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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우리를 미워하는가?’,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한 일 때문이다.’ 앞선 질문은 1958년 아이젠하워가, 그리고 9.11테러 이후 부시가 참모들에게 하소연한 말이고, 뒤 대답은 미국 정부가 펜타곤조사단을 구성하여 대통령의 하소연에 대해 찾은 답이라고 한다. 이 말들을 뒤집으면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자기들에게 한 일을 잊었거나 혹은 알지 못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 책 [물러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노암 촘스키와 그의 제자이자 동료인 인도 출신 언론인 비자이 프라샤드가 2021년 말 나눈 대화에 바탕을 둔 대담집이다. 그들은 신냉전으로 치닫는 현재의 국제질서와 앞으로의 세계에 대해 분석하고 전망한다. 촘스키는 이 대담에서 이른바 반테러전이라 불리는 미국의 잔혹한 침략 전쟁 20년, 즉 2001년 9.11테러에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중동에서 벌인 군사개입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 거짓을 폭로하며 전쟁의 실상과 실패 원인을 다룬다. 또한 앞부분에는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전쟁인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말미에는 2022년 2월에 시작되어 현재도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프라샤드와 촘스키는 베트남전쟁 중이었던 1967년 촘스키가 쓴 ‘지식인의 책무’라는 에세이를 주제로 담화를 시작한다. 촘스키는 이 에세이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정부가 내세우는 대의와 동기, 그리고 종종 감추는 의도에 따른 정부의 행동을 분석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프라샤드는 이 에세이가 ‘미국 문명의 이상을 들먹이면서도 실제로는 좀처럼 현실과 대결하지 않는 미국 교수들과 지식인 세계의 위선을 꿰뚫는 글’이라며 지금도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진 그들의 대담은 9.11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의 전쟁, 그리고 2011년 나토가 벌인 리비아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의 전쟁방식을 폭로하고 지식인들이 어떻게 복무했는지를 비판한다. 아직 9.11테러의 증거가 드러나기도 전에 계획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항복 내지는 협상을 제의했음에도 거부당하고, 일방적으로 시작된 이 전쟁들은 미국의 대외 팽창, 그리고 일극 패권 국가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이 바로 군사력과 전쟁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또한 미국은 2021년 8월, 20여 년간을 점령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게 되었을 때 마지막 드론 공격을 벌였다고 한다. 어린아이 7명을 포함하여 10명의 민간인이 탄 차량을 공격한 것이 그것인데, 처음엔 그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가 2주일 후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어떤 미군도 처벌되지 않았다고 한다. 촘스키는 이 사례가 바로 미국이 벌이는 추악한 전쟁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이 벌인 전쟁은 항상 다른 국가,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반테러전이라 이름 붙인 20여 년간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도덕적으로 추악하며, 군사/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엄청난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미국이 지원한 건 민주 세력이 아닌 부패한 부자들이었으며, 유엔헌장은 무시당하고, 침략을 정당화했음에도 결국 미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일극 패권은 약화되었지만 미국은 이를 인위적으로 막고 나서면서 위험한 확전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과 나토가 벌이는 신냉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다극 세계의 부상은 피할 수 없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최근 중국의 위협이 강조되는 것은 전 세계가 이런 미국의 지시를 따르지만 중국만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며, 2022년 봄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힘이 약해졌을 때 미국이 강요하는 조건들을 수용한 러시아가 푸틴이 들어서며 힘을 회복하자 미국의 강요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에 미국은 나토를 재구성하고 러시아를 압박한 결과가 전쟁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상의 미-러전쟁인 이 전쟁은 일극 패권의 유지와 다극 세계의 출현이라는 세계 질서 속에서 바라볼 때 그 성격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한다. 유럽과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미국 군사동맹체의 대미 종속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과 중국, 러시아 및 남반구 전반의 다극화와 비동맹을 향한 지향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즉 미국은 세계가 자신이 만든 규칙을 따르기를 바라지만, 세계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거대한 합의를 담은 유엔헌장에 뿌리를 둔 절차를 구축하기를 열망하고 있다며 촘스키는 우리에게 세계 체제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묻고 있다.
촘스키의 저작들은 가급적 찾아 읽는 편이다. 그를 통해 접하기 어려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자료들을 알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말한 지식인의 책무를 어떤 압력과 회유 속에서도 충실하게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지 않은 대부분의 국가가 유엔헌장에 기초를 둔 다자주의를 통해 세계 체제를 정의하고자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