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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의 숨막힐 듯한 속박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새 세기를 맞은 영국의 지식 계층은 다양한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합니다. 다른 나라의 발달 국면과 비교하여 영국의 그것이 언제나 눈에 띄는 점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 담론과, 이른바 "시대정신"에 매몰됨 없이, 개인과 개성, 개별성의 건강한 성장이 언제나 제 색깔, 제 향기를 가지고 각각의 텃밭에서 피어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모 줄리아 스티븐 (출처: 위키피디아)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잘 알듯, 결국 발작 끝에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녀는, 특유의 섬세한 정서와 칼날 같은 이성이 주는 영혼에의 길항을 견딜 수 없었던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만, 파국의 결단이 내려진 그 순간의 정신상태를 두고 의학적인 재단(정상/비정상)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특별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소수 지식인들의 멘털은, 얕고 속된 상식론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아닙니다만, 지난 세기 말 프랑스의 천재적 맑시스트인 루이 알튀세르가,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결국 책임조각사유가 증명되어 풀려 난 일도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정신은, 다른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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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는 메모광이다. 어떤 때는 아침에 산 볼펜이 저녁이면 다 떨어졌다고 한다. 하루에 볼펜 한 자루를 다 쓸 정도로 끊임없이 메모를 한다. 타이핑보다 더 날렵하게, 더 많은 글들을 써내려 간다.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도, 따라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글 쓰는 것이 습관 되고, 즐거운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쓰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 많은 글들을 손으로 베껴 쓰는데 만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의 수고가 필요할까를 생각하면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존경스럽다. 그런데 아마 소설가 대부분은 일단 글을 쓰는데 익숙하고, 단련이 되어 있고, 즐겨하는 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존재의 순간들>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역시 메모광, 글쓰기 달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그냥 느끼고, 생각하고 지날 일들을 모두 글로 옮겨 놓은 것들이다. 생각하기만도 힘든 일들을 모두 글로 모아 놓았다. 아마 힘든 마음들을 잊기 위해서 수도 없이 펜을 들고 쓰고, 또 쓰고 했던 것 같다. 이것이 메모로 남아서 후에 이 작품 <존재의 순간들>이 나온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가 울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위대한 문학가는 세 종류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본다. 첫째, 극도의 고난 속에서 나온 깊은 사색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둘째, 환경적 요인보다는 개인적으로 센치멘탈하며, 우울 기질이 있어 남들이 느끼거나 보지 못하는 것들 사색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셋째, 스스로 고난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 고통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 느낌들을 기록한 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박경리님의 삶의 애환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두 번째 경우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그리 어렵지 않은 환경 속에서(개인적으로는 힘든 상황이었겠지만 비교해 볼 때) 자랐음에도 지극히 예민하고 우울기질이 강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기록한 부분들이 많다. 세 번째 경우는 헤밍웨이다. 그는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군에 자원 입대하고, 건강문제로 제약을 받자 다시 종군기자로 투신하여 몸소 전쟁의 큰 소용돌이에 몸을 던진 느낌들을 기록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존재의 순간들>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음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울프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울프가 1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울프는 이 책 곳곳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대부분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 오랫동안 빈자리로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존재감이 너무나 컸던 것 같다. 아니 울프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다른 형제들이 느끼지 못하는 공허감이 그에게는 특별히 많았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스텔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그들의 죽음이 입힌 피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p204 여기서 어머니와 언니의 죽음이 가져다 준 자신에게 온 아픔에 대해 생각한 것이지 그 엄마와 언니 자체를 생각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버지니아 울프는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공백으로 괴로워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해 못내 아파한다. 책임감이 큰 성격이었던 것 같다. 어린 딸로서 천진난만하게 그냥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울프는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책임감 때문에 아버지와 하기 싫은 산책을 하고, 함께 있어 드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런 책임감, 남들에 대한 부담감이 글을 쓰게 만든 것 같다. 그의 글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을 얻었다.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만큼 무서운 것은 세상에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 사람 본인을 이기주의만큼 잔인하게 해치는 것도 없고, 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도 이기주의만큼 잔인하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없다.”(p222) 하고 있다. 이런 글을 볼 때 얼마나 울프가 남들에 대한 배려심, 아니 지나칠 정도로 남을 의식하는 모습이 배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이 바로 글을 쓰게 하는 힘이었다. 또한 울프는 부와 인기를 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자신을 최고의 작가로 찬사는 보낼 때 좋아하면서도 과연 이런 마음이 속물근성 때문이 아닌가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한껏 그 인기에 젖어 행복감에 휩싸여 지낼텐데 울프는 그것마저도 성격상 쉽지 않았다. 이런 센티멘탈이 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이 보관(寶冠)에 홀딱 넘어가는 그런 속물일뿐 아니라 불을 훤히 밝힌 응접실을 좋아 하는 속물, 즉 사교적인 잔치를 즐기는 속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어떤 집단이든 옷을 멋있게 갖춰 입고 사교적으로 빛을 번쩍인다면 그 집단은 낯선 사람들일지라도 나에게 효과를 발휘할 것이며, 확고한 진실을 흐려놓을 화금과 다이아몬드 가루를 피워 올릴 것이다.”