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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는 건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 창호지를 바른 문, 그 문을 열고 증조할머니와 함께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다. 또한 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기억. 시간이 흘러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88세이던 증조할머니가 곰방대를 들고 잘게 썬 담배를 피우던 모습과 치매에 걸려 엄마에게 밥을 달래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는 그 시절 얼마나 힘 드셨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한 생각이다. 지금의 나 같으면 도망가 버리고 말았을 그런 일들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감내하셨다.
대구의 북성로 적산가옥촌에서 저자가 살기 시작한 건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유일한 며느리였던 엄마가 병수발을 들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모님과 저자와 여동생이 살던 집에서 엄마의 공간은 없었다. 엄마의 나이 고작 서른 살이었다.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마다 지금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아내인 할머니가 계신데 왜 할머니가 병수발을 하지 않고 엄마에게 하도록 했을까, 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집으로 이사했을 때도 할머니가 안방을 차지했다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시절에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는 게 문제다.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중략)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26페이지)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집에 대한 시절을 추억하는 동시에 페미니즘적인 에세이로 읽었다. 여성의 입장, 여성의 지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모두에게 있었던 자기만의 공간이 엄마에게만 없었다. 집에서 머물 시간이 많지 않은 아빠에게 서재라는 공간이 있었지만 엄마에게 허락된 공간은 겨우 부엌이었다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 작가가 느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집은 한 가족이 머무는 장소임과 동시에 그 가족의 경제적 지표도 나타내는 법이다. 대구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 수성구의 고급 빌라로 이사했을 때 집이 가진 계급과 재산적 가치, 즉 자본의 속성을 알아버린 유년시절. 성년이 되어 대구를 떠나 서울로 와 머물렀던 집은 집이라 할 수 없었고 방에 살았다고 표현했다. 동생과 함께 살다가 따로 살기로 하면서, 자기만의 집에서 비로소 안온함을 느꼈다.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135페이지)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커졌다. 물론 거실의 한 벽과 부엌의 한 벽을 책으로 쌓아두고 나의 공간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퇴근 후 TV를 보는 남편을 피해 안방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빈 방을 나만의 방으로 꾸미고 싶어졌다. 그 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게으름에 아직까지 손대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이 굳어졌다.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198페이지)
집을 추억한다는 것은 그리움의 시절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작가가 기억하는 최초의 집을 생각하며 꾸민 사진이 실려 있다. 안방에는 꽃무늬로 된 짙은 색의 벽지, 남편의 방과 주로 집에서 작업하는 작가에 맞게 거실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몄다. 거실 창문에 책상을 배치하여 햇볕과 바깥의 풍경을 음미하며 작업에 임할 수 있게 했던 게 특별했다.
하재영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비록 한 편의 에세이를 읽었을 뿐이지만 그 담담한 문체의 글에서 작가가 못다 한 말들이 많을 거로 생각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글들이 작가만의 언어로 탄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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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 속 사진이 보였다. 현재의 딸과 과거의 엄마 사진이 맞닿아있었다. 엄마가 엄마이기 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딸은 다음 챕터에서 여성학과 젠더에 대하여 논한다. 여성 작가의 책을 예로 들어가며 성차별이 가져오는 문제를 돌아본다. 과거의 여성, 엄마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일들의 불합리함을 현재의 여성들에게 일깨운다. 현재의 여성들은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들의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겼다. 결혼하기 전에는 한 집안의 딸이었던 엄마가 며느리이자 아내, 엄마가 되면서 자유의지는 빛을 잃었다. 이 글을 쓰기 전 엄마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작가는 엄마에게 질문을 하면서 비로소 엄마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방법을 알기 전 엄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엄마랑 함께 여행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여유가 생겼는데 엄마는 계시지 않는다. 딸의 시선으로 엄마의 삶을 기억하려는 작업은 엄마를 이해하는 작업과도 같다. 삶이 바빠 엄마와 소원했던 시간을 지나 육성으로 듣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자 영원히 간직될 엄마의 기록이다.
작가인 딸이 엄마가 자라온 삶을 듣는다. 어른들의 선택으로 아빠와 결혼하게 된 엄마가 겪어야 했던 일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자행되는 또 다른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 사랑했던 할머니의 행동을 엄마의 육성으로 들으며 갈등해야 했을 입장도 이해가 된다.
