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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라는 부제를 내걸고 있는 이 책은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진지한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사용하는 ‘식인’이란 흔히 종족의 고기를 먹는 ‘카니벌리즘(Carnivalism)’의 번역어이다. 그렇다면 부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체제 내의 존재들을 ‘수탈하고 착취’하면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흘러온 역사를 탐색하면서, ‘자본주의 경제가 제 배를 채우기 위해 가족과 공동체, 생활 터전, 생태계의 피와 살을 다 빨아먹어 버리는 현실’을 진단하고 그러한 사회 시스템을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마침내 신회에서 ‘제 꼬리를 먹으며 자멸하는 뱀’으로 여겨지는 ‘우로보로스(Ouroboros)’에 비유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실상 이 표현은 이 책의 원래 제목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문제를 진단하고, 저자 나름의 해답을 ‘새로운 사회주의’에서 찾고 있어 번역자가 <좌파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번역서에서 내세우고 있는 ‘좌파’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단어와 함께 대조적으로 사용되는 ‘우파’란 용어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 기원은 프랑스혁명에서 급진적인 세력이 의장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던 것에서 유래했다. 왕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급진적인 변화와 개혁을 추진했던 세력을 일컬어 ‘좌파(左派)’라 하였고, 저자가 내세우고 있는 대안인 사회주의가 바로 ‘좌파’의 이념을 대변한 것이라 이해하고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파는 자기가 지닌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그 이념으로 뭉친 이들을 지칭한다고 이해된다.
기존에는 ‘자본부의’를 경제의 유형으로만 인식했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회의 한 유형’으로 전제해야함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이미 경제 영역에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화되지 않은 모든 부를 먹어 치우는 사회’로 변신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일상적으로 우리 삶의 기반을 먹어 치우고, 주기적으로 위기를 불러들인다’고 강조한다. 또한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착취와 수탈’을 자행하는 ‘걸신들린 짐승’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저자의 제안은 ‘제 살 깎아먹기의 위기’에 처함 자본주의의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종식하고 대안으로 내세울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물론 그 대안은 번역자가 내세운 <좌파의 길>이면서, 구체적으로는 추상적 이념이 아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사회주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임을 강조하면서, 착취와 수탈이 결합된 ‘수탈 탐식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다. 아울러 주로 여성들을 비노동 분야인 ‘돌봄 노동’에 치우치게 함으로써 ‘돌봄 폭식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지구의 환경 위기 역시 자본주의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 ‘얽혀있는 생태 위기’를 자초하며 ‘꿀꺽 삼켜진 자연’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의 상황 역시 경제적 이익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정치 역시 경제에 예속되어 ‘도살당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조의의 폐해는 더 이상 용납되어사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주의’에 저자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독자들이 자본주의가 지닌 실상을 제데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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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에서 <좌파의 길>이라고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식인 자본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비판 이론가 낸시 프레이저가 최근 제시한 '식인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책인데, 낸시 프레이저가 제시하는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구조적 특징 중 하나는, 이윤축적과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해서 자본이 끊임없이 경제적 공간 외부에서 재생산을 위한 자원들을 흡수하거나 이 재생산 비용들을 외부화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본주의가 경제적 공간에서만 작동하는 구조가 아니라 경제 외부의 공간들 역시 자본에 포섭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자본주의 분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유익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
| 여러 시간 고민했던 제국주의 젠더 가사노동의 불인정 여러 문제에 대한 고민의 단초와 실천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낸시 누님의 통찰력에 존경을 바칩니다. 맑스주의의 시대적 한계, 현재 사회주의로 통칭되는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속성에 대한 현실적 검증을 통한 비판에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