(p316)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버지니아 울프는 조그만 누림에도 예민한 금욕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성향이 예민하게 사람 속 마음을 간파하고 그 것들을 글로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한 것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그 성격 자체에 대한 만족은 아닌 것 같다. 지나치게 예민한 자신을 자책하는 듯한 모습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문학가들의 현상이라 생각한다. 이상 역시 자살을 했는데 얼마나 그 내면 속에 주체할 수 없는 아픔들이 녹아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박경리님 또한 남편을 부역의 대상으로 잃고 아들을 먼저 보내고, 사위마저 감옥에 보냈어야 하는 아픔들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 모두 자신의 처한 환경이나, 성격을 좋아해서 받아들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개인의 아픔들이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다. 일반 대중들의 아픔을 문학가들이 고스란히 당하고 그 고통들을 글로 써서 감동을 준다는 것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오직 감사할뿐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감사한다. 울프의 작품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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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사실 무턱대고 읽어내려간 책이지만 책 맨 뒤편에 있는 옮긴이의 글에 따르면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 봄 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난 뒤에 발굴된 원고들을 모은 것이라 한다. 작품보다도 오히려 생애가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작가로서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존재는 책보다는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 중 하나는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으로 버니지아 울프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니콜 키드먼이 버지니아 울프로 열연했던 "디 아워스(The Hours)"였다. 특히 "디 아워스"는 매우 감동적인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작품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런 해제 없이 이 책을 마주대하니 이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이름들이 낯설었다. 물론 그 심연의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흥미로웠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글은 세여자 줄리아 스티븐, 스텔라 덕위스, 바네샤 벨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친언니 바네사 벨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여자들은 버지니아 울프에게 엄마, 언니들이 된다. 자신들의 삶은 대단히 소박하고 규칙적이었다면서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의 섬세한 감수성이 물씬 풍긴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재혼이라 배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들 각자의 삶이 어떤 원형을 이루는 조각들과 같다고 인식하면서 글이 전개된다. 특히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죽음과 맏이 역할을 했던 스텔라 언니의 죽음이다. 그래서 친언니 바네샤가 매우 섬세한 예술적 재능을 드러내고 있었음에도 그 자연스러운 성장이 방해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이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척 파괴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가슴 아팠다.
그 가족에게 죽음은 비극적 상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환멸감까지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 책은 어머니의 죽음 역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한 마지막 입맞춤을 차가운 강철에 입을 맞추는 느낌이었다고 묘사하면서 자신의 나이 열세 살 때 어머니가 죽었음에도 자신이 44세가 될 때까지 그것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이 44세 때 쓴 작품 "등대로"에서 그 어머니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어머니의 기억의 힘을 상당 부분 털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와 비교하여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애정은 더욱 심오하게 묘사된다. 아버지가 열 살 더 젊었거나 자신이 나이가 더 들었거나 아니면 중재를 할 엄마나 언니가 있었다면 자신의 고통과 분노와 외로움이 많이 덜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천재가 되려던 좌절된 욕구와 일류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걷잡을 수 없는 낙담과 이기적인 성격으로 아버지를 변모시켰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이 어린 시절 방 침대에 누워서 본 집안 풍경들을 묘사한 것이었다. 다양한 빛깔과 소리에 대한 풍부한 표현들이 전해주는 질감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했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정어잡이, 레가타라는 보트 경주대회로 묘사되는 세인트 아이브스에서의 삶과 빅토리아 시대 중상류층 삶을 보여주고 있는 런던의 켄싱턴 가든에서의 삶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인상적이었다. 또한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던 블룸스버리 모임을 주도하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특히 자신에 대한 표현이 재미있다. 자신이 너무 무식하고 교육 받은 것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 자만심이 매우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의 자만심은 순전히 속물적인 것이었다는 것, 청교도적 기질로 거울을 쳐다보는 것도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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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큼이나 삶도 죽음도 소설 같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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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순간들]목마와 숙녀의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 에세이, 섬세하고 예리해~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나왔던 이름, 그래서 선명히 기억되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이 책은 불멸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 에세이다.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언니인 바네사 벨의 권유로 쓴 회고록 형식인데, 자신의 유년 시절 회상, 과거의 스케치, 회고록 클럽 원고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록, 작가로 성공한 이후의 느낌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고 잔잔히 흐르는 물결처럼 과거의 내면세계를 훑어내고 있다.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다운 예리한 통찰력으로 말이다.