기나긴 문학사에서 소수자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처럼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 울프적인 행위”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그리하여 여성 작가가 되는 것은 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로부터 이어져온 계보의 말단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임을 깨달았더라면 나의 삶과 글은 달라졌을까? (73페이지)
유년 시절부터 살아온 집과 그리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먼저 읽으며 작가가 가진 집에 관련된 기억의 편린에 공감했다. 좁은 집에서도 안방을 차지한 할머니와 자기만의 공간이라고는 부엌뿐이었던 엄마를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엄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작업’이라고 표현했으며 엄마의 삶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여성학적 측면에서 엄마의 삶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순응하며 살아왔던 과거의 삶이었다면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14페이지)
오래전에 엄마가 건강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자매들과 자주 이야기한다. ‘엄마가 그때 그랬어.’ 때로는 아빠 원망도 해보지만, 어쩌겠나. 이미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을. 엄마의 기록이 사진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음성으로 된 것들을 남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날들을.
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의 언어는 숨겨졌고, 그것이 마음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다. 누구의 엄마도 아닌 누구의 아내도 아닌 한 사람으로 존재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들은 오늘을 살아야 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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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갓집 그 집은 길가에 있었다. 대문이 없는 집이었다. 주인은 골목 안 조그만 슈퍼를 했다. 빨래를 널려면 슈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니까 남의 집 마당에 내 빨래를 널어놔야 했다. 부끄러워져서 속옷은 꼭 짜서 방 이곳저곳에 걸어놨다. 비가 오면 내 몸에서 쉰내가 나는 건 착각이었을까. 부모는 헤어졌고 나는 방치되었다. 한 달 월세가 7만 원인 그 집에서 혼자 2년을 살았다. 엄마랑 살던 동생이 잠깐 같이 살기도 했지만 철저히 혼자였다. 아이들은 꼭 내 방 앞에서 공차기를 했다. 골목은 비좁았고 하필이면 내 방 앞이 넓었다. 참다가 어느 날은 나가서 그만 가라고 소리를 치곤했다. 그들보다 몇 살 많은 나라서 말은 듣지 않았다. 잰 뭐야. 시큰둥한 얼굴로 다시 벽으로 공을 찼다. 여름방학 내내 갈 데가 없었다. 문을 열어 놓고 목욕탕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유일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읽어도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소록도 사람들의 비애가 내게까지 전해져서 마음이 뜨거웠다. 그 여름 날. 반장이랑 반장 엄마가 찾아왔다. 내가 혼자 지낸다는 이야기를 반장이 엄마한테 했다. 반장 엄마는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기도를 해줬다. 눈을 감았지만 눈 안쪽이 간지러워 뜨고 싶었다. 반지하 길갓집에 살다가 반지하로 이사 왔다. 주인은 할머니였다. 혼자 사셨는데 가끔 나를 자신의 1층 집으로 불러 음식을 먹이곤 했다. 사양하지 않고 식구 같은 얼굴로 상 위에 음식을 전부 먹었다. 수제비를 자주 해주셨다. 그 집은 월세가 10만 원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그 집에서 살았다. 장마철이 최악이었다. 습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문학소녀답게 책을 사서 모았는데 아침에 펼쳐 두고 간 책이 학교 갔다 오면 퉁퉁 불어 있었다. 거짓말 아니다. 물기 머금은 책장은 쉽게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많은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헌책방에서 사서. 가난한데 꿈은 많아 결코 좌절을 모르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에 심취했다. 나를 대입해 놓고는 무수한 상상을 부풀렸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상상과 추상이 섞여 몽상이 되었다.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이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할 때 나는 하루 종일 어두운 방에서 책을 읽었다.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 레마르크의 『개선문』. 박완서. 조세희. 조정래. 한 번은 국어 선생님이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라고 했다. 읽었다. 도서실로 오라고 했다. 원고지를 주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은상을 받았다. 글쓰기로 받은 최초의 상. 문학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문학이 나를 구원해 줄 거야.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든 일이었다. 한옥집 하재영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어갈수록 나는 어느 한 시절과 세월을 다시 마주 봐야 했다. 잊었다는 감각도 없이 잊고 지내왔던 시절이었다. 가스가 떨어져 난방이 안 된 방에서 이불 몇 채를 뒤집어쓰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던 길갓집. 문을 열어 놓으면 잠시 햇빛이 떨어지던 시간에 연습장을 펼쳐 놓고 소설을 썼던 반지하. 겨우 마련한 등록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집을 구해야 해서 전봇대만 쳐다보고 다녔다. 다리가 아파 포기할 때쯤 '방 있음'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방을 안내했다. 거대한 한옥집이었는데 대문에서 입구까지 다닥다닥 방이 붙어 있었다. 그 방이라면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행히 보여준 방은 두 분이 기거하는 바로 옆이었다. 도둑이 들 일은 없겠구나. 한 달에 14만 원. 10년을 살았다. 그 집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고 많이 사 모았던 집이었다. 사면을 책장으로 채웠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했다. 