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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 젠더와 전쟁, 계급 너머 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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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의날 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아이리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인해 급히 멕시코로 이주한 마리아나. 그의 개인적 삶이 드러나고, 사회적으로는 멕시코 혁명 이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한 여성의 삶이자 성장 이야기이고 이방인으로서 낯선 땅에서 환영 받지 못한 존재로서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저자 #엘레나포니아토프스카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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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의날 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아이리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인해 급히 멕시코로 이주한 마리아나. 그의 개인적 삶이 드러나고, 사회적으로는 멕시코 혁명 이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한 여성의 삶이자 성장 이야기이고 이방인으로서 낯선 땅에서 환영 받지 못한 존재로서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저자 #엘레나포니아토프스카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을 써내려 간 것이라고 고백한다. 주인공 마리아나에게 인간으로서 자각, 사회에 대한 시선과 깨달음을 주는 인물로 프랑스인 신부 자크 퇴펠이 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을 위하고 프랑스 교민 사이에서 인종적, 계급적 특권을 누리는 이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의식을 보인다. 신부에게 매료된 마리아나는 그를 사랑한다. 여성에 대한 시각이 여전히 남성 위주, 종교 내 권위적 사고 방식을 가졌던 신부는 마리아나를 오히려 억압하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 안에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 마리아나는 그로 인해 오히려 무너지게 된다.


어릴 적 마리아나는 엄마와 양육자에게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이민 후 여성으로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사회적으로는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그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를 끊임없이 바란다. 개인의 서사로 보자면 인정과 사랑을 누리는 존재가 되고 싶었으며 사회적으로는 계급이나 인종을 떠난 특권과 무관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녹아들고픈 욕망을 갖고 있었다. #알베르트카뮈 이방인에서는 자의적 선택에 의한 고독과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졌다면 #아이리스 속 마리아나는 타의적 기준에 의해 끊임없이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고독과 끊임없이 싸우며 존재를 부정 당하고 있다. 마리아나가 가졌던 태생적 정체성은 화려하고 안온하기 그지 없는 인생이었지만 전쟁, 이민, 종교, 젠더, 계급 등에 의해 보여지는 인생만 살다 가버린 불행 가운데 행복을 추구한 여성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 물 너머로 나는 엄마를 본다. 엄마의 미소를,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엄마를 본다.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 엄마가 거품으로 부서진다. (26p)


■ 나도 옆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껍질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몸통에 내 등을 문지른다. 나무의 강함은 곧 우리의 강함이다. 우리 할머니의 강함, 우리 엄마의 강함, 프란시스카 이모의 강함, 강한 여자들, 친밀함 속에서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 집은 나의 우주다. (152p)


■ 눈을 감기만 하면, 기억의 밑바닥에서 마리아나를 찾아낼 수 있다. 젊고, 무모하고, 순진무구하다. 마리아나의 유일한 불안, 앎을 좇는 움직임은 감격적이다. 마리아나의 방황 속에서, 미래에 예정된 고독의 씨앗이 움튼다. 루스와 프란시스카 안에, 언제나 이방인이라서 거의 감지되지도 않는 흔적을 남기는 여자들 안에 움튼 것과 같은 씨앗이다. (501p)


◆ 출판사의 세계여성의날 행사에서 당첨되어 협찬 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 서평입니다.



#이벤트당첨도서 #은행나무 #여성 #여성서사 #엘레나포니아토프스카 #장편소설 #멕시코문학 #은행나무출판사 #젠더 #멕시코혁명 #프랑스교민 #스페인중남미소설 #스페인소설 #은행나무세계문학 #아이리스 #소설아이리스 #세르반테스상수상 #제2차세계대전 #소설추천 #추천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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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 2023.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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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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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마술사인 그녀를 거부하긴 쉽지 않다.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 8번째 작품인 [아이리스]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마리아나 가족은 아버지의 군대 징집으로 어머니 고향인 멕시코로 향한다. 익숙한 프랑스에서 낯선 멕시코 땅을 밟은 그녀는 이방인이나 다름없다. 귀족 집안으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내면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가득 차있었다."엄마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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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마술사인 그녀를 거부하긴 쉽지 않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 8번째 작품인 [아이리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

마리아나 가족은 아버지의 군대 징집으로 어머니 고향인 멕시코로 향한다. 익숙한 프랑스에서 낯선 멕시코 땅을 밟은 그녀는 이방인이나 다름없다. 귀족 집안으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내면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가득 차있었다.

"엄마 저는 어디 사람이에요? 제 집은 어디에 있어요?"(P215)

아버지의 부재에도 풍족한 삶을 살지만 타인의 나라일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집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아 허공에 두 발을 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땅에도 발을 디딜 수 없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녀. '우리 피를 빨아 먹으러 온 더러운 외국인들, 염병할 이민자들'이라며 이방인 취급을 하는 멕시코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아이, 개처럼 기다리는 아이, 문 두 개 사이에서 사랑에 붙들린 채 우두커니 멈춰 서 있는 아이, 계단 위에서 기다리는 아이, 창문에 꼭 붙어 있는 아이, 엄마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 내 모든 기다림의 시간이 정당화됐다."(p83)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이는 어머니라고 생각한 마리아나. 엄마의 시선 속에 속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였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엄마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애착의 충분 조건이 갖춰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결과는 추종이고 집착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형성되고 있는 마리아나에게는 결핍의 대상을 퇴펠 신부에게 찾으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아무도 나처럼 나를 사랑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지."(p209)

_

화자(마리아나)와 가족, 주변 인물들은 모두 회색을 띠고 있다. 시대적 상황도 무시 못하겠지만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인을 통해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된 삶, 주체적인 삶이 아닌 테두리 속에 살아야 했던 삶. 끊임없이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주도권을 가지는 것도 과정이 있다. 기폭제가 되는 퇴펠 교수의 역할, 주변을 살펴보면 한 사람 정도는 있는 캐릭터다.

