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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주문햇더만 세트로 위에께 찢어진채로 배송됫네?ㅎㅎㅎㅎㅎ 어이가업네욬ㅋㅋ
배송하다찢길수가없는 모양인데 찢겨진거알고도 배송한거같은데 ㅡㅡ 장난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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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한 3~4회를 보고서 책으로 손길을 돌렸습니다. 처음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원작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너무 오락가락한 인명, 존대말 등이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의견은 톨킨이 제시하여준 번역방법에 의하여 번역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언덕지기, 성큼걸이 등은 한국적이면서도 서양의 소설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인명 들이었으며 반말과 존대말을 섞어가며 얘기하는 것은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 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책이 재미있기는 한데 영화보다 못하다는 의견이고요 거기에는 번역이 한몫하고 있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출판사의 문제이겠지만 3권에서 약 7~8페이지가 백지여서 더욱 그러했겠지요... 재미있는책 잘 번역해서 품질 좋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영화가 책보다 재미있다는 의견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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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읽고 - 떠오르는 개인적인 생각들 -
몽중인(ggalssal) YES24 블로거
지난 1학기 시작과 함께 읽기 시작했던 반지의 제왕을 여름방학이 시작한지 2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반복해서 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7권짜리 시리즈를 1년에 한 번씩 3번이나 완독했다는 건 이 책이 나에게 그만큼 특별하고 재미있으며 내가 이 책에 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목차 1. 작가 2. 중간계 3. 호빗과 샤이어 4. 톰 봄바딜 5. 모티브 & 알레고리 1) 북유럽 신화 2) 기독교 신화 3) 세계대전 6. 소설 vs. 영화 7. 참고
1. 작가 : John Ronald Reuel Tolkien(1892. 1. 3. ~ 1973. 9. 2., 이하 ‘톨킨’)
먼저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톨킨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문헌학자이자 언어학자로서 같은 대학교 교수로 있었다. 그는 다양한 저서를 남겼는데 그 대표작으로는 반지의 제왕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호빗(The Hobbit)’과 현대 문학에 있어서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당뇨로 죽었는데 그는 그의 어머니가 믿음으로 인해 순교했다고 그의 평생 동안 굳게 믿었다. 이는 그의 가톨릭 신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그의 성향은 저서인 반지의 제왕에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깊이 베여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서술하겠다. 그의 생애 동안 그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게 되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의 군부대는 전쟁 기간 동안 무훈을 떨쳤으며 때문에 그는 많은 수의 전우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자신 또한 열병으로 인해 군생활을 군병원에서 마쳐야만 했다. 톨킨과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그의 삶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그는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한 Clive Staples Lewis(이하 ‘루이스’)와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 루이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그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톨킨과 루이스를 주축으로 ‘잉클링스(Inklings)’라는 문학 토론 그룹이 만들어졌는데 서로의 생각과 표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작품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언어학자로서 영어 사전 편찬과 관련된 일을 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서 그의 작품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명성은 언어학자로서 그의 활동으로부터도 왔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의 무대가 되는 ‘중간계(또는 가운데땅, The Middle-Earth)의 창조자’인 것에 기인한다.
2. 중간계
중간계는 톨킨의 저작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주무대이며 실마릴리온의 일부 배경이다. 반지의 제왕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단순히 이야기를 꾸며낸 작가가 아니다. 그는 중간계와 더불어 중간계를 다스리는 신과 그에 얽힌 신화와 전설, 그로부터 내려오는 수천수만 년의 유구한 역사,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종족과 그들의 복잡한 가계도, 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와 그 언어로 만든 시와 노래를 창조했다. 그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그대로 ‘중간계의 창조자’인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야기 자체의 흥미로움과 치밀함, 긴박함에도 상당한 재미를 느꼈지만 톨킨이 창조해낸 이 엄청난 크기의 세계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지의 제왕의 7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인 부록에는 그가 만들어낸 여러 언어의 표기법과 발음에 대한 설명, 그리고 심지어 각 종족의 책력에 대한 설명까지 나온다. 부록의 찾아보기(색인)는 I. 노래와 시들 II. 인물, 동물, 괴물 III. 지명, 장소 IV 사건, 사물, 기타 명칭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는 각 분류의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책 전반에 걸쳐 수많은 노래, 시, 인물, 동물, 괴물, 지명, 장소, 사건, 사물 등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크기의 세계에 못지 않은 엄청난 디테일인 것이다.
