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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다 느끼지는 못했던 내용의 책이 아니었던가 한다. 유명했던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책 앞부분에 언급해줘서 왜 그런 느낌이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나 역시나 이렇게까지 슬픈 이야기였어?? 하고 읽는 내내 생각했다. 읽는 내내 누구라도 제발... 누구라도 제발 그들에게 친절하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넬로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랬는데 결국은 모두 넬로와 파트라슈에게 친절할 수 있는 기회를 지나쳐 버렸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양심같은 것은 표면적인 이해관계나 짧은 생각 앞에 너무 사소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결국 그 누구의 이해도 도움도 받지 못하고 가여운 세 가족은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넬로의 마지막 말이 너무 가슴 아팠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그말이...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본다. 살면서 나는 누군가의 사정이나 힘겨움을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고, 마지막 용기를 쥐어 짜내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정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너무 인색하지 말자. 이왕이면 조금 더 다정하게 살자. 나의 이해관계나 사정이 있더라도 저 밑에 있는 나의 다정함을 들추어내며 살자고 다짐해 본다. 어느 겨울에 빵껍질 조금만이라도 내어달라는 부탁을 궁색한 변명으로 외면한 어느 이웃이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크게 빚을 갚아야지 하는 결심따위를 두번다시 실천할 수 없게 된 방앗간 주인이나, 누구보다도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어도 용기내지 못한 여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조금 더 다정하게 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넬로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한참을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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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플랜더스의 개』를 접하며 먼저, 어린 시절 tv에서 봤던 만화영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려 본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아닐지도 몰라 찾아보니, 1981년도에 KBS에서 처음 방송한 것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이 맞다. 내 기억이 그래도 살아 있나보다.^^ 당시 상당히 오랫동안 방송된 것으로 기억되어 찾아보니, 총52회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원문소설은 길지 않다. 이 책, 『플랜더스의 개』 는 바로 그 원문에 충실하여 번역되어졌다 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플랜더스의 개」말고도 위다의 또 다른 작품 2편을 함께 싣고 있다. 「뉘른베르크 난로」, 「우르비노의 아이」가 그것이다. 어쩌면 2번째, 3번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읽어보니, 두 번째 이야기인 「뉘른베르크 난로」는 그 내용이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건지, 아님 어린 시절의 아주 오래된 기억이 남아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플랜더스의 개」는 가난한 아이 넬로와 그의 개 파트라슈의 우정이야기이다. 여기에 더하여 방앗간 집 딸 알루아와의 우정 내지 사랑도 버무려져 있다. 가난하지만, 파트라슈와 함게 우유배달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넬로에게는 그림이라는 재능과 꿈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결말이 너무 슬픈 이야기. 비록 슬픈 결말을 안고 있지만, 명작은 명작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넬로를 향해, “가난한 사람은 선택권이 없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을 적신다. 하지만, 또 한편 작가는 예한 다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가난한 사람도 선택을 할 수 있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거야.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란다.” 이 음성이 오늘 삶의 밑바닥에서 힘겨워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도전과 격려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뉘른베르크 난로」 역시 가난한 아이가 주인공이다. 무능력한 홀아버지, 그리고 10명의 남매 가운데 5째인 아우구스트가 주인공이다. 아우구스트의 집에는 할아버지가 주워와 오랫동안 집안에 있던 명품 도자기 난로가 있다. 히르슈포겔이란 거장의 작품이기에 주인공이 히르슈포겔로 부르는 난로. 이 난로는 사물임에도 단순한 사물을 넘어, 주인공과 교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이 난로를 팔게 되고, 주인공은 난로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난로 안에 숨게 된다. 그리고 난로는 인부들의 손에 의해 골동품상을 거쳐 놀라운 곳으로 향하게 된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첫 번째 이야기 「플랜더스의 개」가 아이와 개와의 우정 이야기라면, 두 번째 이야기 「뉘른베르크 난로」는 아이와 난로와의 우정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찌 사람과 난로가 우정을 쌓을 수 있냐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 상상력이다. 작가는 글 가운데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은 부족한 점이 아무리 많아도 감쪽같이 채워주는 착한 요정과 같다.”(106쪽)
그렇다. 상상력은 착한 요정과 같아, 우리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뿐 아니라, 아이와 난로간의 우정을 가능하게도 한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난로와 함께 하기 위한 9살 남자아이 아우구스트의 집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지막 「우르비노의 아이」는 천재적 미술 재능을 가진 7살 남자아이 라파엘로(실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라파엘로 산티를 모델로 하고 있다)와 그러한 재능은 없지만 바르고 좋은 품성을 가진 루카와의 우정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재미난 공통점이 있다. 넬로도, 아우구스트도, 라파엘로도 세 편 모두의 주인공들은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으며, 미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그 꿈을 붙잡고 있다. 물론, 결말은 다 다르지만 말이다. 「플랜더스의 개」에서 넬로는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슬픈 결말을 맞게 된다면, 「뉘른베르크 난로」에서 주인공 아우구스트는 위기가 있었지만, 그리고 가난이라는 장애물이 있었지만, 난로를 향한 사랑과 집념이 결국엔 그 재능과 꿈을 가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마지막, 「우르비노의 아이」에서는 다르다.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조건들도 다 갖추고 있으며, 아울러 엄청난 천재적 재능까지 갖추고 있다. 뿐인가! 이런 재능에 더하여 우정을 쌓아가는 루카 형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까지 있다.
