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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인간다움, 자연과의 공명의 중요성
"인간, 인간다움, 자연과의 공명의 중요성" 내용보기
이 책의 저자는 9.11 테러 사태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테러와 기후변화, 젠더 이슈,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슈를 거쳐가며 점점 사생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강해지고 점점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검열이 심해지게 되었고, 그 배경에는 각종 숫자와 데이터 기반의 논리로 무장된 기술관료가 중심이 된 현대적 전체주의의 출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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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9.11 테러 사태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테러와 기후변화, 젠더 이슈,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슈를 거쳐가며 점점 사생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강해지고 점점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검열이 심해지게 되었고, 그 배경에는 각종 숫자와 데이터 기반의 논리로 무장된 기술관료가 중심이 된 현대적 전체주의의 출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새로운 전체주의적 성격이 계속 가속화되는 모습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알리고자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전체주의가 태동하게 된 바탕인 기계론적, 유물론적 사고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이러한 기계-유물론적 사고가 어떻게 전체주의 사회를 만드는 사회적, 심리학적 조건을 만드는지에 대하여 다룬다. 2부에서는 전체주의적 국가가 나타나기 위한 조건과 그 기반인 대중형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전체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언급한다.

기계론적-유물론적 사고방식은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시작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은 인간이 자초한 후견 상태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다. 후견 상태란 인간이 다른 누군가의 지도 없이는 스스로 자기 이해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 과감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라'"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신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던 인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많은 시도와 실험을 통해 우주의 운동 원리에 대해 점점 이해하기 시작하며 과학이 발전한다. 이렇게 점점 발달한 과학은 단순히 자연의 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뛰어넘어 과학적 원리를 활용한 새로운 도구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인간 사회의 발전은 점점 가속화된다. "신의 기적을 기다리던 인간에서 과학을 통해 기적을 만드는 인간"으로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들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자연의 리듬에서 점점 분리시켰다. 인공조명으로 인해 해와 달이 부여하던 생활리듬을 깼고, 시계도 자연의 순환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나침반 또한 천체에 의존하던 인간을 천체에서 분리시켰고, 산업화는 논, 밭과 숲에서 인간을 도시로 흡수해갔다. 이렇게 자연이 기계화되어가며 인간 또한 기계화되어갔다. 이러한 기계화는 노동의 의미도 변화시켰다. 이전의 노동은 그 결과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대량생산으로 변한 노동은 그 전체 과정의 일부만을 담당하게 만들어 그 의미를 체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인간의 삶이 점점 무의미해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미함을 기계론적 이데올로기 하의 인간은 추가적인 기술적 발전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여러 기술자 과학자들(소위 "전문가"들)이 수많은 "데이터"들을 제시하며 더 나은 미래를 보여줄 기술을 제시하였고, 그 데이터에 근거하여 기술관료들은 정책을 펴고 단기적으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를 통한 문제 해결은 더 복잡한 문제를 파생시킬 뿐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한 "데이터"들은 정말로 신뢰할만할까? 불행히도 이러한 데이터들은 너무나 오류투성이이다. 논문에 실린 데이터, 통계들조차도 극도로 낮은 재현성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고, 같은 대상을 보고도 측정하는 방법에 따라 그 차이가 천차만별로 나고, 심지어 실험자의 "주관"의 개입으로 기준이 달라지고, 데이터 또한 정반대의 양상으로 바뀌는 등 정말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의 존재 가능한지?라는 의심이 되는, 말 그대로 임의적이고 주관적이고 불확실성 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허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쉽게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문제 원인을 고찰하기보다는, 문제 있어 보이는 부분을 각종 규칙과 규제 등을 통해 제거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그리고 인간 사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규제를 만들고, 이러한 규제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굴레에 빠진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일련의 판단 과정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데이터와 통계치(심지어 신뢰성이 없는)" 만이 남는다.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숨통을 점점 조여오는 것이다. 미래에는 또 어떤 규제가 숨통을 조일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낳고 끝없는 실패를 지속하는 인간은 어느 순간 특정한 방향성과 권위를 지닌 절대자를 갈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 국가의 심리 사회적 토대인 대중(mass)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독재와 전체주의 국가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독재국가는 공포를 기반으로 지배한다. 피지배층들의 죽음 또는 그에 준하는 위협을 통해 지배자의 권위가 확보된다. 한편 전체주의 국가는 대중형성이라는 사회심리적 기반으로 지배한다. 대중형성(mass formation)은 하나의 불안 대상과 벌이는 영웅적 전투 속에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공동의 내러티브에 개인이 사로잡힐 때 발생된다고 한다. 