3. 호빗과 샤이어
반지의 제왕의 프롤로그는 호빗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비록 중간계에서 호빗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다른 종족들에 비해 현저히 왜소하여 전투에서는 거의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래 전 사라진 절대반지를 발견한 것도, 절대반지를 간직하고 있던 것도, 절대반지를 운반한 것도, 절대반지를 파괴한 것도 모두 호빗이었다. 이렇게 호빗은 반지의 제왕의 방대한 이야기 전체를 하나로 꿰뚫어 연결시키고 있는 핵심소재인 절대반지와 매우 긴밀하게 얽혀있다. 호빗은 성인이 되더라도 성인이 된 인간 신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데 이는 인간의 어린아이 정도에 해당하는 키이다. 실제로 톨킨이 묘사한 호빗들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 쾌활하고 명랑하여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호빗이 절대반지를 운반하고 파괴하는 위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중간계를 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함으로써 작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위대한 인물들의 강한 손길에 의해서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고 여린 손들에 의해서도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게 아닐까? 비록 호빗의 모습이 귀엽긴 하나 솔직히 말해서 별로, 특히 키는 전혀 닮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닮고 싶다면 요정들의 고귀함과 아름다움, 인간 영주들의 강건함과 위대함을 닮고 싶다. 다만 한 가지 호빗들에게서 간절히 닮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그들의 생활 습관과 태도이다. 먼저 그들은 먹고 마시는 행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하루에 세 끼 넘게 밥을 먹고 그 사이사이에 차도 다 챙겨 마신다. 또한 무언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해서 시간 나는 대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들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때론 중요한 일을 위해서 밥을 대충 먹거나 아예 그르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밥 먹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 결국 우리가 밥을 그르면서까지 하는 일이란 대부분의 경우에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일인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또 차 한 잔의 여유.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왔고 어디로 돌아갈지, 왜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결코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여유. 하늘의 높이와 바람의 세기, 나뭇잎 색깔 등 자연 환경의 변화로부터 주위 사람들의 옷차림과 얼굴표정, 미세한 감정 변화를 감지하는 여유. 비록 중요한 일로 바쁘게 보낸 하루였다 하더라도 그 속에 이런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여유가 없었다면 난 보람찬 하루를 살았다고 얘기하기 힘들다. 그리고 한 편의 편지를 쓰기 위해 초고를 작성하고 퇴고를 한 다음 정성들인 글씨로 옮겨 적어내려가는 손길, 작은 선물일지라도 가능한 최선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발길. 호빗의 작은 손과 발로도 할 수 있는 따뜻한 일들을 우리의 더 큰 손과 발로 한다면 더욱 더 따뜻하지 않을까. 이처럼 작가는 반인간인 호빗을 통해 인간인 우리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의 존엄과 인간적인 모습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려 한 것 같다. 이러한 그리움은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지극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4. 톰 봄바딜
반지의 제왕 1권에 보면 톰 봄바딜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2권의 엘론드 회의에서도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그는 호빗 일행이 묵은숲과 고분구릉에서 위험에 쳐했을 때 두 번이나 구해주는데 특이한 점은 그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는 버드나무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그와 대화를 하면 시간관념이 사라진 상태로 환상 속에 젖어들게 된다. 심지어 그는 절대반지를 껴도 모습이 사라지지도 않고 절대반지를 낀 사람을 볼 수도 있다. 즉 그는 절대반지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절대반지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늙은 사람, 그게 날세. 친구들, 내 말을 새겨듣게. 톰은 강과 나무들이 있기 전에 여기 이 자리에 있었다네. 최초의 빗방울과 최초의 도토리를 기억하지. 그는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에 길을 닦았고 난쟁이들이 도착하는 것도 보았네. 그는 제왕들과 무덤과 고분악령들보다 먼저 여기에 있었고, 바다가 휘어지기 전 요정들이 서쪽으로 이동할 때도 여기 있었네. 그는 두려움이 없던 저 별빛 아래의 어둠을 알고 있었네. 즉 암흑의 군주가 바깥세상에서 나타나기 전 말일세. 