우리에겐 어떤 삶이 펼쳐지면 좋을까? 왠지 두 번째 경우에 제일 마음이 간다. 첫 번째는 슬픈 결말이니 그렇고, 마지막은 너무 모두 갖추고 있으니 왠지 정감이 안 간다(물론 라파엘로가 재능만 가지고 거장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위다의 작품 속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기에 정감이 안 간다는 의미다).
비록 지금 당장은 밑바닥이라 할지라도 집념을 가지고 올라 설 수 있다면 이런 인생이 더 멋진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왕의 배려와 은총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나의 삶 속에서도 내 집념과 노력, 여기에 더하여 날 향한 절대자의 배려와 은총, 그리고 주변의 사랑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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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플랜더스의 개 ◆지은이 : 위다 ◆출판사 : 시공주니어 ◆리뷰/후기내용 : ‘파트라슈가 죽거나 떠난다면 넬로와 할아버지도 쓰러져 죽고 말 것이다. 파트라슈는 두 사람의 목숨이자, 영혼 그 자체였다’ 플랜더스의 개는 슬픈 책이다. 어릴 때 만화영화로 처음 접했던 플랜더스의 개는 재미있었다. 넬로의 맑고 밝은 얼굴을 보면서 슬픈 만화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금 더 자란 후 만난 플랜더스의 개는 슬펐다. 경제나 사회의 흐름을 알기 시작하며 더더욱 안타까웠다. 이번에 다시 만난 플랜더스의 개에는 세 편의 동화가 실려있다. 플랜더스의 개, 뉘른베르크의 난로, 우르비노의 아이이다. 이제 고학년이 된 아이와 함께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엄마 플랜더스의 개를 보면서 슬프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이 책은 자세히 나와 있어요. 그래서 읽고 나니까 마음이 아프고 슬퍼요. “ 아이는 감동한 얼굴로 말한다. 너무나 슬퍼서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뉘른베르크의 난로와 우르비노의 아이도 읽어보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 읽겠다고 한다. 넬로와 파트라슈의 우정과 가난으로 인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넬로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끝까지 넬로를 지키려는 파트라슈의 모습은 아이를 돌봐주어야 할 어른들에 대한 질타가 아닐까 싶다. 뉘른베르크의 난로 역시 가난함 속에서 어른들보다 순수함을 간직한 소년의 신념이 가치를 가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른들이 읽으며 부끄러워해야 하는 그런 순수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우르비노의 아이도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가지의 이야기 모두 예술과 조예가 깊다. 그림에 대해 작품에 대해 책을 읽으며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가치를 배우게 된다고 할까.. 가난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을 꽃피우는 일에 대한 어려움. 가치를 알아보는 것의 중요함.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에 숙연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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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보고 싶은 만화나 영화가 있으면 아무때나 볼 수 있는데 우리 어릴때만 해도 TV를 보거나 비디오로 빌려보는게 전부였습니다. 세계명작동화 시리즈가 특히 인기가 있었는데 방송을 할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두근두근하면서 설레었네요. 순식간에 깥나고 나면 다음주 내용은 뭘지, 또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릴지 아쉬웠구요. 그 중에서 플랜더스의 개가 기억에 남네요. 어린 나이지만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 배달을 위해 추운 길을 나서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오래 전이라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했는데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어릴때 만화로 보던 이야기들이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로 하나둘씩 출간되고 있어 반갑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지만 어른이 봐도 어릴적 추억을 하나씩 생각나 관심있는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서 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어릴때의 단편적인 기억을 하나씩 끼워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제목은 '플랜더스의 개'이지만 이 이야기 외에도 '뉘른베르크 난로', '우르비노의 아이'를 같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TV에서 방영을 한것 같은데 책 서문에 나와있듯이 52화였네요. 하지만 실제 책의 60여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플롯의 이야기인데 그렇게 길게, 또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는지 새삼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화가 부럽네요. 