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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만큼 나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활자중독에 가까운 나는 활자가 없으면 불안하다. 뭐라도 읽어야 할 게 없으면 과자 봉지에 있는 글이라도 읽어야 한다. 예전에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책을 읽지 못하는 거였다.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을 수 없어 불안했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타인의 삶을 읽는 일이 좋다. 아마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부르는 책은 특별할 게 없는 거 같지만,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하다. 읽은 책에 대한 공감, 새로운 책의 발견이다. 정여울 작가가 권하는 책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읽고 있는 책 중에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있다. ‘문두스’라고 불리는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다리 위에서 한 여자를 구한 뒤 수업을 팽개치고 그 길로 바로 리스본으로 향하여 경험한 감정의 깊이를 나타낸 소설이다. 학교와 집 밖에 오갈 줄 몰랐던 그레고리우스가 이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삶이다. 포르투갈의 도시에서 프라두의 삶을 파헤치는 모험을 시작한다. 누구나 꿈꾸지만 실행하지 못한 일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얼마나 열려 있는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산문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작가만큼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도 없는 거 같다. 문학이 일상인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난 산문이었다. 좋은 작품은 여러 번 읽어도 좋은 느낌을 준다. 읽을 때마다 다른 인물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을 문학에서 경험한다.
문학은 어쩌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말하는 부분에서 왜 고전문학이 사랑받는지를 깨닫게 된다. 가든파티가 끝난 후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장례식에 참석했던 로라의 부끄러움의 탄식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문학의 힘을 느끼게 된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은, 이곳에서는 마음껏 울어도 괜찮은 시간, 이곳에서는 마음껏 세상을 향해 소리쳐도 되는 시간을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미처 표출하지 못한 모든 슬픔과 분노와 열정과 희망이, 바로 이 시간,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통해 비로소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11페이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힘을 말하는 책이다. 작가는 다양한 독서 경험과 글쓰기로 우리를 문학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책을 펼쳐 든다. 기다림의 시간에도 책을 읽는데, 책을 읽는 타인의 모습을 보는 일도 무척 좋다.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수록된 사진 속에서 장소를 불문하고 책을 펼쳐 든 사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궁금함에 책 제목을 유심히 바라볼 것 같은 풍경. 뮌헨의 지하철역, 쿠바의 거리, 프랑스 니스에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의 풍경에서 작가가 느꼈던 설렘과 떨림이 공유되는 듯하다.
문학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를 읽을 때 여태 비극의 신탁에 갇힌 오이디푸스만 보았던 것 같다. 작가로 인해서 오이디푸스를 추락의 운명을 이겨내고 자기의 삶을 지켜낸 용기에 관한 책으로 읽을 필요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책은 다양한 방법으로 읽히고 감동을 준다. 문학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 다른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므로 그렇다.
업무가 많은 신년 초,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는 시간은 나의 피로를 푸는 시간, 나에게 위로를 주는 시간이다. 삶의 모든 순간에 책이 필요하다. 특히 문학이 주는 힘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한 권의 책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삶의 모든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문학이 주는 즐거움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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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여울 작가의 문장을 참 좋아한다. 작가의 감성이 나의 감성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아 그의 책을 읽으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문학에 대한 감성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책에는 내가 읽은 책도 있고 읽지 않는 책도 있다. 내가 읽은 책들을 작가의 생각과 비교해 보며 간접적으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표현력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 "문학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슬픔의 사각지대를 끝까지 발굴해 모두가 볼 수 없는 언어의 햇빛이 쏟아지는 세상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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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늘 작가의 신간 소개랑 인터뷰는 읽었는데 왜 읽어보지 않았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인터뷰를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지함 때문에 "책이 나에겐 좀 어려울 것 같다"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책방에서도 그의 책을 들었다 놨다 했던 이유가 "책을 통해 변화하는 나 자신"에 대한 강박이 느껴져서이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내가 바뀌고, 내가 변화하고, 꼭 그래야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우리가 소위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같은 문학을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데 읽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그런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 이번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라... 문학이야 늘 필요하지만 더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은 분명히 있을것 같다.
