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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동포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20여 년 전 회사 일로 중국 연안지역을 돌아다닐 때 통역으로 한 해를 꼬박 나와 함께 생활한 사람이다. 당시 통역은 대부분 조선족이었는데 현지법인을 설립하기 전까지는 정식 채용이 아니었기에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구해야 했다. 중국 투자 붐이 일던 시절이라 많은 조선족이 통역으로 한국 사람들과 일했는데 조선족에 대한 온갖 풍문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고심 끝에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그와 일 년여를 같이 생활했으니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와 생활하면서 나는 그를 중국 공민으로 대했고, 그 역시 나를 외국인으로 대했다. 나중에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처음 몇 달간은 업무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곤 서로 말을 아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국내에도 조선족이 80여만 명에 이르고 한국에 정주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니 이제 조선족은 우리와 같은 국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2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그들에겐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이 덧씌워져 있는 것 같다.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예전에 간도와 만주라 불리던 중국 동북 지역에 살면서 우리 말과 글을 공유하는 한민족의 일원인 그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정착하게 된 과정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중국공산당이 중국 동북 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의 지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을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면서 사용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라고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조선인이 간도와 만주로 이주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의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어쩔 수 없이 한반도를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이주한 조선인이 해방 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중국에 정착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선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방 무렵 중국 동북 지역의 조선인은 대략 216여만 명이었으며 해방과 함께 절반 정도가 한반도로 귀환했고 110여만 명이 중국에 남아 정착했다. 해방 이전 중국에서 살던 조선인이 한반도에 대한 연고와 분명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면 그 이후에는 역내 질서가 재편되는 과도기적 상황을 거친 후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서 중국 공민의 일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먼저 조선인의 중국 정착 과정을 해방 후 동북아시아의 질서 재편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해방 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된 질서 재편과정은 중국의 국공내전으로 촉발되고 한국전쟁으로 마무리된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냉전체제가 구조화되는 과정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해방 직후 중국 동북 지역은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한 지역이라고 한다. 조선인들은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고, 중국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공산당을 지지한 조선인은 정착하고 국민당을 지지한 조선인은 전향하거나 귀환하게 되었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에 열세였던 중국공산당은 해방 이전부터 항일운동을 위해 관계를 맺어온 연변을 포함한 동북 지역에 밀집해 살던 조선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반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이 지역 질서 재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운명을 같이했다. 이런 질서 재편은 조선인을 포함한 한민족을 분열과 갈등의 길로 내몰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질서 재편의 주체가 아니면서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곡절을 온몸으로 겪으며 다 받아내야 했고, 이데올로기 대립과 그에 따른 갈등의 결과 분단과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 동북 지역에 정착한 조선인은 중국 공민이 되면서 같은 진영에 속했던 북한과는 민족적 유대를 나누었지만 남한과는 서로 잊고 살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후 조선족으로 살게 된 조선인은 중국의 정치적 변화와 북한-중국 관계의 부침에 따른 영향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중국 중심의 단일 조국관을 고양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민족정풍운동으로 연변지역 조선족 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반우파분자로 몰렸고,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연변지역이 피해가 특히 컸던 재해지구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중국과 북한은 초기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는 완벽한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나, 국가가 수립되면서부터는 각자 체질 개선을 위한 실리를 추구하면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은 조선족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족 동포들은 스스로를 ‘과계민족’이라 칭한다고 한다. 과계민족이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독립된 조국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이란 의미이다. 과계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은 북한과 중국의 정치적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조선족의 과계민족 특성이 오늘날 한중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중수교와 조선족 사회의 변화를 살펴본다. 1992년 한중수교는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한국 정부의 외교 목표와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험과 자본을 활용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한중수교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조선족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직접적 계기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수교 전까지 한국은 조선족을 적대국의 공민으로만 인식한 상태였다. 이러한 인식이 이후 조선족 사회와의 관계 맺기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는 동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탄력을 받으면서 조선족의 한국방문은 코리안드림이라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한국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한국행을 하게 되는 잘못된 관계 맺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2010년 무렵 한국의 정책변화로 다양한 체류자격을 가진 조선족 동포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수가 증가하면서 2020년에는 80만 명에 이르고 집거촌이 형성되며 정주하려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중관계의 갈등에 따라 여러 부작용이 촉발되기도 한다. 조선족들이 삶의 터전인 중국 동북 지역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크게 변했다. 1990년대 초 조선족 인구는 190여만 명으로 대부분 중국 동북 지역에 거주하고 4분의 3이 농업에 종사했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인구의 사분의 일 정도 만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조선족의 역사와 우리와의 관계 맺기 과정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근현대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간도와 만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읽으면서 가졌던 생각과 지금의 조선족을 보며 드는 생각이 다르다. 