이런 대중형성이 대규모로 형성되기 위해선 1) 외로움, 고립, 사회적 유대의 부족, 2) 무의미한 삶, 3) 이유 없는 불안과 심리적 우려 4) 이유 없는 좌절과 공격성 네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이때 4)의 공격성이 효과적이고 건전한 방향으로 분출되지 않을 경우 대중형성이 가속화된다. 이때 특정한 인물(사건 등)이 개인의 불안과 좌절이 무엇 때문인지 특정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시하면 대중은 내가 몰랐던 원인을 알게 되고, 그 원인을 적으로 삼아 공동의 싸움을 발휘하며, 이때 엄청난 공격성을 발현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어마어마한 해방감과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때 대중에 녹아든 개인은 중요치 않아진다. 단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대중이 이야기를 믿는 것은 그것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이로써 새로운 사회적 유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형성은 근본적으로 불안과 공격성을 먹고산다. 따라서 그 불안과 공격성을 표출할 대상이 없다면 대중형성의 역동성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지도자는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불안을 집중시킬 새로운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그 대상을 파괴할 새로운 조치를 계속 도입하며 그 위치를 유지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중형성과 전체주의는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로부터 기인한 증상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계론적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분석해야 한다.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는 우주를 예측과 통제 가능하고 방향성이 없는 기계적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기계론적 유물론에서는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가정하면서, 의식과 심리적 경험은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작용의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등장은 이러한 기계론적 이데올로기에 크나큰 오류가 있음을 밝혀냈다. 한편 카오스 동역학의 연구자들은 프랙탈이나 로렌츠 물레방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지극히 무질서해 보이는 운동안에도 나름의 예측 가능한 규칙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규칙을 통해 앞을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초기조건을 정의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리적인(기계론적) 예측 가능성은 없지만 일부 직관적인 예측 가능성은 남겨놓았다 볼 수 있다. 푸앵카레의 추측이라는 수학계 난제로 알려진 푸앵카레 또한 "어떤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직관에 근거해 예측하는데 논리적 이해가 늘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어느 시점까지는 논리적인 이해가 가능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영역에선 오히려 논리적인 이해를 위한 시도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로렌츠 물레방아의 바퀴처럼 자연과 삶의 대다수 현상의 복잡성은 예측할 수 없으나 나름의 일정한 원리를 따르고 있고, 그 숭고한 현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혼란함 아래 감춰져 있다. 저자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 볼 때 개인은 온갖 존재의 복잡성에 존재하는 시간을 초월한 삶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천 과제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품는 의문 몇 가지를 언급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타인과는 어떤 관계인가? 쾌락, 자연, 죽음과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 자연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우리는 앞선 많은 논리에 입각할 때 절대 결정적 답을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 개인들은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려야만 한다고 한다. 그러한 궁극적 지식은 결국 인간 밖에 놓여있으며, 우리 인간은 궁극적 지식을 체득할 수 있도록 자연과 함께 더불어 공명해야 함을 말한다.

저자는 반복적으로 인간, 생명, 자연을 외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 인간다움, 자연과의 공명" 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자연, 온 우주의 안에서 공명하는 인간다운 인간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인간다움이 없는 인간은 말 그대로 기계에 불과하고 이는 전체주의적 사회의 시발점이 된다. 기계적인 마인드가 팽배한 이 세상에선 채울 수 없는 근본적인, 내재적 불확실성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자연 속에서 공명하며 체득하는 우리 인간의 직관이다. 우리가 우리에게서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할 때, 세상은 불안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한 공격성과 혐오로 가득 찬 세상에서 희망과 유대감이 넘치는 세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며 마치고자 한다. 공과대학에 진학하고, 공학 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공학 관련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내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배워온 일은 어떻게 보면 숫자와 데이터, 통계치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그뿐이었다. 최대한 나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구하고 그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에만 매몰되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항상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부족함, 찝찝함 들이 어딘가에 남아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인간과 자연이 배제된 기술은 전체주의적 사회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나름에 큰 깨달음을 얻으며, 항상 인문학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새로이 하게 된다.

#전체주의의심리학 #마티아스데스멧 #원더박스

 

YES마니아 : 골드 g********a 2023.03.2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