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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영상을 보다가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송어들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태어난 곳을 떠나 바다에서 살아가다가 산란기가 되자 자신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오는 송어의 모습이었다. 본능이라고 하지만 가슴이 아팠다. 바다에서 산란하고 살면 될 것을 굳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에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노 다다타카. 처음 들어본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제2의 인생을 일본을 측량하며 살아온 사나이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해도 충분히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노 다다타카는 생각이 달랐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가졌던 것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20살이나 어린 스승에게 가서 중국의 역법부터해서 서양의 역법까지 배우는 모습을 보인다. 공자가 말했듯, 3살짜리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처럼,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는 나에게 큰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책에서 아직도 가슴에 맴돌게 하는 문장이 있다. “인간의 일생은 페르시아 양탄자를 짜는 것과 같다. 인간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실을 선택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실을 사용하여 어떤 양탄자를 짤 것인가와 일하면서 생명을 연소시키고 있을 때다. 양탄자를 짜고 있는 과정이야말로 생명을 불태워 얻는 성취감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이 얼마에 팔릴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 읽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고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 뒤에 이루어질 그것을 완성하고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사실이다. 유튜브 영상 속 송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던 바다를 벗어나 처음 태어났던 곳으로 온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과 결심의 결과라는 생각을 했다. 바닷물에서 민물로 바뀌게 되면서 겪는 변화들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자신의 비닐과 지느러미가 상처 나는 변화들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많은 변화를 겪은 뒤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와 자손을 번성한다. 마지막은 기꺼이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먹이가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송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성취했다는 그 생각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성취감이 자신이 다시 태어난 곳으로 이끌고 갔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무게가 무겁더라도 변화한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그것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누군가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조그마한 밑거름이 아닐까 하고 송어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게 된다. 또 이노다다 다키의 모습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도 분명 걸림돌도 많았고 방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결국 일본을 측량하다가 최후를 맞이했겠지만 그는 어떤 후회도 어떤 삶에 대한 미련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고 꿈꾸었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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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에 김정호가 있다면, 일본(에도 막부)에는 이노 다다타카가 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것으로 볼 때, 이노 다다타카가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노 다다타카의 일대기를 담아내면서, 그 속에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어떻게 제작을 했는지 보여준다. 특히 에도 막부와 관련된 역사도 알 수 있어 인물사+역사서로의 역할을 한다.
현재 지바현 고세키 마을에서 태어나 고세키 다다타카로 불렸다. 이후 유년기부터 수학에 재능은 있었지만 가정에 대한 것부터 순탄치 않은 삶을 보낸 다다타카는 이노 씨 집안에 데릴 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노 다다타카로 성이 바뀐 것이다. 이노 씨 집안에서 사와라의 고즈덴노 축제 때의 수레 사건, 사와라 마을 강변 사건 등을 거치면서 공무와 가업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축척되어 덴메이 대기근을 잘 극복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좋은 성과를 내었다.
이렇게 여러 일을 하면서, 동시에 별도 꾸준히 보면서 지내온 다다타카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로 가고 있었다. 이때부터 슬슬 은퇴를 결심하여, 드디어 본인이 하고자 하는 공부부터 일을 시작하는 2막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은퇴에도 순서가 있었고, 거기서 영주 쓰다 씨의 허락을 받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이후 허락을 받았다. 다다타카는 에도로 가서 다카하시 요시토키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이후 역법을 배우고, 천문학도 배우고, 일본도 측량하려는 여러 공부를 하게 된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그의 별명은 스이호(역학의 수, 천문 관측) 선생이었다. 그리고 시대는 그의 공부에 있어 또 하나의 지원군이었다. 즉 마쓰다이라 사다노부가 국방을 위해 일본 측량과 일본 지도를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 측량을 하면서 푸대접을 받는 등 여러 고난이 많았다. 그래도 10번의 측량을 하게 된다. 초반에는 동일본을 중심으로 측량을 하여 동일본 연해지도를 먼저 만들었다. 이후 서일본 등을 측량하게 되었다. 이렇게 지도는 계속 그 완성도를 이루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다다타카는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다 만들지 못하고 죽게 된다. 다다타카가 죽은 3년 뒤에 완성되었다. 이렇게 책은 마무리된다.
