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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너미 시리즈를 주시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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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창출판사의 프레너미 시리즈 11번째 작품이다. 프레너미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 서로 대립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발전해 온 사상적 대가를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추구하고자 만들어진 시리즈. 이렇게 매력적인 시리즈가 있었다니. 특히 <톨스토이vs 도스토옙스키><모차르트vs 베토벤> 출간이 기대된다. <사르트르vs카뮈>는 벌써 장바구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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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창출판사의 프레너미 시리즈 11번째 작품이다. 프레너미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 서로 대립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발전해 온 사상적 대가를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추구하고자 만들어진 시리즈.

이렇게 매력적인 시리즈가 있었다니. 특히 <톨스토이vs 도스토옙스키><모차르트vs 베토벤> 출간이 기대된다. <사르트르vs카뮈>는 벌써 장바구니에 담았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20세기 페미니즘의 선구자)가 어떤 관계였는지 아는 사람에게는 이 두 사람을 프레너미 시리즈로 엮은 것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일심동체라 여겨지는 두 사람에게도 사유의 차이는 분명 있었기에 그들의 삶과 사상, 문학을 통해 그 차이점을 비교분석하는 책. 다만 저자가 사르트르 연구자니 한 쪽에 치우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해보길.

앞서 읽은 #내삶의주인이된다는것 보단 훨씬 쉽고 잘 읽혀요~
s******e 2023.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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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vs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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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연구자임을 자처하는 변광배 교수의 <사르트르 VS 보부아르>는 세창프레너미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 프레너미(Friend Enemy)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을 성장시켜 온 대가들을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극대화하는 시리즈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작가, 지식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하지만 이 둘을 대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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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연구자임을 자처하는 변광배 교수의 <사르트르 VS 보부아르>는 세창프레너미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 프레너미(Friend Enemy)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을 성장시켜 온 대가들을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극대화하는 시리즈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작가, 지식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하지만 이 둘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역시 '계약결혼'이다. 실존주의는 공통분모다. 그리고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며 같은 곳에 묻힌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들에게서 프레너미의 컨셉인 차이점이나 대립점을 찾는 일이 그리 쉬어 보이진 않는다.


이 두 인물의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랑이 싹트는 배경, 동기, 과정이다.

여느 커플처럼 이 둘의 만남도 운명적이었다. 보부아르 부모의 반대가 있었고,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몰래 만나 사랑을 싹 틔우는 과정도 있었다. 계약조건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우연적인 사랑을 허락하는 데 동의했고, 서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 계약결혼도 계약조건도 모두 파격적이었다

게약결혼은 당시 불가능했다. 불가능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이 둘의 계약결혼에 놓여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계약결혼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사람들의 비판보다는 이 둘이 부여한 철학적 의미였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두 주체성의 결합을 의미하는 계약조건, 사랑과 언어의 필연적인 결과로 실패가 예상됐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 불가능을 방치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도전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른 실존주의에 대한 사유다.

신은 완전하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에 무관심해야 한다. 관여한다면 완전성이 아닌 신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자유는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로 증명된다. 신이 존재해 섭리가 있고 인간이 섭리를 따라야 한다면 인간의 자유는 존재하는 건가. 신과 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공통된 이념 체계다.

사르트르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대립과 갈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반면, 보부아르의 인간관계는 '상생과 화해'이다. 둘은 대립한다. 더 나아가 보부아르는 공동 존재의 실현 가능성까지 제시하는 애매성의 윤리로 고유의 사유의 뜰을 형성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것은 현실 참여에서의 둘의 차이다.