집을 가꾼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문학이 나를 구원했을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하재영 소설가의 집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책의 띠지에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의 소개를 이렇게 남겼다. '나는 오랜 시간 울었다. 이 책이 내가 살아왔던 집들을 모두 불러냈기에.'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리움과 비애 때문에 울컥했다. 정희진은 정확한 사람이구나. 또한 모두에게 공통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집에 대한 기록을 낱낱이 써낸 하재영은 정확하고 야무진 사람이구나를 실감한다. 자신이 살았던 최초의 집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꿈의 좌절을 겪었지만 끝내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버텨낸 한 인간의 서사가 담담한 언어로 펼쳐진다. 총 열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마지막 문장마다 서글프고 힘겨웠던 과거를 소환 한다. 소설을 쓰겠다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던 시간. 집 밖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아프간으로 떠난 젊은이는 죽음을 맞이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한 사람을 울게 한다. 가방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생이 할부로 산 명품 가방을 메고 나간 언니는 백화점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자신의 싸구려 지갑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에곤 실레의 그림으로 감추려 했던 초라한 현실을 목도한다. 시를 읽고 소설을 써도, 그림과 사진으로 싸구려 벽지를 감춰도, 나는 나의 현실을 잊은 적 없었다.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를 오르락 내리며, 창문 밖에서 오가는 거친 말소리를 들어야 하는 진짜 현실을. 나는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많은 것을 버리고 싶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시가 적힌 종이, 쓰이지 않은 소설,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中에서) 한옥집에 사는 10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학과 사무실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구직 정보도 챙기지 않았으며 교직 이수조차 하지 않았다. 재학 원생이라면 할인을 받아 싸게 들을 수 있는 영어 강좌도 등록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도서관에 갔고 학교를 나오면 시립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달랐기에. 진은영이 시 '대학시절'의 한 구절처럼 '시시한 시들만 토해'내다가 졸업했다. 이력서에는 학교를 다닌 기록 외에는 적을 게 없었다. 단단한 마음도 없었기에 집에서 글만 쓰겠다는 각오도 없었다. 하재영은 집을 떠나올 때마다 무언갈 버린다. 텔레비전을 그림과 종이를 소설을. 그리고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집다운 집'에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가려면 소설을 버려야 했다. 꿈 하나를 포기하고 현실의 안온을 얻었다. 닥치는 대로 글을 쓰자 겨우 살만한 곳에서 살아간다. 그게 좋았다. 안 되는 걸 아는데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위치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 남의 집이지만 사는 동안에는 '온전한 내 집'이라는 마음으로 집을 꾸미자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겼다. 햇살 맛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개인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알게 된다. 모든 집의 기록은 보편의 서사로서 개개인에게 작동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을 그 꿈. '내 집 갖기'는 공간을 점유한다는 탐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곰팡이가 피어오르지 않고 책이 물에 젖지 않는 집. 낮인데도 불을 켜 놓는 대신 햇살이 들어와 사방을 밝혀 주는 집. 각자의 방이 아니라도 넓은 책상 하나를 들여놓고 그 앞에 앉아 무얼 적을까 고민하게 하는 집. 누군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면,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집의 한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상이 차지하는 면적만큼 내밀한 공간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中에서) 다양한 집에 살아왔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고 나서 이렇게 쓸 수 있겠다. 나는 다양한 시절을 거쳐왔다고.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서글픔과 분노가 나의 한 시절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 시간을 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시한 사람이 되어 피곤한 일들을 하며 현재를 보내고 있을 거라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척박하고 삭막한 집에서의 시간이었다. 밤새 부부 싸움을 하며 텔레비전 선을 잘라가 자신의 집에 연결하는 사람이 있었고 문을 열어 놓고 음악을 크게 듣는 이웃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미래의 집을 희구했다. 커다란 창이 있고 거실에는 책상을 놓아둔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들어와 곰팡이가 올라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닐 일 없이 원하면 평생 살아도 되는 집으로 나를 밀어 넣어 준다. 팬데믹 시절, 나는 직장을 잃고 이력서에 쓸 한 줄을 위해 하루 4시간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다. 엑셀과 수식 함수, 차트 그리기, 셀 합치기, 처리 용량 속도, 에드삭, 에드박 같은 용어를 외우며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기록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리숙하고 아팠던 거구나 이런 마음으로 현재의 나에게 용기를 준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좋은 책이다. 결코 용서할 수 없게만 느꼈던 과거의 나와 화해를 시켜주기 때문이다. 집에서의 기억을 꺼내보니 희미한 사랑이 있었다. 