그의 삶을 보면서, 지도를 만드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을 만들기까지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반성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쓴 분의 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젊을 때부터 노력해야 하며, 노후에는 돈과 건강과 마음이 있어야 함을 밝혔다. 물론 어려운 부분이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그것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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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일본을 측량한 사나이, 이노 다다타카 (도몬 후유지, 논형, 2021, 초판 1쇄)
논형 출판사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인이 일본인의 관점에서 쓴 글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번 책도 역시 일본인의 관점에서 일본 역사 인물에 관해 쓴 책이다. ‘이노 다다타카’. 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가 일본 지도를 제작한 인물로 우리나라의 고산자 김정호와 같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 역사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궁금하여 생소한 인물임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역시 이노 다다타카의 삶은 내가 아는 대다수 인물과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또한 이 책의 내용과 서술 방식도 평소에 접하던 역사책들과 달랐다. 생소함 그 자체였다.
‘일본인의 ’성씨‘와 이름’
일본사나 일본인을 다룬 책을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 ‘성씨’와 ‘이름’이다. 일본인의 성씨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가문을 나타낸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우리와 달리 쉽게 이 성씨를 바꾼다. 이노 다다타카는 데릴사위로 들어간 아버지에 의해 고세키씨 집안에서 셋째(산지로)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본래 진보씨 집안으로 돌아가버리고, 이노 다다타카는 고제키씨 집안에 남는다. 이때부터 이노 다다타카는 연고가 있는 곳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그는 성씨만이 아니라 이름도 여러 번 바꿨고, 나의 혼돈이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일본인들처럼 성씨를 바꾸지 않는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 누구의 사위가 되든 성씨를 바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성씨뿐만 아니라 이름마저도 지위와 역할에 따라 바꾼다. 이것 덕분에(?) 내가 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말 그대로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다. 성씨와 이름만으로 이렇게 엄청난 혼돈을 제공하다니. 이 문제는 앞으로 일본인의 책을 더 많이 접해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위인전인가 자서전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것은 많은 부분이 이노 다다타카에 대한 객관적, 역사적 서술이라기보다 저자의 생각이나 감상이었다는 점이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점이 매우 명확해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노 다다타카를 상당히 계몽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얼핏 위인전기를 다루는 듯한 글쓰기다. 게다가 다다타카가 52세의 나이에 자신의 숙원하는 바를 이루어낸 대목은 어쩐지 저자 도몬 후유지의 삶과도 일맥상통한다.”(307~308쪽)
저자는 이노 다다타카의 삶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보다 그의 삶을 통해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위인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이 있겠지만, 이노 다다타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은퇴 후 꿈을 달성해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도 이 책을 노후에 썼던 것은 아닐까. 그는 만년에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젊었을 때 해야 하는 준비로 세 가지를 꼽는다. ‘돈, 신체(건강), 마음(정신력)’이다. 저자는 이노에게서 자기 만년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이노 다다타카의 삶’
그렇다면 나는 이노 다다타카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가 이노 가문의 ‘나누시’(지도자)로서 집안을 이끌어가는 원칙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을 추구하는 지도자가 강요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 상대방은 거부하려는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그것을 추진하는 지도자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낮추어 겸허하게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176쪽)
그가 52세에 은퇴한 이후 평생의 숙원이었던 일본 연해 측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만년에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해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도자로서 탁월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위업을 남길 수 있었다. 나도 만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도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두고 싶다. 또한 이노가 배움에 대해 가졌던 자세도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그는 51살에 자신보다 19살이나 어린 다카하시 요시토키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가 나이와 재력을 앞세웠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는 젊은이에게 배우려고 하는 겸허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삶에 더 큰 기회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심으로 스승을 대했을 뿐 아니라, 스승이 필요로 하는 재정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꼭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지워버리고 진정한 배움의 자세를 갖는 것이 누구에게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배울 점. 그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기보다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했다. 처음에는 완고한 사람으로 그를 시기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그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의 삶을 통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나 자신도 행복하고, 동시에 타인으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의 위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곧 다가올 노년을 위해 나도 이노 다다타키처럼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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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부터?1816년까지? 17년에 걸쳐 일본의 전 국토를 측량해, 최초로 일본의 정확한 형태를 밝힌 지도, ≪대일본연해여지전도≫가 완성되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설계하려는 이들에게 그의 삶은 인생 2막의 본보기가 된다. 이노 다다타카는 에도 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활동한 상인 출신 측량가다. 술 제조업을 하던 이노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쓰러져가던 가문을 일으켜 세웠으며, 이후 50세의 나이로 측량가의 길에 뛰어들어 7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일본 전국을 측량하여 지도를 작성했다. 그의 사후 출판된 『대일본연해여지전도』는 일본 최초의 과학적 실측도로 평가받는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인물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 했던가? ?이노 다다타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배움과 깨달음을 얻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