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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를 위해 심연을 뒤흔드는 충격과 공포>
<피버 드림>은 바이러스에 포위당한 채로 자발적인 자가 격리 생활에 조금은 적응하고 자주 힘들던 시기에 처음 만난 작가와 문학이었다. 감염이 되면 인간은 고열로 들끓고, 미감염된 이들도 화가 치밀던 시절이었다.
피버 드림은 팬데믹만 끝나면, 이라고 허약한 바람을 가졌던 현실 인간의 꿈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혼탁하고 비슷하게 서글픈, 고열이 보여주는 환상과 같은 드림이었다. 열에 들뜬 사람의 말을 믿고 벌레를 어서 찾고만 싶었다.
마침 여름이었고, 나는 여름의 열기가 뇌를 파고들었는지, 작품의 고열이 시선을 타고 들어왔는지 모를 혼곤한 열에 울렁이며, 어지러운 정신으로 딸의 안부를 묻고 묻고 또 묻는 인물에 그렇게 사로잡혔다.
“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 그 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이름을 외우기 위해 여러 번 쓴 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막막함과 답답함과 열기가 가득한 숨 막히는 세계는 호불호가 대단할 듯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뜻밖이라 느껴질 만큼.
그 다음 해에는 심장을 서늘하게 하는 작품 <리틀 아이즈>로 재회했다. ‘작은 눈들’라는 한국어 제목도 섬칫한데, 원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칸투키들이었다. 서늘하고 스산하고 소름 끼치는 스릴러에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
일 년 전에 작가에게 전해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며칠 전의 뉴스기사로 확인하는 숨 가쁘게 빠른 불안의 시대. 사회적 안전망은 더 허술해지고 개인이 구매한 안보 시스템은 치른 비용이 무색하게 뚫린다.
줄곧 함께 있지 못하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구매한 안보 상품은 해킹이 되고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침해되고 만다. 현실의 범죄에는 재빠른 수사와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신뢰할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건지 관련 정보를 따라가기가 두렵다.
애초에 공익을 위한 기획이 아닌 상품으로 태어난 보안 이외에 대안은 없는 것일까. 앞으로도 없을 것인가. 근절과 개선을 바라던 말들이 허망하다. 프라이버시란 언제든 공개 가능한 정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심어진 카메라들은 개인의 삶만이 아닌 인류문명의 모든 허점과 약점을 들여다본다. 불과 일 년전 이를 고발하고 경고한 작가는,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제기를 위해서 심연을 뒤흔드는 충격과 공포가 필요했을 것이다. 성공했던가. . . <상식이 허위가 되는 순간들>
3년 째 번역본으로 만나는 슈웨블린의 작품 중, 제목으로는 이 책이 가장 무섭다. 조류공포증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읽은 순서는 <피버 드림> <리틀 아이즈> 다음이지만,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이 초기작들이다.
인터뷰에서 밝힌 작가의 고민이 나도 몹시 궁금하다. ‘충분히 용감했는지, 새로웠는지, 미쳐 있는지.’ 최대한 비틀고 부순 방식의 이야기가 현실의 중앙을 꼬챙이처럼 꿰어내는 작업은 신기하고 궁금하다.
초기작들에서 시선과 사유의 방식이 돋고 자라고 여물어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게 될까하는 기대가 컸다. 어렸다면 분명 울었을 공포와 나이가 들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스무 편이나 된다.
잔혹하고 참담한 현실을 야기한 인물과 원인이 때론 허망할 정도로 시시하고 일차원적인 욕망이라서, 인간의 수준에 절망하여 그 일원으로서 비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슈웨블린의 환상 세계에서는 그런 직접적이고 지독한 염오는 피할 수 있지만, 본질까지 도달하면 어느덧 뇌가 뜨겁고 아프다. 각자의 트리거는 다르겠지만 내게 클릭하는 한 문장에 이르면 비명이나 울음이 격발될지도.