같은 사람들 임에도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것이 해방 후 분단과 전쟁에 따른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할지라도 같은 민족이 아니라 외국인으로, 그것도 단지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편견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몰랐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일깨우며 그들과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다. 이 책이 조선족과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더 많은 책이 나오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20여 년 전 같이 일했던 조선족 동포는 그 후로도 한국에 올 때마다 안부를 전해오곤 했었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 남경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연락이 없는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한번 알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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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참 이름도 무척 낯설었다. 하지만 이제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 조선의 백성으로 살다가 떠나서 조선인이 되고, 한 거대한 나라의 공민이 되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을 통칭해 그렇게 부른다. 그들도 엄밀히 말해 한 세기 전에는 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제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땅을 떠나게 되었고 만주 등지에서 정착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후손들이 태어나 살아가게 되었고 그들은 같은 핏줄을 가졌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기보다 조선족이라고 불린다. 거주지로 인해 그 나라의 공민이 되어야 했고, 핏줄 때문에 조선족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해방이 된 공간에서도 자신들의 나라에 돌아오지 못했고, 않았다. 저의든 타의든 그렇게 타 지역의 나라에 머물게 되었고, 그렇게 된 데에는 남북분단의 현실이 많이 작용했다. 해방이 되었을 때, 남쪽 북쪽을 어느 곳도 선택하지 못한 그들은 결국 자신이 살아왔던 터전에 남기로 결정했고, 그것이 중국의 백성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그들이 한국을 알면서 자신들의 혈연의 근거지가 되는 한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들이 한국행을 결정해 지금은 많은 조선족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지금 중국인이다. 그래서 외국인에 준하는 대접을 한국에서 받고 있다. 그들이 처음 한국에 올 때 가졌던 동포의 나라,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많이 상쇄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들의 지위를 한국 국민과 똑같이 보장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런 것들이 그들을 서운하게도 만들고, 어떤 면에서는 힘이 드는 삶이 되도록 하는 모양이다. 외국인 동포의 입장에서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기회와 권리를 누리는 삶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그것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경제 때문에 한국에 나왔다가 도로 중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아마 적응이 쉽지만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그들은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그 매력을 떨칠 수는 없다. 이 책은 이런 조선족의 실태와 그들의 삶이 있게 된 과정들을 생각해 보고 있는 저서다.
오늘날 한민족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지난 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 때문이다. 20세기 초 서세동점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나라는 나약하기 그지없었고 그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 당연히 백성을 돌보지 못했다. 급기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반도 안에서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한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살길을 찾아 한반도를 떠나 낯선 타국에서 둥지를 틀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머리글에 저자가 한 세기 전의 한민족의 비극을 얘기하면서 조선족 성립의 배경이 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한 삶의 한민족이 보인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곤궁한 처지가 되었는가 여실히 알 수가 있다. 자신들이 조상 대대로 터전을 삼고 살아왔던 땅을 등지는 일이 오죽했으랴. 문학 작품에서도 이런 상황을 많이 다루고 있다. 토지도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겠고, 육사의 글들도 그런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민이 되어야 했던 비애를 가진 한민족, 그들이 살길을 찾아 흘러간 곳은 세계 곳곳이다. 그 중에 가까운 만주 땅이 많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해 살면서 설움을 많이 겪는다. 그러다 해방을 맞이하고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귀국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곳에 살던 대로 정착해 살면서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살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이 책을 통해서 표현해 보고자하고 있다.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더불어 생각해 보고 있는 글이다.
책은 조선족의 삶을 3부분으로 나누어서 얘기를 해나간다. ‘중국 정착기’라고 할 수 있는 46년까지, ‘중국 건국 참여기’라 할 수 있는 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중국 공민으로서의 생활기’라 할 수 있는 조선인이 중국 공민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조선인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현재의 모습이 되어 있는가를 소상히 알 수 있게 편재되어 있는 책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 조선족은 결국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해나가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주로 해방 전후와 6.25 전쟁을 치루는 사이에 조선족들의 위치, 그들이 어떤 환경에 처했는가? 등이 서술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중국은 잠정적으로 봉합된 불씨였던 국공 합작이 내전으로 발전한다. 중국 동북지역도 이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중국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동북지역 주도권 쟁탈전이다. 이 두 세력들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당시 소련군 개입이 그 하나다. 소련은 당시 동북 지역에서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 발언권이 국민당에서 중국공산당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자 중국공산당도 만주에서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조선인들도 중국공산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흐른다. 북한도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중국공산당을 지원하는 입장이 된다. 특히 조선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 지역은 공산당을 지원하는 상황이었고 그 지역은 중국 공산당의 거점이 된다. 그런 것들이 동북 지역에서 중국 공산당이 활발하게 활동하게 기회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힘을 기른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에게 타격을 주고 결국 국민당 정권을 대만으로 몰아내면서 중국 전역을 장악해 나가게 된다. 그런 일에 많은 역할을 한 조선족들이 되고, 처음에는 전쟁에 참여해 지역을 관할하는 조선족들도 나왔다, 중국이 공산정권으로 안정되면서 조선족들은 공민의 지위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민족구역자치제를 실시함에 따라 조선족은 소수민족으로 자치권을 획득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만주 지역에 조선족 자치제가 실시된다.
