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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가장 인기를 끈 대중소설. 한국 근대 여류소설가 김말봉의 대표작.
30년대 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 궁금하였던 소설이다. 문학으로 따지면 거의 고전문학이 아닌가. 게다가 애정소설이라는 타이틀 또한 궁금하였다. 30년대는 아무래도 자유연애 사상이 퍼지기 전이었고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는 시대였으며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복잡한 시대였기에 그 시대의 사랑이야기는 그야말로 미증유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유정의 <봄봄>이라든지, 이상의 <날개>, 현진건의 <빈처>에 나오는 시대로 접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전혀 이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의 시대분위기가 그려지는 이유는 30년대 삶의 양상을 비춰주는 대중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찔레꽃》은 얼핏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30년대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를 형성한 소위 부르주아 계급의 지주 조만호와 조만호의 아들 경구와 딸 경애는 경성유학을 갔다 온 재원들이다. 경구와 경애는 신문물의 혜택 속에서 일반인들과는 다른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고, 그 외 다른 등장인물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서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임금 노동자이다. 민수 역시 경성대학을 다녔지만, 풍수해로 인해 농작물이 피해를 입게 되자, 순식간에 땅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서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게 된다. 민수의 집에 불어닥친 우환은 민수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치원에 다니던 정순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정순은 가정부로 조만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들의 갈등이 시작된다.
저 불 하나하나 아래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슬프고 기쁘고 방금 숨이 넘어가는 사람, 그리고 새로 나오는 생명들! 지금 눈 한 번 깜짝할 사이, 아니 저 바쁘게 돌아가는 일루미네이션. 한 번 깜짝할 동안에 지나는 가지가지의 범죄와 덕행과 미신과 질병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p45
정순은 사람이란 진실로 소동파의 시와 같이 하나의 부유처럼 힘없고 슬픈 존재로 생각이 되었다. 소설의 축을 이루는 민수와 정순의 사랑은 주변인들에게 일종의 실험을 거치게 된다. 민수를 사랑하는 경애와 정순을 사랑하는 경구, 그리고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 정순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조만호의 욕심이 갈등을 고조시키고 또 다른 갈등의 축은 조만호와 옥란, 최근호의 갈등이다. 기생 옥란과 근호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였던 연인이었지만, 생활고 앞에서 사랑을 저버리며 조만호의 첩으로 돌아가 근호의 순정을 짓밟는다. 그러나 옥란이 돌아왔을 때 조만호는 이미 정순에게 마음이 있던 상태였다.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속에 오로지 정순만이 찔레꽃처럼 고귀하게 피어있다. 30년대 소설이라 그런지 간혹 등장하는 낯선 언어들이 무척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어떤 면에서는 토속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분명히 주인공 민수가 남자인데 민수언니라고 부를 때 , 손기정 선수를 손기정 언니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마치 한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연기자의 입모양과 성우의 더빙이 어색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그 시대의 사고와 언어 습관이 풍부하고도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삶의 양상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며 일종의 통속적이기도 하지만 시대고발적인 세태소설로서도 무척 독보적인 작품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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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여류작가에 의해 씌여진 인기 애정소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충분했다. 사실 김말봉이라는 작가는 내게 생소한 작가이다. 192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귀국, 신문사에 취직을 하여 기자로서 활동을 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최초의 부산 문인으로 문단에 등단을 한... 그리고는 1935년 동아일보에 <밀림>을 1937년 조선일보에 <찔레꽃>을 연재하는 당대의 통속소설가였고 , 생을 마감했던 1931년까지 그야말로 많은 작품들을 써 낸 다산의 작가였다고 한다. 여성작가로서 활동하기가 그리 수월치 않았을 그 당시 , 시대를 풍미하는 인기 애정소설을 썼던 작가의 글이 너무 궁금했다. 책의 제목도 웬지 그 시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찔레꽃>
인기 애정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애정소설이라면 으례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오해, 갈등 , 여러사람이 얽힌 이해관계 , 애정의 삼각관계등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진 마치 한편의 드리마를 보는 듯 한 소설이었다. 시대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하지만 이 소설은 애정소설이니만큼 당시의 정치적인 색을 배제하고 오로지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한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마치 예전 드라마 청춘의 덫을 보는 듯 했다. 흔히 보아 온 통속적인 드라마와 그 줄거리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줄거리를 보기보다는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살피게 된다.
