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더는 말을 할 수 없다니. 잘된 일이야.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아도 돼. 이건 자유야. 아니 그 이상이지. 아주 이상적인 상태야!_121쪽 한동안 회사 책상 앞에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를 써 놓고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듣지 않고, 말을 안 한다는 것이 나에겐 자유보단 편안함이었다. 불의의 일격 때문이긴 했지만, 주인공이 실어상태로 느낀 만족스러움과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이해되고 처음으로 공감이 된다. 탁스함의 약사는 실어상태에서 옛스포츠 스타, 시인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_이것도 참 개연성없다_ 여기서부터는 다크 버전 '돈키호테' 혹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떠오르는,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약사의 모험(?), 흡사 그가 좋아한 중세 서사시 아이반호의 일반인 버전 여행기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면, 첫눈에 보자마자 마구 패줄 거라_180쪽'는 여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그의 구원의 여인인양 그를 말하게 한다. 당신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에요. 비록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의식을 확대시켜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혼자 있을수록 당신의 실어상태는 위험해지고, 급기야 생명까지 위협할 거예요. 실어상태가 계속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그토록 의미 있어 보이는 현재가 실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체험까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파괴될 거예요....그러니 당신은 새롭게 말하려는 시도를 해야 해요.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고 문장을 새로 만들고, 큰 소리로, 아니 소리라도 내보세요. 당신의 말이 비록 얼토당토않고 터무니없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시 입을 연다는 사실이에요._169-170쪽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그야말로 돈키호테식 영웅담도 아닌 것이, 분위기는 너무도 엄숙하고 진지하며 내밀한데, 사건들은 어떤 개연성도 없이 툭툭 튀어나온다. 난데없이 등장해 이야기 대부분을 함께 하는 동행자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과부에게 구타를 당하고 그 여인이 구원의 여인이 되어 주인공의 말문을 틔어주고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는다는. 어떤 울림도 감흥도 없이, 가끔은 헛웃음에, 가끔은 지루함에, 그리고 종종 문장의 아름다움에 밑줄을 그으며, 그럼에도 결국 완독하게 만든건 한트케의 문장 때문인지, 친구와의 챌리지 때문인지 확실히 선택할 순 없지만, 중간에 그냥 책장을 덮을 수는 없는 무언가 매력이 있는 작품이긴 한다. 거기 스텝 지역에서 나는 때때로 나 자신에게까지 감격했었습니다. 나이 든 한 남자에 대해, 특히 나 자신에 대해 경탄했었지요.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한번 경험해 보세요. 잠시라도 자기 자신에게 감격한 적이 없는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죠."_200쪽 어쩌면 이 한 문장 때문에 이 작품이 기억에 남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약사가 말했듯이 '그냥 사랑 이야기만 쓰세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과 모험 이야기를!'_201쪽 이 작품은 한트케식의 사랑과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암튼 이처럼 나를 혼란스럽게 한 작품이 있었던가 싶은, 읽는 내내 좀 당혹스러웠던 작품이다. 만약 이 작품을, 아니 한트케를 한참 문학과 철학적 허세에 빠져 있던 그 시절에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카뮈만큼은 아니라도 나의 낭만시절을 함께 했던 작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호기심이 말라버렸고, 읽는 내내 뭔지 모를 불편함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건 어쩌면 그 나라의 문화 특성, 철학이 너무 진하게 나는 작품에서 느끼는 문화적 거리감_필립로스 작품에서 느꼈던 것 같은, 물론 한트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_, 우리 작가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마음의 거리감이다.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그리 애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예전 같으면 이해 될때까지 작가, 그 시대, 연계되는 모든 것들을 다 파헤쳐 좁히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와 관심이 없다는...이건 순전히 현재의 나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