자본주의가 '우리를 위해' 우리 등 뒤에서 결정해온 것을 이제는 '우리가' 집단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 p.280)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 문제 의식만큼의 구체적 대안 부재가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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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프레이저 저 좌파의 길 리뷰입니다. 낯선 단어들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돌리는 거대한 힘을 발견한다. '식인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그 '식인 자본주의'가 지금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미치는 영향(지금은 세계화 시대)을, 그 대안을 모색하는 '좌파의 길'까지 따라가는 동안 위기의 시대가 어떻게 도래했는지, 지구와 우리를 구원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
| 작가는 기존의 위기이론이 생산, 경제, 노동의 측면을 특권화 한다면서, 그동안의 반자본주의 이론들이 놓쳐온 부분을 파헤친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가 아닌 사회 체제이며, 그 근간은 무엇보다 비경제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역들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역시 이것들을 모른체 하며 자신이 순수히 자유로운 노동과 시장교환으로만 이루어진 것 처럼 행세한다. 이 책은 이렇듯 자본주의 뒤에 숨겨진 영역을 수탈, 사회적 재생산, 자연, 정치의 4가지 영역으로 정리한다. |
| 커다란 멧돌에 썰려가는 현대인들이다. 가진 자들은 그 멧돌 위에 있고 그 외의 90%는 그 아래에 있다. 우리가 그 멧돌에 깔려 갈려 나오면 가진 자들은 그걸 가지고 자기들의 부의 축적에 활용한다. 현재 자본주의는 그 악함이 더 심해졌다. 가진 자는 부의 세습을 이루고 부를 가진 자는 그 부를 더 축적하기 위해 자기가 올하간 사다리를 걷어찬다. 새로운 대안을 못 찾으면 그들 또한 추락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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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랜 세월 제 앞길만 생각하며 살다가 몇년 전 장 지글러 선생의 책들을 보고는 이 세계 체제가 사람들을 얼마나 도구적으로 취급하는지 알게 되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부국들은 자국민에 대해 인종적 편견을 주입하여 전지구적 착취에 대한 저항을 잠재우고, 은폐하고, 그 과실을 유권자에게 나눠주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것을 봤습니다. 그 부국들이란 나라 내부에서조차도 인종적 편견으로 엉터리 대립 전선을 만들어내어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투기자본들이 주기적으로 거품을 일으키면 국민들은 그 거품의 파도에 타보려고 하다가 몰락하기를 반복하고, 그러면서 비판과 저항보다는 연대와 협력에 대한 부정, 각자도생에 대한 찬양,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전지구적으로 판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검찰-건설-금융-언론-에너지-재벌 카르텔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대국민 투기 선동, 미국 중심의 세계 대립 구도에 편승하여 프레이저님의 말씀처럼 식인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버렸습니다. 전통적인 맑스주의 운동이 무시무시한 스탈린 체제를 낳으면서 몰락하고 그 이후 대안적인 전망에 대한 전지구적인 실망과 체념의 물결이 썰물처럼 물러났지만, 그럼에도 식인 자본주의는 계속된다는 것, 여기서 우리는 무었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것을 이 책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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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성체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사회구성체 변화의 계기는 물적 토대라는 이론은 맑시즘이 사회를 분석하는 기본틀이다. 이러한 기본틀에 천착하는 교조주의에 반발하여 수정주의 등 여러 변주가 제시되었지만 굳이 루카치의 혜안을 빌리지 않아도 물적 토대에 기반한 맑시즘적 분석틀은 여전히 설득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저작에서 맑시즘적 기본에 충실한 분석과 참신한 대안을 기대했지만 불행하게도 그저 혼란만 남았을 뿐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경제적 시스템과 비경제적 배경으로 구분하고 비경제적 배경이 결국 자본주의적 경제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비경제적 배경이란 단적으로 전지구적 위기와 혼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결국 현재의 자본주의를 통찰하려면 이 위기와 혼란의 정체를 파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건 무슨 혼종이란 말인가? 역사의 변증법적 변화 과정에서 등장한 자본주의라는 실체는 그 본질이 물질의 흐름이며 그 현상은 위기와 혼란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변증법과 역사를 무시하고 고정된 현재만 염두에 둔 채 자본주의라는 실체를 현상으로 오인하고 위기와 혼란을 그 본질이라 호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미래와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좌파의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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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표지의 '좌파의 길'이라는 제목을 단, 담고있는 내용과는 상충하는 듯한 호화장정의, 표지정보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듯한 책이라 선뜻 손이 가진 않았습니다. 왜 'Cannibal Capitalism'이라는 직관적 제목이, 번역을 한 번 거쳤다고 '좌파의 길'이 돼버린 건 지 모르겠습니다. 책 구성이 여기저기 강연 내용 등을 엮어 넣은 지라 중언부언에 낯선 개념이나 비유,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읽기 좋게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제목이기도 한 '식인 자본주의'라는 개념과 거기 붙은 살(?)은 제법 쓸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