작가의 자전 소설인 만큼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관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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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포인트

1. 화자(마리아나)가 어떤 포인트에서 각성하고 성장하는지 살펴 보기.

2. 언어의 마술사로 인정. 예스와 노를 표현하는 몸짓을 이 정도로 표현하다니.
엄마의 가슴을 묘사하는 문장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 안에는 머리를 올리고 내리는 용수철이 들어 있다. 위, 아래, 위, 아래. 반면, 소피아에게는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용수철이 있어서 쉬지 않고 부정한다."(p45)

3. 이방인의 삶, 정체성의 문제도 한 번 생각해보시길.
d*********3 2023.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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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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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FLORDELIS #엘레나포니아토프스카 #ElenaPoniatowska #구유옮김 #은행나무출판사 #자전소설 #세계문학 #스페인어권문학 #멕시코문학 #서평단   이 책을 읽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한국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민,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양반 계층, 성도를 그루밍하는 종교지도자들, 사랑에 갈구하는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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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FLORDELIS #엘레나포니아토프스카 #ElenaPoniatowska #구유옮김 #은행나무출판사 #자전소설 #세계문학 #스페인어권문학 #멕시코문학 #서평단

 

이 책을 읽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한국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민,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양반 계층, 성도를 그루밍하는 종교지도자들, 사랑에 갈구하는 의존적인 청소년, 자립심 강하게 먼저 독립하는 청소년,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가장. 이 책은 이 다양한 인물들이 동시에 나타나며 뒤죽박죽 섞여 나타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에서 폴란드 왕족인 아버지와 멕시코 귀족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은 이들을 프랑스에서 머물지 못하게 만들고 어머니의 고향인 멕시코로 떠나게 만든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멕시코 귀족이라고 하지만 가족의 생김새는 순수 백인, 즉 미국인을 닮았고 그들의 신분은 그들이 멕시코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주변인들이 그들을 멕시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집단에서 이방인으로 머문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너의 피부색이 다르다. 너는 프랑스에서 온 귀족이니 우리와는 다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주인공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에 빠져 살았던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들이 느끼는 거리감은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다.

 

주인공은 사춘기 소녀다. 한창 사랑을 갈구할 나이이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인정 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가톨릭 신부인 퇴펠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주인공은 퇴펠의 사랑을 갈구한다. 이처럼 주인공은 끊임없이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를 보면서 그 나이 때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도 내면에서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했고 그것은 20대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는 한창 문제가 되었던 성직자의 그루밍이 생각났다. 그는 참 위선적인 인물인데 겉으로는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편안함과 안락이다. 그는 귀족을 조롱하지만 그의 삶은 그들을 추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주인공의 가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조종한다. 참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다.

 

주인공과 가장 크게 대비되는 것은 그의 동생 소피아다. 소피아는 어렸을 적에는 말썽을 많이 일으켰지만 결국 오래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결혼하며 집을 떠난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보다 더 주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둘을 비교하며 이 책을 읽는 것도 흥미로운 읽기 방법이 될 것이다.

 

멕시코 소설, 스페인어권문학이라는 게 무척 매력적이다. 1940년대 멕시코 상황을 우리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그 새로운 세계로 가서 그곳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자의 특권이다. 곳곳에 인용되는 성경 말씀들도 인상적이다. 작가가 나름 의미를 주고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치들인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내가 온전히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는 또 다른 여성판 데미안이라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소녀의 섬세한 마음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모처럼 머리를 싸매고 씨름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혼란한 가운데서도 성장은 있다. 여러 사건들 속에서 느끼고 점차 변화되면 되는 것이다. 저자의 다른 소설도 한번 읽어 보고 싶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c*******n 2023.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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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 이제는 마리아나를 통해서 우리의 불편한 시선들을 거둬들일 때다.
"아이리스 - 이제는 마리아나를 통해서 우리의 불편한 시선들을 거둬들일 때다." 내용보기
나는 전부 다 한다. 그러면 나를 사랑해주겠지 싶어서. 나는 따귀를 맞지 않지만, 동생은 늘 맞는다. 눈으로 칼을 던지는 동생의 눈은 점점 새카매지는데, 색이 없는 내 눈은 보모들의 눈처럼 창백한 파란색이다.     공작가의 딸 마리아나와 소피아. 말 잘 듣고 내성적이며 얌전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 마리아나. 그와 반대로 고집 세고, 할 말 다 하며, 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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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부 다 한다. 그러면 나를 사랑해주겠지 싶어서. 나는 따귀를 맞지 않지만, 동생은 늘 맞는다. 눈으로 칼을 던지는 동생의 눈은 점점 새카매지는데, 색이 없는 내 눈은 보모들의 눈처럼 창백한 파란색이다.

 

 

공작가의 딸 마리아나와 소피아.

말 잘 듣고 내성적이며 얌전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 마리아나.

그와 반대로 고집 세고, 할 말 다 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소녀 소피아.