주목되는 것은 당시 조선인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이다. 양측 간 원만한 통합을 추구하기보다는 각자가 지지하는 측을 중심으로 상대측을 제압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해방 초기 남북한 간 이념적 대립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도 냉전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북지역의 조선인들도 한반도 통일을 진영논리에 따른 적대적 대립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p129
북한과 가까이 있고, 중국의 공민이 되는 동북 지역의 조선인들은 친 북한적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특히 그들이 공산당에 참군 참전하면서 남한과 친밀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 가고 난 뒤는 더욱 그 경향이 강해졌다. 이는 공산당 정부의 토지 개혁과 맞물려 있다. 토지개혁은 아무것도 없던 조선인들에게 솔깃한 정책이 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전쟁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동북지역에 있는 조선족의 대부분이 이념적으로 중국 공산당에 동조한 이유라 보면 되겠다. 이는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때까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해방 후 조선족 초기의 관점과 정치 색깔은 북과 진배없다고 보면 된다.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는 냉전체제가 반영된 것으로 조선족은 대한민국을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만들어 졌다. 이념에 따른 갈등과 북한에 동조한 입장에서 그렇게 된 것이라 보면 되겠다. 이것이 6.25 때 북쪽의 편을 들어 참여가 이루어진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적대적 분위기가 1992년 한중수교 때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수교가 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이념적 잔재가 남아 단절과 백안시하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그들은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면서 조국 통일의 날을 기다리던 그들에게 북한과 중국 어느 한 쪽을 조국으로 수용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실제로 북한 수뇌부와 중국 수뇌부 사이에 조선족의 거취를 두고 논의가 많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국토와 주민의 문제이기에 힘의 논리가 전개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북 지역에 있는 조선인의 심리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중국의 수뇌부는 북한에 편입 혹은 가맹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 공산당의 통치 하에 두고 자치권을 부여하는 형식으로 결정을 한다. 그것은 그들의 심리와 상관없이 중국 공민이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다. 즉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이중국적에서 단일국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후엔 그들이 조선족 중국인 된다.
1953년 조선족은 37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선정되어 중국 공민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민족구역자치제를 행한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조선족이다. 이후 중국내 정치투쟁에 따른 조선족이 수난을 당했던 흔적도 보인다. 모택동 주도의 정풍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통해 조선족이 받은 상처는 엄청났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망한 사람이 2천 65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의 정쟁이 아니고 전쟁과 같은 일이었다. 북한과 중화민국의 관계에 따라 조선족 사회의 부침도 강하게 다가온다. 중국 측에 조선족의 원류가 북한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배후에 있는 나라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견제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10년 동란이라고 불렸던 문화대혁명이 1976년 모택동의 사망과 함께 끝이 난다. 중국에서 등소평의 등장과 함께 개혁개방 정책을 펴게 되고, 그것은 결국 한중수교로 이어진다. 그 일은 조선족에게도 큰 사건이 된다. 그들은 그들의 원류가 북한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잘 사는 남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잦아지고, 대한민국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발전된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서 그들을 수용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많은 갈등과 문제를 만들었다. 조선족 동포들의 한국 사회와 관계 맺기를 보통 4단계로 분류한다. 태동기, 잉태기, 갈등 표출기, 관계 정립기 등이다. 그 과정 속에 고국이라고 온 나라에서 불법체류자로 숨어서 살아야했던 숱한 시간과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비교적 정립되어 2020년에는 80만 가까이 동포가 대한민국에서 머물고 있다고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은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 주변에서도 조선족 동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한민족 공동체를 향한 염원이 이런 책을 쓰게 만드는 모양이다. 조선족의 삶을 꾸준히 연구하고 그 성과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과의 관계를 잘 정립하여 그들이 보다 낫게 한국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자유롭게 이 땅을 방문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들이 드러난다. 정말 어렵게 살았던 핏줄이다. 오랜 세월 그리움을 묻고 살았을 그들이다. 그들이 어디에서 살아가든 배려하고 마음을 나눠주는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하겠다. 정말 조선족이라는 말이 안타깝다. 같은 동포인데, 같이 생각하고 같이 마음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라도 그들이 잃어진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게 한반도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 마음을 나눠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선족에 대해, 그들의 삶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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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인간사랑/2023.2.28. sanbaram