신식교육을 받았지만 어려운 가정환경때문에 부잣집의 가정교사로 입주하게 되는 정순 사랑을 지키고 싶었지만 뜻하지 않게 얽히게 된 경매사건으로 인해 사랑을 잃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교토대학에 재학중인 대학생 이민수.. 농촌에서 어렵게 유학을 나온 처지이지만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입지가 흔들리고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경애로 인해 정순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일본유학까지 다녀오고 독립된 개체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거칠 것 없는 신여성의 상징인 주인집딸 경애.. 순정을 다 했던 남자에게 버림을 받은 후 남자라면 환멸을 느끼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정순의 애인인 민수에게 연정을 품게된다.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와 부자로서의 삶보다는 농촌계몽을 통한 삶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주인집 아들 경구.. 정순과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삶을 꿈꾼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둔 병든 안방마님.. 들어오는 가정교사마다 남편을 의심하며 갈등하고 그들을 내친다.. 자신의 딸과 같은 가정교사 정순에게 혹심을 품고 일을 도모하는 주인 조만호.. 결국 자신의 헛된 욕망과 욕심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된다. 상류사회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을 배신하는 기생 옥란과 딸까지 이용해 주인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침모...그들은 자신들의 욕심때문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작가는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의 애정행각과 더불어 이민수의 아버지와 조만호를 통해 쇠락해가는 농촌과 있는 자의 횡포를 비교하며 그 시대를 얘기하고 있는 것도 빼 놓지 않았다..
1930년대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다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그들의 대화 방법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일본말들이 그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마치 오래된 영화속에 성우들이 말하는 그런 말투가 떠올랐다.. 어느시대를 살아가건 인간들이 살아가는 그곳에는 욕심과 욕망이 존재하는 듯 하다. 다만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표출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물질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들은 시대를 분문하고 그 추악함을 들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들어내기보다는 감추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 당시.. 독자들은 주인공들의 이러한 자유연애와 악한 자들의 몰락등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 같다. 인기리에 연재가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아마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신문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 같다...
찔레꽃을 사랑한 여인 정순 결국 마지막은 명쾌하게 행복, 불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흩어져 날리는 찔레꽃잎처럼 사랑은 부서져 이루지 못하고 그를 보내줘야만 했다..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사랑을 잃고 돌아서는 그녀의 귀에 들리는 노랫소리
하지만 마치 또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 같은 여지를 두며 이야기가 끝이 나는 듯 하다.
작가가 우리의 곁을 떠난 지 51년이 되는 해에 다시 출간이 된 뜻 깊은 책이다. 당시 글이라고 하는 것은 일부 지식인들의 소유물인 것 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작가는 대중을 위한 , 다수를 위한 글이야말로 문학이라는 주장과 함께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글들을 썼던 분이라고 한다. 뒤 늦게라도 이런 작가를 알게 되고 예전의 글을 이렇게 읽어볼 수 있었던 뜻 깊은 책 읽기였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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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서도 여성미의 절정인 정순과 완벽한 남성미를 지닌 민수는 서로 사랑하여 약혼한 사이지만, OO은행의 두취 조만호 씨 가정교사로 정순이 들어가면서 얽힌 실타래와 같은 애증의 관계가 시작된다. 다양한 인물군상과 복잡한 상황들은 여러 감정선을 건드리고, 상류층과 빈곤층의 대비 속에서 새로운 계급을 상징하는 조 두취와, 민수의 부친 이도사를 통해 몰락하는 농촌의 실상을 조명하여 부의 양극화를 통렬하게 보고하고 있다.
1937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개화의 바람과 함께 경애를 통해 비춰진 신여성의 등장, 젊은 지식층의 자유결혼에 대한 주장과 혁명적인 결혼가치관, 부의 축적에 따라 움직이는 현재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까지 보여주고 있어, 한 시대를 풍미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중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이다. 타산지석이라 하여 이들의 삐뚤어진 인생관을 비춰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신의 가정을 파산시킨 조 두취를 향한 민수의 분노, 지병으로 누워 있는 아내 대신 욕망의 상대를 은근히 정순에게 돌리는 조만호, 첫눈에 정순에게 반한 조만호의 아들 경구, 민수에게 각별한 시선을 주는 조만호의 딸 경애, 돈에 혈안이 되어 딸 영자의 정조와 목숨까지 담보로 잡은 참모 박씨, 마음을 다준 근호를 배신하고 최 두취를 상대로 주판알 튕기다가 불행에 허덕이는 옥란 등 등장인물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심층적 사안들이 압권이다.