폴란드계 프랑스인 아버지는 전쟁에 참가하고, 멕시코계 어머니 루스를 따라 멕시코로 온 두 소녀의 삶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아름다운 공작부인은 늘 화려하게 차려입고 바쁘게 돌아다닌다.

아이들은 보모의 손에서 크고 어쩌다 보게 되는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마리아나는 눈에 띄지 않고 언제나 소피아가 관심을 차지한다.

 

 

엄마를 정의하는 것은 곧 엄마의 부재다. 엄마는 기운을 북돋울 무언가를 찾아 떠났고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엄마의 부재는 오작 엄마만의 것이고 그 안에 내 자리는 없다.

 

 

 

멕시코 귀족 가문의 딸인 엄마 루스.

그러나 멕시코 혁명 때 재산을 몰수당한 집안이다.

양쪽 가문 모두 귀족인 마리아나의 고귀한 신분은 그들에게 또 다른 굴레를 씌운다.

멕시코에서는 명문가의 딸이지만 백인 혼혈이고, 프랑스에서는 그저 멕시코계 혼혈일 뿐이다.

 

 

마리아나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어쩜 양쪽에서 느끼게 되는 불편한 시선을 예민했던 소녀가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자양분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아이들을 보듬어 주고 그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어야 할 엄마는 늘 부재중이었다.그러다 깜짝 선물처럼 두 아이를 데리고 바다를 보러 가는 여정은 엄마의 무모함과 동시에 자신의 부재를 그런 식으로 채우고 싶었던 보상의 마음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린 시절의 혼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리스>에서 가진 자이지만 어쩌면 약자이기도 한 마리아나의 시선은 짤막한 기억의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단편적 기억들의 조각조각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마리아나와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다.

 

어디에나 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대립

사회적이면서 관습적인 편견들

여자에게 지워지는 굴레들이 마리아나의 여린 시선을 통해 보인다.

 

마리아나와 소피아.

두 소녀의 모습은 극명하게 다르다.

그리고 그 둘을 아우르는 엄마 루스의 모습에서 세 가지 버전의 삶을 본다.

루스에게서 갈려 나온 기질은 거침없는 소피아와 대조적으로 순종하는 마리아나로 대표된다.

그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그녀들.

자신들의 정체성을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

누가 더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 모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퇴펠 신부의 말은 언행일치가 안되는 사람들의 모범이었고

그 말에 홀린 마리아나의 모습은 사춘기 소녀의 열정을 태워 버린다.

성장은 아픈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의 의미는 마리아나를 통해 잘 보여진다.

 

퇴펠은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실제 모습은 그들을 억압한다.

멕시코 혁명의 단면, 아니 모든 권력의 단면을 퇴펠이 보여주고 있었다.

 

미래에 예정된 고독의 씨앗이 움튼다. 루스와 프란시스카 안에, 언제나 이방인이라서 거의 감지되지도 않는 흔적을 남기는 여자들 안에 움튼 것과 같은 씨앗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소설로 늘어놓은 작가의 솜씨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했던 시기의 마음들을 잘 보여주었다.

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들여다봤다면 <아이리스>를 통해서 가진 자이지만 약자였던 여성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세상의 부조리는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편견인 줄 몰랐던 편견.

차별인지 몰랐던 차별.

무심하게 이어받은 수많은 관습들이 혼혈 소녀의 눈으로 보여진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생각해 보지 못했을 진실이었다...

글로벌한 세상이다.

이제는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죽은 말이 된지 오래다.

우리의 시선에서도 달라져야 할 것들이 많다.

<아이리스>의 마리아나를 통해서 우리의 불편한 시선을 거두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w******2 2023.0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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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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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ㅣ은행나무 ㅣ에세   비유와 묘사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절묘한 문장에 여러 번 매료되었다. 작품을 이끄는 인물 '마리아나'가 '엄마'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지독하고 끈질겨 애잔함을 유발시켰다. 갈피를 잡지못하고 방황하는 한 소녀의 슬픈 성장기는 가슴 아프다.   『아이리스』 는 작가 엘레나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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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은행나무 에세

 

비유와 묘사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절묘한 문장에 여러 번 매료되었다. 작품을 이끄는 인물 '마리아나''엄마'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지독하고 끈질겨 애잔함을 유발시켰다. 갈피를 잡지못하고 방황하는 한 소녀의 슬픈 성장기는 가슴 아프다.

 

아이리스는 작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자전소설이기도 하다. 작품 속 방황하는 소녀 마리아나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마리아나는 귀족 집안의 딸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풍족하기 그지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가 프랑스군에 소집되면서 동생 소피아와 함께 어머니의 나라 멕시코로 건너가게 된다. 어머니의 나라지만 프랑스어를 하는 그들은 멕시코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유럽에서 건너와 프랑스어를 하면서 대저택을 소유한 그들을 하느님의 뒤에 숨어서 맹렬하게 비난하는 '퇴펠 신부' 에 의해 그들은 절박하고 절망한다.