지금 우리나라에는 80여만 명의 조선족이 생활하고 있다. 이는 전체 조선족의 40%에 해당한다고 한다. 조선족이 중국의 동북지역인 연변을 중심으로 살게 된 과정과 중국의 개혁개방운동으로 한중수교를 계기로 한국에 정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동북부 조선족은 구한말부터 생존을 위해 이주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시절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자리를 잡았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한반도를 떠나온 사람들이 자리 잡으면서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제강점시대에 늘기 시작한 조선족의 숫자가 해방될 무렵에는 200여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조선족은 동쪽지역의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서쪽의 국민당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자 국민당을 지지했던 조선족들은 한반도로 귀향을 많이 택했고, 공산당을 지지하며 적극 참여했던 동부지역의 조선족들은 무상으로 받은 토지를 지키면서 중국민이 되어 갔다. 6.25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10여 만 명이 조국의 전쟁에 북한인민군 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중국에 개혁 개방운동이 일어나 1992년 남한과 수교를 맺게 되면서 조선족들은 한국에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기 시작하였다. 제도의 정비로 인해 가족까지 동반할 수 있게 되자 30여년의 짧은 동안에 많은 조선족이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남한 주민들의 차별 등으로 힘들어 하였지만 친목단체나 시민단체 등을 이루면서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 곽승지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에 관한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외통신과 연힙뉴스에서 근무한 후 명예퇴직을 하고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2020년 말까지 재직했다. 저서로 <북한사회의 이해>, <북한의 국가전략>, <북한의 사상과 역사인식>, <중국동북지역과 한민족>등 다수가 있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의 범위를 처음에는 “해방 후부터 조선족동포들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에서의 잇단 정치투쟁 속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중국 공민으로 거듭난, 문화혁명 시기까지를 담았다.(p.21)”고 한다. 그러나 개정증보판에서 4부 ‘한중 수교와 조선족사회의 변화’를 더하여 완결하였다. 책의 내용은 조선족동포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사회문화사나 경제생활사 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변화 속에서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내용을 4부로 구성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해방전후 중국 동북지역과 조선인. 제2부 해방 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조선인, 제3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조선족으로서의 삶, 제4부 한중수교와 조선족사회의 변화’ 등이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가장 적나라한 체험자인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은 물론 행동의 근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p.19)”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및 국공내전 시기, 그리고 동서 냉전시대에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써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30년대에는 연변지역(동만/북간도) 전체 주미의 76%가 조선인으로 구성될 만큼 이 지역은 조선인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었다. 이에 따라 해방 무렵 동북지역의 조선인 수는 전체 조선인의 9%에 육박하는 216여만 명에 이르렀다.(p.67)”고 한다. 일제의 항복 직전 대일전 참전을 선언하고 동북지역에 진주한 소련군, 해방 후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해 국민당 정부를 지원한 미국, 그리고 연변지역에 거주하며 항일투쟁 시기부터 중국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조선인이 핵심적인 변수였다. 중국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던 해방구 조선인 농민들은 중국공산당이 토지 무상분배를 실시함으로써 새로이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당정부 세력이 점령한 수복구의 조선인 농민들 형편은 오히려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국민당정부는 조선인을 거주권만 승인할 뿐 토지 및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부권 조선인은 1948년 국민당정부 세력이 중국공산당 세력에 밀리게 되자 한반도로 귀환하기 위해 이 지역을 떠났다. 한반도로 귀환하지 못한 일부 조선인은 그곳에 남아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며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했다. 이는 다시 남한과 북한에 대한 입장을 규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해방과 함께 시작된 동북아시아의 질서재편 과정은 그렇게 한민족을 분열과 갈등의 길로 내몰았다. 한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 재편 과정에서 역사를 추동하는 주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곡절들을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p.139)”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전쟁은 남북한 간의 이념적 대립에 의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비극이다.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도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북한을 편들어 민족적 비극에 참여하였다. 조선의용군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여했던 김중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여한 조선인은 대략 1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는 당시 전체 동북지역 조선인의 9%에 가까운 것이다. 6.25전쟁 개전 이전 북한의 주력부대에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사람도 약 4-5만 명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6.25전쟁은 단순히 한민족, 또는 한반도라는 좁은 틀 안에서 볼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기의 동북아시아 및 세계 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중요한 역사적 사건 주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무렵 중국에는 약 400여개의 민족(종족)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1950년대 초 제1차 민족 식별 조사에서 단지 37개 민족만을 소수민족으로 공식화했다. 이 후 두 차례의 민족 식별 조사를 더해 소수민족의 수를 55개 민족으로 늘렸다.(p.230)” 조선족이란 명칭은 중국공산당이 동북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의 지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함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에 힘을 보태기 위해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기업에게는 중국 진출 기회가 주어졌고 한국사회와 조선족 사회 간에는 본격적인 관계 맺기가 시작됐다. 한중수교는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한국정부의 외교 목표와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험과 자본을 활용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빨리 외교관계가 수립된 것은 양국이 1980년대 초중반부터 가진 일련의 접촉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수교 무렵 중국에는 1990년 인구 조사상 192만 3천여 명의 조선족동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이다.(p.312)” 1999년 한국정부가 재외동포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한중수교 30년이 경과하면서 전체 조선족의 40퍼센트가 넘는 80만여 명의 동포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2014년에는 60세 미만의 조선족과 고려인에게 단기 방문 복수비자를 신설, 사실상 조선족동포들의 자유왕래가 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같은 해 방문취업 및 재외동포 자격으로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및 고려인 동포들이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초청해 동반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된 결과다.