버림받았다고 울고 있을 때도 나는 혼자이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반장이 주인집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곰인형을 사 왔던 엄마가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아빠가 찾아와 얼른 가라고 화를 내었다. 곰인형을 주지도 못한 채 엄마는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단발 파마머리를 한 늙은 여인만 보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그때 왜 우리는 같이 살지 못했나.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좋은 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로 하면 신파가 되어 버리는 나의 서사를 길고도 자세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겨울밤은 서글프지 않았다. 내일의 햇살을 기대해야 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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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인간, 여성으로 떠올리게 된 것은 결혼 이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아이를 낳은 직후 부터이다.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무시며 나와 갓난쟁이를 돌보셨다. 외할머니가 엄마와 나를 위해 하셨던 일들을 당신도 지금 똑같이 하고 있다며 가끔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의 딸로만 살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도 하셨다. 나는 상상하지 못하는 시절, 그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에게 호된 시집살이는 없었지만 대신 무뚝뚝하고 언어폭력을 일삼는(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는) 그저 성실이 무기였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도 우리의 대화 소재로 종종 소환되었다. 엄마가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 할 때 마다 ‘힘든 아빠 곁에서 떠나지 않고 우리를 잘 키워줘서 고마워.’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의 지난했던 세월이 장성한 자식들의 안녕이나 행복으로 보상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나 싶네,,,’라고 말하던 쓸쓸하고 공허했던 엄마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 시간들을 떠올렸다. ‘엄마’에 대해 그리고 그녀에게 영향 받은 ‘나’에 대해 생각했다.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내가 엄마에게서 수용하고 싶었던 것 또 배반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엄마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늘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셨던 외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남동생을 낳은 일까지. 엄마가 더 자주적인 사람으로 살지 못해서 지금의 힘듦을 자초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엄마 역시 ‘내가 바보였지,,,’라는 말로 자신의 선택과 인생을 부정했지만 책을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엄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매순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엄마에 대한 나의 얇팍하고 건방졌던 마음을 이제야 반성한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라고 했다. 엄마에게 다시 자신이 되는 시간을 선사하겠다. 딸, 아내, 며느리, 엄마를 거쳐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된 ‘자신’을. 듣기 힘들고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을 묻고 경청하면서 말이다.
고선희님의 용기 있는 고백과 작가의 치열한 분투 덕분에 나도 나의 엄마도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또한 딸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새로운 과제도 주어졌다. 엄마 나와의 관계에서는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것들이 나와 딸과의 관계에서는 더 쉬워지고 새로워지길 바라며 ‘모녀 관계’의 확장을 꿈꾸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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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산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구입 당시 추천수가 많은 신간이었고 관심분야였으며 대부분의 리뷰가 '안읽으면 손해'에 가까워서 책호더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역시나 호더답게 배송완료일자로부터 약 1년 6개월이상을 읽지 않고 꽂아만 둠.) 표지에 소개된 대로 우리나라에서 개들이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곳-위탁보호소,개농장,번식장,미용실습장,개고기시장 등-을 취재한 르포다. 저자가 현장에 동행해 목도한 곳도 있고 아닌 곳(은 종사자 인터뷰)도 있다. 개농장과 번식장,위탁보호소의 개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생생한 증언들을 통해 실태를 접하고 나니 차마 그곳에 있는 죄없는 생명들에게 '산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양심에 걸린다. 채식이 우리 동물친구들의 권리와 환경문제를 해결할 열쇠인 걸 알지만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처지라 개식용에 관한 논쟁에서 나는 늘 관전만 해왔다. 소는? 돼지는? 닭은? 식물은?이라고 되묻는 이들에게서 그 동물들의 고통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상대방 주장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느껴져 분하고 괘씸했지만 그런 그들에게 당당히 항변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채식주의자들에게만 허락된 권리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다보니 조금은 목소리를 내도 되겠다는 내 나름대로의 명분을 얻었다. (저자가 이런 걸 바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제목에 대해 의미를 곰곰히 유추해 보았다. 위로일까. 