 

이 작품은 작가 엘레나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녀를 대체하는 인물은 화자인 '마리아나'와 엄마인 '루스'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을 혼란스럽게도 하고, 구원할 것 처럼 다가오는 이중적인 인물 '퇴펠 신부'는 이방인을 힘겹게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마리아나'는 멕시코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나 그곳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게다가 큰 저택에서 사람들을 거느리며 귀족처럼 살고 있다. 그런 그녀를 멕시코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나라의 기반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했던 멕시코 사람들은 "의견을 낼 권리도 없으며, 너의 의견은 의미가 없다" 고 말한다. 결국 이곳에 있으려면 완전히 이곳 사람이 되든지, 저곳에 가고 싶으면 빨리 가버리라는 몸짓이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멕시코 땅을 딪고 서있는 것이 아닌 작은 소녀는 사람들의 차가운 거부가 상처이고, 엄마가 보듬어 줄거라 생각하여 엄마에게 기대지만 엄마는 언제나 부재중이다. 외로움과 힘겨움은 주목받고 싶어하는 마리아나를 '퇴펠 신부'에게 집착하게 만든다.

 

'루스'의 부재도 나름 그녀의 힘겨운 정착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멕시코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그 땅을 떠나 살며 유럽의 남자와 결혼하여 그를 닮은 아이들을 데려온 루스를 사람들은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묘한 거부의 눈짓을 서로 주고받았을 것이며 그 숨막힐듯한 공기가 루스를 힘겹게 했을 것이다. 연약한 사람들은 내가 받은 부당함을 나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리고 구원받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루스 또한 '퇴펠 신부'에게 의지하게 된다.

 

마리아나와 루스의 신뢰를 얻은 '퇴펠 신부'는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편협한 사람이다. 또한 모순적이며 퇴폐적인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성직자이다. 거부와 외로움으로 힘겨워하는 루스와 마리아나에게 구원자 처럼 다가와 혼란을 야기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각성하고 성장한다. 퇴펠은 마리아나와 루스에게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였으며, 안정과 위험 중 위험을 선택하여 나아가야 하며, 여성으로써 창밖을 내다보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도 일깨운다.


 

언제나 외출 준비를 하는 엄마, 언제나 아름다운 엄마는 마리아나에게 있어 닿을 수 없는 신적인 존재와 같다. 엄마와 함께 하고 싶다고 떼를 쓰고 싶지만 정작 앞에서는 입를 열지 못하고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마리아나는 자신과는 다르게 원하는 것을 당돌하게 요구하고 말하는 소피아가 부럽다. 엄마의 외모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마냥 아름다운 소피아는 불평을 말하면서도 언제나 주목받고 인정받는다.

 

작품의 처음에 마리아나는 ''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마리아나는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혼자서 '창밖'을 내다보며 보내야 하는지 엄마에게 질문한다. 그녀가 스스로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고, 문을 통해 나오길 바래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을 받아들이고 감수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온전히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아이리스 #엘레나포니아토프스카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멕시코문학 #자전소설

e**********3 2023.0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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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멕시코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멕시코의 모든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엄마 저는 어디 사람이에요? 제 집은 어디에 있어요?” _ p.212???모든 것은 집에서 끝이 난다. 집을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오거나. 소피아는 사랑으로 빛나고, 불의 섬을 향해 나아간다. 그 애처럼 사랑에 빠진 소녀가 되는 건 멋진 일일 것이다._ p.501멕시코 귀족인 어머니와 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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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멕시코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멕시코의 모든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 저는 어디 사람이에요? 제 집은 어디에 있어요?”
_ p.212

???모든 것은 집에서 끝이 난다.
집을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오거나.
소피아는 사랑으로 빛나고,
불의 섬을 향해 나아간다.
그 애처럼 사랑에 빠진 소녀가 되는 건 멋진 일일 것이다.
_ p.501

멕시코 귀족인 어머니와 폴란드 왕족인 아버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삶.
이 소설은 작가의 흔적을 담았다.

소설은 멕시코 혁명 이후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층의 대립, 정부의 부정부패,
여성의 제한적인 사회적 시선....
이런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
백인 혼혈 여성 마리아나의 성장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는 세 사람의 주된 이야기로 서술되는데 그 세 사람은
마리아나와 동생 소피아 그리고 엄마.내가 읽은 그녀들은 이랬다.
마리아나는 내성적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한 순종적인 태도가 그녀를 말해주는듯 했다.소피아는 좀 달랐다.
외향적이고 반항한다. 드러나는 열정이 그녀를 말해준다.
엄마인 루스는 그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으로
사교 생활을 이어는 모습이다.

백인 혼혈인 마리아나는 멕시코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프랑스인과 결혼해 교민 신분인 엄마 루스 도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때문에 둘은 흔들린다.

신부 퇴펠의 등장으로 소설의 분위기는 바뀐다.
마리아나는 신부에게 빠져든다.
신부는 멋있는 말만 한다.
'자신을 존중하라,
자기 자신의 깊은 이해를 통해 내면의 자유를 얻어라,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선택해 진정한 인격체로 나아가라.'
마리아나는 그를 사랑하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멋있어 보이던 그 신부는
멋진 개자식 이었다.
희망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산다던 그 신부는 오래된 성당을 더러워했고 어려움을 겪는 낮은 자들의 삶에 임하지 못했다.그리고 부르주아와 여성들을 극도로 혐오했다.귀족 계급인
루스의 집에 머물었고 상류층 여성이 제공하는 모든것을 누리고 마치 그 집에 본인이 뭐라도 되는냥 꼴깝을 떤다.

현실적인 소피아, 이해받지 못할 인물로 표현되는 루스와 마리아나.

내가 보기엔 그들은 모두 이방인 이었다. 자신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들로 보여졌고 느껴졌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자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소설
'아이리스'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마리아나.
그녀를 살게 한 사랑은 그 모습을 바꾸는 듯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사랑만을 갈구하던 어린아이는 성장하면서 삶의 고통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준
성장 소설.