“많은 동포들이 연해지역의 개방도시로 혹은 한국으로 떠나면서 동북지역 조선족마을은 공동화되거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인들만이 선산을 지키는 ‘굽은 나무’처럼 고향마을을 지키는 상황이 됐다. 최근에는 조선족이 한 명도 살지 않는 조선족마을이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p.348)” 인구가 감소하고 학교가 사라지면서 조선족동포들의 생활터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동포들이 모여 살던 산재지역의 조선족향(진)은 많을 때 50여 곳이 훌쩍 넘었었지만 주변 도시에 편입되거나 폐지됨에 따라 지금은 30여 곳만 남아 있다. 조선족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조선족동포들이 진출해 살고 있는 국가의 수에 대해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많게는 100여 개 국가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동북지역을 떠나 해외에서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는 전체 조선족의 절반에 가깝다는 것이다.
“해외 거주자와는 별도로 중국 동북지역을 떠나 연해지역 개방도시에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위의 기사는 대략 베이징 등 수도권 8만여 명 ,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산동성 20여만 명, 상하이 5만여 명, 광둥성 4만여 명 등 37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2014년의 연구는 동북지역 밖의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수를 50만여 명으로 추산했었다.(p.356)” 한국과의 관계 맺기 초기에는 다수의 동포들은 북한에 대한 연민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과 크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인식함에 따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다만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중국 쪽으로 기운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민족정체성보다 국민정책성을 지향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조선족은 100퍼센트 조선족이지만 한민족의 일원이다. 이제는 100퍼센트 조선족을 지향하며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한민족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재외동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재외동포청 설립을 공식화 했다. 750만에 이르는 재외동포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 재외 동포 정책이 겉돌았던 점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한국사회가 조선족사회를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족동포들이 해방 후 중국 동북지역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p.374)”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중국사람 이라고 말한다며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조선족동포들이 북한을 도와 6.25전쟁에 참전한 것이나 중국공산당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주장의 진의나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현상만으로 판단하는데 따른 결과이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좀 더 발전하는 한민족이 될 수 있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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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인간사랑/2023.2.28.
지금 우리나라에는 80여만 명의 조선족이 생활하고 있다. 이는 전체 조선족의 40%에 해당한다고 한다. 조선족이 중국의 동북지역인 연변을 중심으로 살게 된 과정과 중국의 개혁개방운동으로 한중수교를 계기로 한국에 정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동북부 조선족은 구한말부터 생존을 위해 이주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시절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자리를 잡았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한반도를 떠나온 사람들이 자리 잡으면서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제강점시대에 늘기 시작한 조선족의 숫자가 해방될 무렵에는 200여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조선족은 동쪽지역의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서쪽의 국민당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자 국민당을 지지했던 조선족들은 한반도로 귀향을 많이 택했고, 공산당을 지지하며 적극 참여했던 동부지역의 조선족들은 무상으로 받은 토지를 지키면서 중국민이 되어 갔다. 6.25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10여 만 명이 조국의 전쟁에 북한인민군 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중국에 개혁 개방운동이 일어나 1992년 남한과 수교를 맺게 되면서 조선족들은 한국에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기 시작하였다. 제도의 정비로 인해 가족까지 동반할 수 있게 되자 30여년의 짧은 동안에 많은 조선족이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남한 주민들의 차별 등으로 힘들어 하였지만 친목단체나 시민단체 등을 이루면서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 곽승지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에 관한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외통신과 연힙뉴스에서 근무한 후 명예퇴직을 하고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2020년 말까지 재직했다. 저서로 <북한사회의 이해>, <북한의 국가전략>, <북한의 사상과 역사인식>, <중국동북지역과 한민족>등 다수가 있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의 범위를 처음에는 “해방 후부터 조선족동포들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에서의 잇단 정치투쟁 속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중국 공민으로 거듭난, 문화혁명 시기까지를 담았다.(p.21)”고 한다. 그러나 개정증보판에서 4부 ‘한중 수교와 조선족사회의 변화’를 더하여 완결하였다. 책의 내용은 조선족동포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사회문화사나 경제생활사 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변화 속에서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내용을 4부로 구성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해방전후 중국 동북지역과 조선인. 