영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그'와 '그녀'의 구분이 명확해져 있는 지금, 이 소설의 모든 인칭대명사가 '그'로 통일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유년 시절 접했던 무성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음성과 영상이 동기화 되어 있지 않아, 영상 위에 성우들 더빙이 촬영 이후 따로 보태져 영화로 완성되었던 시대였기에, 주인공 음성이 성우들에 의해 획일화 되어 있어 다소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대사처리가 독특했는데 마치 그것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정순이 아니요?" "아이, 선생님이셔요!" "다 옳은 말씀이야요." "나도 넥타이를 하나 골라보아?" "그건 별명 지은 이가 더 잘 알 것 아냐요?"
책을 덮고 나서, 물질만능주의로 사람을 계량화하고 로또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이 참 허무하고 씁쓸하게 느껴졌다. 럭셔리 라이프의 노골적인 부자마케팅, 대한민국 상위 1% 경제력을 가진 재벌가는 영원히 식을 줄 모르는 일반인들의 로망이다. 상상하기 힘든 소비 수준이나 그들을 둘러싼 배경은, 서민들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이뤄내기 어려운 비극적 아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부에 대한 동경을 소설이나 드라마라는 환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하고 있다. 신데렐라 판타지나 온달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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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찔레꽃도 정겹지만 '김말봉 애정소설'이란 글귀에 웃음이 나고 무척 순박하게 느껴졌다. <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知와 사랑은 읽어보진 않았으나 익히 그 제목만 알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책이다. 뭔가 느낌이 지적이면서도 낭만이 느껴지는 그 제목이 내게 각인된 지 오래인데, 출판사가 知와 사랑이다. 참 근사하다. 멋지다. 거기다 이미 오래전 고인이신 분의 책을 접할 수 있도록 국어 맞춤법에 맞게 수정하여 재출간하셨기에 우리는 1937년의 선풍적인 연재소설인 애정소설을 만나본 시간은 낯설지 않았다. 또한 어릴 적 시골서 자란 내게 찔레꽃 이전에 찔레순을 꺾어서 먹던 기억을 더듬고, 눈으로 본 찔레꽃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지를 장식함이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1937년! 그렇담, 1937년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할까.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일제강점기인데다,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탄생했다. 생일순으로 보자면 콜린 파월, 잭 니콜슨, 사담 후세인, 신성일, 모건 프리먼, 시오노 나나미, 더스틴 호프먼, 권정생, 배우 김상순. 그런가 하면 사망한 순으로 소설가 김유정, 작가 이상, 영화인 나운규가 있다.
이 책은 마치 아침드라마 TV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주 촌스럽다고만 치부하기엔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관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안정순과 이민수는 비교적 고지식하고 그 시대에 맞는 상이라면 이 둘을 외사촌으로 믿어버린 친남매 조경구와 조경애는 개방적인 편이다. 물론, 사는 형편따라 신교육을 받은 경애가 미술을 하는 부잣집 딸이고, 안정순은 지인의 연줄로 부잣집 가정교사를 하는 신분 차이가 폐쇄적이냐 개방적이냐의 기준이 됨도 무시할 수는 없다.
고향에서 매우 유지인 이도사의 아들 이민수는 첩의 자식이다. 제주도서 살던 생모에게 이도사는 상처했다고 속여 민수를 낳고 동생을 출산할 즈음에 육지에서 편지를 보낸다. 본처가 있지만 양해했으니 육지로 오라고. 생모는 민수와 동생을 돌보다가 병사하고 동생도 죽고, 육지의 큰어머니에게로 오는데, 큰어머니는 지극한 사랑으로 돌봐준다. 이복동생이 있으나 우애하던중 큰어머니마저 죽고, 둘다 계모 밑에서 자란다. 제주도에서 '말'하고 유난히 각별한 정이 들었는데, 그게 경애를 구해주고 약혼까지 하게 되는 시발점이 될 줄이야.
보육교사인 안정순은 이도사가 후원하던 유치원이 폐업에 이르자 막막한 상태가 된다. 정순을 귀여워하던 샘의 도움으로 조만호의 집 가정교사로 들어가는데, 큰아들은 세계 일주서 돌아오고, 큰딸은 몇 살 아래인 정순을 동생처럼 어여삐 여긴다. 그도 그럴것이 경애는 현대미인상이라면 정순은 고전미인에다 음전하고 속내 깊고, 아이들 잘 돌봐...나무랄 데가 없다. 48살인 아버지가 눈독을 들일뿐. 폐병인줄 알았는데 심장병을 앓던 조만호의 아내가 침모를 시켜 늘 가정교사를 감시해 맘에 안들면 쫓아내기를 몇 번. 그러던 차 들어온 안정순은 가장 맘에 드는데 흠잡을데가 없다. 아무리 보육교사라지만 아이들을 어찌 그리도 잘 돌볼 수 있을까.
