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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 속 사진이 보였다. 현재의 딸과 과거의 엄마 사진이 맞닿아있었다. 엄마가 엄마이기 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딸은 다음 챕터에서 여성학과 젠더에 대하여 논한다. 여성 작가의 책을 예로 들어가며 성차별이 가져오는 문제를 돌아본다. 과거의 여성, 엄마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일들의 불합리함을 현재의 여성들에게 일깨운다. 현재의 여성들은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들의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겼다. 결혼하기 전에는 한 집안의 딸이었던 엄마가 며느리이자 아내, 엄마가 되면서 자유의지는 빛을 잃었다. 이 글을 쓰기 전 엄마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작가는 엄마에게 질문을 하면서 비로소 엄마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방법을 알기 전 엄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엄마랑 함께 여행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여유가 생겼는데 엄마는 계시지 않는다. 딸의 시선으로 엄마의 삶을 기억하려는 작업은 엄마를 이해하는 작업과도 같다. 삶이 바빠 엄마와 소원했던 시간을 지나 육성으로 듣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자 영원히 간직될 엄마의 기록이다.
작가인 딸이 엄마가 자라온 삶을 듣는다. 어른들의 선택으로 아빠와 결혼하게 된 엄마가 겪어야 했던 일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자행되는 또 다른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 사랑했던 할머니의 행동을 엄마의 육성으로 들으며 갈등해야 했을 입장도 이해가 된다.
기나긴 문학사에서 소수자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처럼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 울프적인 행위”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그리하여 여성 작가가 되는 것은 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로부터 이어져온 계보의 말단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임을 깨달았더라면 나의 삶과 글은 달라졌을까? (73페이지)
유년 시절부터 살아온 집과 그리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먼저 읽으며 작가가 가진 집에 관련된 기억의 편린에 공감했다. 좁은 집에서도 안방을 차지한 할머니와 자기만의 공간이라고는 부엌뿐이었던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엄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작업’이라고 표현했으며 엄마의 삶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여성학적 측면에서 엄마의 삶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순응하며 살아왔던 과거의 삶이었다면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14페이지)
오래전에 엄마가 건강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자매들과 자주 이야기한다. ‘엄마가 그때 그랬어.’ 때로는 아빠 원망도 해보지만, 어쩌겠나. 이미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을. 엄마의 기록이 사진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음성으로 된 것들을 남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날들을.
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의 언어는 숨겨졌고, 그것이 마음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다. 누구의 엄마도 아닌 누구의 아내도 아닌 한 사람으로 존재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들은 오늘을 살아야 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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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인간, 여성으로 떠올리게 된 것은 결혼 이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아이를 낳은 직후 부터이다.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무시며 나와 갓난쟁이를 돌보셨다. 외할머니가 엄마와 나를 위해 하셨던 일들을 당신도 지금 똑같이 하고 있다며 가끔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의 딸로만 살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도 하셨다. 나는 상상하지 못하는 시절, 그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에게 호된 시집살이는 없었지만 대신 무뚝뚝하고 언어폭력을 일삼는(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는) 그저 성실이 무기였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도 우리의 대화 소재로 종종 소환되었다. 엄마가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 할 때 마다 ‘힘든 아빠 곁에서 떠나지 않고 우리를 잘 키워줘서 고마워.’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의 지난했던 세월이 장성한 자식들의 안녕이나 행복으로 보상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나 싶네,,,’라고 말하던 쓸쓸하고 공허했던 엄마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 시간들을 떠올렸다. ‘엄마’에 대해 그리고 그녀에게 영향 받은 ‘나’에 대해 생각했다.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내가 엄마에게서 수용하고 싶었던 것 또 배반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엄마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늘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셨던 외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남동생을 낳은 일까지. 엄마가 더 자주적인 사람으로 살지 못해서 지금의 힘듦을 자초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엄마 역시 ‘내가 바보였지,,,’라는 말로 자신의 선택과 인생을 부정했지만 책을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엄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매순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엄마에 대한 나의 얇팍하고 건방졌던 마음을 이제야 반성한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라고 했다. 엄마에게 다시 자신이 되는 시간을 선사하겠다. 딸, 아내, 며느리, 엄마를 거쳐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된 ‘자신’을. 듣기 힘들고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을 묻고 경청하면서 말이다.