제2부 해방 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재편과 조선인, 제3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조선족으로서의 삶, 제4부 한중수교와 조선족사회의 변화’ 등이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가장 적나라한 체험자인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은 물론 행동의 근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p.19)”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및 국공내전 시기, 그리고 동서 냉전시대에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써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30년대에는 연변지역(동만/북간도) 전체 주미의 76%가 조선인으로 구성될 만큼 이 지역은 조선인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었다. 이에 따라 해방 무렵 동북지역의 조선인 수는 전체 조선인의 9%에 육박하는 216여만 명에 이르렀다.(p.67)”고 한다. 일제의 항복 직전 대일전 참전을 선언하고 동북지역에 진주한 소련군, 해방 후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해 국민당 정부를 지원한 미국, 그리고 연변지역에 거주하며 항일투쟁 시기부터 중국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조선인이 핵심적인 변수였다. 중국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던 해방구 조선인 농민들은 중국공산당이 토지 무상분배를 실시함으로써 새로이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당정부 세력이 점령한 수복구의 조선인 농민들 형편은 오히려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국민당정부는 조선인을 거주권만 승인할 뿐 토지 및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부권 조선인은 1948년 국민당정부 세력이 중국공산당 세력에 밀리게 되자 한반도로 귀환하기 위해 이 지역을 떠났다. 한반도로 귀환하지 못한 일부 조선인은 그곳에 남아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며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했다. 이는 다시 남한과 북한에 대한 입장을 규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해방과 함께 시작된 동북아시아의 질서재편 과정은 그렇게 한민족을 분열과 갈등의 길로 내몰았다. 한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질서 재편 과정에서 역사를 추동하는 주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곡절들을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p.139)”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전쟁은 남북한 간의 이념적 대립에 의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비극이다.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도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북한을 편들어 민족적 비극에 참여하였다. 조선의용군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여했던 김중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여한 조선인은 대략 1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는 당시 전체 동북지역 조선인의 9%에 가까운 것이다. 6.25전쟁 개전 이전 북한의 주력부대에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사람도 약 4-5만 명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6.25전쟁은 단순히 한민족, 또는 한반도라는 좁은 틀 안에서 볼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기의 동북아시아 및 세계 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중요한 역사적 사건 주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무렵 중국에는 약 400여개의 민족(종족)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1950년대 초 제1차 민족 식별 조사에서 단지 37개 민족만을 소수민족으로 공식화했다. 이 후 두 차례의 민족 식별 조사를 더해 소수민족의 수를 55개 민족으로 늘렸다.(p.230)” 조선족이란 명칭은 중국공산당이 동북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의 지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함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에 힘을 보태기 위해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기업에게는 중국 진출 기회가 주어졌고 한국사회와 조선족 사회 간에는 본격적인 관계 맺기가 시작됐다. 한중수교는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한국정부의 외교 목표와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험과 자본을 활용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빨리 외교관계가 수립된 것은 양국이 1980년대 초중반부터 가진 일련의 접촉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수교 무렵 중국에는 1990년 인구 조사상 192만 3천여 명의 조선족동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이다.(p.312)” 1999년 한국정부가 재외동포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한중수교 30년이 경과하면서 전체 조선족의 40퍼센트가 넘는 80만여 명의 동포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2014년에는 60세 미만의 조선족과 고려인에게 단기 방문 복수비자를 신설, 사실상 조선족동포들의 자유왕래가 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같은 해 방문취업 및 재외동포 자격으로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및 고려인 동포들이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초청해 동반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된 결과다.
“많은 동포들이 연해지역의 개방도시로 혹은 한국으로 떠나면서 동북지역 조선족마을은 공동화되거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인들만이 선산을 지키는 ‘굽은 나무’처럼 고향마을을 지키는 상황이 됐다. 최근에는 조선족이 한 명도 살지 않는 조선족마을이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p.348)” 인구가 감소하고 학교가 사라지면서 조선족동포들의 생활터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동포들이 모여 살던 산재지역의 조선족향(진)은 많을 때 50여 곳이 훌쩍 넘었었지만 주변 도시에 편입되거나 폐지됨에 따라 지금은 30여 곳만 남아 있다. 조선족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조선족동포들이 진출해 살고 있는 국가의 수에 대해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많게는 100여 개 국가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동북지역을 떠나 해외에서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는 전체 조선족의 절반에 가깝다는 것이다.
