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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닮은 듯 다르고, 낯설면서도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일본과 한국의 여혐은 어떤 순간에는 구분하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다가 조금만 자세히 들어가보면 또 다른 모습을 띄어요. 그런 점에서 동시대 일본 페미니스트 두 분 사이에 오가는, 페미니즘 이슈를 담은 편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 와, 이런 점은 한국이랑 똑같네!' 하다가도 '그런데 왜 이런 점은 완전히 다르지?' 싶은 지점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요즘 일본-한국의 페미니즘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데, 그 부분도 재밌었어요!
이 책을 함께 완성한 우에노 지즈코와 스즈키 스즈미 두 저자의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이나 행보가 워낙 차이가 컸는데, 여러 책을 통해 만나봤던 우에노 지즈코보다는 AV배우였다 신문사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스즈키 스즈미에 더 눈이 갔습니다. 저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데도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하는/했던 페미니스트'라는 게 과연 성립이 될 수 있기는 한 건지, 도대체 어떤 동력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12번이나 발송되는 편지를 읽다 보니, 그전보다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은 반항심과 호승심, 승인 욕구, 그리고 가족에 대한 약간의 가학심이 섞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와 세상이 반대하는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요.
두 사람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논의를 발전시키는 지점이 좋았어요. 한국의 경우, 일본과 또 다르기 때문에 3가지의 시점을 동시에 맛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한국은 2018년 미투운동 이후로 2~30대 여성 사이에서 확연하게 페미니즘적인 가치관이 자리잡았다고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이 디폴트가 아니라 옵션이 되었다고 보여요. 그러니까 이전에는 결혼을 하는 게 전제로 깔려 있었다면, 지금은 하지 않는 게 전제로 깔려 있고 뭔가 특수한 상황일 때 결혼이 성립되는 걸로 변화한한 거죠. 여기에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결혼과 별개의 옵션이고요. 그런데 일본은 아직까지는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임출육을 디폴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하더라고요.
스즈키 스즈미 같은 경우는 성매매를 하면서 남성의 바닥을 봤기 때문인지 정말로 남성에 대한 믿음이 0에 수렴하는 발언을 종종 하는데, 그런 태도가 '남성이 무책임하게 도망치기 쉬운 구조를 열어준다'고 지적받는 등 예상치 못했던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예를 들어 (어차피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는 남자는 아무리 말해도 없어지지 않으니) 여자 혼자서도 임출육을 할 수 있도록 미혼모 지원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가면, 배드 파더 입장에서는 더 먹튀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것도 함께 인식하고 그 해결책도 같이 도모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식으로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제도의 반동이 튀어나오는 지점을 미리 예상해보는 건 꽤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제도가 아마 비슷한 반동을 겪을 텐데, 그 반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이느냐가 결국 법과 제도의 성패를 가른다고 싶거든요.
개인적인 이야기도 잔뜩 들어있지만, 모든 여성의 삶에는 페미니즘적으로 읽어낼 수밖에 없는 무수한 시간과 사건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제가 겪어온 것과는 다르지만, 다른 여성이 살아온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미 저도 수천번 봐 왔던 익숙한 상황을 뽑아내고, 사회학적인 개념으로 재명명하는 건 언제나 의미있는 일입니다. 두 저자가 언급한 여러 책들이 많은데, 찬찬히 한 권 한 권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도 내공이 더 쌓여서, 누군가와 이런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싶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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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태어난 저는 고등학교에서, 대학/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또 5년간 근무한 신문사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저의 선택이 제한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우수하고 이해가 빠르며 통찰력 있는 여성들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제가 도쿄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서울대학교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는데, 열심히 공부하는 뛰어난 여성들이 역시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9-)
