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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그렇다고 잠잠해지겠는가?
"시인을 체포하라! 그렇다고 잠잠해지겠는가?" 내용보기
저자 로버트 단턴은 1939년 미국 뉴욕 출생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64년 1년간 「뉴욕 타임스」 기자로 근무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책의 사가(史家)’로 유명하다.내 생각에 그는 역사서를 치밀하게 고증하는 유별난 특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
"시인을 체포하라! 그렇다고 잠잠해지겠는가?" 내용보기

저자 로버트 단턴은 1939년 미국 뉴욕 출생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64년 1년간 「뉴욕 타임스」 기자로 근무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책의 사가(史家)’로 유명하다.

내 생각에 그는 역사서를 치밀하게 고증하는 유별난 특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역사를 꼼꼼하게 살펴 본 《고양이 대학살》과 《시인을 체포하라》가 그러했는데, 이 두 권의 책은 내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먼저 고양이 대학살을 보자. 이 일화는 단턴이 쓴 《고양이 대학살》(원제 The Great Cat Massacre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 1984)에 소개된 여섯 일화 중에서 두 번째로 소개되어 있다. 요즘같이 고양이를 반려 동물로 존중하는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1730년대 파리로 돌아가 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의 배경은 생 세브랭 가에 몰려 있는 인쇄소 골목이었다. 당시 견습 인쇄공들은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더럽고 추운 방에서 잤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 종일 직인들에게 모욕을 받고 주인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일했으면서도 먹을 것이라고는 찌꺼기밖에 받지 못했다.“ - 112쪽

그 와중에 니콜라 콩타라는 견습공은 마침내 분노를 폭발시키게 된다. 당시 자신이 일하고 있던 인쇄소의 안주인은 고양이에 열광해서 애지중지하면서 ‘초상화를 그리게 시켰고, 구운 새고기를 먹일 정도’였다. 게다가 도둑고양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훔쳐 먹기도 하고, 밤이면 콩타가 자던 거처 지붕 위에서 온밤을 울어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라도 열받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당시 관습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고양이는 마녀의 화신이라고 여겨졌다는 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도 등장하듯이, 검은고양이는 ‘흉조(凶兆)’라고 여겨져 특히 그러했다.

마침내 콩타는 작전을 꾸민다. 그는 동료와 함께 주인 부부가 거처하는 곳에 올라가 고양이 울음 소리를 흉내 내면서 주인들을 노이로제에 빠지게 만든다. 마침내 도둑고양이 소탕령이 내려지고, 그들은 빗자루, 철봉 등으로 눈에 띄는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안주인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먼저 당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고양이 대학살'의 진상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울분이 고양이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단턴은 이를 부르조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으로 살짝 언급하면서도 독자들에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로서 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시각은 《시인을 체포하라》(원제 Poetry and the Police, 2010)에서도 이어진다.  '시인(詩人)' 사건이 발생한 것은 루이 15세 시절, 왕이 1749년 쟝 모르파 백작을 유배시킨 이후 왕을 비난하는 시가 공공연히 나돌기 시작하면서였다. 절대 권력은 항상 불안하다. 자신의 지위를 넘보거나 위협하는 세력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디 잠잠해지는가?  반대파나 그 지지자들은 나름의 레지스탕스를 시작하는 법이다. 왕은 시인을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1749년 7월 4일 밀고에 의해 의학생 프랑수아 보니가 맨 처음 체포된다. 이어 보니는 취조를 받으면서 지레 겁을 먹고 '불온한 시'를 건네준 자의 이름을 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줄줄이 14인의 ‘시인’이 체포된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여기서 시를 짓거나 유포한 사람들이 14인에 그쳤을까 하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당시 성직자나 지식인 사이에는 왕조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가 만연했기에, 시의 원출처에 이르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14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서문에서 《시인을 체포하라》를 집필한 동기 중의 하나로 당시 파리의 거리 곳곳을 누비면서 당시 여론에 대해 추적해 보려한다고 고백한다. 여론 혹은 물자체는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그 시대의 매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추적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저자의 입장은 푸코든 하버마스든 개념적 문제와 상관없이 사실 자체에 대한 상세 묘사를 통해 으레 품평하기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그 판결의 묘미를 넘겨주는 세련된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말미에 ‘14인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인터넷이 존재하기 훨씬 전, 정보가 입으로 전달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가 아주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시절에 정보 사회가 작용했던 방식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 162쪽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일찍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일련의 작업들은 근대사의 숨겨진 비사(秘史)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사의 오묘한 조화라든가 처세의 지혜를 제공한다.

