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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늘 확신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진실은 지금의 지식으로 진실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문명은 발달했고 진실은 늘 변화했다. 변했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인류는 여전히 발달하고 있고 우리는 모르는 것을 계속 알아가게 될 것이다. 지식의 혁명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한 번 진화하게 될 것이다. 인간, 과학, 지식의 발달을 과학적 방법론, 철학, 정치, 예술 등 전방위적으로 고찰하는 이 책은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낙관적인 시각을 가진 과학자였다. 그는 여러 면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며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와 동시에 지식을 통한 진화를 하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멸종하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난 큰 사건들은 모두 지식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으면 그것을 이겨낸 것도 지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우리가 더욱 번성하는 것도 우리가 멸종하게 되는 것도 결국 지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든 해악은 불충분한 지식 때문에 초래된다."
인간은 지구에 출현하고부터 꾸준히 지식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계몽, 혹은 혁명으로 불릴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이것은 '무한의 시작'이고 '보편적 원리'를 찾는 과정이다. 과학의 출현은 놀라운 속도로 지식을 창조했고 지식은 계속해서 증가해 왔다. 지식의 증가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더 일어나지 않는 인간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진화가 되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지식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지식을 이용하여 살아가고 있다. 지구 생물권에서 진화는 위대한 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권은 개체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해치고 무력화시키고 살해함으로써 안정성을 달성할 뿐이다. 그러면서 지구 생물권은 인간에게 안락과 안전을 제공하지 않는다. 지금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인간은 일 년 내내 기온이 유지되면서 병균이 없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 지구 생물권은 인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인간의 멸종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많다. 인간은 수많은 멸종의 고비를 넘어야 했고 그때마다 지식은 인간을 멸종으로부터 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식은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인간 문명의 진화 방식을 도킨스의 '밈'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전은 DNA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복제되는 반면에 밈은 반드시 뇌의 기억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구체화된다. 밈은 단순 모방과 다르다. 전달자의 행동은 받는 자의 판단에 의해서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밈은 전달받는 자에 의한 새로운 창조적인 활동인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 진화와 닮은 점이 있다. 진화는 강하거나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종의 행동에 가장 빠르게 확산하는 DNA가 살아남는 것이다. 밈 또한 여러 사람에게 확산되어야만 살아남아 전달될 수 있다. 인간은 지식을 통해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진보는 완결될 수 없다. 과학의 혁명이 시작되고 인간이 '계몽'이 되는 것을 '무한의 시작'이라고 얘기한 저자의 말은 그것에 있다. 문제의 새로운 문제와의 만남이다. 앞으로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될지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문제를 해결해 감으로써 지식을 축척해 나간다. 그리고 점점 더 세상을 이해하고 더 발전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멸종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시작을 한 책은 좋은 지식은 어떤 지식인가를 정의한다. 지식은 '좋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설명은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때때론 관측에 의해 지식을 진리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관측은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진리는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진리가 설명될 수 있더라도 진리를 바뀔 수 있다. 뉴턴의 시대에는 고전 물리학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늘어가면서 뉴턴의 진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는 양자역학을 발전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책은 굉장히 어려웠고 문장 또한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다시 읽는 경우도 생겼다. 그럼에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굉장히 낙관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문제 앞에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만 해결해 내면 우리는 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자세였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렇게 멸종을 피하면서 발전해 왔다. 앞으로의 재앙 또한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기후의 재앙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지금은 탄소 중립을 외칠 때인지 높아지는 수면에 대한 대책 연구나 이상 기후에 대비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때인지 묻기도 했다. 저자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보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기후재앙이 인간에게도 원인이 있지만 지구 생물권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진보에는 추측하고 비판하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오류와 문제의 발견은 진보를 일으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문제가 없는 사회는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 비판과 새로운 생각이 억압된 사회다. 지금의 진리가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진실에 관해서는 어떤 인간도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인간이 그 완벽한 진실을 말할 수는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지식의 축적을 시작한 인간에게 놓여 있는 것은 무한함 뿐이다. 그것이 무지의 무한 일지 지식의 무한 일지, 옳을지 그를지, 죽음인지 삶인지 그것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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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저자 : 데이비드 도이치 출판사 : RHK
목차를 보면 1장 설명의 도달 범위 2장 실체에 더 가까이 3장 불꽃 4장 창조 5장 추상 개념의 실체 6장 보편성으로의 도약 7장 인공 창조성 8장 무한의 창 9장 낙관론 10장 소크라테스의 꿈 11장 다중 우주 12장 물리학자의 나쁜 철학 이야기 13장 선택 14장 꽃은 왜 아름다운가 15장 문화의 진화 16장 창조의 진화 17장 지속 불가능성 18장 시작
목차 제목만 읽어봐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정말 방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보겠다.