보부아르가 여성 해방, 노인문제, 어린아이 문제 등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통한 사회의 변혁을 겨냥한 미시적 성격의 참여를 했다면,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배경으로 계급투쟁에 입각한 사회 전체의 변혁을 겨냥하는 거시적 참여를 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이 두 사상가가 낯설고 공부도 부족해 책을 읽는데 머리가 지끈거려 애먹었다. 뚜렷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실존주의의 흐릿한 윤곽은 그릴 수 있어 뿌듯하다. 몇 번 더 읽으면 어디 가서 소리 높일 정도는 아니고 소곤소곤 떠들 정도는 될 듯싶다. 그리고 이 둘의 문학작품에 호기심이 생긴 건 큰 수확이다.
c******9 2023.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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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vs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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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출판사 #프레너미 시리즈. 프레너미란 friend enemy의 합겅어로, 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구인지 적인지 모호한 상대란 뜻이다. 책은 #계약결혼 이나 #실존주의 사상으로 유명한 #사르트르vs보부아르 두 인물에 대하여 각자의 작품을 통해 사상의 친연성과 대립점을 찾아본다사트르트가 사용한 계약결혼이라는 용어는 mariage morganatique로 귀천상혼(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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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출판사 #프레너미 시리즈. 프레너미란 friend enemy의 합겅어로, 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구인지 적인지 모호한 상대란 뜻이다. 책은 #계약결혼 이나 #실존주의 사상으로 유명한 #사르트르vs보부아르 두 인물에 대하여 각자의 작품을 통해 사상의 친연성과 대립점을 찾아본다

사트르트가 사용한 계약결혼이라는 용어는 mariage morganatique로 귀천상혼(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배우자와의 결혼)이라는 말로 강혼에 가깝다. 둘의 계약 결혼은 "필연적 사랑을 바탕으로 우연적 사랑을 허용하고, 서로 모든 것을 말하며, 독립채산제를 실시"하는 조건이었다. 사랑과 언어를 바탕으로 가장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수반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정립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 사랑과 언어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실패를 전제하였고, 각자가 작품 속에 표현한 계약결혼은 실제처럼 둘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면서 파경에 이르고 만다.

둘은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표방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의 교황,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의 여사제, 실존주의의 2인자, 사르트르의 제자로 불리었다. 그들의 실존주의 주장은 "신의 부재, 존재의 우연성과 무상성, 실존이 본질에 선행, 인간의 기투, 자유와 책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나와 타자의 관계를 대립과 갈등으로 보았다면, 보부아르는 사르트르 사상에서 더 나아가 타자와의 화해와 공생, 애매성의 원리까지 더한다.

마지막 '참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들은 방관자적 고립된 개인에서 사회적 현실 참여자로 전회한다. 사르트르의 참여가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에 입각한 거시적인 성격이라면, 보부아르 사상은 여성해방운동과 노인문제 등 다소 미시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운명의 궤를 같이 한 걸로 알려진 두 사람의 사상을 문학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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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VS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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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배 (지음)/ 세창출판사(펴냄)                       양질의 철학 도서를 출간하는 우리들의 책 친구이자 멋진 인친 세창 출판사!!!! 첫 줄부터 광고하는 이유는? 출판사 같지 않고, 넘 친한 인친같은 느낌의 따뜻한 분. 우리들의 세창 씨 (세창출판사를 저는 이렇게 부릅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리뷰를 올렸을 때 공감해 주신 것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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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배 (지음)/ 세창출판사(펴냄)

 

 

 

 

 

 

 

 

 

 

 

양질의 철학 도서를 출간하는 우리들의 책 친구이자 멋진 인친 세창 출판사!!!! 첫 줄부터 광고하는 이유는? 출판사 같지 않고, 넘 친한 인친같은 느낌의 따뜻한 분. 우리들의 세창 씨 (세창출판사를 저는 이렇게 부릅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리뷰를 올렸을 때 공감해 주신 것으로 그 인연이 시작되었다^^(세창 씨는 아마 기억하지 못할 듯) 죽은 자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빅토르 위고, 도스토옙스키, 니체, 다자이 오사무, 백신애, 그리고 보부아르, 샤르트르.......