제 마음을 둘 곳은 정해진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사이'였습니다. 문학은 내게 '사이에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고통과 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슬픔과 기쁨 사이, 현재와 과거 사이에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현재의 나에만 집착하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저는 모든 존재의 '사이'에 존재함으로써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이에 존재하면 방황조차도 고유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로서만 존재하면 오직 내 욕망만 우선하게 되지요. 타인으로만 존재하면 나를 돌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함으로써 더 풍요로운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나만의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 타인만의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놓인 수많은 연결과 공감의 끈들을 발견하여 고통을 버텨낼 수가 있습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문학을 이렇게 심오하게 정의하다니. 내가 가장 힘들때 나를 구원해준 것은 주위의 따뜻한 응원과 모든 것을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문학이 "사이에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통과 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슬픔과 기쁨 사이, 현재와 과거 사이에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현실의 나를 잊기, 현실의 나에게서 도피하기로 생각했던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나로서만 존재하면 내 욕망에 우선하게 되고, 타인만으로 존재하면 나를 돌볼 수 없기에 나는 책을 통해 타인의 시선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재능을 알아보는 재능이야말로 문학작품의 독자가 지닌 무시무시한 힘이다. 세상이 본래 지니고 있던 생생한 활기,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지만 발휘하지 못하는 재능, 우리 안에 숨은 시인의 목소리를 불러 꺠우는 일. 그것이 문학이다. 단 한 번, 시 한 편을 쓰고 그 다음 날 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시인의 재능, 내 안에서 반짝이는 최고의 목소리를 꺼낼 힘, 내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재능을 세상에 표현할 힘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시들지 않는다. 그 힘을 일깨우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아직 긁지 않은 복권'으로만 살다가 지나간 나날들을 한탄하며 생을 낭비할지도 모른다. 부디 잊지 않았으면. 자기 안의 시인, 자기 안의 화가, 자기 안의 피아니스트를 끌어내는 힘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말들, 결국 내 빛을 알아주는 이들을 찾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잠들지 않는 마력이었음을.
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하지만 그 단계를 지나쳐버리면 다시 "나는 그런 멋진 글을 쓸 수 없어"라는 절망의 시간이 온다. 나는 글을 쓰고싶어지는 순간을 지나 절망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허섭스레기같은 글을 괜히 남겨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지' 라며 글 쓰는 것 자체에 대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작가의 이 말이 나를 조금 움직여버렸다. 평생 아직 긁지 않는 복권으로 살 것인가, 내 편이 되어주는 말들을 찾을 것인가.
누군가가 이소라의 음악을 너무 우울해서 싫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도 모르게 버럭 화가 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울할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예술가가 슬픔을 표현하는 일을 금지당할 때 나는 그 사람 곁으로 가서 그의 슬픔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는 마음껏 슬퍼할 권리, 마음껏 아파할 권리가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 우울할 권리란 숨 쉴 권리만큼 중요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우울할 권리가 있지만, 우울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슬픔이나 우울의 시간이 더욱 절실할 때가 있다.
이소라나 윤상 같은 가수는 사실 연식이 좀 오래된(?) 가수이긴 하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이기 때문에 "나만의 가수"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에서 가끔 이런 가수들을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동감" 버튼을 누르며 박수를 치고 싶다. 신형철 작가가 윤상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듯, 정여울 작가는 이소라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버럭 화를 내며 옹호한다. 늘 그렇진 않지만 가끔은 이소라의 우울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지? 나의 우울감을 내가 스스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이소라는 그 슬픔을 우리 대신 노래해주고 표현해준다. 노래의 순기능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학에 대한 확신과 그 효용에 대해 서술한 특별한 책, 정여울 작가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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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책을 읽고
오늘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책을 읽게 되었다. ㄴ나에게도 다시 추억을 생각하면서 문학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 책을 보는 순간에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책 속으로 여행하는 것처럼 꿈꾸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은 힘이 들때면 맘을 내려 놓고 싶을 때도 몇 번 있었다. 많은 책과 접하면서 인생의 삶과 그리고 맘을 다스리는 시간을 누리고 온 기분이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 책을 보면서 힐링하는 기분이었던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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