1장은 기본적으로 과학과 다른 학문을 다루는 철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과학은 '귀납주의'에 따른 추론으로 시작되었고, 현재는 '오류가능성 주의'에 따라 과거의 논리적 오해를 올바르게 수정하려 한다는 것을 다룬다. 그 외에도 도구주의 등등 여러 방향을 설명하고, 인류의 학문과 삶은 항상 문제가 발생하며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1장에서 설명한 철학적 도구를 중심으로 실체를 관측하는 법과, 고대에서 현재까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고 학문을 대하는 방법의 차이에 대해 논하고 4장 창조에서는 창조론이 왜 잘못된 것이며, 과거부터 다윈의 진화론, 심지어는 그 후 약간의 설명이 수정된 신다윈주의까지 논하고 있다.
5장에선 추상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추상이라는 개념이 실재하는지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6장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보편성으로의 도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편성이란 과거 고대에 물체의 형상을 따 상형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런 식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한정적이고 그에 따라 페니키아에서 음을 따 만들어낸 알파벳이 본격적인 보편성이라고 하고 있다. 숫자도 그렇다. 고대 로마 숫자에 비해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고 인도에서 시작된)의 경우 각각 큰 수를 표현할 때 더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7장에서는 인공지능의 존재 가능성 여부와 과거부터의 내용을 설명하고, 8장은 우리가 추상적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무한'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수학의 발전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무한의 개념이 대체 무엇인지, 무한의 범위를 이해하고 계산함으로써 얻게 되는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9장은 낙관론이다. 저자는 문명의 미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달려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미래 예측은 힘들고 특히 어떤 기술이나 어떤 물질을 발견할지 모르는 지금 미래 '예측'은 자칫 '예언'이 될 수 있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낙관론의 끝에는 잠재적인 무한의 시작으로 지식의 창조가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10장은 소크라테스의 꿈에서의 대화를 빗대 인식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식론이란 이 세상이 어떤지, 또 왜 그런지 진실을 탐구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진실을 인식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 모두 얼마나 어려우며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합니다. 결국 모든 지식은 내면으로부터 우리가 받아들인 정보와 지식을 추측과 비판을 통해 들여오고 그 내면에서 모든 지식을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11장은 저자의 전공 분야이다. 양자론은 아직도 왜 그런지 설명이 불분명한데 대체로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리는 해석을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다. 아마 양자역학에 대해 실용서를 읽은 사람들은 대개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텐데 저자는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다중우주관점이란 것인데 저자의 관점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12장은 왜 자기가 다중우주해석을 취하게 된 것인지 설명하면서, 결국 코펜하겐 해석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
13장은 정치 이야기로 넘어간다. 미국 하원 의원 수 배정 문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변화 과정과 문제점, 영국과 다른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치 제도를 언급하며 과연 정치는 어떤 방식이 옳으며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왔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14장은 예술 이야기이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인데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저자의 철학적 고민과 그에 대한 대답을 설명한다.
15장에선 문화의 발전을 설명한다. 문화의 주된 생각이 지속적으로 오는 것을 전부 '밈'이라 칭하며 과연 어떤 밈이 살아남고 옳은 밈인지, 그렇다면 올바른 사회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할지 설명하고 있다.
16장은 과학, 수학 등 학문에서 창조성이 중요한데, 창조성이 발휘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과거의 사람들은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거나 창조성을 발휘해도 사회에 반영되지 않아 주류 밈이 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고민해보고 저자의 대답을 적어준다.
17장은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한다. 이스터섬의 예를 들며 지속가능한 문명이 어떤 것이고,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낙관론을 취하고 있고 결국 발전하다보면 지금 당면한 문제의 해답을 찾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지속가능한 개발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고 결국 이스터섬처럼 퇴보하고 멸망하는 길이라 이야기한다. 따라서 지속 불가능한 문명이 건강한 문명이며 결국 인간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진보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18장은 다시 한번 여러 문제를 제시한다. 물리학부터 시작하여 여러 분야에서 문제점을 제시하고 결국 지금이 진보로 나아가는 시작점이며, 인류의 미래는 무한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위에 꽤 많은 내용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목차만 적었다. 저자가 이 책에 설명한 내용만 봐도 철학, 특히 그 중 과학철학을 논하고, 진화, 양자론, 수학, 정치, 예술, 문화 등등에 대해 논한다.