“해외 거주자와는 별도로 중국 동북지역을 떠나 연해지역 개방도시에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위의 기사는 대략 베이징 등 수도권 8만여 명 ,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산동성 20여만 명, 상하이 5만여 명, 광둥성 4만여 명 등 37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2014년의 연구는 동북지역 밖의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수를 50만여 명으로 추산했었다.(p.356)” 한국과의 관계 맺기 초기에는 다수의 동포들은 북한에 대한 연민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과 크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인식함에 따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다만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중국 쪽으로 기운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민족정체성보다 국민정책성을 지향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조선족은 100퍼센트 조선족이지만 한민족의 일원이다. 이제는 100퍼센트 조선족을 지향하며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한민족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재외동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재외동포청 설립을 공식화 했다. 750만에 이르는 재외동포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 재외 동포 정책이 겉돌았던 점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선족동포들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한국사회가 조선족사회를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족동포들이 해방 후 중국 동북지역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p.374)”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중국사람 이라고 말한다며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조선족동포들이 북한을 도와 6.25전쟁에 참전한 것이나 중국공산당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주장의 진의나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현상만으로 판단하는데 따른 결과이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좀 더 발전하는 한민족이 될 수 있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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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흥미를 가진건 '조선족' 이라는 세글자 늘 궁금했다. 조선족들은 과연 어떤 .. 민족일까?
목차들만 봐도.. 궁금하지않은가? 6.25전쟁에 대한 부분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 즉, 중국에 대한 이야기도 책속에서 만나볼수있다는 것. !
중국어 그리고 사투리 그리고 한국어? 까지
역시는 역시였다. 책속에서는 조선족의 유래
크게 관심이 없었던 그런 역사적인 내용들도
한중수교 국내에 체류중인 조선족동포들은 30만명이었으나 언어의 자유일까. 과거를 뒤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한국사회 그리고 조선족사회 그 연결고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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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판이 10년 전에 나왔으며 그를 기념하여 내용이 수정, 증보되었습니다. 조선족은 현재 우리 나라 어디서도 쉽게 만날 수 있고, 10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경제적,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기반을 다진 이들이 많습니다. 누구누구가 조선족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이는 엄연한 한국의 현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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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박정희대통령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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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평 한국사회에서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인간사랑, 2023.
한줄 소감 조선족에 대한 이해없는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조선족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의 향후 관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내용 '조선족', 뉴스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살인사건, 보이스피싱, 불법체류... 그들에 대한 감정적인 댓글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감이 고조된 사회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우리와 아주 밀접한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식당에 가면 요즘 자주 중국어가 들리는 것이 예시 중 하나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충돌의 문제도 있죠. 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거의 대다수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약간은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곽승지 저자는 남북한부터 관심을 가지다가 민족 전반에게 탐구의 영역을 확장하여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를 썼습니다. 이번 2023년에 10주년 기념 수정 증보판을 출간하였습니다. 남북한 문제부터 시작한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저자의 연구는 단편적인 조선족 연구와는 차별된 시각을 보여줍니다. 또한 저자께서 직접 발로 뛰며 조선족의 사회에 녹아들어 얻어낸 연구 내용이라는 점에서도 소중합니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의 의의 수정 증보판 서문 / 11 책을 시작하며 / 15 프롤로그 / 24 이 부분에서 저자는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의 의의, 목적, 구성, 배경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들이 50여만 명이 넘었고, 한국사회에 조선족사회 간 적극적 관계 맺기를 한 시간이 20여년이 넘었다는 것은 양자 관계가 양적 질적으로 크게 변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중략) 그것은 조선족동포들을 많이, 그리고 깊이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16쪽) 저는 조선족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족동포’라는 단어부터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족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조선족역사를 한민족사의 관점에서 서술하려는 목적에서 준비됐다. 따라서 조선족의 형성 시점을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했던 조선인이 1945년 8월 해방 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로 보았다.”(21쪽) “조선족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며”라는 말이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조선족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다.’가 저를 포함한 대중들의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조선인’과 ‘조선족’의 표기 기준은 ‘책 10쪽의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 각각 조선인과 조선족으로 표기했다.”(10쪽)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조선족동포들이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25쪽)고 말하며 연민의 감정을 보입니다. 저자는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는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국사회가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이해와 포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선족역사를 한민족사에서 분리할 것인가? 이 우문을 제기하는 것은 지금껏 조선족역사를 한민족사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족사회에서는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략) 지난 시간을 단지 잃어버린 시간으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예비’로 승화시킬 것인가? 