 

 

 

 

 

 

체, 아감벤, 지젝, 알랭 바디우 등의 책을 읽고 리뷰할 때, 거의 공부하는 듯한 느낌으로 독파해가면서 리뷰를 해왔는데, 오히려 가장 접근성 좋을 것 같았던 사르트르는 뭔가 잡히지 않았다... (사르트르와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간에 보부아르가 끼어서 그런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작품 각각을 최소한 세 권씩은 읽고난 후에야 리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제2의 성'을 포함해서 책을 그냥 갖고만 있다. 아주 소중히 모셔둔 상태!!!!! (그 사이 신간이 구간되어버렸다) 사르트르를 높이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글만 쓰는 작가가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벨 문학상 수상 거부라니!!!!!!! 마침,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었는데 카뮈하면 또 사르트르가 떠오른다. 두 사람의 우정과 갈등,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부르주아적인 모든 것을 거부한 사르트르. (문학에 어떻게 순위를 매기고, 서열을 세워서 상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노벨상 그 자리에서 거절하는 연설.....정말 사르트르다운 행동이다.)

 

 

 

 

 

 

지구적인 상을, 영예의 상을 거부할 만큼 지켜야 했던 '신념'은 무엇인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신념에 집착하여 읽은 책이다.

 

 

 

 

서로 다른 길을 통해 마침내 무신론적 실존주의에도달한 두 사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두 사람의 사랑은 수없이 회자되어 왔다. 특히, 계약 결혼은 두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부르주아적 전통에 입각한 결혼 생활을 거부한 두 사람 지금의 사고방식으로 봐도 혁신적.... 그러나 그들의' 삶'을 건 '사상적 실험'이었다.

 

 

 

 

"당신이 곧 나예요. 아니, 당신은 나 이상이에요..."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쓴 편지의 문장...... 이 한 문장에 꽤 오랜 시간 시선이 머물렀다. 아하! 타자의 시선!!!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의 사유구나!!!!

 

 

 

 

책에서는 계약 결혼의 세 가지 원칙과 구체적인 내용, 그들이 겪은 문제점, 그리고 마침내 문학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2장에서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두 사람의 사유가 어디서 나뉘는지 그 갈림길에 대해, 3장에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의미가 큰 1939년부터 그들의 사회참여, 현실 참여를 저자가 번역한 작품 〈파리떼〉와 〈군식구〉를 통해 비교했다. 어디에서 보부아르와 그 가는 길이 달라지는지, 서술되어 있다.

 

 

 

 

 

저자가 사르트르 연구자, 샤르트르 전문가이다. 우리는 흔히, 사르트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보부아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VS이 의미는 대립이 아니라 공존이다. 부부로 공존해 온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사유를 펼친 데에 대한 구분인데 저자는 이것을 '미시적' '거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 들뢰즈와 과타리가 프랑스 혁명 등 큰 규모의 혁명을 바라보는 방식에 입각함)

 

 

 

 

 

계약 결혼, 세기의 연인, 실존주의 대표 사상가라는 사회 이슈적인 단어에서 한정된 기존의 책과 달리, 실존주의 해석이 문학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서술한 부분이 이 책의 매력이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두 사람의 작품과 함께 병렬 독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자아의 초월성이 자유다! 이 세계의 어떤 것도 나의 자유가 될 수 없다는 사르트르!!!! 불의, 억압, 소외가 가득한 기존 사회에 대한 이의 제기를 실펀한 보부아르!!!!! 두 사람과 독자 사이의 거리가 이 책을 통해 촘촘히 채워질 것이다.

 

 

 

 

 

 

 

세창의 프레너미 시리즈 출간 예정 목록에 보니 후설 VS 하이데거, 톨스토이 VS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VS 라캉 에 이어진다. 이것은 나를 위한 라인업인가 싶다!!!!!!!!!! (나중심적 사고, 자전축이 늘 나를 향해 돌아간다는 날아라신샘 생각 ㅋㅋㅋㅋㅋ)

 

 

 

 

 

 

 

#사르트르보부아르, #변광배지음, #세창출판사, #세창프레너미,

#Frenemy, #철학, #인문학, #계약결혼, #세기의연인,

#사르트르_카뮈, #노벨문학상수상거부, #서양현대철학, #서양철학

 

 

