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해국의 상대부로 있는 여방은 진나라의 시황이 장생불사의 명약이라며 사방으로 산삼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창해국에 진나라 무리가 들어올까 심려하게 됩니다. 한편 창해국 개골산에 서복이라는 자가 약초를 캐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시황의 횡포를 피해 망명한 한족으로 시황이 산삼을 찾는다는 말에 자신이 산삼을 찾아 시황에게 바치고 그로 인해 진나라에서 사람을 더 많이 보내 산삼을 캐가려 하게 됩니다. 산삼을 찾는 제를 올리는 제단 앞에 장승이 나타나 모두 진나라로 돌아가라 호통을 치고, 혼비백산해 돌아갈 궁리를 하게 되는데 제단 앞 장승은 여방의 아들 여민옹으로 모든 건 그가 친구들과 꾀를 내어 진나라 군을 쫓아내기 위해 행한 일이었습니다. |
|
出典 : <少年>. 1937年 7月~12月 只今으로부터 四千二百七十餘 年 前의 일이다. 그때의 社會라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發達되지 못하였다. 나라 ─ 國家라는 것도 아주 分明치 못하였다.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과 달라서 머리가 聰明하여 짐승같이 但只 天然的 物件에만 滿足하지 못하고, 自己의 힘으로 좀 더 어떻게 잘살아 보자고, 農事짓는 法도 發明하고, 사냥이며 고기잡이도 하며, 집을 지어서 大自然의 덥고 추운 것을 防備하며 ─ 이렇게 나날이 더 잘살아 갈 方法을 硏究하며 實行하며 살아 왔다. 그렇게 되니까 저절로 農事 잘 짓는 사람은 平地에서 살고 고기잡이 잘하는 사람은 江邊이나 바닷가에서 살고 사냥 잘하는 사람은 山으로 가고 ─ 이리하여 部落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洞里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部落이며 동네가 많아지면, 部落部落끼리, 동네동네끼리의 指導者가 또 있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여러 部落이며 여러 동네를 合친 꽤 넓은 地域을 指導하고 支配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임군이라는 높으신 이가 계시어야 되게 되는 것이다. 위에 말한 四千二百七十餘 年 前에 扶餘 系統의 여러 部落들이 議論하여 임군으로 推戴한 거룩하신 분이 檀君이라 일컫는 분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그는 日帝 末에 內鮮 一體와 皇民化를 主張하고 日帝의 植民支配 統治 理念을 作品에 內面化한 親日 作家이다. 따라서 金東仁은 民族文學作家會議, 民族問題硏究所 等에서 發表한 親日 文人 42名의 名單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民族問題硏究所가 發刊한 ≪親日人名辭典≫에도 그의 이름이 包含되어 있다. 또한 ‘親日反民族行爲 眞相糾明委員會’에서 發表한 ‘文學 分野 親日反民族行爲者’ 31名의 名單에도 그의 이름이 收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