하지만 저는 의문이 듭니다. 여서의 삶의 방식이 한정되어 있던 시대에 비해, 적어도 제도적인 면에서는 갖가지 선택지가 준비된 오늘날, 여성은 고민이나 불만이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물론 새장 속에 갇힌 듯한 시대의 여성들이 얼마아 자유롭지 못했고 고뇌가 깊었을지는 제 상상을 초월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전 세대보다 훨씬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 나름대로 여태까지와 도 다른 고뇌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과거 여성의 자유와 선택권을 금지하거나 마치 강제로 여성의 손발을 묶던 때보다 삶에서 느끼는 괴로움을 알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10-)
그러니까 저는 섹스를 하며 상대와 배타적인 관계를 맺고 언제든 내 몸을 양도하기보다는 , 결혼으로 경제적인 보장을 얻고 싶어 하는 여성의 감각에 더 가깝습니다. 또 결혼으로 계층 상승을 하기 위해 자신이 섹스 값을 고급으로 만든 뒤 그 권리를 누군가한테 양도하는 여성들, 가령 잡지 《JJ》 를 보던 여성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도 저한테 퍽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런 여성들이 남편과 섹스하며 '오직 고통 분'이라 여기는 것도 저한테는 친근하고 익숙합니다. (-130-)
세상은 저를 비록한 AV 배우 출신 여성들한테, AV 출연을 강요당해서 괴로운 처지에 놓인 피해자가 과거의 오접이라고 여기는 걸 극복하거나 그런 과거를 자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강한 여성, 이 두가지 역할 중 하나를 부여하려 합니다. 그렇디만 저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두 가지 답 사이에 놓여 있는 미세한 그라데이션 속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래요. (-191-)
'자식이나 가족 얘기가 아니면 여자들끼리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 별로 할 말도 없잖아?' 라고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느 사람도 있는데,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자식 있는 기혼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훨씬 더 많지만 저한테는 남편이나 자식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제가 혼자 지내니까 배려를 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도 있겠고, 남편이나 자식 이야기를 남한테 해봤자 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참는 것이기도 할 테고, 남편이나 자식에 관한 고민은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259-)
이롷게 본다면, 남성 작가의 문학은 남자가 얼마나 약하고 어리석은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참으로 딱하고도 솔직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마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도 가면을 쓴 주인공 남자가 읽는 사람의 가슴이 철렁해질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 작품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 또한 늙음을 자각한 남자의 섹슈얼리티를 생생히 고백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324-)
이렇게 태연하게 자기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딸들이 대거 등장한 것을 저는 환영합니다. 왜냐면 남자들은 처음부터 자기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살아왔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인간이란 원래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에고이스트입니다."자식보다 내가 중요하다." 그런 건 다자이 오사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남자한테는 허용이 돼도 여자한테는 허용되지 않았는데, 이제 여자들도 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354-)
1948년 생 ,여성학과 젠더 연구의 일인자 우에노 지즈코와 , 1983년 생 AV 배우 스즈키 스즈미 가 만나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한 권의 책을 쓰고 있었다. 책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 현상이 나타나면서, 젠더에 대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개념 이해를 도모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조합이 나에겐 매우 이질적이며, 낯설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두 명 이상의 한국 작가가 쓴다면, 통산적으로 한국 독자는 소설가 조남주와 여성학 정희진 공저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조남주와 588 성매매 여성이 공저자로 나온다면, 독자는 책ㄹ이 불편해지며, 책은 팔리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여혐,젠더를 다룬다. 믈론 한국 사회에 숨어 있는 메갈, 일제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알고 가면 다행이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페미니즘은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성매매, AV 배우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AV배우가 실제 언급하는 페미니즘의 필요성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여성의 몸과 마음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며, 나의 성에 대한 권리 확보 뿐만 아니라, 힘의 논리에 따라서, 남녀의 선택권이 결정되는 사회의 구조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 특히 사회학, 여성학을 다루는 페미니즘에 대한 연구를 보면, 페미니즘을 이단으로 치부하는 현상도 보인다. 하지만 우에노지즈코는 분명하다. 페미니즘은 중심이 없고, 이단 종교에서 보여지는 종교적인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신봉자가 없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페미니즘은 우리 삶의 변화를 위해서 ,필요하며, 남녀 모두에게 건강한 자아를 선물한다.