나는 이책을 읽고 SNS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이 발달한 요즘, 18세기 프랑스 시대에 절대권력의 ‘불통’에 맞서 어떻게 지식인이나 서민들이 이를 희화하고 풍자해서 자신들의 언로(言路)를 만들어나갔는지 잘 엿볼 수 있었다. 으레 ‘불통’의 시대는 희생양을 필요로 해 왔다. 그게 고양이든 시인이든 무슨 상관있으랴!

불통의 사회, 왜곡된 담론의 시대에는 유비통신이 곳곳에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를 루이 15세 식으로 틀어막는다? 아마도 시간이 흐른 즈음 또 누군가에 의해 서술되고, 그 독자들은 이를 읽으면서 한껏 키득거릴 것이다. 오호 통재라!

YES마니아 : 로얄 h*******c 2014.01.3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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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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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봄, 파리시 치안 총감에게 “검은 분s의 괴물”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의 지은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공공연히 회자되는 시로 왕을 비난하는 것은 역모였고 왕권모독이었다.   용의자들이 체포될 때마다 작성된 조서들은 정치적 논평(풍자 시)이 의사소통망을 따라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전파 경로가 단선적이고 배경이 동질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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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봄, 파리시 치안 총감에게 검은 분s의 괴물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의 지은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공공연히 회자되는 시로 왕을 비난하는 것은 역모였고 왕권모독이었다.

 

용의자들이 체포될 때마다 작성된 조서들은 정치적 논평(풍자 시)이 의사소통망을 따라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전파 경로가 단선적이고 배경이 동질적인 것 같다. 시는 학생, 서기, 성직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선을 따라 움직였고 그들은 대부분 친구 사이였으며 모두 젊었다.

 

그러나 수사가 확대되면서 그림이 좀 더 복잡해졌다. 시의 이동 경로는 다른 다섯 편의 시가 움직인 경로와 교차했다. 각 시는 선동적이었고 그 나름의 전파 양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는 쪽지에 필사되어 건네졌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베겨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다. 그리고 지하 출판물로 인쇄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에 맞춰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바스티유에 붙잡혀 온 최초의 용의자 집단에 더해 일곱 명이 추가로 투옥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연루되어 있었던 다섯 명은 도주했다. 결국 경찰은 시를 유포한 14인으로 바스티유를 채웠다.

 

