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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정성에서 오는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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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정성에서 오는 진정성 ― Joseph Conrad,《The Secret Agent》     “you have done nothing to earn your money." “Nothing!." exclaimed Verloc. (p.19)   이것은 무정부주의자로서의 벌록을 인정하지 않는 것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면서, 그의 지난 날, 그의 정체성을 깡그리 붕괴시키는 발언이었다. 블라디미르 앞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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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정성에서 오는 진정성

― Joseph Conrad,《The Secret Agent》

 

 

“you have done nothing to earn your money."

“Nothing!." exclaimed Verloc. (p.19)

 

이것은 무정부주의자로서의 벌록을 인정하지 않는 것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면서, 그의 지난 날, 그의 정체성을 깡그리 붕괴시키는 발언이었다. 블라디미르 앞에서 그의 자존심은 자꾸 깎여만 간다. “게으른 인간”(“you are a lazy fellow."), “살찐 동물”(“He's fat―the animal.")이라는 발언은 벌록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이 모욕감, 수치심의 근원은 어디일까.

벌록은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무장된 채 자신의 임무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는 천성적으로 게으르며, 그의 몸은 ‘아나키스트다운 체형’을 갖추지 못하고 비대하다. 또 도시의 안락함과 화려함에 만족하면서, 스스로 이 사회질서의 수호자라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는 광적인 무기력감과 무기력적 광신에 매몰된 채 움직임은 없고 말만 한다. 이 모든 비진정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우스꽝스럽다가도 비장(悲壯)하고, 위선적이고 게으른 혁명에 뒷골이 당기다가도, 읽는 내내 정신이 번득였다.

작가 콘래드(Joseph Conrad)는 식민지국가였던 폴란드출신이다. 그의 조국이 면면히 가지고 있던 불안, 공포, 비애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 지도를 조망(眺望)하면 크게는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문제가 담겨있다. 거기에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보면 부부관계에서 출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삶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위니의 철저한 무관심에서부터 시작된 비극이기도 하지만, 벌록이 장모와 스티비를 가구(furniture)처럼 떠맡았다고 생각한 데서부터, 비극은 움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벌록에게 위니는 두꺼운 벽의 다른 쪽에서 의미 없이 들려오는 왕왕거리는 하나의 목소리(voice)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불안함을 부추겼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존재를 위협하는 것의 등장으로, 그 정체가 부정(否定)되고, 정체성이 위태로워지면서, 또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모호해지면서, 아이러니컬하게 정체가 전복(顚覆)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당하는 것은 벌록이다. 블라디미르가 벌록의 아나키스트적 자아를 위협하는 것이다. 벌록에게 블라디미르가 나타나 벌록의 존재를 바닥까지 헤집는다. 그의 삶에 폭탄을 투하하고,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벌록은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려는 낌새에 두려워한다. 이 런던사회의 질서와 메커니즘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전혀 한 일이 없다는 블라디미르의 일침에, 삶의 힘이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 차오른다. 이것은 벌록 개인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지만, 결국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부부마저도, 가정마저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는 벌록에게 선동하는 목소리가 아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실을 원한다. 벌록은 목소리야말로, 자신이 아직 쓸모가 있는 부분적인 이유라고 얘기했지만, 그 목소리가 흉내만 내는 아나키스트라는 것을 증명하고 만다. 행동은 없고, 오직 선동하는 무정부주의자는 가짜다. 그런데도 그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일을 벌인다. 벌록의 모습은, 환상과 착각 속에서―자기 모습이 아닌데 자기 모습인 줄 알고 거기 기대어 살아가는―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가장 얼간이에 멍청이면서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 자존심에 기대어 살아가는 벌록을 통해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벌록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과학’이란 말만 들어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압박감에 시달린다. 벌록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가고, 불안한 심리상태에 아내 위니에게 모든 비밀을 고백하려는 충분한 용의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위니의 관심사는 오로지 스티비 외에는 없다. 계속 스티비…스티비…이야기만 한다. 스티비가 원, 원, 원으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해간다면, 위니는 오직 스티비, 스티비, 스티비로 살아간다. 그것이 위니의 정체성이다. 그것을 벌록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야말로 불면의 밤을 보낼 수밖에 없다. 철저한 어둠에 방치되어, 캄캄한 세계를 위태롭게 비틀거리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다.

《The Secret Agent》에서 행동은 없고 말밖에 없는 아나키스트, 예언에 불과한 것들을 떠들면서, 거창하게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법이라는 사도(apostle), 선동하는 문구를 적을 따름이지만 아나키스트라는 존재감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한 채, 영원히 비밀(secret) 속에 가둬진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곧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들처럼 위태롭게 안개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암흑(darkness)으로 가득한 세계, 이 불완전한 세계를 걸어가야 한다.

거대한 도시가 겉으로는 안락하고 풍요롭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폐허(廢墟)였다. 세상 빛의 한복판인 줄 알았는데, 그 빛을 잡아먹는 도시였다. 이 모든 아이러니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자꾸만 또 다른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들의 고통스러운 비극적 삶 속에서 분투(奮鬪)하고 있었으나, 자동 피아노처럼 그들의 삶은 생명력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혁명을―그것이 거짓혁명, 위장한 혁명이라 할지라도― 운운하지만, 혁명은 죽어있고, 그 사회 역시 죽어있다. 군중 전체가 죽어있어, 그 죽음을 아무리 죽여도 그 죽음은 여전히 힘이 세다.

he felt the mass of mankind mighty in its numbers. They swarmed numerous like locusts, industrious like ants, thoughtless like a natural force, pushing on blind and orderly and absorbed, impervious to sentiment, to logic, to terror too perhaps.