오매불망 약혼자인 민수를 생각하면 붉그레지는 뺨이 더욱 이쁜 정순은 어데서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여인이라...남녀간에 첫정은 그 누구 못지않게 절절하고 깊지만, 또 처음이라서 어설프고 상처를 깊게 갖는 법. 서로가 신뢰감을 갖고 있어도 주위 사람들의 농간이 있거나, 어떤 사안들에서 오해를 유발시키고 그게 나아가 결별로 이어지는 위험도 큰 법. 둘이 그랬다. 철썩같이 약혼자를 서로가 은애하며 믿었건만, 이민수를 돕고자 외사촌오빠라 얼버무린 그 말이 둘을 갈라놓는 단초가 될 줄이야. 슬프고 안타깝도다.
중략
사랑에 눈을 뜬 여인의 심경묘사가 현대소설이나 비젓하다. 여기서 이민수와 안정순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진 않았다. 정신적 사랑인데 그 사랑이 전부인 사랑였기에 육체적 사랑이 없어도 둘은 이미 다 가진 내사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위한답시고 서로의 입장서만 생각해 주다가 죽 쒀서 개 준 꼴이람. 그럼에도 그 집을 뛰쳐나올 수 없는 현실이 정순은 눈물겹기만 하다. 자신의 월급에 아버지 정신병원 치료비와 집 생활비 등 4식구가 딸린 삶이라니. 가진 자들의 오만과 못 가진자의 설움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데 그럼에도 거기를 나오면 당장 구할 수 없는 일자리라니. 가슴은 미어지고 애통한 마음은 둘데 없는데, 애새끼들은 어찌 그리도 제 에미보다 심사가 버거운 정순을 더 따르는지...쯧쯧.
저자는 권선징악을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마치 시청자들이 너무나 해피엔딩을 원해 대본을 수정한 듯한 느낌이랄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약혼자에게, 자신 하날 울렸으면 되었지, 또 한 여인을 울리지는 말라고 냉정하다 못해 체념으로 말하는 그녀가 대범한 건지. 그런 그녀를 오매불망 해바라기한 경구가 위로를 한다고 말을 거는데 거기에 미소(슬픈 미소든 어쩠든)를 짓는 결말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 말이다. 애초부터 사랑했던 약혼자인 두 남녀 안정순과 이민수. 이들이 이러저러한 연유로 인해 결별을 하게 되는데, 민수는 경애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한다고 하고, 경구는 정순 아니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니. 한 남매가 한 약혼자였던 둘을 각기 지아비 지어미로 맞아들인다는게 말이 되냐 말이다. 소설은 소설일뿐, 흥분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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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이 소설은 한남자만을 끝까지 사랑했던 순결한 여자의 사랑을 지켜내기위한 몸부림으로 여겨진다. 또한 30년대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통속소설의 코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문체만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전혀 읽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 아주 흥미진진한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내용면에 있어서는 그닥 새로울게 없는듯 여겨지지만 아직은 자유연애가 어려운 그때에 이 소설속에서 자유연애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시대에는 무척 충격적이었을듯 하다. 또한 이 소설은 일본어와 전차등의 30년대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어 그 또한 흥미롭다.
애정소설의 공식에 따라 주인공 여자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어느 부자집 가정교사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러면 왠지 주인아저씨와 혹은 부자집 아들과 뭐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고 신분의 차이로 갈등이 일어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 두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다, 어찌보면 참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인간들이란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게 이런 소설의특징인가보다. 주인은 병든 아내를 곁에 두고 매일 기생을 끼고 사는가 하면 딸보다 어린 나이의 가정교사를 탐하고 자신의 아들이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데도 후처로 들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에게는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남자의 시골집 땅이 경매로 넘어가게 된 일로 인해 서로 얽히고 설키게 된다. 주인집에는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은 딸이 있어 주인공을 동생처럼 허물없이 대하지만 한번의 사랑의 실연으로 독신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발을 밟은 한 사내로부터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리는데 그는 다름 아닌 주인공여자의 약혼자다. 넓고 넓은 세상에 왜 하필 그들은 그렇게 만나지고 얽힐수 밖에 없는것인지 이것은 필연 운명의 장난이다. 주인공여자가 그가 사촌지간인줄로만 알고 그에게 과감히 대시하는 그녀에게 진작 고백하지 못한 주인공에게도 문제는 있다.