짐작한 대로의 공포와 이젠 반려감정처럼 느껴지는 내 불안이, 만난 적 없는 작가에게 전송된 내 정보가 노출된 것처럼 읽히면 정말 무섭다. 이렇게 조마조마하게 살다가 어느 날 나도 산 채로 새를 입에 넣고 씹을 지도 몰라, 하는. 새가 아니라면 ‘고기’를 입에 넣는 현실은 충분히 문명적인가요, 싶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는 아직 망가지지 않았는지 나는 문득 의심한다. 아내를 죽여 가방에 넣어두는 일, 범죄를 온갖 변명으로 구제하는 일, 무작위로 누군가를 대로에서 죽이는 일, 그 순간을 송출 보도하는 일, 잔인함에 열광하고 재생산하고 더욱 부추기는 일은 현실에 이미 비일비재하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종류의 맹신을 갖게 되거나 선명한 한편의 진실이 다른 편에겐 보이지 않는다. 감각도 의지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개인을 압사시키는 거대담론은 버리더라도, 함께 살기 위한 새로운 공동 가치는 필요하지 않을까.
봄이라는데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춥다. 이야기 속 모든 약한 존재들은 현실에서 더 춥고 어두울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단 한 번 죽고 현실에서 여러 번 죽임 당할 것이다.
! 이렇게 무서운데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인이 등장해서 기시감도 공포도 한 톤 더 깊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 어떤 문장들은 비문을 만난 것처럼 인지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문해력은 늘 컨디션에 휘둘리니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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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사만타 슈웨블린의 진수는 단편집인 <입속의 새>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과감한 소재, 독창적인 설정, 비틀린 인물과 관계가 쏟아져 넘쳐흐른다. <입속의 새>는 스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비록 소설의 길이가 짧을지는 몰라도 그만큼 사만타 슈웨블린의 독보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책이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특징인(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전부를 불태워버릴 것 같은 뜨거움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입속의 새>에 잔뜩 실려 있다. 스무 개의 단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을 리뷰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보존>은 독특한 형태의 ‘탄생’과 그 과정에서의 (그동안 지나치게 축소되어왔던)‘여성의 희생’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 중 <적절한 사랑>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아기 ‘테레시타’를 기다리는 ‘나’는 점점 몸이 심각하게 부어가고, 남편은 이러한 ‘나’의 모습에 지쳐가고 있다(괘씸하긴!). 온 몸이 부어오르면서 ‘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면증에도 시달리면서 해결책을 갈구하고, 그 과정에서 바이스만 박사의 병원을 찾게 된다. 바이스만 박사는 식습관, 수면 습관, 호흡 운동, 복약, 그리고 부모님과 시어머님에게도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매우 세세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에너지’와 ‘대지의 자궁’에 집중하라는 묘사 때문에 주인공이 사기라도 당한 줄 알았는데, 사만타 슈웨블린답게 이야기는 절대로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놀랍게도 주인공의 부어오른 몸은 가라앉고 배는 오히려 들어간다. ‘테레시타’의 탄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표제작인 <입 속의 새>는 전처 실비아가 딸 사라 때문에 ’나‘를 불쑥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비아의 걱정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사라는 온 몸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신발 상자로 둘러싸인 사라는 음식을 거부하는 대신 새장에서 ’새’를 산 채로 꺼내 삼키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웃으며 ‘나’와 실비아를 마주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처음에는 이러한 모습에 격렬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실비아의 요구조건은 사라를 위한 새는 자신이 조달할테니 ’나‘가 사라를 양육하는 것이다. ’나‘와 실비아는 사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은 사라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행복한 문명을 향해서>는 내가 가장 즐겁게 읽었던 단편이다. ‘그’는 기차표를 잃어버린 뒤 말 그대로 역에 ‘갇혀버린다’. 역에서 아무리 직원의 환대를 받더라도 그가 갇힌 신세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가 아무리 기차표를 사기 위한 돈을 준다고 해도 ‘거스름돈이 없기 때문에’ 등과 같은 황당한 이유로 그의 요구는 거절당한다. 이때 사만타 슈웨블린 특유의, 어쩌면 프란츠 카프카나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극에서 등장할 법한 플롯 트위스트가 나온다. 직원들인 페, 조, 공, 길은 모두 ‘그’와 같이 기차역에 갇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논리의 허점을 통해 기차표를 사지 않고 기차역을 탈출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탈출한 뒤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안전한 대피소를 탈출했다는 무한한 공포감일 뿐이다.