고통스럽지 않고 성장할 수 없는 존재인 우리는 연약하지만 끝내는 성장 하게 된다는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본다



q******3 2023.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 내용보기
차별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다수가 행하는 소수에 대한 횡포 정도 정의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독특하다. 자신의 주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강자들은 약자를 억압하는 모습을 늘 보여왔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와 공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반면 이 작품은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 약자가 강자에 분노하는 모습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 내용보기

  차별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다수가 행하는 소수에 대한 횡포 정도 정의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독특하다. 자신의 주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강자들은 약자를 억압하는 모습을 늘 보여왔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와 공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반면 이 작품은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 약자가 강자에 분노하는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인물을 묘사하며 여러 면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실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며 사실감보다는 세밀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마니아나와 똑 닮은 삶을 살았던 작가의 멕시코에서의 이야기.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의 아픈 민낯을 들추어내는 이 작품은 픽션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는 경계선을 넘나 든다. 이 책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폴란드의 왕족이며, 멕시코계 어머니를 둔 저자는 실제로도 귀족이며 멕시코에서 살며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사와 책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소설과 차별되는 면이 있다. 굉장히 짧은 문단들이 이어 붙여져 있다. 마치 짧은 인터뷰 같은 문장들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을 품은 소설이 아니라 장면 전환이 굉장히 많은 느낌이 있다.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차라리 에세이라고 하는 이해하는 편이 나을 정도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가족, 마리아나, 소피아, 루스는 프랑스를 떠나 멕시코로 이주하게 된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였고 아버지는 프랑스군으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멕시코계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멕시코로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가 멕시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멕시코에는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있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은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소피아는 당당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마리아나는 관찰력과 호기심이 많지만 내성적이며 순종적이다. 루스는 이성적이지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까. 그리고 빌런으로 퇴펠 신부가 등장한다.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을 읽으며 줄곳 의문이 드는 생각이었다. 반 정도의 이야기는 잔잔한 에세이 느낌이 강하며 마리아나가 화자가 되어 여러 상황을 설명해 주는 느낌이다. 할머니, 어머니, 하인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종잡을 순 없었다. 완벽해 보이는 어머니 루스, 얽매이지 않는 성격의 동생 소피아에 대한 동경. 어쩌면 고독에 대한 이야기,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 인가 싶었다.

  퇴펠이라는 신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방향을 전환한다. 이것을 투쟁의 이야기가 될 것인지 스릴러가 될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물론 책 소개를 감안한다면 인권에 대한 얘기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 느낄 뿐이지만 마치 혁명가 같이 등장한 퇴펠이라는 신부는 책을 읽어낼수록 모순적인 인물이 되어 간다. 어느새 혁명가는 사이비 교주 같이 느껴졌고 그가 말하는 여성 해방은 어느새 여성을 현혹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타락한 사제와 혁명가의 이미지를 연이어 보여주는 그를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몰라 혼돈스러웠다. 마지막에 가서야 역시 첫 느낌은 틀리지 않는군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귀족 사회라는 안전망을 벗어난 가족들은 처음으로 계급에 대해 느꼈을지 모른다. 하인은 원래부터 하인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특별한 정의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멕시코에서는 달랐다. 멕시코를 착취하는 많은 프랑스 귀족들을 '양키'라고 불렀고 멕시코스럽지않다고 공격했다. 퇴펠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으라며 주장한다. 마리아나는 그를 신처럼 추앙하기에 이른다.

  고독 속에 갇혀 있던 마리아나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어머니 루스는 그런 존재다. 문장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완벽함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퇴펠에 대한 믿음 또한 그러하다. 멕시코인으로 프랑스에서 살아온 루스 또한 어쩌면 고독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프랑스 공동체에서도 멕시코 공동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혼혈인 소피아와 마리아나 또한 그러하다. 그들에게는 혁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고 신처럼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이겨낸 건 자신을 사랑한 소피아뿐이다.

  책은 마리아나의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다 보면 루스의 성장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아나가 방황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변화를 꿈꿨지만 그 무엇도 이뤄내질 못한다. 그저 퇴펠 신부의 모순만 확인할 뿐이다. 그녀의 고독과 신념 그리고 사랑은 굉장히 복잡 미묘해서 마음에 전해지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가? 그녀를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쪽이 더 많은 이유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반면 루스의 성장은 확실했다. 멕시코인, 프랑스인의 정체성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멕시코에서 프랑스어를 배워 놓고, 파리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멕시코 음식을 먹으며 자란 그들이 프랑스인 척하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인이 화상을 입었을 때 어떤 남자의 도움 없이 당황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고 상황을 수습했다. 루스는 퇴펠에게 기대던 마음의 변화를 가졌다. 그 순간 퇴펠은 천사에서 악마가 되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겪는 고독을 다룬 작품이며, 그 속에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다. 그들을 깨운 것은 퇴펠 신부였지만 그는 '천사'이면서 '악마'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혁명을 말했지만 그의 행동은 권의 속에 갇혀 있었다. 인종 차별, 여성 차별 그리고 신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부작용. 그런 것까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사이비 교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나였기에 퇴펠의 언어는 사기꾼의 언어 같았고 그 말이 정당했지만 공감할 순 없었다. 그리고 왜 고통을 수반하여만 깨우칠 수 있는가? 에 대해 또 한 번 의문이 들었다.