한 장의 사진이 그녀의 생김새를 알려주는 최고의 증거물이며, 이 경우에 사진 속의 얼굴은 성격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두 눈에선 부드럽고 꿈꾸듯 하고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이 읽힌다.(책에서)
2차 대전이라는 시대적 암울함 때문일까, 아니면 집안 자체에 우울한 기운이 있는 걸까. 자신의 언니 사진에서 우울한 표정을 읽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도 몽상적이거나 우울하다.
버지니아의 아버지는 영국의 알려진 작가이자 비평가이자 등반가였다. 어머니는 미모의 자선활동가였다. 그리고 부모님은 둘 다 재혼이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평생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버지니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도 역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13세에 맞은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의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 된다. 이후 그녀는 신경쇠약 증세로 시달리기도 한다. 가족 모두에게 중심적인 축의 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죽음은 오랫동안 모든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열다섯 살이든 아니든, 예민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인해 뭔가를 예리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나의 어머니의 죽음은 잠복된 슬픔이었다. (책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감정이 미처 처리되지도 못한 채 2년 뒤 언니 스텔라의 죽음은 불안하고 보호받지 못한 소녀의 감수성에 더욱 충격적이었으리라. 앞의 강한 바람에 채 단련이 되기도 전에 연이어 불어 닥친 광풍 같은 시련처럼.
아직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흐린 상태에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이제 막 깨고 나온 자신의 껍질 옆에 앉아 파리하기 떨고 있는 나를 한 번 더 죽음이 강하게 내리쳤다.(책에서)
그녀에게 있어서 찬란하고 행복한 생의 순간은 유년의 시절, 그것도 어머니의 죽음 이전 이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후로 생의 위대함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는 버지니아 울프,
나에게 있어서 위대함은 언제나 긍정적 자질이었고, 울림이었고, 괴벽스럽기도 했으며, 나의 부모에 의해 의무적으로 이끌린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육체적 실재이며 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책에서)
이후 언니, 아버지와 형제들, 조카들의 죽음을 보며 그녀의 신경쇠약 증세는 반복되기도 해서 자살기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조카들을 먼저 보내면서 느꼈던 인생무상과 허무가 작가의 내면을 뒤덮고 있었을까.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존재의 순간은 충격이나 깨달음, 계시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으로, 개인의 실체를 온전히 느끼는 순간을 말한다. (중략) 버지니아에게는 뭔가 깊은 깨달음이 수반되는 것이 존재의 순간으로 여겨진 것 같다.(옮긴이의 글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독특한 글쓰기는 버지니아 울프를 20세기의 대표적 모더니스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글에서도 그녀만의 독특하고 모호한 형식이 빛을 발한다. 개인적인 체험 속에서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그녀만의 예리한 통찰력과 관찰력은 솔직해지기 위한 자기성찰일 것이다. 그녀의 의식을 따라가는 성찰은 섬세하면서도 복잡하고 어렵기까지 하다.
섬세하고 예민한 그녀에게 인간관계, 일상, 자연관찰에서 문득 깨치는 강렬한 깨달음의 순간, 즉 존재의 순간들은 거의 매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감정들이 신경쇠약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을 텐데.
힘겹게 자신의 고통과 마주하는 시간,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내면과 오롯이 함께하는 순간들에 대한 솔직한 묘사들이 어렵지만 그녀만의 매력을 알게 한다.
그녀의 회고록을 보면 산다는 건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생존욕구, 그 너머의 의미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성적인 언어 이전의 의식을 흐름을 따라가며 삶의 깊은 내면을 보는 그녀의 의식 세계는 보통의 무딘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가족 간의 교감, 친구 간의 소통, 자연과의 교감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통찰이 자신의 존재를 실감나게 할 것이다. 오늘 하루, 그렇게 존재의 순간들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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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존재의 순간들 - 그녀가 직접쓰는 그녀의 순간들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인 <존재의 순간들>을 읽었다.