사실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비해 저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언급만 하고 넘어가서 이해가 힘든 내용이 많아 630쪽을 읽지만 1시간에 30페이지정도 읽으면 많이 읽은 것일 정도로 다루는 내용이 많고 내가 너무 무지함을 또 깨달았다. 매 챕터에서도 문단마다 주제가 바뀌어가면서 방대한 양을 설명하는데 가끔 중간 설명이나 심화적인 내용을 많이 생략하고 넘어가 더 어려웠다. 정말 모르는게 너무 많다.
너무 많은 내용이라 내용을 요약할 순 없고 간단히 느낀 점만 이야기해야겠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한번 놀랐고, 책의 처음에 언급된 것처럼 지금 학계의 주류와는 또 다른 저자만의 생각을 어느정도 정립시켜 설명하는 것이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크게 한 줄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인류는 모든 순간순간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문제를 피할 수 없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이런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것은 '창조성'을 지닌 인류뿐이다. 인류가 창조성을 바탕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하며 발전시켜나간다면 미래에는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저자의 글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기에 이야기하기 쉽지는 않고 내가 너무나 틀렸을 수 있지만, 저자의 생각이 나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는 듯 하다.
첫째로 과학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이다. 저자는 귀납주의에 따른 추론, 그리고 설명을 동반하지 않는 관측이 현재의 옳지 못한 방향을 어느정도 만들어냈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철학적 인식을 비판하지만 과학에서 귀납주의가 빠진다면 어떤 것이 옳을 수 있을까? 과학의 장점은 다른 학문과 달리 아직 모르는 부분을 어떻게든지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양자 영역에서 양자의 움직임의 이유와 거시세계에서 관측과 너무 다른 세계를 지니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당연히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것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저자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설명을 하지 않는다고 지금의 과학을 도구주의의 '나쁜 철학'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듯 하다.
*도구주의 : 내가 '설명'이라고 부르는 게 존재하는 것을 부정
도구주의는 설명할 수 있음에도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고, 아직 설명을 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영역은 아는 데까지만, 관측 결과 맞는 데까지만 설명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보니 저자는 양자역학의 전통적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이 마뜩찮게 보이는 것이다. 물론 무엇이 옳은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도 아직 어떤 것이 옳은지 정답을 내리진 못하고 찾고 있으니까. 하지만 과학을 가능성이 있다고, 거시세계의 관점에서 설명이 된다고 다중우주관점을 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과학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도 천동설이 어떻게 옳은지 '설명'했다. 그 당시 상식, 상상력 내에서 말이다. 과학은 귀납적 추론이 중요하고, 예측을 관측해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다중우주관점의 경우 다른 우주는 우리가 관측할 수 없다고 하며 설명이 끝난다. 오히려 이것이 저자가 처음부터 경계한 정당화주의이며 다중우주해석의 '도구주의화' 아닐까 생각이 된다.
두번째로는 다른 학문을 대하는 자세이다. 앞서 말했듯 저자는 낙관론자이고 창조성을 바탕으로 인류가 지속적으로 진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다. 정치에 대해 논하며 여러 이유를 들며 현재 체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에 대한 해답은 언급하지 않고 끝난다. 사족이라 생각되어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학문을 이런 식으로 보고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정치란 본래 부족한 자원을 인류가 영위하기 위해 집단을 이뤘고, 그 집단들끼리의 경쟁, 집단 내부에서의 경쟁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평등하다면, 그리고 불만이 없다면 이런 정치 체계도 필요하지 않다. 당연히 그 안에서 방법을 찾고 최대한 합리적으로,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것이 정치라고 본다.