톰 봄바딜의 존재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톰 봄바딜이 중간계의 창조자, 즉 신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연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고분악령들보다도 강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늙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의견은 쉽게 반박되는데 그 이유는 톨킨이 세계의 창조자이자 유일자인 신을 이미 따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톨킨이 창조한 세계의 신과 신화에 관해서는 실마릴리온에 자세히 나와 있다. 다음으로 톰 봄바딜이 발라 또는 마이아처럼 신이나 신의 바로 아래 계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발라들은 중간계를 구하기 위해 마이아들을 파견했지 자신들이 직접 오지는 않았으며 마이아들은 소설 속의 간달프나 사루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절대반지를 아무렇지 않게 다룰 정도로 강력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 의견도 반박되고 만다. 참고로 중간계로 파견된 다섯 마이아들 중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인물은 간달프, 사루만, 마다가스타르이다. 마지막으로 톰 봄바딜이 작가 자신, 즉 톨킨이라는 것이다. 이 의견은 정말이지 소설 속의 세계를 벗어난 황당하고도 재밌는 의견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의견이 그저 막연한 추측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톰이 곧 톨킨이라고 가정해보자.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기 전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신이며 세상이며 온갖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톰이 자기 자신을 소개한대로 톨킨이 가장 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절대반지의 영향에서도 톨킨은 자유롭다. 톨킨이 비록 소설을 쓰긴 했지만 그 자신은 현실에서 살아가지 그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톨킨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의견을 지지한다.
5. 모티브 & 알레고리
물론 이러한 엄청난 일들을 순전히 톨킨 혼자만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 북유럽 신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울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선 독일 민중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를 언급하시면서 이를 바탕으로 독일의 작곡가 R. Wagner가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오페라를 만들기도 했고 영국의 작가 톨킨이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실제로 톨킨은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서 많은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호빗, 오르크 등과 같이 톨킨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도 있지만 요정, 난쟁이 등은 북유럽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종족이었다.
2) 기독교 신앙 작가 소개에서 언급했듯이 톨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그의 종교적인 믿음과 철학을 작품을 통해 녹여내고자 하여 그 속에 수많은 상징과 비유를 심어놓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나는 반지의 제왕에서 성경과의 유사점과 기독교 원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자주 등장하는 가계도와 그 밑에 깔린 혈통을 중시하는 풍조를 들 수 있겠다. 신약 성경의 첫 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은 다윗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족보를 나열함으로써 시작되는데 신구약 전체를 통틀어 이렇게 족보를 나열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순수한 혈통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이 유일신 야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다른 민족들은 자신들보다 하등한 민족으로 여기곤 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각 종족마다, 각 집안마다 수많은 가계도가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특정한 종족, 특정한 집안만이 주목 받고 찬양 받으며 나머지는 그저 그렇게 여겨지고 때론 ‘하등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세 족속으로 나뉘는데 요정의 피가 약간 섞여있고 장수의 축복을 받은 우월한 족속인 곤도르인, 곤도르의 동맹이자 말을 사랑하는 평범한 족속인 로한인, 피부색이 까무잡잡하고 키가 작은 하등한 족속인 동부인과 남부인이다. 곤도르의 적이자 악한 무리로 등장하는 동부인과 남부인에 대한 묘사를 보면 오늘날의 황인 혹은 흑인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반면에 선의 편으로 묘사되는 요정, 곤도르인, 로한인 등은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톨킨은 혈통주의,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선 좀 더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선과 악에 대한 묘사가 반대로 되어 황인 또는 흑인이 선의 편, 백인이 악의 편이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건 백인의 입장에선 또 다른 인종차별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톨킨을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그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동양권에서도 일반적으로 ‘하얀’ 피부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건 사실이며, 동양에서 만들어진 소설이 동양 사람을 중심으로 쓰이듯이 서양에서 만들어진 반지의 제왕이 서양 사람을 중심으로 쓰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다음으로, ‘부활’과 ‘구원’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3일 만에 ‘부활’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는 원정대를 무사히 탈출시키고 자신은 모리아의 심연으로 떨어지게 된다. 