이 문제는 이 시대를 사는 한민족이 조선족역사를 어떻게 재해석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 일차적 책무는 한민족의 주류인 한국인 및 한국사회에 있다. 조선족동포들과 더불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이 겪은 슬픈 역사에 귀 기울이며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이들을 명실상부한 한민족의 일원으로 포용함으로써 좋은 관계 맺기를 하여야 한다.”(38-39쪽) 이에 덧붙여 저자는 최근 나타나는 초국가적인 이동 특징에 따라 갈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조선족역사를 한민족사의 관점에서 다루어 적극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쯤 되면 저자는 우리에게 조선족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읽어보면 이렇게 주장하는 저자의 논리도 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중국의 동북공정, 중국과 북한의 관계, 미중 대립 등을 걱정하는 친구와의 일화를 소개합니다.(368-369쪽) 저자는 이러한 현 대중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대화의 신호탄으로 여기며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대중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하였고 이 문제의식을 확장하며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가 이 해결의 실마리로 작동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선족은 자신들을 중국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왜 포용해야 하는가?’에 대하여도 에필로그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처럼 조선족동포들은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인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아왔다. (중략) 조선족동포들이 겪은 이 같은 역사를 모르면서 현재 드러난 모습만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중국사람이라고 말하며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조선족동포들이 북한을 도와 6.25전쟁에 참전한 것이나 중국공산당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주장의 진의나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현상만으로 판단하는데 따른 결과이다.” 저자의 조선족 포용에 대한 주장에 아직까지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선족에 대한 이해없는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조선족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의 향후 관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저는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가 우리에게 너무 조선족에 대한 이해없이 의미없는 반감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출처 작가 소개: yes24, (n.d.),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yes24-도서소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584835, (검색일 2023.03.23). 도서 소개: yes24, (n.d.),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yes24-도서소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584835, (검색일 2023.03.2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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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TV에서 보는 조선족은 항상 나쁘게만 형상화해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선족은 우리 핏줄이 아닌 중국 핏줄인 양 그렇게 나타내어 항상 폄하하기 일쑤였다. 그런 조선족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가 없어서 조선족은 어떠한 뿌리에 대한 어떠한 삶을 살은 민족인가에 대해 궁금해서 읽어본 책<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이다. ? 이 책의 저자 곽승지는 동국대 정치외교학을 졸업하고 북한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한에 대한 문제로 생업을 다루고 연합뉴스에서는 영문북한팀장을 역임했다. ? ? ? 조선족은 해방 전 한반도에서 심한 기근으로 인해 먹고살기 어렵게 되면서부터 두만강과 압록강 인근의 조선인이 봉금지대에 묶여 있던 중국 동북 지역 쪽으로 이주하면서 조선족의 문화가 깃들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조선족은 우리나라의 민족의 한이 깃들여 있는 같은 동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해방 후 한반도로 오지 않고 중국 쪽에 거주하게 되면서 중국인도 아니고 우리 민족도 아닌 신세가 되어버려 조선족이라는 핍박받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기 위해 중국 동북 지역 쪽에 머물며 열심히 살아가며 한 것임에도 여러 사회 과정 속에서 그들은 수난이 많은 민족임엔 분명한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들과 그들의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그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을 중국 소수 민족인가 우리나라 동포인가에 대하여 왈가불가하는 속에서 그들은 어느 나라의 민족 중에 하나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 중에 하나라고 이해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조선족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 ? 출판사로부터(예스 리뷰어)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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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조선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동네 근처로 이사오게 되면서 그들이 내 삶의 공간에 들어왔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인 같지 않은,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이 함께 느껴지는 그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궁금해졌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면 먼저 ‘조선족’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10주년을 기념해 수정 증보판으로 돌아온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 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는 나의 궁금증을 학자의 시점으로 잘 정리해 둔 책이다. ‘조선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아무리 서점과 도서관을 뒤져봐도 제대로 설명한 책이 전무하고, 몇 안되는 문헌정보는 거의 전문 연구논문이 전부임을 알기에 일반인이 알기 쉽게 정리해둔 이 책은 매우 귀하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는 크게 4부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전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6.25 한국전쟁, 한중수교로 한중간의 관계변화 등 동북아시아의 굴곡진 역사의 변화 속에서 조선족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자세히 설명한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속 사건들을 조선족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새롭거나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었고, 특히 조선족에 대한 내 기존의 편견들이 변하고 수정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 ‘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역사는 슬프고 안타깝고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조선족에 대해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음을 경험했다. 작가님께서 강조하셨던 조선족에 대한 정부 정책의 부재로 인해 생긴 편견과 부정적 이미지는 이해가 되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라는 등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곽승지 작가님께서 책의 처음과 마지막에 ‘좋은 관계’에 대해 강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집필하셨다는데, 책을 읽는 내내 여러 팩트와 해석 사이에서 그 ‘좋은 관계’를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한국사의 가장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한국, 전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와 안녕을 보낸다.
* 이 글은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