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을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황제의 술(황제내경)이 있고, 세상을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공자의 경(오경)이 있다. 공자는 오경을 지어 세상을 다스리는 법도로 삼았다. 캉은 공자가 제도를 개혁하여 시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위가 없었기 때문에 경전을 지어 그 속에 제도 개혁의 대의와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캉은 공자를 '소왕'으로 높인다.
캉유웨이는 공자가 교주이자 성왕, 그리고 지성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육경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공자는 교주(敎主)이자 신령스럽고 밝은 성왕(聖王)으로, 천지와 짝이 되어 만물을 기르며,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나 어떤 의리도 모두 공자의 큰 도 속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없다. 따라서 인류의 출현 이래로 아직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대성지성(大成至聖)이다. 그런데 공자의 큰 도를 찾아보아도 한 글자도 없고, 단지 제자들이 기록한 [공자의] 어록인 『논어』와 외교문서·사령장·사건 발췌문 등에 근거하여 기록된 조정의 조각난 문서[斷爛朝報]인 『춘추』가 있을 뿐이다. 만약 『시』·『서』·『예』·『악』·『역』이 모두 복희씨, 하(夏)나라, 상(商)나라, 문왕(文王), 주공(周公)의 옛 전적이며, 공자와는 무관하다면 공자는 겨우 후세의 어진 사대부일 뿐이기 때문에 정현(鄭玄)이나 주자에 비교해도 오히려 미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인류의 출현 이래로 인류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 존재하지 않았던 지성(至聖)이 될 수 있겠는가?"(163, 164쪽) 공자는 탁고개제의 형식으로 '유교'라는 독창적인 제도와 법도를 세웠다. 공자의 탁고개제에서 탁고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은 요임금과 순임금, 문왕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백성의 주인이고 태평의 시대이며 인도의 극치로, 유학자들이 모두 최고로 여기는 자들이다. 중용에서 "공자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근본으로 삼아서 전했고, 문왕과 무왕을 본받았다"는 말은 공자의 제도 개혁이 오로지 요임금과 순임금, 문왕과 무왕에 가탁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캉유웨이는 각 경전의 명칭과 전수관계를 다음과 같이 간술한다. ●『시』는 옛날의 명칭이다. 3천여 편이 있었는데, 지금의 305편은 공자가 지었으며, 제(齊)나라[의 원고(轅固)], 노(魯)나라 [신배(申培)], [연(燕)나라의] 한영(韓嬰)이 전한 것이 이것이다. ●『서』는 옛날의 명칭이다. 옛날에는 3천여 편, 120개국이 있었다. 지금의 28편은 공자가 지었으며, 복생(伏生)이 전한 것이 이것이다. ●『예』는 옛날의 명칭이다. 삼대 제후국들의 옛날 제도는 나의 저서인 『구제고(舊制考)』에 보인다. 지금의 17편은 공자가 지었으며, 고당생(高堂生)이 전한 것이 이것인데, 바로 지금의 『의례』이다. ●『악』은 옛날의 명칭이다.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음악 소리는 배우나 광대가 어린이나 여자들 사이에 뒤섞여 춤추며 희롱하는 것이다. 지금 6대의 음악인 황제(皇帝)의 「함지(咸池)」, 요(堯)임금의 「대장(大章)」, 순(舜)임금의 「대소(大韶)」, 우(禹)임금의 대하(大夏)」, 탕(湯)임금의 「대호(大頀)」, 문왕(文王)의 「상(象)」, 무왕(武王)의 「무(武)」는 모두 공자가 지었으며, 제씨(制氏)가 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역』은 옛날의 명칭이다. 공자가 점을 쳐서 「양예(陽預)」를 얻었고, 또 『곤건(坤乾)』을 얻었는데, 지금 『역』의 상하 두 편은 공자가 지었으며, 양하(陽何)·시수(施讐)·맹희(孟喜)·양구하(梁邱賀)·경방(京房)이 전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춘추』는 옛날의 명칭이다. 묵자가 '백국(百國)의 『춘추』라고 말했고, 『공양전』에서 '손질하지 않은 『춘추』'라고 말했으며, 『국어』 「초어(楚語)」에서 '『춘추』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지금의 11편은 공자가 지었으며, 공양씨(公羊氏)와 곡량씨(穀梁氏)가 전(傳)을 달고 호무생(胡毋生)과 동중서(董仲舒)가 전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참고로 이 책의 평점이 별 네개인 이유는 중복되는 내용이 앞 권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