모리아의 심연에는 중간계의 악의 근원인 사우론보다도 더 오래되고 더 악한 존재가 있다고 나오는데 이는 곧 지옥에 존재하는 악마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모리아의 심연은 지옥이 된다. 간달프는 악의 화신인 발로그와의 싸움에서 이기지만 결국 자신도 죽게 된다. 그러나 회색의 간달프는 백색의 간달프로 ‘부활’하고 자신의 임무인 여러 종족을 규합하여 중간계를 어둠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을 완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왕’과 ‘왕의 귀환’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이전에 40일의 광야 생활을 통해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게 된다. 사탄의 시험을 이겨낸 다음에서야 예수는 공공연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치유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 이후 부활한 예수는 언젠가 돌아오겠노라고 말하고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가 세상으로 ‘귀환’할 땐 세상의 ‘왕’으로 귀환한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에선 왕이 없는 동안 섭정들이 곤도르를 약 천 년 동안 다스린다. 이실두르의 직계후손으로서 합법적으로 곤도르의 왕권을 주장할 수 있는 아라고른은 왕권을 주장하기 이전에 ‘시험’을 거쳐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곤도르를 포함한 모든 서부 세계의 존망이 걸린 사우론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 와중에 아라고른은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사자(死者)의 문을 통과하기도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 후 아라고른은 부상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이로써 곤도르에 내려오는 ‘왕의 손은 치유자의 손’이라는 말을 입증하게 된다. 그리고 왕은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한다.
3) 세계대전 이 또한 작가 소개에 언급했듯이 톨킨은 자신의 생애 동안 제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군으로서 참전하기도 했다. 알다시피 세계대전은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가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참전하였고 세계 도처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각 나라에선 수많은 무기를 연구하고 고안해내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핵폭탄을 들 수 있겠다. 핵폭탄의 위력은 실로 막강한 것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 중국 등의 동아시아를 넘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손에 넣었던 일본을 단 한 번의 핵폭탄 투하로 무조건 항복을 하게 만들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곤도르를 중심으로 한 자유민, 자유국가의 연합인 서부세력과 사우론의 휘하의 수많은 악의 세력이 중간계를 놓고 전쟁을 벌인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중간계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며 또한 죽어나간다. 이러한 중간계 전체에 걸친 전쟁을 단 한 번에 종결시킬 엄청난 무기가 바로 절대반지다. 양 진영으로 나눠져 펼쳐지는 전 세계에 걸친 전쟁, 그 전쟁을 단 한 번에 종식시킬 엄청난 무기, 이것이 바로 세계대전과 반지전쟁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와 알레고리에 대한 서술을 마치며 나는 한 가지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위에서 설명한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와 알레고리는 톨킨이 직접 언급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오로지 나 개인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에 의지하여 작성한 것이다. 오히려 톨킨은 반지의 제왕 제2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작품의 동기와 의미에 관해 독자들로부터 많은 의견이나 추측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관련하여 여기서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일차적인 동기는 정말로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이었다. ... 무슨 심층적인 의미나 ‘메시지’의 존재와 관련해 말하자면, 작가의 의도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적인 것도 아니고 시사적인 것도 아니다. ... 많은 사람들은 ‘적용 가능성’과 ‘알레고리’를 혼동한다. 전자는 독자의 자유에 근거하고 있지만, 후자는 작가의 의도적인 지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내가 작성한 이 글이 작가가 소설 속에 심어놓은 ‘알레고리’를 파헤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난 후 나의 자유에 근거한 ‘적용 가능성’이기를 바란다.