 

What if nothing could move them? (p.61) 

자신감에 찬 완벽한 무정부주의자, 교수도 두려움에 떤다. 군중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여도, 죽여도 나타나는 사람들, 아무리 파괴하더라도 군중은 거대하고, 게다가 군중은 테러와 공포에도 무감각하다. 그들을 동요시키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정체성이 위협을 당하기 때문이다. 개성(個性)의 힘(Force of personality)이 있기에 스스로가 치명적 존재,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는데, 개성의 힘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의식할 때마다 자기 존재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겉과 실체가 너무나 이질적인 이들의 역설적인 정체성이, 바로 그 시대의 정체성이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질서정연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냄새나는 시궁창의 모습을 한 도시. 이 도시가 우리에게 우스꽝스럽지만 처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도시, 오늘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The Secret Agent》를 독서하는 것은, 때로 힘든 일이었다. 페이지마다 씁쓸함이 묻어나오고, 어떻게 된 일인지 충격과 공포와 핏빛 속에서도 허무주의가 숨어있었다.

《The Secret Agent》에는 저마다 다른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심각한 얼굴로, 무거운 테마들―사상과 혁명과 방법과 시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지만, 역으로 아나키스트 흉내만 내며, 무의미한 대화들만 주고받는 인간들의 비진정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혁명가의 실제를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삶인데, 오직 목소리로 선동하는 아나키스트의 삶인데, 그런데도 그 삶 속에서, 진정성을 발견한다. 오늘 이 시대, 행동도 없고, 정신도 없고, 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없는 궁색한 시대에까지도, 혁명이 없어 빈곤한 이 시대에까지도 여파를 미치면서, 생생하게 살아 걸어오고 있었다. 진정성을 지닌 채였다.

 

 

 

리뷰 총점 종이책
최초의 스파이물을 읽다!
"최초의 스파이물을 읽다!" 내용보기
조지프 콘래드? 조셉 콘래드? 어떤 발음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암흑의 핵심>을 사 놓고 읽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작품이 내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 작가 작품을 꼭 한권 정도는 읽어야지 생각하던 차에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적 작품이 출판되었다. 뭐,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스파이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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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콘래드? 조셉 콘래드? 어떤 발음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암흑의 핵심>을 사 놓고 읽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작품이 내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 작가 작품을 꼭 한권 정도는 읽어야지 생각하던 차에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적 작품이 출판되었다. 뭐,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스파이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읽기로 했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스파일물이라고 해도 작가의 스타일은 어디 가지 않는 법인지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써내려간 것을 읽고 말았다. 작품 속에서 “삶은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위니의 대사가 이 작품을 대변하는 것 같다.

 

스파이든, 무정부주의자든, 혁명가든, 경찰이든 일반 시민이든 삶은 깊이 들여다봐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란 것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주변인의 삶과 타인의 삶까지 들여다봐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못하고 거죽만을 핥고 있다.

 

여기에서 소통은 이미 사라지게 되고 말은 그야말로 말이 아닌 씨가 되고 독선적 아집에 쌓이게 된 모든 인간들은 그로테스크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한번 이 나라를, 아니 자신의 스파이를 흔들어보자는 높으신 분의 말 한마디는 이중 스파이의 삶을 살던 스파이의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뒤흔들었고, 늙은 노모와 약간 모자란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여자는 마음씨 좋게 생겼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결혼을 하고 그에게 자신의 남동생을 맡기기에 이른다. 그리고 뒤틀린 사건 속에서 경찰들은 저마다 본색을 드러내고 스파이 또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여자도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도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지만 옹고집 교수만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외롭게 고수한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완벽한 스파이 소설은 아니다. 현대적 스파이물도 아니다. 하지만 스파이가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이고 그 안에 그들의 이중적인 인간성이 어떤 작품보다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 한 작품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위에게 자신의 못난 아들을 맡기기 위해 양로원행을 택한 노모의 심리를 표현한 장면에서 그리고 그 아들이 사람들의 생각에는 ‘퇴화된 인간’으로 보일지 몰라도 비루한 말에게 채찍질을 하는 가난한 마부를 동정하는 마음씨와 가난한 가정부에게 줄 돈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작품에서 가장 근사한 인물은 이들이지 않았나 싶다. 또한 불쌍한 위니를 생각하면 그 시대가 낳은 서민적 여성상이 바로 이런 모습은 아니었나 싶다. 교수의 말처럼 약한 것은 나쁜 것이다. 약한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뜻이 되고 교수의 말과는 다르지만 그것은 결국 노예와 다름없는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니와 그 가족이 겪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스파이를 양산해 내는 것이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혁명이나 무정부주의가 잘못된 자들에게 넘어가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면 어떻게 무지한 서민의 발목을 잡고 그 몸을 갈기갈기 찢어내는 고통에 빠트리게 되는지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안겨준다.

 

아마도 나는 어쩌면 <암흑의 핵심>을 못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가의 책 한권을 읽었음에 만족한다. 이 작가가 스파이 소설을 써서 다행이다. 그 자신 또한 혁명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은 새롭게 보인다. 아마도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이 겪은 일들은 아니었을지... 그렇다면 작가는 참 외로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알의 쌀이 되지 못하는 혁명이, 인간을 불쌍히 감싸 안을 수 없는 정부가 과연 필요한지 또 한 번 묻게 된다.

d*****g 2007.02.0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