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이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라는 의미를 지닌다. 담 안에서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나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담 밖에서는 담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상상하도록 만든다. 때로는 담을 아름답게 꾸며 외부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얻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담은 형식적으로는 경계로서의 의미가 기본적인 역할이지만, 그것에 다양한 조형미를 가미한다면 곧바로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그래서 관광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많은 주변의 담들에 특별한 주제를 담은 그림을 그리는 등 벽화마을로 단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담장 그 자체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해당 마을의 특징과 역사와 관련하여 벽화를 꾸미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그저 꽃이나 동화 등의 내용을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체로 사람들은 낯선 곳을 찾아가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과 집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사람과 풍경은 물론, 그들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에 눈길을 준다. 그렇게 만난 담장의 사진을 찍고, 그 의미를 탐구하여 소개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아파트가 보편적인 거주지가 된 도시에서는 담장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경우는 매우 드물 수밖에 없다. 주택에서 담장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주변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방범이 우선시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 안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진 도시의 담장은 조형미가 뛰어나나고 하더라도, 보는 이에게는 다소의 위압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담장이 없거나 혹은 낮게 만들어 아름답게 꾸민 정원을 볼 수 있도록 한 집을 보면서, 집 주인의 넉넉한 마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따라서 다양한 담장을 보기 위해서는 도시를 벗어나, 아직 주택들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다녀야만 할 것이다. <담장의 말>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역을 답사하게 되는 이유라고 이해된다. ‘흙과 돌과 숨으로 빚은 담의 미학을 생각한다’라는 부제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답사하면서 담장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발견한 담장들을 사진으로 찍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고 있다. 주위에서 흔히 거둘 수 있는 돌들을 모아서 돌담을 세우기도 하고, 흙과 나무를 사용하여 투박하지만 여유로운 담장을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저자는 ‘오래되고 미적인 창과 담을 찾아 10년 넘게 방랑을 한 적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 ‘담’에 관한 발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담장의 모습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을 비교하고, 그것들을 연결시켜 설명하는 점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저자의 또 다른 관심사였던 ‘창’에 대한 소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익숙한 지명들이 많이 등장하여, 그저 혼자서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전라남도의 지명이 많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여전히 오래된 담장이 많이 남아 있어 저자의 주된 답사 대상지로 선정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겨울철 담쟁이 자국이 남은 흰 벽을 소개하는 장소는 전남 곡성의 한 농가이며, 내가 살고 있는 순천의 와온과 화포 그리고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 섬달천 등을 자주 찾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여전히 그곳을 자주 찾고 있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 간혹 특별한 담장을 만났겠지만 잠시의 감상이었을 뿐, 이후에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여 이 책에 소개된 곳을 다시 찾을 때에는 저자가 소개한 곳들을 한번 둘러볼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주택들이 하나들 씩 럴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경우를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저자가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했던 와온 근처의 섬달천은 10여 년 전의 호젓한 모습이 사라지고, 산을 깎아 큰 건물이 연이어 들어서 상업시절로 활용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관광지로 탈바꿈했음을 목도하고 있다. 저자와 같은 시선으로 ‘오래되고 미적인 담’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발길이 닿기 힘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래된 담장에서만 미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담장을 통해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지은 사람의 의도가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담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만으로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5명 선정) <저자는> 저 : 민병일 (閔丙一) 서울 경복궁 옆 체부동에서 태어나 서촌에서 자랐다. 남독일의 로텐부르크 괴테 인스티투트에서 공 부하고 북독일의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시각예술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 같은 학과에서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양학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대중예술론과 미디어아트 론 등을 강의했고, 동덕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현대미술론 등을 강의했으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예술을 강의했다. 독일 노르트 아르트 국제예술제(2009)에서 사진이 당선되어 독일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시에서 초청사진전을 열었다. 2005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100’ 선정위원장으로 일했다.
1989년 시인으로 등단해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으로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오래된 사 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2011),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2016), 『창의 숨결, 시간의 울림』 (2021), 『행복의 속도』(2021)가 있고, 사진집으로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2009)과 소설가 박완서와 함께 티베트 여행기 『모독』(1997. 박완서 글, 민병일 사진)을 펴냈다. ‘모든 세대를 위한 메르헨’ 『바오 밥나무와 방랑자』(2020)는 프랑스에서 번역 중이며, 이 책의 「유리병 속의 꿈을 파는 방랑자」가 프랑 스에서 1923년 발행된 문예지 『europe』(2022년 5월호)에 실렸다. 번역서로 『붉은 소파』(2010)가 있다. 제7회 전숙희 문학상(2017)과 조선 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을 기리는 제32회 성호문학상 대상 (2021)을 수상했다.
