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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로 알려진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기억하다’(remember)의 뜻을 가진 ‘메멘토’(memento)와 ‘죽다’(to die)를 뜻하는 ‘모리’(mori)의 합성어로서,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메멘토 모리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됐던 시기는 로마 공화정 시절 전쟁에서 돌아온 개선식으로 보는데, 개선장군이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에 대해 우쭐해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풍습의 일환으로 그의 마차에 함께 동승한 노예가 개선식 내내 귓가에 속삭여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와 더불어 개선장군에게는 승전에 대한 보상으로 관(冠)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그 관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죽음은 인간을 필연적으로 덮쳐오고, 아직까지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한 번 죽음의 문턱을 넘은 이는 결코 다시 그곳에서의 경험 따위를 가지고 돌아온 적이 없기에, 사실상 무지의 공포가 극한으로 끌어올려진 공간. 그 죽음을 인간은 두려워한다.
2000년대 초중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를 통해서 정의를 논하는 열풍이 하버드 대학을 중심으로 한동안 불었다면, 그 이후에는 예일대학에서 맞받아치기라도 하듯이 셸리 케이건이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로 응수했다. 정의를 논하는 영역이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구성원 간의 합의를 통해서 상대적이고 일시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은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영역이기에 가설을 기반으로 한 이론이 그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본 서적 <서양문학에 나타난 죽음>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가능한 가설을 모조리 동원해서 죽음 이후에 대한 예측을 하고,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시대의 흐름과 문학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아니, 상당히 어렵다. 죽음이라는 어쩌면 우리 인간의 형이상학적 관념의 종말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을 불확실성 속에서 다루기 때문에 더욱이 난해하다. 그 어떤 확정적인 가설이 없고, 종극에는 독자가 지녀야할 태도에 대해 어떠한 확실한 대답도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죽음에 대해 다루는 본 서적 <서양문학에 나타난 죽음>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이니, 여기에 대해 딴죽을 걸지는 말도록 하자.
-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죽음에의 인식적 변천사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 ‘영혼과 구원의 문제’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부터 20세기의 사무엘 베케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영역에서 다루는 죽음과 영혼, 이를 대하는 당대 사람들의 방법론에 대해 다룬다. 죽음을 영혼이 고통스러운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적 관념, 죽음 이후의 일은 우리가 생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망각적 자세를 취하는 에피쿠로스학파, 영혼은 육체를 옮겨 다니며 생멸을 반복한다는 루크레티우스적 관념, 단테의 <신곡>에서 나타나는 지옥과 구원에 대한 이미지, 베케트 극에서 보이는 징벌적 성격을 띤 무지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 징벌에서 간신히 해방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삶과 죽음을 조망한다.
다만, 매우 학술적이고 정통 논문의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다음 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분량이 1부에서만 약 250페이지에 달하는데,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1부의 큰 산을 넘어섰다면, 이제는 한 숨 돌려도 좋다. 2부는 1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보다 현실적인 사례를 많이 담고 있다. 로제티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현세에 대한 애착을 시로 승화하여, 죽음에 항거하고 맞서는 태도를 보여주고, 셰익스피어는 죽음에 맞서는 도구로 예술을 창작하며 자신의 육체는 없어질지언정 불멸하는 예술로서 죽음에 항거하려 한다. 그러나 이보게, 시간 친구야 실컷 행패를 부리려무나, 그대의 해코지에도 불구하고 내 사랑은 내 시 속에 젊게 영원히 살아 있으리니. - 윌리엄 셰익스피어, <19번 소네트>
본문에도 인용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그가 죽음에 대해 취하는 담대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장이 2부에서는 그래도 가장 잘 읽히고 재미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현대 죽음을 나타내는 가장 현실적인 소설 혹은 교과서라고까지도 할 수 있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쓴 톨스토이의 태도는, 현 시대의 우리가 접하는 죽음의 양상을 보여주기에 집중도가 높아진다. 특히, 비극적이고 냉혹한 주변인의 태도를 보면, 지금 시대에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반 일리치의 육체적 고통과 그의 곁에 있는 가족, 친지들의 모습. 그들은 이반 일리치가 죽었을 때, 일어날 수 있을 상황에 대비하기에만 급급하다. 이반 일리치는 그저 꺼져가는 불꽃일 뿐, 그의 죽음이 가져다줄 누군가의 승진과 보험금, 장례비 등이 그의 죽음보다 우선시 되는 냉소적인 현대인의 죽음이 바로 그런 것이다.
톨스토이가 끝나면, 한스 홀바인과 콤브 그리고 코키스가 ‘죽음의 무도’라는 연작 그림 시리즈를 통해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묘사한 장이 나타난다. 시대에 따라 그림의 양상은 변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인간의 태도는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 볼 점이다.
- 마치며 지난 몇 해간 읽은 책 중 가장 난해한 책으로 꼽고 싶을 정도로 책과 오랜만에 고되게 씨름했다. 책의 전부를 도저히 못 읽겠다 싶은 사람에게 작은 조언을 드리자면, 서문과 에필로그라도 읽기를 추천한다. 그 두 가지만 읽어도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죽음에 관련된 메시지를 대강은 습득할 수 있다. 서문에서 필자 황훈성의 본고 서술 목적과 죽음을 분석함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 방법이 대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현 시대에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가장 현실적인 양태는 에필로그의 <위트>를 통해 여실히 나타난다. 하지만, 강도 높은 독서 훈련은 분명히 스스로가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니, 탐독을 하는 것도 역시 추천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