고선희님의 용기 있는 고백과 작가의 치열한 분투 덕분에 나도 나의 엄마도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또한 딸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새로운 과제도 주어졌다. 엄마 나와의 관계에서는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것들이 나와 딸과의 관계에서는 더 쉬워지고 새로워지길 바라며 ‘모녀 관계’의 확장을 꿈꾸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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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명한 책이라기에 책 좀 읽는다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책이라 기대하며 읽었다.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라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나는 딸이자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딸 대신 아들과 살고 있다는 점. 책에 많은 밑줄을 남기며 의문스러우면서도 이해가 되는 어머니가 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재연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우리는 수혜자이면서 비판자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어머니의 돌봄을 당연시하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이중성! 하지만 우리는 계속 소리를 내야 한다는 믿음은 확신으로 번졌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겨우 추리고 또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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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엄마를 보고 자라고, 그런 엄마를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엄마와 딸은 다정할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이해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건, 살아온 시기가 서로 달라서 그럴거다. 특히 나처럼 엄마와 딸의 관계를 평생 의문처럼 달고 질문해온 나로써는 이책을 읽고 굉장히 신선했다.
당연히 "엄마 다워야 한다" 는 말에 의문을 품지않았고, 그 기준에서 미달하면,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으니깐. 사실, 딸로써, 엄마의 사정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눈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번 엄마를 이해 해주면, 계속 이해 받고 싶어했고, 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엄마의 태도가 싫었다.
하재영 작가의 책을 읽다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사회도, 자녀에 대한 교육의 책임을 유독 엄마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도 그 사회 구조 분위기 속에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한 가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평생 돌봄의 주체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들을 키우고, 그 부모를 돌보고, 자녀의 자녀인 손자/손녀를 돌보고, 남편을 돌보고, 생을 마감하기 전 자신도 돌본다는 글 속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런 돌봄의 주체였던 사람들이 돌봄의 대상화가 되는것을 상당히 두려워 한다는 글에도.
돌봄의 주체가 된 엄마이지만, 그런 엄마들의 삶은 잘 기록되지 않고, 가족의 일부로써, 그 가족이 잘 기능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지움으로써, 희생하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잘 살아 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사회가 그들의 노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탓이다.
언제쯤이면 우린 남자, 여자를 떠나서 동등한 인간으로써 비슷한 고민과 질문을 주고 받으며 지낼 수 있을까. 남여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비슷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까 싶다. 여권 신장이 많이 이루어 졌어도, 여전히 갈길은 멀어 보인다.
남자 보다는 여자에게 더 가혹한 외모 평가와, 돈벌이 하는 엄마라도 항상 집안일은 아빠 보다는 엄마의 몫이었던 점과, 가족 돌봄의 책임에 엄마와 딸의 비중을 높게 두는 점 등은 과거나 현재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남성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한것으로 가두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등, 남성에게 주어진 차별도 함께 극복해 나가야겠다.
또한, 집안의 공간에도 주방은 여자, 서재는 남자의 공간이 아니라, 모두의 동등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날을 소망한다. 주방에서 가족들의 호출로 내가 하는일을 어느 일방만 중단되어지지 않는, 그런 평등한 입지, 함께 요리를 하고, 책을 읽고 사유하는 그러한 세계 말이다. 공간에도 지배력이 작용한다는 점을 하작가의 책을 읽기 전까진 크게 인식 하지 못했었다.
또한, 글을 쓰고, 읽는다는건, 내 개인적인 일일뿐 아니라, 비슷한 상황의 타인에게도 큰 힘이 됨을 하재영 작가를 통해 한 번 더 깨달았다. 발화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성을 과거에는 금기시 했던 것 같다. 기득권 남성들이 불편해지고, 기존 자신들의 입지에 균열이 생길 수 있으니깐.
그리고 "모성" 이런 신화에 갇힌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얼마나 허상인지, 깨닫는것만으로도, 우리네 엄마들이 가부장제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응어리가 녹게끔 하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다음 세대의 딸과 아들을 위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강력 추천한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란 제목처럼, 엄마를 기록하지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당찬 자녀들을 위한 지침서이자, 가부장제 안 답답한 응어리를 지고 사는 엄마, 아빠의 해방선언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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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저 휴머니스트 친구가 추천해서 냅다 지른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들려주는 형식의 문체는 언제나 옳다 엄마는 내게 애증인 존재이자 늘 미안한 존재다 아직 극 초반만 읽었지만 술술 읽히고 공감이 잘 된다 여성이라면 모두 한 번 읽어봤음 좋겠다 추천...! ... 례...? 아직 150자가 안 채워졌다고요...? 그럴리가 없어요... 이러지마요 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