체포된 14인 모두 파리 시민들과 지역 사회에서 중간 계층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명망있고 학식 있는 집안의 자제들로 대부분 전문직 계급에 속했다. 어디를 살피든 경찰은 궁정에 관한 사악한 시를 노래하거나 읊조리는 이들과 마주쳤다. 성직에 있는 젊은 지식인 사이에 반항적인 태도가 만연해 있었다. 그리고 대학이나 법조계와 같이 정통을 고수하며 부르주아 젊은이들의 교육과 직업적 수련을 완성하던 곳에서 그런 경향이 특히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 시민들은 언제나 무례한 노래를 부르고 음탕한 시구를 암송했으며, 지난 몇 개월을 거치는 동안 도시 곳곳에서 조롱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많은 수의 얀센주의자에 더해 투옥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14인 사건과 무관하지만 마찬가지로 정부를 험담하고 비방한 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시들은 구두의 전파 과정을 통해 시의 원문이 그 근본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 진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시는 노래로 불리는 신문 같은 것이 되어 세간의 사건에 대한 논평을 가득 담고 잇었고 폭넓은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재미있고 외우기 쉬운 것이 되었다. 더욱이 듣는 사람이나 노래 부르는 사람이나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시를 변형할 수 있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인구가 절반도 안 되는 사회에서 노래는 어느 정도 신문의 기능을 했고 세간의 사건에 대해 당시 나돌던 평을 전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노래가 발휘하는 힘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맹률이 아주 높은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t****b 2014.1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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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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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분노의 괴물’로 시작되는 시가 발견되었다. 괴물은 루이 15세이다. 이는 얼마 전 해임되어 유배 간 모르파 백작쪽 사람이 쓴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시민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시 필사본의 주인은 프랑수아 보니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역추적에 들어갔다. 다른 불온한 시들의 전달들도 드러났다. 신부 르 메르시에는 한 세미나에서 기숙학생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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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분노의 괴물’로 시작되는 시가 발견되었다. 괴물은 루이 15세이다. 이는 얼마 전 해임되어 유배 간 모르파 백작쪽 사람이 쓴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시민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시 필사본의 주인은 프랑수아 보니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역추적에 들어갔다. 다른 불온한 시들의 전달들도 드러났다. 신부 르 메르시에는 한 세미나에서 기숙학생 테레가 암송하는 시를 받아 적으며 끝에 논평을 붙였다. 그런데 정치적인 내용이 아니라 특정 행에서 각운이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는 신무 기아르에게 전달되었고 기아르는 알레르에게 장갑과 자신이 지는 시를 보내면서 이 시도 같이 보낸다. 이런 식으로 14명을 찾아내 바스티류로 보냈다. 하지만 시인은 결국 찾지 못했다. 시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수사는 무한히 지속되는 일련의 체포들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시를 필사하면서도 사람들을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시를 수정하고 다를 시와 결합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비롯된 개념으로부터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억지겠지만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 연상된다. 바르트에게 텍스트는 직물이다. 여러 견해들이 얼기고 설켜 이루어진다. 텍스트의 생성은 독자들로부터 이루어지고 한 텍스트에서 다를 텍스트로 지속적인 변형이 이루어진다. 결코 완성이란 게 없다. 지금의 인터넷 게시물들이 생각난다.

 

또 낭송이나 노래로 장르나 변형되어 널리널리 퍼지기도 했다. 소문이나 농담, 재담, 경구들과도 엮여 더 이상 구별해낼 수 없었다. 수사를 지휘했던 다르장송 백작은 “최대한 높이 가라”고 경찰들을 채근하며 이 사건을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삼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수사는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 체포된 14인들은 모두 중간계층의 전문직들이었다. 이는 특히 공부와 수련에 찌든 젊은 지식인들이 흔히 하던 위험한 놀이 중 하나였다. 정치적 음모는 없었다. 이념적 성향도 흐릿했다. 문학적 허세에 빠진 이들은 여럿 있었다. 그들은 고전 수사학을 따르며 송시를 지었다. 낭독을 생각해 고상한 어조와 세련된 운율을 갖추었다. 궁정인 들에게 이는 저속한 시이다. 그럼에도 몇몇 시는 정말 궁정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있어야지만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나 전쟁 상황, 정치사안 등 모든 것들이 대중의 재판정에 올려졌다.

 

대중들은 노래했다. 잘 알려진 멜로디에 새로운 시구를 붙여 부른다. 어디에 붙이냐 하는 것도 비틀기에 하나다. 거리의 노래꾼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쪽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끼리 모여 돌아가며 잘 알려진 곡에 맞춰 시를 짓는다. 카페로 자리를 옮기면서 문필가들과 함께한다. 그들은 술병을 돌리고 서로 재치 있는 시를 지으려고 경쟁했다. 그들은 급기야 오페라 코미크를 장악했다. 그들이 지은 수백 곡의 노래들이 프랑스 곳곳에서 울렸다.

 

이런 게 들뢰즈가 말한 ‘리좀’이 아닐까 싶다. 경계도 없이 뿌리처럼 ‘그리고, 그리고’하며 뻗어가고 있다. 그러니 머리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다. 배후를 쫓으려고 해도 쫓을 수 없다. 에두아르 왕자 지지자도 계몽주의자도 이단으로 규정된 얀센주의자도 다 같이 노래한다. 귀족은 궁정에서 궤변논자들은 살롱에서 노동자들은 선술집에서 노래한다.