아니면 사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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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요?" "잘 팔리는 집이요." 일 년 전,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 주변에서도 부동산에서도 똑같이 말했다. 잘 팔리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집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에게 집을 팔고 나갈 때를 먼저 생각하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진지하게 새겨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손으로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닌 때였다. 아는 것도 없었고, 안다고 해도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이니 무섭기만 했다. 한참을 더 보러 다니면서는 귀찮고 힘들기까지 했다. 집값을 예상했음에도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에 심란하던 때였다. 이사할 때 필요한 이런저런 비용까지 생각하면 집값을 매매 가격 그대로만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었다. 큰돈이 오고가야 했으니, 결정도 신중해야 했다. 먼저 예산을 정하고 가고 싶은 동네를 몇 군데 추렸다. 그 동네의 거의 모든 집(아파트)을 보러 다닌 것 같다. 석 달의 주말을 집을 보러 다니면서 보냈다. 집을 보러 다닌 지 석 달 만에 겨우 집을 계약하고, 계약 후 거의 넉 달 만에 이사를 했다. 나에게는 첫 이사였다.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페이지) 사실 집에 관해서라면, 나는 거의 할 말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사하기 전 엄마와 살던 집이 내가 살던 집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이사를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그 집에서, 나는 나왔고 엄마는 아직 살고 계신다. 작고 오래된 집이다. 여기를 고치고 저기를 조금씩 넓히면서 여덟 식구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던 엄마의 공간이자 지금 엄마에게 남은 전부다. 집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으니, 이제 더는 손댈 수 없는 낡은 집이 되었다. 길게는 1년이라는 시간을 잡고 이제는 엄마가 이사할 집을 생각하는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였다. 울컥해지는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듣기만 했던 엄마의 시간을 상상했다. 나는 기억도 못 하던 시절, 엄마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이사 다녔다고 했다. 어떤 날을 한밤중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옮긴 적도 있단다. 내 기억에 없는 엄마의 그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전히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가끔 생기는 큰일에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해야 하는 생활이지만, 지금은 쫓기듯 이사하는 상황을 모면했으니 다행인 건가. 아니면, 저자의 말처럼 부자인 걸까. 대구 북성로의 첫 집은 저자의 가족이 모두 모여 살던 곳이다. 조부모와 부모, 부모의 형제들, 저자의 자매까지. 지금은 드문 구성의 가족이 그 집에 살았다. 오래전 우리가 익숙하게 생활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남편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이었고, 아내는 아이와 시부모를 돌보는 게 역할이라고 여겼던 시절. 시어머니는 아들 가진 존재로, 여자가 아닌 '시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집안의 가장 큰 방을 차지하고, 자매는 한 방을 나누어 썼으며, 삼촌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게 저자의 부모였다. 아버지에게는 서재가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집안의 어느 곳도 엄마의 공간이 되지 못했다. 엄마의 방을 묻던 딸에게 집안 모든 곳이 엄마의 방이라고 말하는 표정이 저절로 읽혔다고 말하면 내가 오버일까.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틈틈이 책을 읽던 저자 엄마의 시간 어디에도 엄마의 방은 없었다. 역할을 구분하고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읽히는 문장 앞에서 수시로 울컥했다. 엄마, 아내라는 이름으로 감당했을 상처의 무게가 보여서다. 어쩌면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 공간이 바로 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역할의 구분은 물론이고 방공호도 있던 집이라고, 중국 요릿집 회전판이 놓인 식탁이 있는 북성로의 집은 그들이 곧 이사하게 되는 수성구의 명문 빌라와 대조적이었다. 수성구의 명문 빌라는 갑자기 시대가 확 바뀐 느낌이었다.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 학군 따지면서 "어디에 살아?" 하는 물음에 우쭐하며 대답할 수 있던 시절의 저자가 본의 아니게 세상을 한번 배운 때였다. 그전까지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족들 모여 살면서 부대끼고 같이 먹고 잠자는 곳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다면, 명문빌라에서의 시간은 집의 개념을 새로 배운 곳이 아니었을까. 집의 브랜드로 경제력을 따져가면서 사람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게 슬픈 건지 현명한 건지 모르겠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흔하게 보던 내용인 것도 같다. 민간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사이에 둔 학교의 아이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차단벽, 옆 아파트의 놀이터 출입금지를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다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또다시 여러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 보냈던 20대의 저자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던 여러 방과 원룸, 다세대주택을 거친다. 그때 봤던 가난의 흔적들, 상대적 시선의 부와 가난 그 경계를 서성이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을 쓰고 14인치 TV로 세상을 읽으며 자발적 감금 상태였던 시간은 불안의 나날이었고, 누군가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내가 그 피해자가 되지 않은 순간에 안도하는 나날이었다. 