1.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조카인 줄리안 벨에게 그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언니인 바네사 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유년기를 볼 수 있다. 제목처럼 어머니인 줄리아 스티븐과 이복 자매인 스텔라 덕워스, 친언니인 바네사 벨을 차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린 나이에 겪은 죽음과 그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일찍부터 경험한 죽음이 버지니아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 그녀의 섬세하고 분석적인 기록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부 과거의 스케치에서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룬다. 회고록 작가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책의 제목인 ‘존재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서 다뤄지고 있다. 세인트 아이브스에서의 어린아이 시절과 죽음이 강타했더 순간, 1897년부터 1904년까지, 불행했던 그 7년(204p)과 아버지에 대한 묘사, 조지와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2부는 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직접 쓴 그녀의 회고록으로 그녀가 자살하기 4개월 전까지 쓴 글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 3부 ‘회고록 클럽’은 회원들 앞에서 읽기 위해 쓴 것으로 문학적으로 성숙되어 가던 시기의 글(옮긴이의 글 343p)이 실려 있다.
2.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저씨와 아주머니, 사촌과 친구들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다. (73p )는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특히 2부에서는 그 능력이 돋보인다. 물론 날짜를 적는 일종의 일기 형식으로 언제라도 이어 쓸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또 다른 이야기로 전환하여 길고 긴 이야기를 술술 써내려간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썼던가. 그리고 그 기록은 얼마나 세부적이고 깊이 있던가. 누군가는 ‘혀를 내두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녀의 표현력에, 그녀의 글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3. ‘존재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비존재의 순간들에 묻혀버리는 존재의 순간들. 하루 온종일 비존재로만 살며 보낸 것은 아닌가, 정신이 번쩍 났다. 충격이든, 충격적인 깨달음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자신의 존재의 실체를 온전히 느끼는 순간. 드물었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그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존재의 순간들이었다. (97p) 그녀의 말을 상기하며. 그 외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스텔라와 조지의 이야기를 깊이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들과의 일화는 마치 소설처럼 읽혔다. 어머니와 스텔라의 죽음 이후 버지니아 울프가 겪어야 했던 불안과 공포, 그들의 죽음이 입힌 피해에 대해 생각(204p)들, 자신의 감옥에 갇혀 고립된 아버지, 폭력적으로 분노를 폭발하고 탐욕스럽고 뻔뻔한 칭송을 원하는 아버지, 상류사회에 집착하는 조지, 어두운 밤 버지니아의 방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의 침대 위로 몸을 던지는 조지. 3부에서는 나는 속물인가? 자문하는 마지막 장이 재미있었다. 속이고 비난하고 약속을 퇴짜놓으면서도 시빌과 계속 만났던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버지니아의 질문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몇몇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그녀를 따라 물었다. 나는 속물인가?
4. 그래도 솔직하자면, 읽기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빼곡하게 지면을 채운 번역문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만나는 ‘지시대명사 쫓아가기’에도 바쁜데 내용을 이해하기에도 나는 급급했다. 특히 어마어마한 분량의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 세인트 아이브스의 아이방 부분이나 그녀의 집 구조를 일일이 다 설명해주던 부분 등- 자주 놓치고 벙쪘다. 부끄러운 고백이겠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서 그릴 수가 없었던 것. 여기서는 잠깐 졸기도 했다.
5.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애정하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살았던 이야기를 직접 그녀를 통해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좋아하는 상대를 더 깊이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법. 이전보다는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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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주로 그녀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는데, 한 인간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절이 바로 유년 시절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도 자신의 20대나 30대에 한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유독 어제 겪은 일처럼 유년 시절의 모습과 겪었던 상황에 대한 느낌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부분들이 많다. 아마 처음 세상에 대한 시각이 트이고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의 예민함으로 그 시절엔 존재의 순간들로 더 많이 채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책의 제목인 존재의 순간들이란 버지니아 울프에게 강렬한 깨달음을 준 순간들을 뜻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관찰하고 있던 나무와 꽃에서 불현듯 깨달음처럼 다가오며 자신이 훗날 한 번 더 숙고해 볼 요지가 있어 마음속에 담아둔 그런 순간들에서 존재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 반면에 비존재의 순간들이란 먹고 마시고 자고 대화하는 등의 의식적인 생활들로 개인이 존재의 실체와 분리되어 있는 순간들이다. 때때로 다이어리가 밀려 지난주나 어제 무슨 일을 했나 기억해보려 애써도 과연 내가 그날을 살았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이 바로 비존재의 순간들로 채워진 하루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삶을 비존재가 아닌 존재의 순간들로 더 많이 채워야 함을 느끼게 된다.