파트라슈는 나쁜 주인 밑에서 고생하다가 넬로를 만나 같이 우유 배달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넬로는 집이 가난하기는 하지만 심성이 착하고,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성당에 있는 그림을 꼭 보고 싶은데 돈을 내지 못하면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본다고 해서 닳는것도 아니고 화가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원했을텐데 성당에서 마저 돈이 없으면 볼 수 없다는게 씁쓸하네요. 그렇게나 보고 싶어하던 그림을, 돈이 없어서 집에서 쫓겨나 밤늦게 성당으로 갔다가 우연히 커튼 뒤에 가려진 그림을 보면서 순간 행복에 빠집니다.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 순간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약간 울컥했네요. 넬로의 옆에는 평생을 함께했던 우직한 동반자 파트라슈가 함께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룬 다음날 아침, 착한 두 천사는 얼어죽은채 발견되네요. 최초의 주식시장이 네덜란드에서 생겨났을 만큼 당시 네덜란드는 상업이 빠르게 발전하시 시작하면서 많은 부를 쌓았는데 그 부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지지는 못했나봐요. 아직 어린 아이지만 현실의 냉혹한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짧은 삶을 마감한게 아쉽네요. 만약 방앗간 주인이 도와줬다면 넬로의 바램대로 위대한 화가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간만에 어릴때의 추억에 잠길 수 있게 되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작은 아씨들, 소공녀 이야기,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아직 제대로 못본 동화들이 많은데 시간날때 가끔씩 찾아봐야 겠어요. |
플랜더스의 개는 어렸을적 티비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귀여운 개와.. 슬픈 내용이였다는 것. 우유배달.. 이정도가 생각이 나는데요.
어릴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플랜더스의 개를 읽어봤습니다.
어릴적에 봤던 파트라슈와는 다른 모습..ㅋㅋ
플랜더스의 개의 내용은 대부분 많이 아시고 계시겠지만, (지금부터는 내용이니 혹시 싫으신 분들은 넘겨주세요.) 부모를 일찍 잃은 넬로는 친할아버지와 함께 단둘이 살다 죽어가는 파트랴슈를 구해주어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넬로의 친할아버지는 우유배달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고, 세월이 흘러 넬로가 연로하신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파트라슈와 우유배달을 하며 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도 그림에 대한 꿈을 키우며 살았던 넬로. 돈을 내야 볼 수 있었던 성당의 작품을 보기 희망하며 살았던 넬로.
어른의 이기심으로 더욱 힘들어졌던 넬로.. 그래도 그림대회의 당선을 꿈꾸며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넬로 결국 그림대회에 출품을 하였지만 당선되지 못하였고, 그로인한 낙심... 집세를 내지 못해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집에서 쫓겨난 넬로
결국 보고싶어하던 작품을 보면서 파트라슈와 추위에 떨며 눈을 감게 됩니다. 나중에 넬로의 천재성을 안 화가가 넬로를 제자로 키우기 위해 데리러 오지만 이미 너무 늦은 때.. 너무 슬펐던 플랜더스의 개입니다.
어른의 이기심은 왜이리 가혹한지요...
끝부분으로 가면서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래서 지하철에서 읽다가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니 눈물이..ㅠㅠ..
이 책에는 플랜더스의 개 말고 단편 2개가 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보니 저자인 위다작가님이 많은 작품을 남기셨다고 하더라구요.. 동화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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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잊고 지냈었던 <플랜더스의 개>는 어릴 적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걸 본 기억이 전부였는데 그 당시에도 무척이나 인상깊고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었다. 가난하지만 성심 바르고 착하며 성실하게 자란 넬로와 악덕 상인에게 버려졌지만 예한 한스 할아버지에게 발견된 후로는 따뜻한 보살핌 덕에 큰 버팀목이자 넬로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된 파트라슈는 서로를 보듬으면서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예한 한스 할아버지는 류머티스 병으로 인해 잘 걷지 못하게 되자 집안 살림은 어릴 적부터 넬로와 파트라슈에게 맡겨졌다. 이들은 수레에 우유를 실어 배달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래봤자 수입은 변변치 않아서 뗄감이나 빵과 수프를 조금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안트베르펜에 가면 사람들로부터 빵과 수프를 조금 얻을 수 있었고 뗄감으로 쓸 잔가지들을 받아올 수 있었다. 넬로는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에 가면 꼭 보고 싶어하던 루벤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이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양쪽 휘장으로 가려진 부분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부분까지 감상하려면 은화 1닢이 필요한데 가난한 넬로에게는 그럴만한 돈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휘장으로 가려진 루벤스의 작품을 보고나면 항상 파트라슈에게 전부를 다 보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넬로에겐 천재성을 보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는 것이었다. 