물론 주인공여자를 사랑한 부자집 아들의 마음 또한 순수 그자체다. 하지만 그렇게 얽히고 설킨 그들의 사각관계 아니 오각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아내가 죽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주인공 여자를 맞아들일 생각으로 부푼 주인은 뜻밖에 자신이 평생 애인으로 끼고 살려했던 기생에게 봉변을 당하고 자신이 품에 안은 여자가 주인공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망연자실, 또한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를 짓밟았다는 생각에 복수를 결행하려던 약혼자도 자신들의 새엄마로 들어오는줄 알고 그녀를 오해했던 주인집 아들과 딸도 모두 깨끗한 주인공 앞에 고개 숙이게 된다. 순수하고 진실된 그녀의 사랑을 왜 애인은 믿지 못했을까?
창너머 잎도 떨어지고 가지도 시들어진 찔레덤불 위에는 때 아닌 찔레꽃이 송이송이 날고 있으니, 그것은 겨울의 선물 흰눈이다.가지위에 나부끼는 눈송이! 다음 송이가 와서 앉을 동안 자취없이 스러지는 눈송이! 그것은 하염없이 흩어지는 찔레꽃 화변의 하나하나이다. 아니 덧없는 인생, 행복...... 정순의 가슴을 길게 가시처럼 할퀴어주고 간 민수의 사랑이 아닐까? ---p430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진자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자신의 순수했던 사랑이 돈앞에 짓밟히는등 보통의 애정소설이 가지고 있는 공식이지만 과연 이런 질펀한 수렁속에서 여주인공의 순결이 지켜질 수 있을지, 그녀의 순수한 사랑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지만 결국 모함하고 의심하고 오해하는 인간들의 본성은 그녀의 찔레꽃 하얀 꽃잎 같은 순결한 마음을 모두 흩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한계절을 지나오면서 그런 아픈 시절을 다 겪어낸 그녀에게 겨울 흰눈은 아픈 사랑처음 내린다. 첫눈이 날리면 찔레꽃 그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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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찔레꽃’이 유명한 외국 고전문학에 비해 떨어질게 뭐있을까?(현대소설이긴 하지만) 심리묘사라 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보다 뛰어 나고 (죄와 벌보다 심리묘사가 굉장히 절제되어 있지만 인물들이 나타내는 심리는 그에 못지않다.) 연애의 절절함이라하면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보다 못할 것 또한 없다는 생각은 나만의 독단인가! 내가 오직 유명한 고전에 얽매여 읽는 것은 그저 유명한 소설 하나 읽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 비롯함일까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작고(作故)하신 ‘김말봉’ 선생님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은 행운이다. 김말봉 선생님이 아무리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긋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찔레꽃’을 읽었다는 것은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임에 틀림없으며, ‘찔레꽃’이 창작이 되어진지 근 100년이 다되어가는 현실에서 공감을 받는 이야기라면 또한 멋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등장인물들의 사실적인 심리묘사에 감탄을 하기도하고 가끔씩 이따금 그려지는 정경(情景)묘사에 또한 감탄하기도 한다. 인물간의 얽힘 또한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결말이 주는 여운에는 감칠맛이 더해진다. 소설을 자주 읽는 나로서도 이 정도 푹 빠져 읽은 소설이 근래에 얼마만인가?
난 여전히 소설의 작품성을 떠나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소설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지나치게 작품성에 얽매여 대중에게 읽히지 못하고 자신만이 영구 소장하며 아낄 수밖에 없는 작품들 보다는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흥미와 재미로 쓰인 소설이 더욱더 일반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흥미와 재미 또한 작품성의 한 가지 요소라고 어설프게 결론지어본다. 통속적인 소설의 작품성을 부인하는 것은 문학의 권력이 쌓은 또 다른 벽이라는 위험한 생각까지 접근해본다.