<아스팔트에 머리 찧기>는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소설일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존 손은 ’외국계 한국인‘의 스테레오타입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보인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결코 그 차별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사고를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나’는 어릴 적 자신의 그림을 찢어 버린 친구 프레도의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찧으면서 소재는 처음 등장한다. 주인공이 조금 더 자린 후인 고등학생 때 프레도에게 앙갚음을 하느라 머리를 다시 내리찧으면서 ‘나’는 세실리아라는 아이의 호감을 얻게 되고, 이를 불쾌하게 여긴(마침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기도 한) ‘나’는 세실리아의 머리를 아스팔트에 내리찧는 그림을 그리면서 누군가의 머리를 내리찧는 그림으로 돈을 버는 화가가 된다. 주인공은 ‘존 손’이라는 한국계 치과의사에게 치료를 받다 치과 홍보를 위한 작업 의뢰를 받아 진행하게 되는데 존 손은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이는 주인공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낸다. 주인공은 한국인에 대한 분노를 동양인의 머리를 아스팔트에 찧는 것으로 무차별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 가방>은 꼭 <블랙 미러>나 <아메리칸 사이코>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다. 한 남자는 아내를 살해해 여행가방에 넣어 ’처리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코랄레스 박사에게 털어놓고자 한다. 하지만 코랄레스 박사는 조력자 도노리오와 함께 이는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낼 뿐이다. 베나비데스에게 따라오는 것은 살인자라는 굴레와 법의 심판이 아닌 부와 명예가 된다. 아내의 시체와 이를 담은 여행가방은 <폭력>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베나비데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코랄레스 박사와 도노리오는 아내가 아닌 <폭력>이라는 주제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며 작품의 미적인 가치만을 강조한다. 작품은 코랄레스 박사와 도노리오의 소망처럼 성공적으로 공개될 것인가, 아니면 베나비데스의 바람처럼 단순한 살인에 그칠 것인가?
몇 페이지부터 몇십 페이지에 달하는 스무 편의 비틀리고 부조리한 소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뒷 페이지의 카피처럼, 새롭고, 특히 ’용감하고, 미친‘ 이야기들은 사만타 슈웨블린을 수식하기 너무나도 적절한 용어들이다. 스페인어권 문학은 언제나 강렬하고 기대를 배신하는 법이 없다. 부디 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작가에게 주목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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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당최 뭘 말하고 있는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나는 문학도 미술이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작품은 조금 난해하지만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입속의 새는 단편 소설집으로 사만타 슈웨블린의 단편 소설 20여편이 있다. 여기에는 산채로 새를 잡아먹는 여자아이가 등장하기도 하고 아내를 죽여 커다란 가방에 넣어 다니던 것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기괴하다 싶은 상황과 인물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조금 충격을 받기도 하고 밤에 읽으면 섬뜩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맵지만 마라맛에 빠지듯이 읽다 보면 빠지게 되는 면이 있다.
사람들은 어떠한 작품을 읽으면 당장 해답을 찾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학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니, 우리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령 내 옆에 배우자가 있다고 하자. 평생을 살아도 그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급하게 한 번에 결론을 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머리로 다 알고자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뒤에 옮긴이의 말이 제시되어 있어서 사만타 슈웨블린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꼭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기괴한 분위기, 낯선 정서가 주는 새로움을 그냥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만타 슈웨블린이 태어난 아르헨티나가, 라틴 아메리카가 우리에게 낯선 것처럼 말이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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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만큼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일상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환상 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만큼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일상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환상 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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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타 슈웨블린의 작품은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될 정도로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내가 뭘 읽는지 놓칠 정도로 집중을 요한다. 새를 먹는 아이의 기괴한 모습을 그린 표제작 「입속의 새」가 사춘기를 겪는 여자아이의 불안을 잔혹 동화로 풀어냈다는 것을 작품을 읽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출산을 앞둔 여자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부른 배가 점점 홀쭉해지고, 급기야 마치 임신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가있다. 그리고 그녀가 구역질을 하며 뱉어낸 것은 아이였다는 이야기 「보존」은 아직 출산이 준비되지 않은 여성이 만삭에서 임신 초기로 역행하는 과정을 통해 임신한 여성의 갈등과 불안을 그리고 있다. 그 외에도 갑자기 구멍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이 모여있는 외딴 고속도로 휴게소, 동생이 불행해져야 나머지 가족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 등 상상을 초월한 섬뜩하고도 소름 돋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작품들은 그동안 나의 상상력이 참 초라하다고 느낄 정도로 경악스럽고 어렵다. 그녀의 작품을 두 권째 접하며 내 문해력이 이렇게 딸리는 건가 의심해 본다. 여전히 어려운 그녀의 작품 마지막 남은 한 권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벌써 긴장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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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 J. M. 쿳시는 사만타 슈웨블린의 단편집 <입 속의 새>를 두고 ‘또 다른 현실의 틈새로 미끄러지고 구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림 형제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듯하다’고 이야기했다. 