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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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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에 책 한권이 꽂혀있었다. 포장을 뜯은 책의 표지엔 9명의 여성 작가 사진과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이란 책의 제목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9명 중 한명의 작가가 책을 보내주시겠다고 문자를 하셨다. 글을 공짜로 읽는 것만큼 미안한 일은 없는 것 같아 사양했지만, 내 미안함보다 보내주시려는 선한 마음이 더 커 책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책은 9명의 여성 작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을 읽고" 내용보기
우편함에 책 한권이 꽂혀있었다. 포장을 뜯은 책의 표지엔 9명의 여성 작가 사진과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이란 책의 제목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9명 중 한명의 작가가 책을 보내주시겠다고 문자를 하셨다. 글을 공짜로 읽는 것만큼 미안한 일은 없는 것 같아 사양했지만, 내 미안함보다 보내주시려는 선한 마음이 더 커 책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책은 9명의 여성 작가가 남자라는 주제로 쓴 단편 소설로 구성됐다. 단편을 읽을 때면 늘 그랬듯이 여러 작품이 주는 느낌이 섞이지 않도록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었다.

개성이 뚜렸한 작가에게 공통의 주제를 정해 글을 쓰라고 하면 작가 고유의 색채가 훼손되지 않을까 조금 우려하기도 했다. 더욱이 몇 명의 작가에겐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감동 깊게 전달받은 기억이 있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책을 들어 읽기 시작하며 읽기 전에 들었던 우려가 불필요한 생각이었단 걸 알게 됐다. 이유는 쉽고 명료했다.

우주가 중력이라는 커다란 질서로 은하와 은하, 항성과 항성, 행성과 행성이 공전하며 묶여 있듯이, 남자와 여자 또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같은 중력장에서 함께 돌고 있다는 걸 느껐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둘은 하나이면서 둘이었고 둘이면서 하나였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집자가 9명의 작가에게 당신들의 '일상을 써주세요' 라고 제안했더라도 남성은 여성 작가의 중력장에 묶인 채 그녀의 글에서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을 것이다. 남자를 주제로 썼다는 걸 잠시 잊고 책을 읽는다면 독자는 '성'의 차이에서 오는 두 세력(권력의 관점으로 본다면 성은 남성 그리고 여성을 포함한 기타 성으로 구분되기에)의 권력지형을 짐작하게 하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다른 단편 소설집과 큰 차이 없이 읽었을 것이다. 오히려 즉물적이지 않게 서술한 아홉 명 작가의 남자 이야기가 내겐 더 편하고 성숙하게 느껴졌다.

9명의 작가 주위를 같은 중력장에서 돌고 있는 남성은 정말 다양했다. 책머리 글에서 '내가 만난 남자', 나를 키운 남자', '내가 키운 남자'로 김이정 작가가 표현했던 것 이상으로 9명의 남자는 지뢰처럼, 선물처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었다. 물론 본질적으로 이성은 지뢰에 가깝다. 그 위험성 때문에 인간은 본연을 향한 성장의 도구로 이성에 대한 집착을 자주 활용하기도 했다.

9명의 여성 작가에 의해 호출된 남성들 또한 다양한 좌표에서 각기 다른 페르몬을 분사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 속 남자가 처한 조건과 상황 또는 현실에서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심연 의식의 진폭에 따라 그녀들의 남자는 다르게 등장했다. 어떤 경우는 일찍이 우리가 남성성이라 일컫고 쪼개놓지 않은 좌표에 스스로를 포지셔닝 하기도 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웅크린 남성, 신체의 일부만으로 이성을 쉽게 제압해 존재 자체가 권력이 된 남성,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결핍의 지점이 달라 삶의 습관과 취미마저도 여성과 다르게 진화한 남성, 구심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남과 여의 관계에서 원심력을 인정하며 서로의 성장의 기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 하는 남성 등 다양한 남성과 구체적 남자가 등장했다.

50이 넘으며 호르몬의 변화인지 점점 성의 구분이 모호한 곳으로 흐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불편하지 않다. 아마도 남성 권력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어느 부분에서 그 권력의 혜택을 완강히 거부하지 않고 살고 있는 나를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의 문제도 언뜻 사랑, 집착, 소유 등 끊임없는 결핍이 양성 갈등의 전부인 듯 보여지지만, 자세히 살피면 오래되고 왜곡된 남성 중심의 권력 질서, 이를 용인하고 고착화시키려는 사회적 관습이 오히려 남녀관계를 왜곡시키고 건강한 남성성 자체도 오염시켰음을 알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무해한'이란 단어에 오래 머물고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선량하고 무해한 관계'에 내가 좀더 다가가기를 기대하고, 결국엔 무해한 삶에 오래 정착하고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무해한 삶을 지향하는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b*****4 2023.03.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