6. 소설 vs. 영화
우리나라에선 ‘반지의 제왕’이라고 하면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3부작으로 나누어져 개봉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고 그로 인해 원작인 소설의 인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물론 영화가 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원작은 이미 스테디셀러였다. 나는 먼저 영화를 본 다음에야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지금부터 원작인 소설 반지의 제왕(이하 ‘소설’)과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반지의 제왕(이하 ‘영화’)에 대한 비교와 분석을 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소설에서 다루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축소되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 영화에선 톰 봄바딜과 고분구릉에 관한 이야기, 로한인들에게 지름길을 가르쳐준 산의 야인들에 대한 이야기, 샤이어 전투와 복구 작업에 관한 이야기 등이 생략되었다.
영화에서 변형된 부분 프로도 일행이 브루이넨 여울로 탈출할 때 소설에선 글로르핀델이, 영화에선 아르웬이 프로도를 말에 태우고 탈출한다. 엔트들은 소설에선 자신들 스스로의 의지로 참전하지만 영화에선 메리와 피핀이 참전을 강력히 주장하고 간섭함으로써 비로소 참전하게 된다. 헬름협곡 전투 때 소설에선 그렇지 않지만 영화에선 요정들이 원군으로 온다. 아라고른을 도우러 소설에선 엘론드의 두 아들과 북부의 순찰자 무리가 오지만 영화에선 엘론드가 홀로 찾아와서는 전갈을 전하고 떠난다. 곤도르와 로한은 소설에선 매우 친한 우방국이지만 영화에선 그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 왕국일 뿐이다. 펠렌노르 평원 전투 때 소설에선 아라고른이 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라멘돈을 구출하고 라멘돈의 병사들을 이끌고 원군으로 오지만, 영화에선 아라고른이 사자들을 데리고 바로 원군으로 온다. 한편, 나는 아라고른이 소설과 영화에서 너무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아라고른은 좀 더 인간적이고 겸손하다. 원정대가 모리아에서 간달프를 잃고 도망쳐 나왔을 때 아라고른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슬퍼하며 통곡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아라고른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에게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발길을 재촉하도록 한다. 소설 속의 아라고른은 비록 인상이 좋지는 않으나 동료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도 보이는 반면에 영화 속의 아라고른은 줄곧 위엄 있고 강인한 모습을 풍긴다.
그밖에도 세세한 부분까지 수많은 차이점이 있다. 나머지는 각자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가면서 차이점을 찾아보도록 남겨두도록 하겠다. 이렇게 여러 내용이 생략되고 변형된 이유는 무엇보다 영화 상영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관에서 상영된 반지의 제왕은 DVD로 나온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두고, 내용 전개상 제외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는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같은 인물이 적절히 여러 역할을 맡게 함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이야기를 잘 압축시켜놓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어쨌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화려하고 섬세한 컴퓨터 그래픽과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헬름협곡와 펠렌노르 평원에서 수천수만의 병사들이 칼과 활과 도끼를 들고 싸우는 광경, 호빗들이 거주하는 평화롭고 소박한 샤이어, 요정들이 거주하는 신비하고 고풍스러운 깊은골과 로리엔, 인간들이 거주하는 아름답고 웅장한 흰색 성벽의 미나스티리스 등 머릿속에서 먼 옛날의 전설처럼 막연하게만 떠올렸던 풍경들을 바로 눈앞에 일인 양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중간계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한다. 아마도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중간계는 비슷한 모습일지는 몰라도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며 떠올렸던 황금궁전 메두셀드의 모습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메두셀드는 훨씬 더 휘황찬란하고 웅장했는데 영화 속의 메두셀드는 황금궁전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초라해 보이기만 했다. 누군가 소설과 영화 중 무엇을 먼저 볼지 나에게 자문을 구한다면 나는 소설을 먼저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영화를 먼저 보면 아무래도 영화 속의 이미지에 자신의 상상력이 제한될 수도 있고, 영화는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해놓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빠르게 흘러가는 동안 사건 사이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놓치기가 쉽다. 누군가는 소설만으로는 실제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한계가 있고 영화만으로는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는 상호보완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소설은 영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지만 영화는 영화 자체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내용 전개가 상당히 단편적이다. 다시 말해 둘은 ‘상호보완적’이 아니라 영화가 소설에 ‘종속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절대 영화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단순히 재미만 얻기 위해서라면 영화만 보면 되지만 톨킨이 창조해낸 중간계를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하려면 소설을 읽어야한다는 이야기이다.
