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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배수아 작가님의 작별들 순간들입니다. 이 리뷰는 제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으며 구매시 참고로만 부탁드리며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사실 에세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어쨌건.. 주의문구를 달아보았습니다. 배수아 작가님은 예전부터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에 이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으나,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접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워낙 식견이 짧은 탓에 작가님이 선보이는 고급어휘가 점철된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내가 이 문장들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맞나,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이해가 안될까 할 때도 있었으나 어찌됐든 책장은 잘 넘어갔습니다. 읽다보면 나도 또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서늘하고도 건조한 아침을 맞는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즘들어 허무에 물들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와도 잘 맞고, 어찌 됐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다시금 정립할 수 있게 작가님의 생활로부터 얻는 것들이 있어 읽기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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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부르는 책. 순간의 작별을 어떻게 맞이할까. 일상 속 순간에 집중하면 만남도 이별도 할 수 있다는 작가. 작가가 조심스럽게 고른 단어에 헤엄치고 있으면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배수아 베스트 단편 모음집만 읽어본 독자로서 작가한테 미안해졌다. 그동안 열심히 찾아 읽지 않은 거에 대해서. 번역도 창작도 이제라도 읽어야겠다. Yes24에서 전자책 가장 먼저 풀어서 여기서 샀다! 정말 보고 싶은 순간에 단독선출간 글자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
| 배수아 작가의 책을 오랫만에 접해서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과 단어들이 가득찬 에세이입니다. 서늘한 유럽의 도시들을 연상케하는 표현들을 따라읽으며 내면에 잔 바람 이는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좋은 글입니다. 무기력한 오후 몇페이지의 에세이로도 뭔가 소소한 파동과 잔상을 가질수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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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표지 그림과 같은 감상을 주는 책이었음. 에세이(?) 임에도 잘 읽히지는 않는데, 문장 하나하나 문단 하나하나가 굉장히 미려하고 글 속에서 그리는 전원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읽었던 기억이 남. 지금도 해 저물녘에서 밤 사이에 읽고는 하는데 정말 문장이 아름다움. 그나저나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정말 작가의 연인인걸까 아니면 가공의 인물인걸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글이라 이게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모호한 지점이 재밌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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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일평생 단 하나의 헌책방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각각 다른 장소에 있는 그의 서재 세 곳은 책으로 가득하며, 그때그때의 운명과 우연에 따라, 여행과 체류 계획에 따라 각 서재의 책들을 재배치 하는 일에 그는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 커다란 여행가방을 싣고 한 서재에서 다른 서재로 떠난다. 어디로 떠나든 여행가방에는 다른 물건은 거의 없이 오직 책이 가득하다. 그의 여행가방은 그 자체로 작은 도서관이다. (…) 그의 여행가방은 그 어떤 경우라도 절대로 '충분히' 클 수가 없다. 헌책방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경우, 그 책을 이미 갖고 있다 할지라도 또다시 구입하는 데 그는 주저함이 없다. 붉은 뺨의 청년이 1972년에 구입한 책과 이후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이 21세기에 다시 발견한 책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한 권을 이 서재에, 다른 한 권을 다른 서재에 옮겨놓기 위하여 기꺼이 여행을 떠난다. 놀랍게도 나는 일생 동안 그런 사람을 몇몇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끌렸고 그들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책과 여행가방으로 대표되는 어느 한 세대의 마지막을 살았던 사람들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묽은 잉크와 같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숲 뒤편으로 석양빛이 섞인 어두운 구름이 덮여 있었다. 들판 가장자리 사냥꾼의 감시대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듯 흐릿해져갔다. 