책은 그녀가 회고록의 형식으로 적어나간 글을 모은 것인데, 평소 명성에 걸맞은 유명인사와의 교류나 작품을 집필하는 시간 동안의 고뇌를 담은 얘기보다는 대부분 그녀의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자신의 생을 자살로 마감한 그녀이기에 삶에 비극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항상 염두에 두었는데 실제로 그녀의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들은 무덤덤하고 차분하게 들린다. 그리고 분명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행복했던 순간들도 담고 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집안의 큰일을 이끌고 가족들에게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했던 엄마와 이복 언니의 죽음으로 집안의 남자들에게 관습적인 여성으로의 역할을 해야 했던 그녀의 상황들을 보면, 너무 먼 나라의 관습과 시대 상황 탓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적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의 무게가 충분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 조카를 여럿 먼저 보내야 했던 삶에서 그녀가 느꼈을 상실감이 어느 순간은 무디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어 힘겹게 다가오기도 한다.
고통은 그 순간에는 다스려지는 듯하다가도 후에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시 느껴졌다. 우리의 모든 환경에는 고통 혹은 나른한 불편, 말하자면 일종의 불안과 목적을 상실한 무력감 같은 것이 있었으며, 이것은 상실의 순간에 느꼈던 그 아픔보다 더 나빴다. (p.61)
종종 작가들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단지 그렇게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쓴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자신의 고통을 글로 쓰면서 괴로웠던 기억을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작가들이란 상처받은 기억들에 관해 쓰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작가로 태어난 사람들은 그 고통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온전히 그 고통을 마주하며 관찰하고 더 깊이까지 파내 결국엔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는 동시에 거기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흐름을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가 지인에게 회고록 형식의 글을 써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기억의 등불을 현실 생활의 모험과 흥분에 비추지 말고 그 대신에 그 불빛을 우리의 내면으로 돌리고 우리 자신을 묘사하기’ 위해 기억해낸 시간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간과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픔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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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서 한때는 다가가기 어려운 작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글을 읽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는 상당히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그녀의 책을 직접 읽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요하게 된 불필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듯도 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반적으로 상상되었던 혹은 영화나 다른 글에서의 짧은 언급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어느 순간 고정되어서 그녀의 책을 선택하는데 주저하게 만든 부분도 없지 않은 듯 하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책에 소개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에 대한 짧은 글을 읽게 되고, 그러면서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구입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으나 여러 권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책 가운데 하나였고, 그렇게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예술적인 기질, 예민함, 명료함, 섬세함, 그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문장으로 전달되는 그녀의 능력을 조금은 읽게 되면서, 그녀의 책을 읽고 싶다는 그리고 작가인 그녀의 삶 또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의 순간들]은 그녀의 유년시절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이자, 이를 통해 그녀가 가지고 있으며 느끼고 있는 경험, 순간들,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존재감과 이를 표현하는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어렸을 적의 경험을 오롯이 표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마주했던 순간들과 사람들에 대한 표현,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언니들을 그리고 가족들을 표현하는 문장을 읽으면서 그녀의 소설과 비슷한 감성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보다 진솔하고 보다 직접적이며 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재미있기도 했다. 또한 그 명민함이 발현되는 순간들에서는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 그녀가 그 존재감을 충분히 느꼈던 순간들에 대해서 이를 글로 적고 있는 것만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지만, 버지니아 울프를 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그녀의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이번 기회에 읽지 않았던 책들을 다시금 한권씩 읽어나가려 한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매력은 그녀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도 물론이지만, 이상하게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시들을 읽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원래 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도, 그녀의 책들을 읽다보면 꼭 시집을 읽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번에는 그녀의 책과 함께 시집을 같이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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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리뷰에 없는 말만 하자면,
이 책 상당히 정신이 없다.
저자의 소설들에서 보이는 의식의 흐름은 꽤나 정제된 상태로 느껴질 정도로 내용의 경중이 오로지 저자만의 생각에 따르고 있기에 사건, 사건을 상식에 따라 읽기에는 상당히 힘들다.
편집은 거기에 더해 더 어지럽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는데,
발표 순으로 하지 않고 내용 순으로 한 탓인지
저자가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 그리 잘 드러나지 않고 저자의 심리만 더 복잡해 보이게만 한다.
좋게 말해 통찰력이니 섬세한 감수성이니 말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 상상하고서 정신승리를 하거나 실망감에 빠져버린다고 할 수 있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저자가 제멋대로 추측하고 상상하는 사람이라는 의심이 강해지기만 한다.
물론 제멋대로 추측하는 성향이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소설을 쓰는 데에는 매우 좋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상당히 정신 사납게 쓴 글의, 연대기 순이 아닌 편집 본이라는 점을 명심하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