비록 바위에 분필로 그리거나 연필이 전부였지만 그의 그림 그리는 솜씨는 남달랐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스스로 터득한 실력이었는데 방앗간 주인의 외동딸인 알루아의 초상화를 실제만큼 그렸는데 이를 안 방앗간 주인은 둘 사이를 떼어놓기로 작정한다. 항상 친하게 지냈던 넬로와 알루아, 파트라슈는 그래도 서로를 생각하면서 격려해주는 사이였다. 가난했지만 불평없이 지냈던 넬로는 그림을 배운 적도 없다. 더구나 물감을 살 수 없었고 조약한 도구들도 몇 끼니를 굶어서 마련한 것인데 분필로 그린 <쓰러진 나무에 앉아 있는 노인>이 전부인데 아주 멋지게 그린 그림이었다. 넬로에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해마다 안트베르펜에서 열리는 대회의 우승 상금이 2백 프랑이며,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세 명이 심사를 해서 가장 뛰어난 참가자를 우승자로 선정했는데 넬로는 봄부터 가을까지 그림에만 매달렸다. 그의 전부를 대회 우승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출품한 그림은 12월 1일까지 내고 발표는 12월 24일에 날 예정이었다. 근데 방앗간 주인인 코제 씨는 알루아와 만나지 못하게 할 심산으로 넬로에게 억울한 죄를 덮어씌우게 되는데 마을사람들은 그 이후로 넬로와 파트라슈를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돈도 없고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것 없는 넬로와 파트라슈는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몇 일을 굶은 넬로와 파트라슈는 안트베르펜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어보려고 하지만 다들 외면하며 차갑게 대한다.
추운 겨울 눈 내리는 날 십자가상에서 코제 씨 이름으로 된 지갑을 발견하는데 거기엔 2천 프랑이 들어있었다. 그걸 알루아의 어머니에게 되돌려주고 파트라슈를 남겨둔 채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자신이 넬로에게 심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달은 방앗간 주인은 다시 넬로를 찾으려 하지만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넬로는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한 루벤스의 그림을 보기 위해 대성당으로 간다. 파트라슈도 '자신이 가장 사랑한 것으로 보러 간거야'라며 대성당으로 달려간다. 이 부분에게 아마 눈물이 흐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마침내 루벤스의 작품 전체를 본 넬로는 그 곳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 죽고 만다. 천사들에게 둘러쌓인 채 올려지는 모습과 뒤이어 찾아온 방앗간 주인과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심사위원, 마을 사람들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이미 넬로는 가고 없다. 많은 교훈을 남겨주는 이 작품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데 이 책에는 위다와 플랜더스의 개가 탄생한 지역에 얽힌 이야기까지 알 수 있었고 위다의 작품 중 <뉘른베르크 난로>와 <우르비노의 아이>가 실려있다. 명작은 시대를 거슬러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큰 감명을 주는 이유는 잃어버린 인간성 상실의 회복과 착한 마음씨를 가진 주인공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세지를 남겨주기 때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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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더스의 개 참 오랜만에 읽어본다. 어렸을 때 읽어보고 성인이 된 지금 읽어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TV만화로도 재밌게 봤었던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는 눈물도 흘렸던 기억이 난다. 파트라슈가 죽거나 떠난다면 넬로와 할아버지도 쓰러져 죽고 말 것이다. 파트랴슈는 두 사람의 목숨이자, 영혼 그 자체였다. 개와 어린이가 주인공인 최초의 근대적인 이야기는 플랜더스의 개이다. 플랜더스의 개는 냉혹한 현실에서도 늘 한결같이 서로를 지켜주는 넬로와 파트라슈의 순수한 우정을 보여 주어, 초판이 출간된 이후 1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넬로와 파트라슈는 세상에 단 둘 뿐이다. 둘은 형제보다 더 깊은 정으로 맺어진 친구이다. 넬로와 파트라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평생 같이 살아오고 있다. 넬로의 집은 가난했다. 파트라슈의 주인은 그릇장사를 했는데 엄청나게 무거운 짐들을 파트라슈에게 끌라고 했다. 잘 못 끌면 허리를 후려치기도 했다. 그릇장수는 파트라슈를 이용해 돈도 많이 벌었는데 파트랴슈가 죽어가고 있자 그냥 무책임하게 길에 버리고 만다. 다스할아버지가 길에서 파트라슈를 보고 낑낑 대며 집으로 데리고 온다. 노인과 아이는 파트라슈를 정성껏 돌본다. 파트라슈는 마침내 기력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순수한 아이와 파트라슈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과 동물이지만 우정을 나눌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즘 동물학대를 하거나 반려견을 산에다 버리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동물을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생명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플랜더스의 개를 읽고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