<책 읽고 느낀 바>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가 당첨되어 만났던 적이 있다. 사이즈가 크고 두꺼웠고 특히나 사진이 크고 멋졌다. 글력은 또 어떻고. 제목도 특이했지만 쉽게 잊지 못하는 책 중의 하나였다. 운 좋게 또 만나고 보니 당시의 느낌이 확 오더라. 사이즈는 크지 않지만 날씬한데 양장본은 상당히 고급지다. 책을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속지가 코팅된 종이 같다. 매끈하면서도 찢어본다면 단번에 찢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말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의 위 시가 생각나 찾아 봤다. '담장의 말'이라는 책을 읽으며 싯구가 떠오르더라. 돌각담, 돌담이 나와서였을게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딱 한 줄. 담장이라면 보통은 벽이라 느낄거다. 가로막는, 숨기는 그런 의미로만. 돌담에서 숨결을 찾아내고 온기를 느끼고 그 안에 살아 숨쉬었을 시간을 말한다. 시간의 역사를 유추해낸다.
여러 지방의 담장 사진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담장에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한 의미가 아닌 철학적 사고다. 저자의 생각인 글에 공감하게 된다. 어떻게 담장을 보고서 살아있는 생물 대하듯 생명을 불어넣을까 신기하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닌 찍힌 담장의 사진과 다른 나라 화가의 작품 또는 건물과 비교 설명하면 또 그런가 싶다.
다독하는 사람은 스토리 또는 구도가 비슷하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 한다. 어느 분야든 그런 경우가 있을거다. 표절이 아니고 우연에 의한 경우도 만에 하나 있다고 본다.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도 능력이고 비슷하지만 다름을 분석하는 것도 능력. 거기다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켜 공감하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저자는 그런 능력을 가졌더라.
무너져가는 돌담에서 쇠락한 인생사를 읽어내고, 고무신 한 짝과 버려진 농기구에서 급히 이사갈 수 밖에 없었을 농부를 궁금해한다. 뒷간의 구멍 뚫린 벽과 그걸 안고 있는 담장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본다. 뒷간의 구멍을 보며 환기를 생각했는데 사진의 음영을 말한다. 그 구멍을 통해 세월의 무상함도 말한다. 사진을 통해 보여지는 담장은 아름답고 이야기가 된다.
한 가지에 꽂혀서 집착하는 게 성공하고 보면 1만 시간의 법칙이 된다지. 담장을 찾아서 방랑하는 시간이 길었다는데 그 무수한 시간들 속에서 저자가 찾은 걸 오롯이 글로 옮겼다. 독자가 이해하게 하는 글력에 새삼 또 반한다. 넓고 넓은 세상에서 저자가 위안을 찾고 변화하는 풍경에 매료되고, 그런 곳을 찾아내고 그리워한다는 면이 결실인가 싶었다.
어떤 책을 읽고서 여운이 남는다는 건 값진 일이다. 오래 전 '애도하는 사람'을 읽고서 한동안은 신문의 부고란을 보곤 했었다. 이 책을 읽고서 나도 어딘가를 가면 담장을 눈여겨 보고 찰칵 찍어도 볼 것 같다. 내 안의 흩어진 생각일망정 담장을 보면서 잠시나마 생각을 할 것 같다. 정겨운 돌담이 실물로 보여지는 경우가 드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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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모 : 모양이나 모습이 달라지거나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옛 마을이나 시골 풍경에서 볼 수 있는 담벼락은 길과 집의 소박한 경계였다. 사람을 만나고 이동하는 길과 달리 쉼을 위해 머무는 장소로서 경계 지움이 담벼락의 안팎이었다. 그러나 담에 기대서서 까치발을 들고 눈 마주치며 이웃과 인사할 수 있었고, 바람막이 정도의 담은 너와 나 사이의 벽은 되지 못하였다. 마당을 품은 담장을 두지 못한 집은 벽 자체가 담벼락이었다. 그래서 담이나 벽의 표면이 담벼락인 것이다. #민병일 저자는 그 담장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담장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만든 이의 사연, 담 안에서의 생애, 오고 가는 발걸음에 쥐어졌던 운명, 담에 기대어 살아온 작은 것에 주목하였다. #파울클레 오묘한 그림 같기도 하고, #르네마그르트 작품의 반전 같기도 하며 어머니의 생이 담긴 듯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단순한 기능체에서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작품 전시장이 된 것이다. 도시에서 잊어버린 시골의 풍경 안에서 우리 지난 삶을 돌아보고 따뜻했지만 잃어버린 순정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 시선 :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지나칠 수 있는 공간에 의미를 담고 해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누구나 그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인지하지 못한 순간과 감성을 피사체로 담았다. 