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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事物에는 明한 一面이 있으면 반드시 또한 暗한 나머지의 一面이 있읍니다. 暗이 따르지 않은 明한 面은 決코 없읍니다. 해를 만드신 하나님 또한 그림자도 만드시기를 決코 잊지 않으셨읍니다. 이 世上 原則에 어그러지는 일을 어떻게 보든가 行하든가 하겠읍니까. 아이가 長成하기는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長成이라 하는 것은 換言하면 一刻一刻 죽음의 旅程을 채이는 것에 지나지 못합니다. 子息이 많기는 누구나 願하지만 ‘子息이 많은 者는 근심이 많으나니’ 라고는 벌써 4千 年 前에 傳道者가 喝破한 배외다. 舊時代의 封建制度는 貴族과 平民의 새를 너무 트게 하였읍니다. 여기서 생겨난 不平은 마침내 産業革命으로서 일어났읍니다. 貴族은 없어졌읍니다. 四海의 百姓이 모두 平民이 되어 産業에 힘을 썼읍니다. 이리하여 現代化된 것이 燦爛한 今世紀의 科學과 文明이외다. 이 뒤로 文明이 어디까지 發達될는지 그것은 豫斷을 許諾치 않되, 이 燦爛한 20世紀의 文明은 産業革命 以後의 資本主義의 發達이 맺은 아름다운 열매임을 否認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明한 一面이 있으면 반드시 暗하다는 一面이 좇나니 極度로 發達되는 資本主義의 裏面에서는 暗雲이 일고 또 일었읍니다. 資本主義는 人類의 本能과 欲望의 必然의 結果로서 생겨난 것으로서 거기는 理論이 世紀보다 먼저 實踐이 앞섰읍니다. 자꾸 前進하는 ‘實踐’의 뒤를 ‘理論’ 은 숨을 허덕이며 따라갔읍니다. 理論이 實踐의 뒤를 따랐다 생각할 때는 實際의 現象은 벌써 理論보다 훨씬 앞서서 딛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資本主義는 資本主義의 理論이라 하는 들러리를 뒤에 달고 20世紀라는 軌道를 全速으로 닫고 있읍니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그는 日帝 末에 內鮮 一體와 皇民化를 主張하고 日帝의 植民支配 統治 理念을 作品에 內面化한 親日 作家이다. 따라서 金東仁은 民族文學作家會議, 民族問題硏究所 等에서 發表한 親日 文人 42名의 名單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民族問題硏究所가 發刊한 ≪親日人名辭典≫에도 그의 이름이 包含되어 있다. 또한 ‘親日反民族行爲 眞相糾明委員會’에서 發表한 ‘文學 分野 親日反民族行爲者’ 31名의 名單에도 그의 이름이 收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