 

r******7 2023.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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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2년간 계약을 맺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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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철학‘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실감했다. 의지적으로 철학책을 읽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었던 변명 같은 독서의 용도를 벗어나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시리즈의 명칭인 프레너미friend+enemy라는 인간관계의 속성도 흥미롭다. 타자와의 관계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그 양면성으로 지치기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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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철학하기위한 학문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실감했다. 의지적으로 철학책을 읽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었던 변명 같은 독서의 용도를 벗어나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시리즈의 명칭인 프레너미friend+enemy라는 인간관계의 속성도 흥미롭다. 타자와의 관계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그 양면성으로 지치기 할 때도 적지 않으니까. 다행인건 내 정의는 스펙트럼 형태라는 것,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진폭을 조절하는 게 쉽진 않지만.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는 일은 쉬운 결심, 어려운 지속의 반복이다. ‘결혼생득적 가족에 이르면 한없이 막막해진다. 모든 결혼은 계약이지만, 연애결혼과 로맨스의 신화에 뒤덮인 관계는 더 복잡하다. 서늘하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다른 이름의 ‘match’라고 생각한다.

 

1929년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희생이 아닌자신들의 관계로부터 사회적 관계의 이상을 그려내는 실험에 도전했다. 총체적인 교류의 면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실험이 여전히 실험적이라고 느낄 만큼 세상의 변화는 느리고 갑갑하다. 실은 어느 방향인지도 잘 모르겠단 생각.

 

20대에는 상상의 재료로 떠올릴 현실 경험이 부족해서 실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숙고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밝힌 내용을 만나니 2023년까지 나는 무엇을 추구하지도, 도전하지도,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았나 싶게 초라한 기분이 된다.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과 가치에 따라 산 이들을 소개하는 최선은 사유가 응축된 저서들을 망라하는 것일 터이다. 저자의 총괄적인 저서 소개와 사상 설명들이 이론으로만 남지 않은 그들 삶의 풍경으로 좀 더 입체적으로 가까워진다.

 

프레너미란 관계명은 둘 다 무척 강한 표현이지만, 이 두 사상가를 이해하기 위해 머릿 속에 그려둔 스펙트럼 위에서, 이들의 때론 친구, 때론 적이었던 관계는 유사성과 동의vs 상이성과 차이로 이해하려한다.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관계의 핵심은 후자 덕분일 것이다.

 

친구에만 공감하는 태도는 2203년 현실의 위협으로 기능한다. 오히려 차이를 가진 타자를 통해 자신을 비로소 고유한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점이야말로 모두를 본원적인intrinsic 존엄한 존재로 만든다. 물론 관계의 평가란 늘 해석의 문제일 것이지만.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반세기를 지속한, 사회적 실험으로 확장하고자 했던 사적 실험은 측정이 어려운 지적인 용기였다. 역으로 이동하며 추적하고 분석하고 전체 그림을 파악하려는 설정이 영화적 상상력처럼 재미있었다. <Les amants du Flore>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k****k 2023.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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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평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던 그들에 대하여.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평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던 그들에 대하여." 내용보기
*세창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서는 남에게 소개하기 쉽지 않다. 그것도 '이러니까 저렇게 해라' 식의 자기계발서의 형식이 아닌, 정말로 철학자 혹은 어떤 학문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이라면 더더욱. 혼자 보고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두는 요약집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어떤 이의 치열한 사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평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던 그들에 대하여." 내용보기
*세창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서는 남에게 소개하기 쉽지 않다. 그것도 '이러니까 저렇게 해라' 식의 자기계발서의 형식이 아닌, 정말로 철학자 혹은 어떤 학문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이라면 더더욱. 혼자 보고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두는 요약집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어떤 이의 치열한 사유를 따라가며 느꼈던 감동을 풀어두는 일은 정말,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닌, 어떻게든 함께 읽고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역시 애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창의 프레너미 시리즈는 종종 이야기했던 것도 같은데... 각 원저의 입문 역할을 하는 명저산책 시리즈에 비해 사전 지식이 있는 독자에게 적합하다. 저자별로 다르겠지만 어느정도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있으나 친우 혹은 지우이자 대립각을 세웠던 라이벌로서의 프레너미인 두 학자(때로는 그들의 학파까지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서술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본적인 흐름이나 큰 줄기가 되는 사건들은 알고 읽는 편이 이롭다. 싫다면? 어쩌겠어요. 맨 땅에 헤딩 한 번 하고 시작하는거지, 뭐.