어쩌면 가난은 불안과 동의어로 다가왔던 시절인지도, 저자가 바랐던 품위 있는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던 거다. 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 현재든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58~59페이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이 집이 온전한 나의 집이 되리라 믿었다. 내가 바꾼 공간이 이곳에서 보낼 나의 시간을 바꾸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일상의 모든 것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집을 고치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04페이지) 여러 방을 거치며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뒤로 하고, 다시 혼자임을 맞이하며 구했던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집에서의 시간은 가장 의미 있어 보였다. 읽는 나에게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로 바로 서는 어느 공간의 입구에 있는 기분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아등바등' 몸부림치던 순간이 만든 건, 우리가 온전히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거다.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집을 고치는 일이 왜 필요했을까. 다시 혼자인 공간을 만들면서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러니 무엇이든 해도 괜찮은 삶을 시도했는지도 모르지. 그전까지의 시간이, 몇 년 동안 여러 방(집)을 거치면서 보여주고 싶은 시절이었다면, 행신동의 집은 부끄러운 기억을 묻어두고 성장하듯 발을 디딘 곳이라고 보인다. 요가와 수영을 배우고, 유럽을 여행하고 유기견을 임시 보호했다. 그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일상을 이곳에서 채웠다. 보호하던 유기견은 반려견이 되었고,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인연은 애인이, 남편이 되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짝사랑의 고백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저자는 자기만의 삶을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듣다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사실은 꽤 어려운 시도였다는 것을 안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친 적이 여러 번이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쉽지도 않은 일이 되고야 마는 걸까. 몸의 불편함을 느껴서 요가나 수영을 생각한 적도 있지만, 선뜻 등록하지 못하고 학원 앞에서까지 망설이게 되는 서성임.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일이 이렇게 가벼운 발걸음일 수 있을까? 무심코 드는 의문에 답을 주는 건 저자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자산이라고 여기는 집의 의미를 다르게 겪어온 저자의 경험이 삶의 다른 방향을 열어준 거라고 말이다. 내가 집을 구하면서 들은 조언처럼 잘 팔리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채워가는 시간이 준 것은 거대했다. 수많은 이사로 만들어진 집에 대한 생각이 현재 저자가 머무는 집을 채우고 있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조금만 걸으면 숲길이 보이는(이른바 숲세권? ^^) 곳에 터를 잡고, 일상을 보낸다. 저자가 경험한 집들이 곧 저자의 역사가 된다. 그 집들을 거치며 성장한 한 사람의 내면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을 생각하니, 당시에는 힘들다고 여겼을 순간들이 다르게 보인다. 지금까지 거쳐 온 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집에서 보낸 시간의 힘을 말하고 있다는 게 저절로 느껴진다. 세월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의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 공간들을 거치지 않았다면 다 알지 못할 지금의 다짐이나 생각 같은 거.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집 자체보다는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때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오랜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이, 아빠, 엄마, 모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주방이나 거실처럼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혼자 존재하고 싶을 때 거침없이 문을 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곳, 쏟아지는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을 가진 집을 생각하면 또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좋은, 좀 더 넓은 집을 꿈꾸며 그 집에 존재할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지니까. 그런데도 저자의 이야기에 소박한 공간을 더 떠올리게 되는 건, 물리적인 부유함이 아니라 비좁은 곳에서 부대끼며 걸어온 시간이 만들어준 '나'라는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많아서 단 한 번도 나만의 방을 가져보지 못한 나였는데,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꿈꾸던 그 오랜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비로소 나만의 공간이 생겼는데도 그리워지는 어떤 것들 때문에. 그러니 '나만의 방'의 문제는 물리적인 '방' 자체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두 가지 감정에 힘들었다. 그 오래되고 낡은 집에 엄마를 버려두고 온 것 같은 죄책감과 오랫동안 벗어나고 싶은 그 집에서 나온 홀가분함 때문에.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먼저 생각나는 집이었다. 나의 몇십 년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사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에 우울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어쩌면 저자의 명문빌라 시절의 대조적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마을, 오밀조밀 모여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정겹게 느낄 수만은 없었던 시선을 먼저 배웠다. 