저자의 철학적 문장들 사이로 사진 한 장이 주는 감동은 오래 갔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복 사이로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인 핸드메이드라고 했던 드라마 대사가 생각날만큼 #담장의말 속 담장들은 똑같은 모습 하나없이 사연도 제각각, 최고의 큐레이션을 자랑하고 있었다.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민병일 저자의 시선을 따라 담의 미학에 빠져보시길 바란다. 저자 특유의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이 때로는 난해하고 어지러운 듯 그려진 추상화 같지만, 해석보다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감상이 이어진다. 꽃으로 불리울 때 이제 진정한 꽃이 되었듯이 벽으로 태어났지만 작가가 작품으로 다시 불러들인 담장의 이야기다. ■ 영혼이었다. 겨울날 아침 흰색 담벼락에 그려진 식물들의 꿈은 숭고한 영혼의 몸짓이었다. 저 담벼락에 죽은 듯 붙어 있지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식물들의 위대한 영혼! (31p) ■ 벽을 타오르는 담쟁이덩굴은 벽을 다 뒤덮지도 않고 네모난 구멍을 운치 있게 살려가며 풍경이 되었다. 예술적으로, 그러나 예술적이지 않게 예술을 조형화한 초록색 식물로 인해 담벼락은 쓸쓸함에도 생기를 얻었다. 식물의 예술성으로 인해 30년 넘게 인기척 끊긴 뒷간 담벼락이 초록 이파리를 타고 비상하고 있다. (44p) ■ 인간 내면의 고독한 자화상부터 20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 - 전쟁, 인종주의, 획일적인 교육제도, 독재, 소외, 파시즘 - 까지 거침없이 담아내는 핑크 플로이드의 록 사운드 ('The Wall')가 우리를 인문적 성찰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세상의 벽을 허물고 자아를 만나려는 외침 때문이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벽은 우리를 현재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벽을 허물고 끊임없이 나아가게 한다. (88p) ■ 건물 벽에 나무를 엇대어 한껏 미를 뽐낸 독일의 건축양식처럼 황토를 짓이겨 만든 담장에는 나무를 덧대어 비스듬히 놓음으로써 튼실함과 미를 함께 재현했다. (174p) ■ 산색을 물들인 꽃들과 함께 39번 국도와 집과 담장이 있는 사진 속 풍경에 분홍색 꽃이 보이지 않았다면 11월 초겨울의 쓸쓸한 저녁 무렵이라 해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먼 산도 꽃그늘에 희뿌옇고, 국도변 아래 냇가에는 초록이 짙어가고, 이미지의 배반을 일으키는 것 같은 사진 속 풍경은 라일락 핀 5월 초하룻날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르트가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듯이, 저 사진 한 귀퉁에 '이 풍경은 봄이 아니다'라고 이미지의 배반을 일으키고 싶었다. (282-283p) ◇ 담장의말 안에는 시선을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도서협찬 #열림원 #민병일 #담장의말 #미술도서 #담장사진 #시골풍경 #기행산문집 #여행에세이 #미술에세이 #사진에세이 #서평 #에세이추천 #미술도서추천 http://m.blog.naver.com/bbmaning/223037856523 |
길을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는 담장.
담장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보면 작가님과 같이 담장을 훑으며
직장 점심시간을 활용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유명한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이 아닌,
이 담장은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건축물에 관한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자동차도로를 깔고 도시 개발 등으로 담장은 잘 볼 수가 없다.
책 소개글에도 나와있듯 담장의 말 책을 읽으면
저자의 의도가 뭐지? 라며 뜻을 찾아야하는 듯 책을 읽지 않아도 되서
사진이 들어가서인지 종이 재질이 빳빳하니 좋았다. 가독성이 좋았다.
한적한 시골집 마당에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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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블록이 드러날 정도로 덧칠한 시멘트가 떨어져나간 담 위쪽은 세월에 닳은 게, 내 삶을 보는 것 같다. 삶이란 시간 덩어리도 시간 스스로에게 닳고 헤져 손볼 곳이 많아지는 것처럼. 담벼락이나 인생이나 시간에 침식당할수록 수선할 곳이 많아져 어느 순간, 허물어진다. 안간힘을 써보지만, 시간을 이길 수 없다. -45
담벼락을 정~말 좋아한다. 방학이 되면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닌 기억때문인지, 특히 정성들여 쌓은 돌담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 이라도 꼭 찍어야 한다. 그런만큼 '담장의 말'이란 제목을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흙과 돌과 숨으로 빚은 담의 미학을 생각한다'라는 부제를 보면서, 까마귀가 앉아 있는 책표지가 황토담 같이 느낀건 단순히 기분탓만이 아니리라. 할머니댁 입구에는 가시달린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고 커다란 돌멩이가 군데군데 박힌 황토담이 예뻤던 기억들을 새록새록 되새기면서 읽었다.