  스토리가 아닌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작품이었기에 쉽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보단 르포의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함께 괴로워하고 공감하기보단 타락한 종교에 이성을 맡기는 행위 대한 거부감이 더 많이 들었던 것은 내 속의 방어기제가 작동했음이다. 아, 이 어쩔 수 없는 이과형의 마음이여..

s*******9 2023.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이리스 _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아이리스 _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내용보기
이 소설은 멕시코 귀족인 어머니와 폴란드 왕족인 아버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삶의 흔적을 담은 소설이다. 멕시코 혁명 이후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층의 대립 관계, 정부의 부정부패, 여성의 사회 진출 제한 등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백인 혼혈 여성인 마리아나의 성장을 담고 있다.           주인공 화자인 마리아나는 내성적이고 관심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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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멕시코 귀족인 어머니와 폴란드 왕족인 아버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삶의 흔적을 담은 소설이다. 멕시코 혁명 이후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층의 대립 관계, 정부의 부정부패, 여성의 사회 진출 제한 등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백인 혼혈 여성인 마리아나의 성장을 담고 있다.  

 

 

 

 

주인공 화자인 마리아나는 내성적이고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순종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녀의 동생 소피아는 외향적이고 반항을 일삼으며 가슴에 품은 열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는 아이다. 여성의 활동이 거의 제한된 사회에서 두 자매의 엄마인 루스는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사교 생활을 주저없이 이어갔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백인 혼혈인 마리아나는 멕시코인으로서 인성받지 못한다. 또한 엄마 루스 역시 프랑스인과 결혼해 교민 신분이기에 정당한 멕시코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그녀는 프랑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프랑스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더구나 멕시코 내에서는 외국 이민자들과 교민들을 혐오하며 제 나라로 돌아가기를 강하게 촉구하면서 그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예민한 루스는 부유하듯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러한 엄마를 좇는 마리아나 역시 루스와 마찬가지였다.  


마리아나의 흔들리는 정체성과 단단하게 쌓아지지 못한 자존감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다. 언제나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칭찬과 사랑에 목마르다. 누군가 그녀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면 그 사람에게 집착하기에 이른다. 현재의 자신을 사랑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스스로 미래에 무엇이 될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고만 한다. 마리아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은 것이 전부다.  

 

 

이 소설에서의 전환점은 신부 퇴펠의 등장이다.
마리아나가 다니는 교구에 새로 부임한 퇴펠 신부는 영성 수련회 강연에서 십대 여성들에게 높은 사회 신분의 계급적 특권 안에서 착한 여자 아이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려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집요하게 추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깊은 이해를 통해 내면의 자유와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선택해 진정한 인격체로, 분리된 개인으로서 나아가야한다고 역설한다. 퇴펠 신부는 소녀들이 받은 교육은 민중과 평등하게 연대하고 그들과 융화되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제의 모습에 마리아나는 한순간에 빠져든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리아나를 뒤흔들고 고양시켰다. 그토록 훌륭한 신부님이 그녀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는다지 않는가. 마리아나 인생 최대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신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곧이어 퇴펠 신부의 모순이 드러난다. 희망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간다지만, 그는 정작 위생적이지 못한 낡은 교구 성당을 견디지 못한다. 낮은 자들의 삶에 발을 딛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위해, 그들의 해방을 위해 살겠다니. 또한 부르주아와 여성들을 극도로 혐오하며 이에 따른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면서, 귀족 계급인 루스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상류층 여성이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하며 그 집안의 가장 행세를 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다.  


ㅡ 


마리아나와 퇴펠 신부의 대화 장면을 읽다보면 마리아나가 지적 능력과는 별개로 사회적 환경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무지하고 수동적이라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주변의 모든 것에 한 치의 의구심이나 호기심도 없이 그저 어린애처럼 오로지 사랑과 관심과 인정만 갈구한다. 그야말로 정신 연령이 유아기에서 멈춰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더구나 수련회의 공개적인 토론장에서 옳든 그르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질문을 쏟아내는 다른 소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두 자매를 살펴볼때, 소피아가 주변의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리아나는 타인의 시선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같은 환경에 놓여있었음에도 이토록 다른 이유는 단순히 타고난 성향이나 기질이 달라서일까. 자매는 감정으로 표현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다를 뿐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안으로 숨어드는 마리아나와는 달리 소피아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불만과 요구 사항을 격하게 표출한다. 그래서 소피아는 어린 시절에는 유난히 양육하기 힘든 아이로 그려지는데, 소피아가 어느 시점부터 그런 면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견으로 그 이유가 알레한드로에게 있지 않을까싶다. 열한 살부터 교제 관계를 분명히 하고 청소년기에 이르는 시점까지 그 관계를 유지한 두 사람. 정서적으로 의탁할 존재가 생긴 소피아는 애착의 대상이 가족에서 연인으로 바뀐 것이고, 이를 확인하듯 이른 나이에 결혼한다.(이 점이 상당히 의외였다.)


읽는 내내 나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인물은 루스다. 늘 어딘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그녀. 얼핏 보기에 소피아가 루스와 닮은 듯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와 같은 혼란을 겪고 있는 딸은 마리아나다. 멕시코인으로서 프랑스 사회에서 정서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채 전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남편의 부재를 겪었고, 고국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되어야했다.  