풍경은 고요히 얼어붙은 그림 같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 정물이었다. (…) 내가 계속해서 쓰기를 바란다고 당신이 말하는 것이 오래오래 내 귀에 남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영영 작별하는 건 아니겠지요! 하고 내가 외치듯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정적이 우리를 둘러쌌다. 우리는 숲안쪽에 있었다. 우리는 발목이 없다. 나무들은 안개의 베일을 걸친 뼈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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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배수아 작가님의 산문 <작별들 순간들>을 읽고 적는 감상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배수아 작가님의 책과 관련된 순간들을 담고 있다. 분명 어떤 특정한 기준이 없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인 글인데도 불구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이 반짝였고 아름다웠다.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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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 순간들 책을 읽고
작별들 순간들 책을 구입해서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꼭 읽고 싶었던 책이지만 이렇게 읽게 된다. 작별들 순간들 책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일까 생각 들었다. 배수아 작가가 쓴책은 첨 읽는 거지만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두 세번 반복해서 읽으면 대충 내용은 파악 할 듯 싶다. 독서의 개념과 그리고 이 분이 쓴 책은 몇 권 되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읽을만한 책인듯 싶다. 작별들 순간들 책 읽는 순간에 우리에게도 작별과 순간도 찾아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 힐링할 거라고 믿는다 |
| 배수아 작가님의 에세이 작별 될 순간들을 읽고 쓰는 리뷰 입니다 뭐랄까 둘이 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주기적으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나 에세이 들을 써치 해 봅니다 작가님 글 중 가장 개성이 잘고 하는 글인데 여행기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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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1월에 나는 글쓰기의 기원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2018년 가을, 저자가 번역한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읽었다. 많은 죽음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다. 2015년에 읽은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은 저자의 몽골 여행기에 근접한 산문집이다. 2014년에는 저자가 번역한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샀는데, 침대 옆에서 아주 간혹 조금씩만 읽히는 중이다. 거슬러 올라가 배수아의 소설집 《심야통신》을 읽은 것은 1999년이다. 나는 그해 초겨울 첫눈이 내리는 날에 결혼을 했다.
“... 우리는 산책길에 꽃술이 뱀의 혀처럼 길게 나온 푸른 꽃을 발견하고 꺾어 와 화병에 꽂았다. 독일어로 ‘독사의 대가리Natternkopfe’라고 불리는 꽃이다. 초여름, 부드럽고 온화한 날들이 이어졌다.” (p.76)
배수아의 글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리고 저자의 문장에서 건너뛰기의 미학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문장의 흐름, 산책길에 꽃을 발견하고, 그 꽃의 이름이 독사의 대가리임을 확인하더니, 별안간 ‘부드럽고 온화한 날들’로 건너뛰는 방식을 들여다보면서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런 방식의 흐름을 애써 좋아하는데, 그 유격에서 아주 작고 세심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오늘을 슬픔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여름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빛, 여름의 냄새, 여름의 선언을 열애하기 때문이다. 그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투야나무 울타리의 쇠 빗장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우리는 폭우 속에 앉아 있었다. 젖은 장작을 태우면 벌레들이 기어나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잊은 모자가 테라스의 어둠 속에서 젖고 있었다.” (pp.138~139)
산문집인데 마치 주인공인 듯, 아니 그보다는 주인공의 건너편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있다. 자신이 머무는 모든 공간에 그만의 서가를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로 그려지는 이다. 산문집의 화자이자 주인공을 저자라고 한다면 저자의 반려인으로 짐작할 수 있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때때로 등장한다. 산문집의 초반에 구축된 독특한 캐릭터 탓에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 테라스 난간에는 여름에 말라죽은 메뚜기, 거미줄, 깨진 찻잔, 녹슨 쇠접시, 양초, 조약돌, 구슬 목걸이, 신문에서 오려낸 시, 개의 해골, 붉은 물감이 말라붙은 붓, 자작나무 장작 한 덩이, 잣나무 열매, 거울 조각 그리고...