 

당시에도 계몽 사상가들이 이를 규정해보고자 했지만 철학적 개념에 사회적 현상은 미끄러졌다. 거리의 여론과 철학적 이상은 결코 일치한 적이 없다. 대중은 철학자들이 담론으로 구축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이런 시도에 조금에 조금도 관심 없이 그 자체로 어떤 힘이었다. 이를 바스티유 습격과 인과관계에서 보는 것도 이 사건 자체로의 많은 이야기들을 놓치게 한다. 14인 가운데 그 누구도 혁명적 사고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파리는 이러한 의사소통 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의 떠들썩한 소리를 루이 15세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은 계몽 사상가들을 포함해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리에서 끌어올린 어떤 힘이었으며 40년 후에는 멈출 수 없게 된 힘이다.

YES마니아 : 로얄 s********7 2014.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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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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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조직원이라 하던 사람들이 “내란음모죄”로 실형을 받았다. 검찰이 내놓은 녹취록에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도 섞여 들렸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체제와 국가를 전복할 만한 이야기들이 오갔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70-80년대 구리고 촌티 나는 운동방식과 그들만의 언어와 위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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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조직원이라 하던 사람들이 “내란음모죄”로 실형을 받았다. 검찰이 내놓은 녹취록에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도 섞여 들렸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체제와 국가를 전복할 만한 이야기들이 오갔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70-80년대 구리고 촌티 나는 운동방식과 그들만의 언어와 위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당연히 없어진 줄 알았던 “내란음모죄”라는 국가보안법상 범죄 항목이 버젓이 21세기에도 통용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사건의 초기 녹취록이 발견되고 언론에 기사화 된 편집된 부분만 들어본 후 사람들은 열폭했다. 진보와 보수, 전라도와 경상도, 5-60대와 3-40대는 막론하고 모두들 욕하기에 바빴다. 자기들 연금이나 복지법안을 상정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싸우는데 주력하는 여당과 야당도 합심해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위해 뛰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도 앞 다투어 심해에서 레비아탄을 끌어 올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누구하나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대선 전 지금의 대통령에게 무시무시한 막말을 쏟아내고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의 과거를 농락하던 그 여자를 함께 끌어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을 것이다. 한꺼번에 싹을 잘라버리는 이런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한때 저들과 한 지붕 밑에서 진보네, 개혁이네 손잡고 생활했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당내 부정선거 논란으로 아비규환이 되고 당 안팎은 물론 그나마 진보정당에 대한 동정을 가지고 있던 일반들에게 마저 싸늘한 비판을 받아야 했던 사태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저들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만천하에 소리 지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진보정당과 대중과의 괴리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 원내에 들어가 법안을 상정할 수 있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이런 키워드로 한 데 묶여 ‘저런 똑같은 빨갱이 놈들’로 치부되고 있다. 단순히 오랜 시간 보수여당을 지지한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와 신뢰, 관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너무 안타깝다. 수십 년 진보정당을 위해 싸워 온 그들의 노력과 피와 땀과 눈물이 ‘내란음모’라는 거대한 보자기에 한 데 싸여 내동댕이쳐졌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다시 원내로 진출한 진보정당이 나올지 알 수 없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너무 암담해 추측조차 하기 두렵다.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면서 14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p.7)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황제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었다.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막강한 권력을 집중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황제를 향해 조롱 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 의대생을 체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와 관련된 14명을 추가로 체포하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같은 사건으로 이어졌다.

 


“대신들이 백성들을 약탈하고 왕국이 지옥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루이는 자신의 쾌락에만 빠져 있다.”

매춘부 사생아가

궁정에서 출세하네.

사랑에서나 술에서나

루이는 손쉬운 영광을 바라네.

아! 저기 그가 있어, 아! 여기 그가 있네

근심걱정 하나 없는 그 사람. (p.78)

 