수동적인 선택에 불과한 여성의 성에 대한 권리,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엄마, 임신, 출산, 태교,모성애 라는 개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수적인 사회 안에서, 성에 대한 자유,남성은 가능하고, 여성에겐 불가능한 현실, 젠더 불평등에 대한 기준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여성 스스로 자신의 한계의 틀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노련한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의 페미니즘의 통찰의 틈을 AV 배우 스즈키 스즈미의 생각을 통해서, 퍼즐을 맞춰 나간다. 삶,인생에 대해서, 불완전하고, 불안한 사회에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우리 삶을 건강한 사회,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으며,사회의 변화의 첫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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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요령이 없던 나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아버지한테 그렇게 항의를 자주 했다. 그 대가로 "계집애가 어른 말하는데..."로 시작하는 정서적, 물리적 폭력이 있었다. 집 안에서 나는 눈치 없이 고집을 피우다가 혼나는 그런 고지식한 캐릭터였다.
나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 중 한 명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했던 말과 행동도 분란을 일으키거나 화를 돋을 뿐이었다. 나는 그다지 세련되게 상대방을 배려해서 말을 잘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이 행동이 나답다는 말이지,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여자가...'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말들이 내게는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여자가 공부를 잘해봤자 결혼하면 다 똑같다', '여자애 몸에 흠집 나면 안 된다' '여자 답지 못하다', '여자가 드세봤자 좋을 것 없다', '여자라서 힘든 일에서 빠져서 좋겠다' 등등등
여자이기 이전에 나는 인간인데, 왜 생물학적 성이 내가 나임을 규정하는 데 항상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 대해 답을 줄 사람도 없었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우에노 지즈코님의 이름을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우에노 지즈코라는 사회학자의 이름이 종종 인용된 것을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다가 문학수첩에서 "페미니스트, 한계에서 시작하다"라는 책을 독서모임에 지원한다는 이벤트를 봤다. 마침 3년을 넘게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곳에서 주로 읽는 것이 "성교육, 페미니즘, 젠더" 등에 관한 것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 신청을 했고, 덜컥 돼버렸다.
그렇게 나는 우에노 지즈코 님과 스즈키 스즈미 님을 만나게 되었다. 2023년에 이 두 분을 알게 된 것이 참으로 절묘하다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필요할 때 두 분이 알아서 나에게 와 주신 느낌이다.
고백하자면, 젊은 시절에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뭔가 부당한 것 같기는 하고,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히기는 두려워서 뭔가를 발언할 때 스스로 제동을 걸던 좀 지질한 인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강연에서 정희진 님이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만을 옹호하는 주의"가 아니라 "약자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발언하신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내 기억력이 정확한 것이 아니라 저런 뉘앙스로 이야기한 것을 적당히 적었음을 밝힌다.)
그때 나는 머리 뒤통수를 딱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관련된 수많은 사회적 문제, 특히 약자의 문제와 이래저래 걸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사회에서 정해준 딸, 엄마, 며느리, 주부와 같이 정해진 역할 외에도 다면적인 측면이 많은데 항상 앞에 제시된 롤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불만이었다. 더군다나 내 나이 또래의 재능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재능을 펼치기보다 항상 누군가의 보조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속상하기도 했다.
독서 모임, 자기 계발 모임, 공부 모임에서 만난 여성들은 누구보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자신에게 부여된 수많은 역할 속에서 자신의 본질,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지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즈키 님처럼 알 수 없는 부당함에 분개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 내면화된 가부장적 관점으로는 절대 해석할 수 없는 부당함과 자기 패배적인 감정. 무엇을 어디까지 옹호하고 이해해야 할지 모르는 갑갑함. 자라나는 아이들의 세상이 좀 더 좋아지길 바라지만 견고해 보이는 여성 혐오와 성 대결 구조.
? 지금과 같은 단계에서는 결혼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불편하고, 특히 육아에서는 결정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런데도 육아 환경은 개선하지 않고서 사람들이 더 많이 결혼할 수 있게 하자는 소리를 들으면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스즈키 스즈미, 104p
? 아픔을 과소평가해서 나는 잘하고 있다고만 여긴다면 사회가 바라는 존재만 될 뿐이고, 그렇다고 아픔을 과대평가해서 상처받은 척하길 강요당하는 것도 부아가 치밉니다. 내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스스로 가늠해 보고 정확히 파악해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실감합니다. - 스즈키 스즈미, 191-192p
? 우에노 님은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다 하고 계신데, 자신의 말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소비되며 주목받을 때 여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 스즈키 스즈미, 198p
스즈키 님의 질문은 직설적이다. 그녀의 손끝에서 나온 질문들은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질문 중의 몇몇은 나도 겪어보았고, 궁금했던 부분이다. 내가 나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떠오른다.