예술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음악, 미술, 문학 등 큰 카테고리만 따져도 엄청나게 큰 학문의 너무나 많은 분야를 한덩어리로 합쳐놓고, 아름다움의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예술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을 보고 분야를 따지지 않고 '이과 학문'들은 모두 이러이러하다 라고 규정 짓는 것과 같다. 인간은 보편적 설명자이므로 어떤 지식도 창조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예술을 창조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은 창조를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그렇기에 예술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인간은 그렇게 거시적이고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번째는 문명을 대하는 자세이다. 저자는 문명은 지속적으로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서구사회의 '계몽'의 개념이 있기 전까지는 창조성의 발현이 더딘 '정적인 사회'로 칭하였다. 정적인 사회에서는 지식의 성장을 막기 위한 혹독한 노력을 필요로 하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고, 사회의 '선'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고 하였다. 게다가 서구 사회의 계몽이 인류의 유일한 발전 기회였던 것처럼 설명하고, 프리드리히 앵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이 주창한 지질학적 차이 등에 따른 문명 발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전이 더딘 것은 서구 문명과 달리 혁신이 부족했다고 칭하며, 서구문명은 지금의 혁신을 이루기 위한 조건들을 갖췄다고 한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보기에 지정학, 지질학적 이해도가 낮거나 아예 관심에 없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지금 서구 문명이 이룬 업적이 너무나 대단하기 때문에 다른 문명이나 지역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창조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그런 것이 없었을까? 과거엔 없었을까? 기술적 변화 외의 문화적 변화는 아예 창조성의 중요성을 논하는데 필요 없는 정도인가? 너무 서구 문명의 산업혁명에 포커스가 맞춰진 느낌이 든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총, 균, 쇠'에서 서구 문명은 지리적 이점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운이 좋아 현재의 문명을 이뤘고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으로 퍼져나갔다는 설명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총균쇠가 나온지 20년도 더 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명 발전에 대한 설명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퇴보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심지어는 그렇다보니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서도 터무니없이 낙관적이다. 기후가 상승해 생기는 문제를 단순히 해수면 상승 문제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부분 국가가 자동화, 해안 방어 프로젝트 구동이 가능하고 해수면 상승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대기온도와 이상화탄소 농도 민감성이 정확히 예측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낙관적으로 본다. '세계는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가스 배출량의 감소를 강제할 계획을 세우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대기 온도를 감소시킬 방법이나, 고온 상태에서 번성할 방식에 대해 논해야 한다.' 라며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IPCC 보고서는 한번 읽어봤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할 거였으면 기후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이 옳았다.
물론 위의 내용들은 저자의 설명이 너무 적었기에 내가 오해해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짧은 지면에 저 내용을 다 담으려니 설명이 생략되고 뜻이 왜곡됐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무지해 잘못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과학 철학과 양자 역학에 대해 집중해서 깊게 설명해줬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시리즈로 4~5권 정도로 장르를 나눠 자세히 설명했으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의 의견 차이는 정말 작은 부분이며 대부분의 내용은 정말 좋다. 미래를 보는 긍정적인 방향과 주류 학계의 주장이 자신과 다름을 적극적으로 논거를 들면서 이야기하는 부분도 너무 좋았고, 새로운 해석을 주저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학문의 거의 전 분야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해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어차피 좋았던 부분을 전부 언급할 수 없기에 적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을 읽는 독자가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나쁜 독서고 나쁜 지식의 습득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해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여러번 거쳐야 건강한 사고, 철학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친구, 부모님, 심지어는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부부끼리도 의견이 다른데 하다못해 책으로 처음 접하는 저자와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나중에 이 책의 중심 내용들에 관해 공부를 하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훌륭한 책이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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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리가 자신을 속이지 않을 방법에 대해 배워온 과정" 이다. 도박꾼과 예언자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설명을 채택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든 계속해서 자신을 속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을 채택한 것만큼이나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증거에 직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생존하고 번성한다. 인간과 물리적 세상에 대한 중요한 진실은 문제는 풀린다는 것이다. '풀린다' 는 말은 올바른 지식이 있으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세대가 거듭하면서 바뀔 수 있을까?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물리법칙들, 과학 지식들은 바뀌지 않는 절대불변의 진리로 남을 것인가, 끝임없이 진보할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믿는 법칙들 즉 진리는 바뀔 수 있고 과학은 진보할 것이라고 말한다. 진보는 인간이 '설명' 이라는 탐구 활동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의 문제가 주어지면 설명 지식을 창조하고 활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를 바꿀 수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진리가 바뀔수 있으므로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재해석 해나가기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과 같은 과학 지식들 뿐만 아니라 철학자들까지 소환해서 우리를 설득한다. 너무 방대한 지식들과 수식 문장들로 인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의 지식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책은 과학 전공자들에게 추천할 수는 있으나, 대중적으로 읽히기에는 추천하기 어렵다. *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