그 집에서 우리 형제자매는 울고 웃으며, 부대끼고 싸우면서 자랐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 각자의 자리를 찾아 하나둘 집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떠났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엄마만이 그 공간에 남았다. 자랄 때는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 커서는 잠시 머물고자 했던 선택으로 물리적인 공간이었던 집은 이제 우리에게 무엇일까.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페이지) 저자의 문장 곳곳에서 마주했던 가족, 여자, 엄마의 공간을 생각한다. 이제 나에게 집은, 내가 새로 꾸린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내일을 고민하는 곳이고, 엄마에게 새로 만들어줄 공간을 그리고 상상하는 곳이다. 이 집에서 당연하게 나에게 내어준 방 한 칸을 채우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아직은 달랑 책상 하나만 놓여 있는, 방 구석구석에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할지, 나에게 또 무엇을 채워줄지 궁금하다. 여전히 게으르고 미흡한 것투성이지만,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볼 나를 그리는 일은 즐겁다. 동시에 단 한 번도 자기만의 방을 가진 적 없던 엄마의 공간을 같이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을 맘껏 부린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은 기다림과 간절함, 설렘으로 채워지겠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간을 상상하는 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그렇게 만들어갈 엄마와 나의 또 다른 역사를 기대한다. 엄마와 나 각자의, 엄마와 나 우리 모녀의 삶을 만들어줄 집, 방, 공간, 자리를. 너무 늦게 독립한 나의 미안함을 고백하면서, 나의 성장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엄마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한 기다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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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를 좋아한다. 개만큼만 살아도 지구는 정말로 무해해지겠지 하고 자주 생각한다. 왜 개를 못살게 구는걸까. 덕분에 인간에 대한 실망도 짙어진다. * 책을 읽으면서 나를 많이 되돌아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육류 중심의 식습관에 길들여져 살고있다. 그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점심에는 돼지고기 저녁에는 닭고기를 먹었다. 나란 인간이 정말 싫었다. 조금씩이라도 줄여 봐야지.. * 생활에 가까이 붙어서 쓰여진 글이라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은 깝깝함으로 가득해진다.. 죄책감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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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티어하임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동물권, 그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개’에 대해 다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3년 전 나는 이 책의 저자인 하재영 작가와 8박9일 일정으로 동물복지 선진국인 독일을 방문하여 뮌헨과 베를린의 티어하임(Tierheim, 유기동물 보호소)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독일 뮌헨티어하임의 산책 자원봉사자들과 유기견들. 작가는 내가 대표로 있는 팅커벨 프로젝트의 회원이기도 하다. 2013년 가을, 작가는 입양을 가지 못한 유기견의 임시보호를 자청하면서 우리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그는 여러 마리의 유기견들을 임보하다 입양을 보내는 임보맘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지금은 마산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혼종 유기견 호동이를 임보하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우리는 평소 유기견의 안락사 문제를 비롯하여 한국 개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말로만 듣던 독일 티어하임을 다녀오자고 의기투합했다. 그 견학단에는 언론사인 노컷뉴스와 애견신문, 서로 다른 전문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팅커벨 프로젝트 회원 여섯 명이 포함되었다.
개. 고양이 뿐만 아니라 양, 돼지, 닭, 염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보호되고 있는 아름다운 베를린 티어하임 ‘안락사 없는 보호소’, ‘유기견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티어하임을 실제로 보는 것은 그동안 이야기로 전해 들으면서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곳에서 목격한 모든 장면이 견학단 일행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다. 특히 충격을 받았던 것은 옆집 개를 물어 죽인 맹견을 티어하임에서 어떻게 사후 관리하는지 지켜봤을 때였다. 주인조차 돌보기를 포기한 그 개는 한국이었다면 여지없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티어하임에는 ‘티어플래거’라는 동물행동교정 전문가가 있었고, 그 개를 입양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있었다. 티어플래거와 예비 보호자는 한 팀이 되어 그 개를 꾸준히 훈련시켰다. 그 여성은 비록 다른 개를 물어 죽인 사나운 개라도 삶의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자신이 그 개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그 맹견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까지 매주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 개는 3개월의 훈련을 끝내고 비로소 그 여성의 가정으로 입양을 갔다.
티어플래거의 입회하에 예비입양자가 훈련을 하는 모습 이것은 당시 뮌헨 티어하임에서 실제로 있었고, 우리가 목격했던 일이다. 한 생명의 목숨도 함부로 빼앗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을 뒷받침하는 시스템, 예비 입양자가 보여준 인내와 노력 등 우리 견학단 일행은 감탄과 감동이 뒤섞인 충격을 받았다. 8박9일의 일정 동안 수많은 독일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독일의 높은 동물보호 의식에 경의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견학단 일행은 우리나라의 동물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씩 하겠다고 서로에게 약속했다.