엘리트 사회인 고등사범학교의 콧대 높은 3인방이었던 사르트르, 항상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이 꼭 비버(Beauvoir와 Beaver의 발음이 유사함)같다며 Castor(불어로 '비버'를 뜻함)라는 별명이 붙었던 보부아르. 그들은 1929년 이후 서로를 "지적으로 훌륭한 훈련 파트너", "완벽한 대화 상대자"로 여기며 사랑을 꽃피우다 사르트르의 입대를 계기로 계약 결혼을 시작한다. 그들은 생애 내내 유지한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존중에 기반하는 관계였다.
p.43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처음 만나면서부터, 또 그 이후에도 여전히 서로에게 '당신(vous)'이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했다. 두 사람은 이와 같은 존칭형 인칭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서로를 하나의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고자 했다.

사랑의 관계를 일방적 희생이 아닌 나의 잉여 존재로부터 벗어고자 하는 정당화의 시도인 동시에 타자의 잉여존재 역시 정당화하는, 서로의 주체성을 유지한 채 '우리-주체'의 형상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여긴 사르트르에게 이 계약결혼은 평생에 걸친 사랑의 실험과도 같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쌍방이 주체성의 상태에 머무는 사랑은 실패로 끝난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여러차례 파경의 위기를 맞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으나 기어코 반세기 이상 관계를 지켜냈다. 그들에게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니,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사상, 학문, 일생의 동지. 실패를 예견하면서도 관습에 저항하고자 했던 노력이었을까.
p.87 사르트르의 사유 체계 내에서 인간들 사이에 맺어지는 존재관계에서 한 인간의 주체성과 다른 인간의 주체성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 사랑과 언어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1929년 계약결혼을 맺으면서 설정했던 목표는 바로 이처럼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사랑과 언어를 실패로 끝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필요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반세기를 자신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사실에 대해 끝없이 도전을 감행했다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 자신들의 학문적 위업뿐만 아니라 세기의 이슈가 되었던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사상 기반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길을 개척하고 또 목소리를 내기를, 혼란한 시대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두 참여자들의 사랑. 둘 간의 연대, 같지만 다른 길을 가며 주고받았던 영향과 작품세계를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지난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최악이자 최대의 규모로 다시금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체험했던 세대에 속한다. 실제로 그들의 현실참여적 면모는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진성을 띄기도 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 절대성 혹은 본성의 선함에 기댈 수 없는 존재로 가득한 세계에서 그들은 그저 대상의 의미를 고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투의 존재인 인간이 그 자신과 타인에 대해 지는 책무, 객체로서만 존재했던 여성의 존재 의미, 그들의 작품에서 나타난 현실의 수치심 등을 표현하고 그를 통해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p.107 아울러 이런 '대자-즉자'의 융합이 바로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최후의 목표라는 것이 사르트르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이 대자이면서 동시에 즉자인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지향성을 발휘하고 있는 대자가 사물의 존재 방식인 즉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살아 있는 생명체와 동시에 주검일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라는 것이 사르트르의 주장이다. 인간은 ”무용한 열정“이라는 결론에 함축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보부아르는 『노년』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이 작품은 노인을 중심으로 논하지만, 나는 보부아르가, 그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사르트르 또한, 이렇게 묻고싶어했다고 믿는다. "인간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취약해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으로 남아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잊어서는 안 되는가?"
p.303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할 것이다.
(…) 노인의 조건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을 완전히 다시 만들어내야 하고,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 한 인간이 말년을 빈손으로 고독하게 맞아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문화가 일단 형성된 후에 곧바로 잊어버리는 무기력한 지식이 아니라면 (…) 인간은 모든 나이에서 능동적이고 유용한 시민일 것이다. 만일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 자기 자신의 삶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본질적이고 집단적인 삶에 참여한다면, 그는 결코 유배를 겪지 않을 것이다.