온갖 방법으로 제 몫을 챙기기 위해 있는 대로 백성을 약탈하는 대신들이 판을 치던 세상이었던 가 보다. 왕궁에 갇혀 여전히 그의 선조 태양왕이 누렸던 호화와 사치에 눈이 먼 황제는 시국을 제대로 돌아볼 눈이 없었다. 왕국이 몰락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여전히 근심걱정 하나 없이 자신의 쾌락에만 몰두하는 황제. 어쩌면 수십 년 후 프랑스를 뒤흔든 대혁명의 전초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패러디, 풍자는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행위다. 1:1로 붙을 수 없는 힘의 역학관계에서 맞대어 치받을 수 없으니 뒤에서 소심하게 놀리는 것이다. 최소한 그 힘의 역학관계를 인지하고 있는 강자라면 허허허 하고 웃어넘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18세기 프랑스에서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그것은 통용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이석기씨와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에 대한 혐의가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란음모’라는 죄명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국가를 전복하고 체제를 무너뜨릴 의지를 담은 것이 ‘내란음모’ 아닌가!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 <가카새끼짬뽕> 이라고 게시물을 올린 판사가 사직을 하게 되었고 올 초 변호사 개업조차 잠정보류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역 육군대위가 이명박씨를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사문화된 <상관모욕죄>가 적용되어 전역을 하는 일도 있었다. 블루하우스에서 끌어내어 단두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저 뒤에서 비꼬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끌어 내렸다. 최소한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강자들은 약자들의 소심한 하소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을 선보이시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루이15세 황제를 비난한 시를 낭송하고 전하고 쓴 사람들의 죄가 어떤 것이고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있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프랑스에서 어떻게 그 시가 폭발적으로 전해졌는지에 주목 한다.

 


“시는 쪽지에 필사되어 건네졌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다. 그리고 지하 출판물로 인쇄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에 맞춰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p.17)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너무나 많다. SNS의 대중화는 여론의 형성과 전파를 가히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전파하고 선전·선동(그러나 아무 말이나 막 해서는 곤란하다. 언론자유지수가 뭐 세계 50몇 위라나……. 자기검열이 중요하다. 아무 말 막 하다가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250년 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황제를 비방하는 시가 전해졌을까? 저자는 시가 전해진 형태에 주목한다. 필사되어 건네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으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를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전해진 형태보다 당시의 분위기에 주목한다. 지금도 인터넷 청원이나 서명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정치적인 주제가 많다. 아무리 떠들고 SNS 상에서 청원과 서명을 요구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치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자 그에 대한 청원이 불일 듯 일어났고 이미 1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더 많은 대중의 기저에 관심이 되는 사항이었던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는 이미 1년 이상 지지부진 하고 있고, 이미 철 지나고 별 관심 없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단지 클릭 몇 번 하는 것으로 서명에 동참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는데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는 모두가 관심을 기울인다. 재미있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경기와 결과에 대해서 연일 TV에서 말을 쏟아내는 것도 금세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데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클릭 몇 번으로 국보급 보물인 김연아 선수의 억울함(본인은 억울한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을 풀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한다.

250년 전 프랑스에서도 참다 참다 못한 사람들의 공분이 시와 노래와 각종 인쇄물과 샹송에 실려 구체화 되고 대중화 되었다. 시기와 방법과 형태가 삼위일체를 이룬 것이다.

 


“시의 작법은 아주 단순해 누구라도 시를 지어 노래하고 옛 멜로디에 새로운 시를 입혀 유행시킬 수 있었다.” (p.79)

 

그리고 쉬웠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를 개사해 재미있는 노래를 친구들과 불렀던 경험이 있다. 아마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넣어 놀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 옆에서 깐족대며 노래를 부르다 등짝을 후려 맞으면서도 낄낄 대고는 했었다. 250년 전 프랑스에서도 고귀한 문학가가 도저히 뜻을 알 수 없고 따라 낭송할 수도 없는 시를 지어 일반 백성들에게 하사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시를 지어 노래했고, 부르고 전했다.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만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는 점을 강조한” (p.229)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가 일반 백성들과 시민들에게 계몽을 선사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시혜성 교조주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에는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없는 시민들은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다.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여전히 문맹이고 여전히 밑바닥에서 처절한 일상을 소화하지만 낄낄 대며 황제를 조롱하고 그것을 전파하고 나만의 시와 노래로 재해석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1798년 프랑스혁명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황제를 비방하는 시를 짓고 낭송한 사람들이 체포되는 일을 눈앞에서 지켜봤지만 삽시간에 퍼진 여론형성의 경험은 황제를 단두대로 끌어내리는 결과에까지 이르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세력, 조직도 이것에 주목했으면 한다. 현학적이고 이론적이고 고매한 글은 결코 대중의 귀를 열 수 없다. 더 이상 대중은 가르치고 계몽하고 선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에 힘쓰지 말고 밑 빠진 독부터 허리 숙여 살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아무리 지지를 요구하고 관심을 요구한다 해도 헛일 일 뿐이다.






l****h 2014.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