세월을 품은 담장 사진들이 너무 정겹고 예뼜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담장을 그냥 지나치지않고 눈여겨보고 그 사연과 풍경을 담아 낸 작가 만의 아름답고 예술적인 시선에 감탄했고 또 공감하면서 읽었다. 정겨움, 그리움, 아름다움, 세월의 흐름 그리고 바람에 실려 날아든 풀씨들을 외면하지않고 품은 담장 이야기였다. 한적한 시골의 뒷간 담에서 예술 작품을 떠올린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았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를 홀리듯 듣고 있었다. 얼핏 창고담인가 했더니 뒷간담이란다. 환한 햇살이 비쳐든 공간에 신비로움마저 감돌았다.
담장 아래 동백이 지고 시간이 지고 마음도 지는 순간, 흙마저 붉게 물들이며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 아름다움은 잠시 우리 앞에 나타난 기적이다. 동백꽃 지는 담장을 보며 저 돌과 흙이 사람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했다. -93
흰색 담벼락에 자란 식물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멋진 추상화였고 덕분에 파울 클레라는 작가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아파트가 많아져서 담장 보기가 힘들어졌다. 오랫만에 담장을 보고 그 길을 따라 걸어보며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걷는다면 더 좋겠다. 시집, 산문집, 사진집까지 출간한 담벼락 방랑자인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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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하나의 사물에 집착하는 거..
요즘은 건축물의 변화로 정감 있는 담장의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죠. 저도 가끔 여행지에서나 담장을 보게 되면 색바랜 기억들을 끄집어 내며 사진에 담고는 했는데요. 제게도 담장 안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어 작가의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작가의 이야기는 버려지고 무너진 쓸쓸한 담장의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담장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인문학적 지식을 잇는 참 재미난 책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담장은 꿈꾸는 황홀경이다.”이라고 표현한 저자는 여러 모습의 담장을 보며 누구도 나누지 못했을 대화를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는 음악과 미술 작품들을 담장의 모습과 위트 있게 연결해 전해 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글의 초반 섬달천 마을 뒷간 담벼락을 보며 프랑스 시골 마을의 롱샹 성당 담벼락을 떠올립니다. 두 대상의 유사한 구조를 언급하며 뒷간을 지은 (어느) 어부의 지혜와 탁월한 안목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를 서둘러 읽게 만들더군요.
또 작가는 고서 어느 집 흰색 담벼락 앞에 핀 상추를 보고 인간적인 것과 형이상학적 경계를 떠올립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철학>을 빗대어 전하는 문장들은 <담장의 말>이 단순한 여행 기록이나 여행에세이가 아닌 질 좋은 인문학적 서적이란 걸 제대로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었구요.
그러니 <담장의 말>은 문장 수집보다 한 꼭지를 읽어야 작가가 전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인 듯 해요.
음.. 그런 책 있잖아요. 읽다 보면 왠지 똑똑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 <담장의 말>이 바로 그런 책이지 싶어요. 담장과 음악과 미술을 잇는 콜라보! 글의 소재는 단순한데 깊게 빠져 들게 하네요ㅎㅎㅎ
혹시 인문학 서적은 어렵다.. 는 편견 있으신가요? 생각이 바뀌실 수 있어요!
작은 마을 속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는 담장의 이야기에 잠시 머물고 가심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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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담장은 꿈꾸는 황홀경이다. 꿈꾸는 황홀경 속에는 우물 같은 거울이 있어서 심비하게도 꿈을 비춰주었다. 나는 담장을 경계로 현실과 현실 너머를 오갈 수 있었다. 담장 앞에 서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초현실의 마법을 통해 멋진 신세계로 갔다. 초현실 세계란 꿈의 현전으로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쓴 담의 미학은 미학이 아니다. 미를 바라보려고 애쓴 미적인 '것'의 흔적이며 담을 통해 미적인 '것'을 찾으려는 정신의 , 열정의 비늘 한 조각일 뿐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담을 찾아 방랑을 떠난 것도 결국은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담장의 말>을 읽다보면 저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자는 폐허가 된 담, 허무로 집을 지은 담 앞에서 도리어 송고의 미학을 찾는다. 담벼락에 걸린 조리, 햇살을 온몸에 받는 조리에서, 와온 바다 햇빛을 수집하는 섬달천 마을 뒷간 담벼락에서, 베를린 장벽에서, 메마른 수세미가 달린 담장아래에서, 똥과 밥으로 얼룩진 티벳의 담장에서, 달빛 춤추는 무월마을에서 담의 은폐된 욕망과 담의 화양연화를 본다. 피고지는 꽃처럼 담의 생도, 사람의 삶도 피고진다.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붙잡으려 한 작가의 진솔한 목소리와 땀과 숨과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아름다운 책. 당신에게 정신의 담장이 되어줄 책이다. 꼭 읽어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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