전장에서 돌아왔으나 가정을 방임한 남편 카시미로와의 단절된 정서적 교류가 회복되지 않자 퇴펠에게서 안정을 찾고자 했지만,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간 루스는 정서적으로 떠돌듯 자신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점점 더 무기력과 권태와 자아 상실감을 겪는다. 그런데 이같은 루스의 결핍을 알아보며 공감하는 사람이 마리아나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는 소피아일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인물은 루스와 마리아나가 아닐까싶다.    


ㅡ 


1932년생, 이제는 아흔 살이 된 작가의 표지 사진을 바라본다. 이 사진도 여든에 가까운 사진이 아닐까 싶다. 노년의 사진에서 지칠줄 모르고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소녀를 상상한다.   


제목 '아이리스'는 타말 가게의 이름으로써 소설 초반부와 마지막 장에 단 두 번 등장(그것도 각각 한 줄씩)하는데, 타말 가게는 마리아나의 유년 시절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어디에요, 엄마?'라고 묻는 마리아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그녀의 정체성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부유한다.  

 


501.
마리아나의 유일한 불안, 앎을 좇는 움지임은 감격적이다. 마리아나의 방황 속에서, 미래에 예정된 고독의 씨앗이 움튼다. 루스와 프란시스카 안에, 언제나 이방인이라서 거의 감지되지도 않는 흔적을 남기는 여자들 안에 음툰 것과 같은 씨앗이다. 한 손에 쉽게 쥘 수 있을 만큼 부서질 듯 가느다란 발목에서 시작되는 작은 새의 다리, 피부에 꽃처럼 비치는 푸른 혈관. 맙소사, 이런 연약함이라니. 

 

 

 

※ 출판사 지원도서

y******n 2023.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은행나무 세계문학 ESSE 08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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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지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단어들은 존재 자체로 폭력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잡종'이라든가 '조센징' 혹은 '니그로' '계집' 이런 단어들..... 더많을 텐데 지금 우선 떠오르는 것은 최근 책에서 본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이 무서운 것은, 듣는 사람에겐 매를 맞는 고통인데, 정작 내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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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지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단어들은 존재 자체로 폭력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잡종'이라든가 '조센징' 혹은 '니그로' '계집' 이런 단어들..... 더많을 텐데 지금 우선 떠오르는 것은 최근 책에서 본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이 무서운 것은, 듣는 사람에겐 매를 맞는 고통인데, 정작 내뱉는 화자 본인은 별생각 없이 내뱉기도 하고 혹은 우월감에서 내뱉기도 한다는 것.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 작가가 나에게만 보내는 편지 같아서 답장하듯 리뷰를 쓰고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지금 이 책이 그랬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작가님,

1930~40년 대생인 여성작가들은 어쩜 그리 위대한가요! 내겐 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글'이고 '아픈 심장'이에요.....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100번쯤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쓸 수 없는 글! 온몸으로 겪은 언어들이기에 더욱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인종 간의 편견, 지독한 성차별, 혐오와 질시, 세계대전의 공포, 남성들의 폭력, 계층 간의 반목, 산업화의 두려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언어들을 청소년기 혹은 청년기에 온몸으로 겪으신 당신의 언어는 2020년대를 살아가는 제가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대상이지요.

 

 

 

 

 

특히, 엘레나 당신처럼 자전적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존경합니다. 저는 소설을 쓰는 일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물며 허공에 그리는 상상이 아니라, 직접 겪으신 아픔을 도려내어 독자인 제게 오기까지 그 긴 여정은, 노력들은 어디서 나오는 용기일까요? 제 글쓰기가 한 치의 진보도 없이 갈수록 퇴보하는 이유를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건 바로 나 자신을 숨기고 감추기 때문이요. 그런데 가족사, 개인사를 가감 없이 들춰 보이는 당신은 참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 마리아나에게는 당신이 투영돼있지요.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엄마는 늘 내 안에 있다고 느끼는 소녀 마리아나, 반면 활달하고 용감한 여동생 소피아. 내가 당신이었더라도 어머니를 정말 사랑했을 것 같아요. (글쎄, 아마 다른 독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집착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귀족 어머니에게 품는 환상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내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어요.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머니. 어머니와 나는 언제 어디에 있든 자를 수 없는 탯줄로 연결되어서 우리는 늘 하나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아버지의 참전 후 가족 모두 멕시코로 갔을 때, 양키 소리를 들으며 선밖의 인물로 치부되었을 때 어린 당신은 정말 속상했을 것 같아요. (나라면 엉엉 울었을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나는 멕시코인이야,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철저히 당신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흰둥이라고 말했던 장면. 소설이 쓰인 것이 1980년대이니까 멕시코 산업화와 혁명의 시기에 더욱 그랬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인종 차별과 서로에 대한 미움이 극한이었던 점에 많이 놀랐어요. 이 정도까지였나 싶은 장면들....

 

 

 

 

하기야 2023년의 교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베트남에서 결혼 이민 온 여성의 자녀, 어머니 나라의 말을 단 한마디도 못하는 나의 다문화 학생에게 같은 반 아이들은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자꾸만 물어요."

