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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개혁자가 논한 고대의 급진개혁자
"근대의 개혁자가 논한 고대의 급진개혁자" 내용보기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의 삼대 저서는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1891),『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1897),『대동서(大同書)』이다. 『신학위경고』에서 공자의 경전이 모두 한나라 때에 유흠에 의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자개제고』에서는 공자를 옛것에 기탁하여 제도를 개혁(託古改制)하려 한 급진 개혁가로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유교의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근대의 개혁자가 논한 고대의 급진개혁자" 내용보기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의 삼대 저서는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1891),『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1897),『대동서(大同書)』이다. 『신학위경고』에서 공자의 경전이 모두 한나라 때에 유흠에 의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자개제고』에서는 공자를 옛것에 기탁하여 제도를 개혁(託古改制)하려 한 급진 개혁가로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유교의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묘사한『대동서』에서 인종 간·종교 간·국가 간·계급 간·성별 간·가족 간의 경계를 없애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 것을 주장한다. 캉유웨이는 사회를 삼세(三世)로 구분한 '공양삼세설'을 주장했다. 삼세는 거란세(據亂世)·승평세(昇平世)·태평세(太平世)로, 이는 공양가가 이상으로 하는 공자의 춘추 왕조 발전의 삼단계다. 서양 정치철학에 대입해보면, 거란세는 오늘날의 군주전제, 승평세는 군주입헌, 태평세는 민주공화제에 해당한다.

 

현행본 『공자개제고』는 총 2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 상고시대는 불확실하여 고증할 수 없다
제2권 주나라 말기에 제자백가가 함께 일어나 교설을 창립하다
제3권 제자백가가 교설을 창립하고 제도를 개혁하다
제4권 제자백가가 제도를 개혁하면서 옛것에 가탁하다
제5권 제자백가가 교설을 다투고 서로 공격하다
제6권 묵자 및 노자의 제자와 후학
제7권 유교는 공자가 창립한 것이다
제8권 공자는 법도를 제정한 왕이다
제9권 공자가 유교를 창립하여 제도를 개혁하다
제10권 육경은 모두 공자가 제도를 개혁하면서 지은 것이다
제11권 공자가 제도를 개혁하면서 옛것에 가탁하다
제12권 공자가 제도를 개혁하면서 요·순·문왕을 본보기로 삼다
제13권 공자가 제도를 개혁하자 제자와 당시 사람들이 옛 제도에 근거하여 질문하다
제14권 제자백가가 유교를 공격하다
제15권 묵자와 노자의 유교 공격이 가장 극성하다
제16권 유가와 묵가가 교설을 다투면서 서로 공격하다
제17권 유가가 제자백가를 공격하다
제18권 유가와 묵가가 가장 흥성하여 병칭되다
제19권 노나라 전체가 유교를 따르다
제20권 유교가 천하에 두루 전파되어 전국·진·한나라 시대에 가장 흥성하다
제21권 한무제 이후 유교가 사상을 통일하다


캉유웨이가 제자백가로 분류하여 다룬 학파 또는 인물은 자상백자, 원양, 극자성, 관자, 안자, 소정묘, 허행, 자막, 백규, 진중자, 묵가, 도가, 법가, 명가, 음양가, 종횡가, 병가 등 총 17개이다. 이어서, 춘추전국시대 제도 개혁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로 묵자, 관자, 안자, 극자성, 원양, 노자, 양자, 송견, 윤문, 신도, 혜자, 허자, 백규, 추자, 공손룡, 등석, 임기, 상군, 신자, 한비자 등 총 20명을 거론한다. 끝으로 탁고개제를 실시한 학파를 총 15개로 분류하는데, 묵자, 노자, 양자, 장자, 열자, 추자, 시자, 상군, 한비, 관자, 여씨, 내경, 할관자, 회남자, 방사 등이다. 교설창립, 제도개혁, 탁고개제 세 항목에 모두 공통되는 학파는 묵가, 도가, 법가, 음양가 등 4개 학파다.

캉유웨이는 육경을 모두 공자의 저작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서,『시』·『서』·『예』·『악』·『역』·『춘추』가 모두 공자가 제도를 개혁하면서 저술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캉유웨이는 경(經), 전(傳), 설(說) 세 가지 텍스트 등급을 엄밀하게 구별하고 있는데, 경은 공자가 직접 지은 텍스트를 의미하고, 전 혹은 기(記)는 제자들이 전수받아 기록한 텍스트를 말하고, 설이란 제자와 후학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구전된 텍스트를 말한다.


"대체로 양한(兩漢)의 군신(君臣)과 유생(儒生)들은 난세를 바로잡으려고 한 『춘추』의 제도를 존중하고 따랐지만, 패도(霸道)의 정치술을 혼합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여전히 그 제도가 완전하게 시행되지 못했다. 성인의 제도가 막 움트기 시작할 때, 신(新)나라 왕망(王莽) 시대에 유흠(劉歆)이 문득 출현하면서 위조된 『좌씨전』이 성행하고 고문(古文) 경전이 제멋대로 난립하였다. 이에 공자의 경전을 주공(周公)의 작품으로 깎아내려 버렸고, 성왕(聖王)으로서의 공자의 지위를 선사(先師)로 강등시켜 버렸다.『공양전(公羊傳)』의 학문이 폐기되고, 개제(改制)의 의리가 사라졌으며, 삼세(三世)의 학설이 미미해지고, 태평의 정치와 대동의 복지가 어둠에 가려진 채 밝혀지지 않고 꽉 막힌 채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중국은 위(魏)·진(晉)·수(隋)·당(唐)나라 시대의 불교와 도교, 사장(詞章)의 학문이 뒤섞여 있고, 저(氐)·강(羌)·돌궐(突厥)·거란(契丹)·몽고(蒙古) 등 이민족의 풍속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단지 태평에 대해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족(漢族)의 발란반정(撥亂反正)의 의의를 찾는 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중국의 백성들은 2,000년 동안 난폭한 군주와 오랑캐의 잔혹한 통치에 의해 시달렸으니, 너무나 슬프도다!"(46, 47쪽; 『공자개제고』「서」)

 

夫兩漢君臣儒生,尊從《春秋》撥亂之制,而雜以霸術,猶未盡行也。聖制萌芽,新歆遽出,偽《左》盛行,古文纂亂。於是削移孔子之經而為周公,降孔子之聖王而為先師;《公羊》之學廢,改制之義湮,三世之說微;太平之治,大同之樂,暗而不明,鬱而不發。我華我夏,雜以魏晉隋唐佛老詞章之學,亂以氐羌、突厥、契丹、蒙古之風,非惟不識太平,並求漢人撥亂之義,亦乖剌而不可得。而中國之民遂二千年被暴主夷狄之酷政,耗矣。哀哉!

 

공자와 육경의 관계는 공자의 유교 창립으로부터 사상 통일로 진행되는 일련의 유교 학술사에서 중간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캉유웨이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이다. 만약 공자와 육경의 관계가 단절 되어 버린다면, 공자가 창립한 유교는 단지 공자 문하에서 구전된 한 학파의 학설에 지나지 않게 되고, 경전을 통해 완성한 한대(漢代) 유교의 사상 통일도 유교의 성과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캉유웨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육경은 반드시 공자가 창립한 유교의 핵심 사상을 담은 경전이자 사상 통일의 토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육경이 공자의 작품임을 밝히려고 시도한 것이다.    ​

z***a 2014.09.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