반짝이지 않지만 조각난 것들을 모아본 적이 있다. 눈에 띄지 않으므로 나조차 수집된 것인 줄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였다. 수집벽은 그렇게 사라졌다. 수집의 주체 또한 이미 누추해졌다. 어쩌면 그 후에 남겨진 것이 ‘고요. 회색.’이 아닐까. 기척도 없이 다가오고 감쪽같이 희석되는 것들, 어두운 담에 달라붙는 더욱 어두운 그림자 혹은 사막 한 가운데로 내리꽂히는 추락하는 새의 소멸하는 그림자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나는 글쓰기의 기원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최초의 언어를 배운 장소를 생각했다. 그곳은 부엌에 우물이 있는 집이었다. 정원에는 맨드라미가 핀 넓은 화단이 있었고, 비 내린 뒤 마당 한가운데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커다란 두꺼비, 나를 목욕시키고 최초의 말을 가르쳐준 친척 여자가 있었다... 비 내린 뒤, 한 마리 두꺼비가 내 얼굴로 뛰어올라왔다. 친척 여자가 죽었을 때,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pp.234~235)
바로 지금 카눈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아주 느리게 점점 느리게 한반도를 관통하는 중이다. 이미 상처 입은 것들이 난무하고 아직 상처 입지 않은 것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배수아의 문장들은 숨 죽이지만 숨 죽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지 못한 장례식에서 죽음을 느끼고, 사라진 죽음을 배경으로 삼아 어쩌면 삶의 기원을 길어 올린다. 문장의 구석구석에서 최초와 최후가 뒤섞여 만드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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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작별들 순간들>은 배수아 작가가 읽기와 쓰기, 작가로 존재하기에 대해 쓴 산문으로 그 영토를 여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조금씩 그 땅을 디디다보면 어느 순간 빽빽한 투야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오두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그곳에는 정원의 삶과 읽고 쓰는 삶만이 있다. 목가적인 것과는 다르다. '벗어난 것'에 가깝다.
배수아 작가는 베를린 인근 한 시골 마을의 정원 딸린 오두막을 15년 가까이 오갔다. 처음에는 시차를 두고, 그러나 점점 더 오래 그곳에 머물게 되었고 마침내 살게 되었다. 자신에게 중요해지리라 짐작하지 못한 채 중요해지는 장소가 있다. 특히 배수아 작가는 한국에 체류할 때는 번역을, 독일 오두막에 머물 때는 본인의 작품을 쓰는 식으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이곳은 더욱 특별해진다. 작가는 자신이 '정원에 속한 사람'이 되어갔으며 그것은 자신의 글쓰기의 성분과 정신, 철학을 모두 포함한 글쓰기의 양태가 오두막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이 산문집은 특정 '장소'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장소에 있었음으로 인해 쓸 수밖에 없는 글'이라고도.
배수아 작가는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이 반복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배수아 작가는 이미 읽은 페이지를, 문단과 단락을 되풀이해서 읽으며, 매번 그것을 다른 글로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한다. 배수아 작가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잊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배수아 작가는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는 배수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 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 배수아 작가는 어떤 파국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주문처럼 "네가 정말로 재가 되어버려야 한다면, 그게 지금이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속삭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수아 작가는 십여 년 이상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번역을 지난해 갑자기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것은 파국적인 결정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배수아 작가는 시작할 대와 마찬가지로 급자긋럽게 번역과 작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마음의 변화가 찾아왔던 것이다. 배수아 작가는 "내 글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는 상상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글 속의 대화체를 위한 장치이며 '듣는 사람'으로 위장한 '말하는 사람'의 역하이고, 실질적으로는 '말을 암시하는 사람'이자 '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고, 그는 마치 한 권의 책과 같고, 나는 반복해서 책을 읽는다고 쓸 뿐 한 권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배수아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가야 해, 하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산책을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두운 집안에서 생각에만 잠겨 움츠려 있으면 더욱 춥고 더욱 우울해질 거라고 했다. 추위는 얼음물과 같다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한번 몸안으로 스며든 냉기는 집안으로 들어온 겨울이 그렇듯이 오래오래 남아 사람을 괴롭힐 거라고. 아래에서부터 고여오기 시작해 마침내 심장까지 상승하여 몸을 꽁꽁 얼려버린다고. 자신은 그런 냉기 때문에 마침내 불을 피워놓은 집안에서 얼어죽은 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무슨 일이 닥쳐올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