일전에 그림 형제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있는 나에게는 이 둘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소설이라니, 이목을 끌만한 표현이었다. 더불어 슈웨블린의 다른 소설인 <피버 드림>과 <리틀 아이즈>와 달리 단편집인 <입 속의 새>는 나로 하여금 그 길이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임팩트를 줄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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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친구를 잘 만나서 도서관을 자주 들락날락했고 그 덕에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학교 문학 성적은 별개였다. 밑줄친 단어의 의미를 맞추라는 문제에는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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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만큼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일상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 기이하고 공스러운 이야기들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환상문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두 번째 소설집 '입속의 새'는 평화로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2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인 <입속의 새>는 새를 먹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이혼 후 아이를 맡고 있던 아내 실비아가 찾아오게 되고 이제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한계라며 딸 사라를 가리킨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체 주인공은 아내를 지켜보고 되고 아내는 거실을 따라 차고로 들어가서는 구두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아내는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든 것처럼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서 참새 한 마리를 꺼내더니 새장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사라는 폴짝폴짝 뛰더니 새장으로 다가가 새를 꺼냈다. 사라가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새가 날카롭게 꽥 꽤 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새가 날카롭게 꽥꽥거리는 가운데, 아이는 뭘 하는지 잠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 새가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해서 저러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라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새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라의 입, 코, 턱 그리고 두 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는 수줍게 웃었다. 커다란 입이 활같이 휘다가 벌어지면서 시뻘건 이가 드러났다." <인어남자>는 어느 날 부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어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은 오빠의 친구 가게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중 부두에서 콘크리트 기둥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어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홀린 듯 인어 남자에게 다가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을 발견한 오빠는 인어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오빠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름답고 온몸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그가 부두에서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인사한다. 그런데도 오빠는 아무 말 없이 차에 타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 이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차에 타 마음을 진정하려 애쓰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냥 인어일 뿐이야. 그냥 인어일 뿐이야. 내일도 저 자리에 있을 거야. 나를 기다리면서."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 가방>은 아내를 살해하고 그녀를 커다란 여행 가방에 넣어둔 일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커다란 여행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인 코랄레스 박사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지만 박사는 곧이듣지 않고 그에게 진정을 요구한다. 다음날 그의 끈질긴 부탁해 자신이 살해한 아내가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열어본 코랄레스는 놀라운 재능이라며 베나비데스를 칭찬하게 된다. "작품에서 발산되는 무언가가 그들을 광기로 몰아넣는다. 자줏빛 육체. 그들 몇 미터 앞에 주검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살과 인간의 피부가, 거대한 허벅지가, 그 모든 것이 가죽에 짓눌린 채 여행 가방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부패의 냄새. 예술가는 여전히 가방 가까운 곳에 있다." 뛰어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큰 인지도를 얻지 못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마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홍보 부족과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이미지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거리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입속의 새> 작품집에서는 기이한 사건 속에서 모두 인간과 현실의 문제로 귀착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사만타 슈웨블린은 일반적인 리얼리즘에서처럼 자신이 일방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친근한 일상의 경이로운 단면에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판단이나 의미 규정을 위해 독자의 동참을 유도한다. 작가는 현재 상황에만 시선을 밀착하도록 유도하고 마지막 순간에 사건을 역전시켜 기대와 예상을 전복시킨다. 이 모든 것이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만타 슈웨블린이 전하고 싶은 환상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사만타슈웨블린 #입속의새 #창비 #환상문학 #세계문학 #라틴아메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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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도 감이 안잡히던 미친이야기들덕에 하루만에 다 읽었네요. 평소 공포,미스테리 분야를 좋아하는데 간결한 문체로 술술 읽혀 장르적 재미도 소설적 흡입력도 좋았어요.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책을 “새롭고, 용감하고, 미친”이야기라 칭하던데 정말 “미친”이야기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아이를 뱉어내던 임산부의 불안감이... 참 경악스러우면서 안쓰럽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