? 스즈미 씨가 지적하고 전에 저도 말했듯, 가족은 궁극의 ‘안전보장재’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관계 자본 social capital 가운데 ‘느슨한 네트워크’를 아무리 칭송한다 해도, 혈연만큼 강력한 사회관계 자본은 없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우에노 지즈코, 122p
? 생각해 보면 페미니즘은 ‘내가 나이기 위해 남자의 승인 따위 필요 없다’고 주장해 온 사상이었습니다. 내 가치는 내가 만든다고. 남자한테 인기 있는 화장법, 옷 입는 법을 쓴 콘텐츠가 유통되고, 결혼이 목표인 만남에 열중하는 젊은 여성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승인을 획득할 수 없는가? - 우에노 지즈코, 156p
? 부서진 것은 부서진 것으로서 다룬다. 내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이게 필요하다고 이해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리석었죠. - 우에노 지즈코, 188p
우에노 님의 답변은 긴 시간 사회와 여성 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경험하고, 공부하고, 치열하게 쌓아왔기에 글자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다해서 물어오는 스즈키 님의 질문에 우에노 님이 온 힘으로 답변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준 느낌이다.
편지로 오고 간 두 사람의 대담을 관전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서로의 배경과 생각, 경험은 거침없이 소개되었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통해 나의 경험을 계속 비추게 되고, 그 시절의 '나들(나의 복수형)'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하고, 연민을 갖기도 하고, 혼내기도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부서진 상태로 이해하고 다룬다. 올바른 페미니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운동이 의미를 갖는다는 우에노님의 말은 내게도 큰 위안이 된다. 나의 기록이, 우리의 기록이, 약자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고, 세상을 이해하고 좀 더 좋은 세계로 향하는 여정이라면, 오늘날 부족하지만 나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우에노 님의 지성과 배려, 약간 시니컬한 농담은 정말 매력적이다. 우에노 님이 쓴 책들을 좀 더 읽고 싶다. 그녀가 나온 영상을 좀 더 보고 싶다. 일본어를 배워야 하나 고민 중이다.
* 본 글은 문학수첩 도서를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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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말만큼 어려운 말이 있을까. 그동안의 위계와 억압과 차별에 균열을 내며 세상을 흔드는 말인 거 같다가도 시대착오적인 말로 여겨지고, 모두가 곰곰이 나누어야 할 말인 거 같기도,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에 서 있다는 것은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늘 마음에 걸렸다.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의 역사를 전혀 모르면서 어려운 말이라고 얼버무리며 숨어버리는 것 같아 풀이 죽어있었다고나 할까. 잘 모르는 개념, 이론과 학문은 언제든 책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페미니즘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랄까, 입장은 언젠가 책으로 '좀 읽어본 후에'라고 미루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초라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라는 제목이 솔깃하기도 했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빈곤한 나의 생각들을 조금쯤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야 이 책이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 여성이 특정한 주제로 주고받은 편지를 편집한 흥미로운 구성. 목차의 편지 주제를 살펴보면 에로스 자본으로 시작해, 연애, 성, 결혼... 자립, 연대, 자유, 페미니즘, 자유, 남자 등으로 이어지며 페미니즘 전반 아니, 인간을 이루는 근본적인 것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두 저자는 어떤 특정한 기준으로 본다면 서로 매우 다른 사람들일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라는 것 외에 세대도, 직업도, 경력도 너무나 달라서 두 사람이 함께 주고받는 글이라는 설정 자체가 꽤 흥미롭다.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다른 자리에서 상대방의 저서를 관심 있게 읽어온 두 사람은 정해진 특정한 주제에 따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에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할 이야기들이 선명하다. 두 사람 다 나와는 세대 차이가 꽤 나는지라 어느 편의 생각이나 경험에 더 공감한다고 할 수 없었으나 처음 책을 읽으며 나는 어쩐지 앞선 세대를 살았던 우에노 지즈코의 입장에 내가 더 가깝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혹시 내가 '밤의 세계'를 경험한 젊은 저자의 경력으로부터 나도 모르게 거리 두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스즈키 스즈미의 글을 읽으며 꽤 놀랐다.' 아, 이런 일은 모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책장을 그만 덮고 싶기도 했다. 저자의 이력에 대학생 때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AV 배우 경력이 언급되는 것을 보고도 아, 그렇구나 시큰둥했지만 막상 본문에서 그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읽게 되었을 때 거부감 같은 것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골똘해진다. 