드디어 이 글도 끝매듭을 맺을 때가 되었다. 방학 동안 글을 썼지만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있어서 며칠 만에 뚝딱 다 쓰지 못했다. 2주일 동안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써서 계절학기가 끝나고서야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 당분간 반지의 제왕은 다시 볼 일이 없을 듯하다. 다른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저 판타지의 고전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책이지만 반지의 제왕은 개인적으로 정말로 재밌게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작품이다.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웬만한 책보다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 책이기도 하다. 발바닥에 털이 복슬복슬한 호빗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 나의 모험을 여기서 끝내려 한다. 안녕.
7. 참고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1_반지원정대 I」, 씨앗을 뿌리는 사람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2_반지원정대 II」, 씨앗을 뿌리는 사람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3_두 개의 탑 I」, 씨앗을 뿌리는 사람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4_두 개의 탑 II」, 씨앗을 뿌리는 사람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5_왕의 귀환 I」, 씨앗을 뿌리는 사람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6_왕의 귀환 II」, 씨앗을 뿌리는 사람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7_해설편」, 씨앗을 뿌리는 사람 김보원, 「J. R. R. 톨킨의 판타지 세계 - 『반지의 제왕』을 중심으로」 두산백과사전, 「톨킨」,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위키피디아, 「톨킨」, 「루이스」, 「반지의 제왕」, 「가운데땅」, 「니벨룽의 노래」, 「니벨룽의 반지」 대한성서공회, 「한글판 개역성경전서」 Tyndale, 「Holy Bible, New Living Translation」 Daum 카페, 「Forever 반지의 제왕」, http://cafe.daum.net/foreverlotr Naver 카페, 「중간계로의 여행」, http://cafe.naver.com/ehdrjsd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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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팬이라면 시리즈 전권 정도는 꼭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케이스까지 함께 구성되어 있고 타 도서들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서 소장하기에는 그만이라고 느껴지네요~ 책으로 읽는 감동은 영화가 주는 감동 이상이 었습니다. 상상 속에 펼쳐지는 이미지는 영화로 이미 창조되어진 이미지보다 광대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꼭 글로 읽어보길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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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은건 어제였습니다. 반지의 제왕을 처음 영화로 접한 저는 정말 책은 얼마나 더 장엄하고커다랗고 멋있고 그 세세한묘사들을 보기위해 산 책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책 상황을 보았을 때 괜찮겠지 하고 받아 보았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J.R.R.톨킨이 명한대로 번역을 했다고 하니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어체로 되어있는 호빗들의 이름은 정말 유쾌하고 재미 있습니다. 약간 분위기가 흐트러 지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상관하지 읽다보면 어느새 글을 읽는다는 분위기가 아닌 상상속으로 휘말려 드는 것같은 느낌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제가 본 책들은 아직 별로 없고 2009년 후반부터 책에 대한 열망으로 구입해서 봐왔지만, 정말 저를 이렇게 강하게 끌어당긴 책은 아직까진 없던것 같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정말 톨킨의 영혼이 담긴 책인것 같아 저의 마음에도 가장 많이 와닿았습니다. 계속 남은 많은 시리즈들을 읽을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고 이렇게 머진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있음에 정말 감사드리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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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3대 판타지 소설 중에 하나인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 더 유명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영화보다는 책에 빠져 있던 터라.. 영화는 그리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가지 성경적 암시와 가끔씩 나오는 시구들, 그리고 번역체 임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생동감은...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가슴을 울린다고 해야 하나!? 판타지 소설은 사람들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엄청난 양의 배경지식의 결정체이다. 