 

 

 

 

 

책에서 유일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신부님, 성직자 자크 퇴펠인데요^^ 그가 말하는 세상은 혁신적인 세상, 귀족과 평민 구별이 없는 혁신적인 세상, 노동자의 인권, 계급 간의 평등 저도 이런 단어들을 정말 좋아합니다만, 이 남자는 왜 여자들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그러는 거죠? (물론 사람들은 속으로 '이성'을 동경하고 흠모하고 야한 생각을 하고, 마침내 간음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직분을 지키는 위선적인 면모가 그 누구에게나 있긴합니다만..... 성직자나 교사, 법관, 경찰 이런 직군에는 그 잣대가 좀 더 무겁게 작용하죠)

 

 

 

 

 

 

폴란드 왕족 출신 아버지와 멕시코 귀족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아버지가 전장에 나가자 할 수 없이 어머니의 나라 멕시코에 가야 했던 당신, 귀족의 따님!! 고귀한 신분 출신의 당신이 사회 정치적 이슈를 담아낸 점, 여성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운 점이 그 무엇보다 자랑스러워요^^ 멕시코라는 나라는 제게 너무나 먼 나라이며 관심도 없었는데, 소설을 따라 가는동안 그 낯선 곳에 대한 따듯한 애정이 생깁니다.

 

 

 

 

저는 이 편지(리뷰)가 당신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만약, 당신이 읽을 거라 생각했다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절대 그럴 리 없지만, 혹시나 보게 된다면 읽지 말고 걍 찢어 주시기 바라요.....) 저는, 당신의 소설을 따라가는 동안 수없이 길을 잃었지만, 또 그 길을 찾은 기분이에요^^ 당신 그저 존재 자체로 고맙습니다

 

 

 

 

♣♣ 기억하고 싶은 문장 ♣♣

 

나는 멕시코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멕시코의 모든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멕시코는 경작해야 할 거대한 정원이다. 멕시코에서 단 하나 나쁜 것이라면 인종이다. 엄마는 다가올 엄마 삶의 주름을 하나하나 펼치듯 자꾸만 냅킨을 편다. 엄마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엄마, 엄마에게는 없는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제게는 있어요.

 

 

 

 

나느 멕시코 사람이야. 우리 엄마가 멕시코 사람이니까. 아빠의 국적처럼 엄마의 국적도 물려받을 수있었다면, 나는 태어났을때부터 멕시코 사람이었을거라고.

 

 

 

제발 쓸모있는 것을 공부하십시오. 간호사가 되든지, 임상분석가가 되든지, 교사가 되든지, 재봉사가 되든지, 약사가 되십시오. 쓸모있는 일을 하십시오. 뭐든 필요한 일을 하란 말입니다. 도대체 왜 여러분을 착한 여자아이 신분에 가두어두려는 것을 공부합니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수사나 양의 조부꼐서는 멕시코 사람들을 착취한 것에 불과합니다. 싼값에 노동력을 사들인 거지요. 나는 형편없는 봉급을 지불하는 기업을 여럿 압니다. 그들은 그러면서 자기들이 수혜를 베푸는 줄 알지요.

 

 

 

인종차별주의자들, 그것이 당신네들의 실체입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자 착취자들. 그러니 당신네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행동한다고 감히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조차 당신네들의 후안무치함을 참을 수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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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2023.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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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문학 중에서도  멕시코 문학, 그중에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리스'에 대한 첫 느낌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세 여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각기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폴란드 마지막 왕조의 후손인 아버지, 멕시코 귀족 출신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아나와 소피아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함과 동시에 아버지가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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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문학 중에서도  멕시코 문학, 그중에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리스'에 대한 첫 느낌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세 여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각기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폴란드 마지막 왕조의 후손인 아버지, 멕시코 귀족 출신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아나와 소피아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함과 동시에 아버지가 프랑스군으로 징집되면서 어머니와 함께 멕시코로 간다.

 

 

멕시코에서의 새로운 환경, 새로 알게 된 가족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내성적이면서도 순종적인 마리아나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여러 상황들을 들려주는 듯한 글로 흐른다.

 

 

자신은 멕시코인이라고 하지만 멕시코인들에겐 프랑스 사람으로 비칠 뿐인 현실, 그 안에서 마리아나가 엄마로부터 받길 원하는 사랑에 대한 마음들이 성장하면서 고독을 느끼고 동생 소피아가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성격들을 동경하는 모습들이 상층 되게 그려진다.

 

 

특히 귀족사회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던 세 모녀의 삶은 계급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고 그런 가운데 엄마를 통해 마음의 위안처럼 삼으려던 마리아나의 삶은 프랑스, 멕시코 양 국가에서 인정받지 못한 정체성에 대한 혼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 가운데 이방인이란 자리에서 그녀가 퇴펠 신부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믿음과 의지하는 과정은 퇴펠이 강연한 말에 의해 여자란 이름으로 갇혀있지 말고 자신의 생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라는, 직업을 갖고 공부하라는 말로써 새로운 세계를 느끼는 과정은 마리아나에게 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의 면모를 드러내며 보인 행동들을 보인 퇴펠의 모순은 권위를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다름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책은 소설 범주에 속하지만 때론 에세이처럼 다가오는 부분도 있고 실질적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말한 만큼 마리아나의 성장 배경이 작가와 거의 같다는 점, 그러면서도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모습이 마치 르포처럼 여겨지는 장면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의 소설처럼 읽었다.

 

 

엄마를 바라보는 마리아나의 애정갈구도 그렇지만 엄마 루스조차도 아슬아슬하게 위태해 보였던 모습들은 마리아나와 같은 선상에 있었다는 점이  소피아와는 다른 인생의 혼란을 느낀 부분이라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추스를 안정의 대상으로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한 마리아나, "어디예요, 엄마?"를 연신 물어보는  그녀가 성장하면서 겪은 삶에서의 고통은 시대의 변혁기와 함께하며 그린 소설이라 현실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m*******n 2023.0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