독일 뮌헨 시민들에게 물어본 당신에게 반려동물은 무엇입니까? 그중에서 하재영 작가는 티어하임과 독일 사회의 성숙한 동물권 의식에 비해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한국의 동물 문화에 대해, 그중에서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개’에 관한 이야기를 꼭 책으로 쓰겠다고 했다. 2년 반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하 작가는 우리와의 약속을 차근차근 지켜나갔다.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의 이야기를 책에 담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현장을 취재했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체험을 기록했고, 그 기록 중에는 동물 활동가가 아닌 식용견을 공급하는 개농장주의 이야기도 있었다. 취재와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외국의 수많은 서적들을 참고하고, 전문가들의 자문과 조언을 받으며 하나하나 이야기를 써나갔다. 옆에서 하 작가의 작업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나는 그것이 마치 글을 쓰는 작업이기보다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새겨나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치열하게 고민했고, 가능하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주장을 억지로 독자들에게 주입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고 당신의 느낌대로 받아들여 판단하라는 것이다. 나도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인터뷰이 중 하나다. 인터뷰라는 딱딱한 형식을 갖추지 않고 나는 작가에게 내가 살아온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유기견을 구조하러 양주 동물구조관리협회를 다녀오는 길에, 가족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이 있는 팅커벨 입양센터를 다녀오는 길에, 나와 작가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살장 철창안의 내 손등을 핥아주던 누렁이와 흰둥이. 하 작가의 책은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다보면 어느 순간 술술 읽어가게 된다. 책 속에서 작가의 의식은 반려견에서 유기견으로, 유기견에서 번식견과 식용견으로, 모든 개로, 모든 동물로 확장된다. 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도 자연스럽게 고민의 화두를 갖게 된다. 그리고 책의 중반이 넘어서면 드디어 한국 사회의 개에 관해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부딪히는 대목에 다다른다. 동물권의 첨병에 있는 개의 이야기, 유기견의 안락사,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과다 공급의 강아지 공장, 개들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강아지 경매장, 식용견을 열악한 환경에 키워서 보신탕집에 판매하는 개농장까지.
개도살장 철창 안의 개들. 작가는 외면할 수 있다면 외면하고 싶은 이런 이야기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하지만 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거부감이 들지 않고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수긍, 그리고 결국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포한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어렵고 복잡하고 슬픈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그 안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감정을 과도하게 이끌어내지 않으며 객관적인 시각과 사실을 근거로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기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개의 식용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이 가능한 일이라는 희망을 심어준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제목 또한 내게는 각별하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중후반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 중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책이 있었다. 히틀러 나치 치하에서 저항하는 독일 뮌헨 대학생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내용으로, 어느덧 50대가 된 내가 20대에 읽었던 책이다. 하 작가의 책은 그 책에서 따온 듯한 제목이어서 더욱 익숙한 느낌이 든다. 30년 만에 다시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찾아들어온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존재의 죽음. 이제 대한민국도 이 존재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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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명한 책이라기에 책 좀 읽는다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책이라 기대하며 읽었다.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라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나는 딸이자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딸 대신 아들과 살고 있다는 점. 책에 많은 밑줄을 남기며 의문스러우면서도 이해가 되는 어머니가 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재연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우리는 수혜자이면서 비판자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어머니의 돌봄을 당연시하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이중성! 하지만 우리는 계속 소리를 내야 한다는 믿음은 확신으로 번졌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겨우 추리고 또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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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해 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마운 책이다.
집이라고 하면 부의 상징처럼 부동산이나 아님 인테리어가 잘 된 예쁜집 이런 것만 생각했지 정작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존재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하고 살아온게 사실이다.
늘 나와 함께 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본래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우친 내 스스로에게 반성하는 시간도 만들어줘서 한편으론 고맙다.
어찌보면 그 누구보다 나에 대해 뼛속깊이까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집이고 방인데 왜 그걸 이제야 알았을까? 나의 모든 인격과 겉모습 하나하나가 결국은 집을 통해서 방을 통해서 만들어진건데
그걸 애써 부정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내 과거를 돌이켜보게 된다.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이 존재하고 있는 집에게 짥게나마 고맙고 미안하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싶다. 소중한 나의 공간 내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