그런면에서 전설 민담 여러가지 신앙적 지식으로 탄탄하게 무장되어 있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감동하지 않을 수없었다. 비유적 표현들을하나하나 벗겨내면서 내가 느낀 감동이란.. 양파는 껍질을 뱉길 수록 매워지지만 이 소설은 껍질을 뱉겨낼 수록 감동으로 메워졌다. 선과 악의 구분이 인간 본성이 아닌 반지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결정 되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악한 사람은없다는 것이다 다만, 욕심을 갖게 하는, 물건들에게 현옥될 뿐이다. 조심하라 특히 공짜로 얻게 된 것을. 더더욱이 이것이 타인에서 부터 왔다면, 당신은 욕망과 타인의 공격을 함께받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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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부터 접하고 책을 접할것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번역이 정말 형편없다. 일관성 없는 지명과 인명 번역자 말로는 돌킨의 지침에 따랐다고 하는데, 그걸 따르기 이전에 독자들이 어떻게 책을 접하게 되는지도 생각해줘야 하는것 아닌가? 영화와 다른 지명과 인명 심지어는 일관성 조차 없다. 어디서는 빌보라고 했다가 어디서는 골목쟁이라고 했다가 친족 이름들도 우리 고유어라는데 전혀 와닿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아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요즘 우리 고유어를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번역자들은 언어학을 전공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보통 이러한책을 접하는 젊은층들은 슬픈 사실이지만 고유어에 관심이 없다. 나도 꽤 공부한 젊은층임에도 불구하고 이책에 번역되에 나온 고유 명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으며, 고로 그런걸 읽으면서 상상을 펼쳐나가고 느낌이 와 닿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영문판을 보는게 더 나을판이었다. 번역이라는것이 독자들이 알아들을수 있도록 우리정서에 맞도록 해야하는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씨앗을뿌리는사람들 번역은 정말 형편없기 짝이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돌킨의 판권을 씨앗을뿌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니 비통한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 덧붙여 이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있으면,도서관 손떼가 찌든 황금가지판을 빌려볼것을 권한다. 아님 정말 확실하게 보고 싶은 사람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영문판을 보거나. 그래도 사고 싶다면, 7권이 곽에 담겨있어 책장에 자리차지 하고 있으면 보기는 좋을지 모르므로 사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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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오래전에 발간되었고 수년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반지의 제왕... 곧 호빗도 영화로 신작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본편외에도 많은 화제와 인기를 끈 작품이니만큼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없을만한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오래전에 발간되었고 수년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반지의 제왕... 곧 호빗도 영화로 신작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본편외에도 많은 화제와 인기를 끈 작품이니만큼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없을만한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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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숨도 쉴 수 없는 책... 역사와, 그 표현과, 그 마법보다 더 신비로운 매력. 한번 든 이상 더이상 빠져나올 수 없이 폭 빠져버렸다. 내 인생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보다 환상적인 책은 본적이 없다. 한획 한획 따라가며 그 세계와 그 초록빛 하늘 아래를 정신없이 헤메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곳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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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것도 잇군...헐
암튼 내가 이제껏읽은 책은 그리많지않다..
그래도 나름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책을 찾아가며 읽는 편인데
sf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펑크스타일의 sf작가 필립 k딕,환타지와 sf를 아우르는
어슐러르귄...등등..얘기가 많이 샛지만 다시돌아오자면 반지의 제왕은 첨엔
반지저쟁이란 제목을 접햇엇다..
그리고 읽다보니 내용의 스케일이 장난이아니엇다..정말 이런표형박에 난 할수없다..ㅜㅜ
움...글구 얼마안가서 영화로 만들어진단얘길들엇고 난 각한편당 세번씩 영화를
보고말앗다..
또한 책도 일년에 한번씩 보고잇다..내용이야 워낙 알려져잇으니 생략하고
환타지를 좋아하는사람이라면 꼭 봐야될고전이 아닌가싶다..
또 이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호빗,실마릴리온도 이작가의 멋진 글솜씨에
매료될거라 생각한다..
이참에 나도 한번더 읽어보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