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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애플의 이데올로기와 커리큘럼>
- 당신은 교육자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중립적인’ 교사인가?
- 당신은 중립적인 학교교육의 중립적인 참여자인가?
교육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교육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교육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정치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p.25)
교사들은 자신의 활동이 중립적이고,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때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학교교육 자체가
경제적 성과를 놓고 볼 때 중립적이지 않다.
번스틴과 부르디외 등이 보여주고
윌리엄스가 지적한 것처럼,
학교가 많은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학교가
경제적·문화적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기관이라는 사실도
경험적 증거로 드러났다.
둘째,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사회적으로 이미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자본의 형태를 취하는 이 지식은
사회의 어딘가에서 온 것이며,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단의
관점과 신념을 반영한다. (p.37)
나는 교사가 ‘사회개혁가’라고 생각해왔고,
그러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미래의 사회를 이끌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지식과 질서가
사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는데 적합하다면 어떠한가?
기존 사회가 한정짓는 범위의 지식을 배운
아이들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교사는 ‘사회개혁가’가 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경제적 상황에
내가 ‘갇혔다’는 것을 깨닫고
지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다루는 지식이
누구에 의해 정해지고,
누구의 이익에 기여하는가?’하는
의문을 접어둔 채,
교사가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만
매달린다면,
그의 삶은 일상적 이해에 매몰되어
그것에 순응하는 결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요즘 화제인
‘커리큘럼 재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의 본질에는 다가서지 못한 채
기존 지식을 이리저리 필요에 따라 옮기고
나누고 합쳐본들
진정한 교육은 보장하기 어렵다.
커리큘럼은 전문가가
세심하게 고려하여 구성한 것이므로
교사는 현장에서 실행만 하면 된다는
관행적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모든 것은 공허한 노력에 불과하다.
커리큘럼은 국가의 것이 아니다.
커리큘럼은 국가와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가르침과 배움의 방향이자 내용이며,
또한 가르치고 배우는 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p.378)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충격과 함께 깨닫고
교육과 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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