여담으로, 사르트르에 큰 애정을 지닌 저자께는 죄송하지만 읽는 내내 이놈의 사르트르!!하고 한 대만 쥐어박고 싶었어요... 사실 세 대쯤... 아니 솔직히, 나만 그래? 아닐걸요? 이거 보고 누구 하나쯤은 몰래 두 대 쥐어박고 갈걸요?
p.54 또한 인간들 사이에는 정말로 말하기 부담스러운 내용도 있기 마련이다. 가령, 사르트르는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 맺었던 관계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까지 보부아르에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보부아르는 그런 얘기를 사르트르에게 하지 못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말한다는 계약조건은 남자인 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그녀는 이 조건을 남자에게만 유리한 '알리바이'였다고 지적하면서, 결국 이 조건이 지켜지지 못했음을 실토한 바 있다.
s*****7 2023.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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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vs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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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너미(friend+enemy) 시리즈로 출간된 사르트르 v s보부아르-     학창 시절 계약결혼 커플이란 말에 획기적인 커플답다는 기억이 남은 이들이라 그들의 사후에도 여전히 둘을 생각하면 상대를 어떻게 존중하고 바라보며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계약결혼에 대해 제도에서 벗어나 단순히 새로운 시도로써의 결혼이행보다는 두 사람이 지향하고 있던 사유면에
"사르트르 vs 보부아르" 내용보기


프레너미(friend+enemy) 시리즈로 출간된 사르트르 v s보부아르-

 

 

학창 시절 계약결혼 커플이란 말에 획기적인 커플답다는 기억이 남은 이들이라 그들의 사후에도 여전히 둘을 생각하면 상대를 어떻게 존중하고 바라보며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계약결혼에 대해 제도에서 벗어나 단순히 새로운 시도로써의 결혼이행보다는 두 사람이 지향하고 있던 사유면에서나 철학적인 이상으로써의 관점을 통해 이들이 서로 간의 존중을 이해하면서 살 수 있었다고 바라본다.

 

 

상대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커플로서 이뤄지는 과정에서 사르트르는 사랑과 언어의 상관관계가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 이해했던 사람이다.

 

 

 그는 계약결혼도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열정 위에 기초한다고 본 생각은 어떻게 보면 서로의 자유를 방임처럼 허락한 면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는 것은 사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도 잘 통했기에 이런 부분들도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관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의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이에 따른 비판이나 수정들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특히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글을 가장 먼저 읽었다는 점은 출간한 그의 저서들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보부아르에 대한 믿음을 가졌는지 알 수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된 철학적인 물음과 이후의 방향들이 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추구한 철학과 가치에 따른 인생을 함께 했다는 사실은 위기의 순간에도 여전히 이어졌단 점을 통해 문학적, 철학적인 동료이자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느껴진다.

 

 

 

각기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서로 다른 이성과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이 이해는 할 수 없지만 계약결혼이란 전제에서 맺은 상호 간의 충실면에서는 사르트르가 조금은 유리하지 않았나 싶고, 보부아르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눈 강렬했던 순간들을 경험했다는 것에도 프레너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듯도 했다.

 

 

 

사르트르가 죽기 전까지 그의 곁에서 지켜본 보부아르가 쓴 '작별의 의식''이 책을 읽는 동안 함께 떠올랐다.

 

 

두 사람 사이의 제3의 여인이 끼어들고 말년에 입양 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보부아르의 입장에선 위태롭고도 서운할 수 있을 부분들이 있었을 텐데, 이런 부분을 극복하고 고유한 서로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에선 여전히 파격적인 행보란 생각이 든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함께 공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자신들만의 생각을 통해 당시 현실참여와 여러 저작활동을 펼쳤던 두 사람의 생애는 읽을수록 새롭고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했던 그들이라 세기의 커플로서도 각인이 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 "난 당신을 많이 사랑하오. 나의 카스토르." (사르트르가 남긴 마지막 말)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m*******n 2023.0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