두 사람은 편지에서 내가 느낀 불편함과 거부감에 대해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깊게 이야기하는데 남성이 여성을 타자화하는 것 이상으로 여성이 여성을 선을 그어 차별하고 타자화하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에노 지즈코는 뭐랄까 꽤 단호하게 스즈키 스즈미를 대한다. 상대의 글과 생각을 신랄하게 분석하는 것에 서슴지 않는 편이라 읽으며 멈칫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글이 든든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특히 페미니즘이 전개되어 온 과정을 사회 역사적 배경안에서 분명히 이해하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성찰하는 태도와 사유가 좋았는데 페미니즘이란 말이 가진 역사적 그리고 동시대적 의미와 그 오염이 궁금한 내게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었다. 'AV 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 어떤 경력과 활동보다도 선명하게 따라다니는 스즈키 스즈미에게는 한 인간으로서 훨씬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여정이 있다. 다양한 결의 여성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며 자신이 페미니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일까라는 늘 고민한다. 그녀의 다소 불안해 보이는 글 안에서 스스로의 경험 안에서 자각하고 세상에 당당하게 서려는 태도가 느껴졌는데 나와 다른 인생이라는 거리 두기보다 연대의 마음을 보내고 싶었다. 스즈키 스즈미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목격한 중년 남성들의 어리석은 행동들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편지에서 아주 자주 절망스러워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에 대한 절망과 포기로 남자들에 기대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라는 생각(P. 279)에 사로잡혀 몇 번이고 어떻게 남자들에게 절망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 묻는 그에게 10장 <페미니즘>편에서 들려주는 우에노 지즈코의 대답이 무척 좋았는데 어쩌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믿을 만한 사람과 만났을 때 사람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안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무구한 것,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좋고 나쁨은 관계에 달려 있어요." p. 285 “메시지가 전해지면 '운동'이 태어납니다. 여성운동도 일종의 운동(무브먼트)인데, 여성운동이 일어나려면 먼저 우리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집합적인 여성 정체성 확보가 불가결하죠. 그리고 '여성'이란 집합적 정체성은 내가 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타인과도 상상으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p.292 남자라서 여자라서, 혹은 이런 여자라서 이런 남자라서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하고 절망하는 것. 어떤 분류로든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드는 것은 페미니즘이 품은 일이 아니다. 이어지는 편지 끝부분에서 우에노 지즈코는 아주 멋진 통찰을 들려준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이단 심문이나 마녀사냥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란 스스로 깨닫고 알리는 ‘자기 신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란 이름을 내건 사람은 모두 페미니스트지, 올바른 페미니즘이 따로 있고 틀린 페미니즘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중앙 조직도 없고 교회도 없고 성직자도 없는, 한 마디로 중심이 없는 운동입니다. 누구누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이단으로 판정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제명도 할 수가 없습니다.” 10장 '페미니즘’ p.297 페미니즘의 역사와 그 개념을 잘 정리한 책을 한 번에 읽고 페미니즘을 깨우치고(?) 싶다는 오만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만난 두 사람의 진솔한 편지글을 통해 말끔하게 정리된 이론 속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무수한 가닥으로 연결되어 있는 생생한 페미니즘을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뛴다.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스스로의 입장을 이야기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먼저 하며 거리를 두는 현실. 누군가에는 혐오적이고 배타적인 낡은 개념으로 오염된 페미니즘이 어떻게 꿈틀꿈틀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 70대와 30대 두 여성의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삶 속에서 읽어본다. 두 저자가 어쩌면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특별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니, 두 사람은 여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에 뿌리 깊게 작동하는 동시대를 우리와 함께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가는 여성일 뿐이다. 페미니즘이란 '스스로 깨닫고 알리는 개념'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확신하게 되는 일이 기쁘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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