그렇다고 ‘찔레꽃’이 흥미와 재미만을 더해주는 소설도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으며 탄압된 우리민족의 아픔을 그리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사회상(물질만능주의나 자유로운 연애관, 빈부격차, 구직의 어려움, 농촌의 허례허식 등)이 소설 속에 충분히 녹아 있다. 우리는 ‘찔레꽃’을 읽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김말봉 선생님이 사회 풍속에 얼마나 생각이 많았는지 으레 짐작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승마나 토지 경매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그 당시 여성에게 이러한 경험이 쉽지 않았을 텐데,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김말봉 선생님의 경험과 지식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소설은 구세대와 신세대 그리고 돈과 순수한 마음의 양자 대결도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대비가 뚜렷한 것은 아니다. 구시대에 속하는 조만호도 신세대인 경애와 경구의 뜻을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는다. 비록 자신의 이익과 부합이 되어야 마음을 바꾸지만 말이다. 그리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하는 영환과 조만호, 침모 박씨와 영자 그리고 옥란, 돈보다는 진실 된 마음을 앞세우는 정순, 민수, 경구, 경애, 근호의 갈등도 흥미롭다. 하지만 돈에 구속된 이들도 한 번씩 진실 된 마음에 호소하는가 하면 진실 된 마음을 앞세우는 이들도 돈에 한 번씩 혹하기도 한다. 이런 것이 진정 사실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민수와 정순의 엇갈리는 사랑에 마음 아팠다. 이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길은 많았지만 그때마다 사소한 일들로 인해 엇갈리는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많은 엇갈림은 결국 그에 비례해 많은 오해를 만들어 내고 오해가 깊어지면서 민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그 많은 오해들 중 하나인 침모 박씨와 그녀의 딸 영자로 인해 -결국은 돈을 쫓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오해(조만호가 정순과 밤을 함께 하고 약혼을 했다는 오해)는 이 소설이 끝나 때까지 밝혀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정순이 집으로 그냥 가버리면 정순이 덮어쓴 오해는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 했었다. 옥란과 근호의 사랑에서 처음에는 근호를 원망했었다. 기생인 옥란과 은행원인 근호는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만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다시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옥란의 심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으로 흘러갈수록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옥란을 더 이상 이해하기란 힘들기도 하였다.
이 소설을 드라마 같은 그저 흥미위주의 소설로 치부해 버리는 이도 많겠지만 난 첫째, 인물들의 사실감 있는 심리묘사 둘째, 1930년대의 사회 풍조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점 셋째, 완전히 착하거나 완전히 나쁜 사람이 없는 사실적인 인물설정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에 반해 식민지민족의 아픔에 대한 인식이 소설 속에 드러나 있지 않아 그 시대를 완벽히 반영하지 못한 점과 어떤 위험한 사건이 나타날지 작가의 변으로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는 점은 살짝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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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울집은 바로 옆에 작은 동산이 있어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로 온 집안이 흔들린다. 창 문을 열어 놓으면 뒷산에 가지 않아도 찔레꽃 향기와 아카시아 향기에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꼭 몇 번은 뒷산에 가고야 만다. 온 산을 하얗게 덮은 찔레꽃,유독 뒷산엔 찔레나무가 많다.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는듯한 찔레,거친 땅에서 가시를 세운 찔레는 오월에는 정말 대접받는 꽃이다.그 하얀 꽃에 벌들이 윙윙 알통다리를 하여 노란 꽃가루를 묻히고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디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향기와 소박함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난 장사익의 <찔레꽃>과 양희은의 <찔레꽃 피면>이란 노래를 좋아해서인지 더욱 이 계절엔 찔레꽃에 취한다.
찔레꽃은 참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꽃인듯 하다. 가꾸지 않아도 그 향기는 은은하고 멀리 멀리 퍼진다. 그런 찔레꽃을 좋아하고 찔레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안정순'이라는 가정교사를 하는 이십대 처녀는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세는 초가집에서 아버지 병구안을 하고 어머니와 제비새끼들 같은 동생들을 책임져야만 하는 실직적인 가장역할을 해야만 한다. 꽃다운 나이에 꽃과 같이 피어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녀의 향기는 멋부리지 않아도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찔레꽃처럼 그녀를 본 사람들은 그녀만의 멋에 반한다. 그녀에게는 민수라는 약혼자가 있다. 그는 시골부호의 아들이지만 그에게는 출생의 아픔이 있다. 그런가하면 농사만을 알고 땅만 아는 아버지의 잘못으로 땅은 모두 00은행앞으로 잡혀 들어가게 생겼다.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인 땅을 은행에 모두 빼앗기게 된 것, 그 은행의 두취가 바로 정순이 가정교사로 있는 집이기도 하고 그의 집에는 독신으로 살겠다는 미술을 한 딸 '경애'가 있다. 그녀의 구두를 백화점에서 밟은 인연으로 민수와 경애는 인연이 되고 또 그렇게 운명적으로,아니 복수심에 우연이 필연이 되고 마는 운명을 선택한다.
우연하게 가정교사 자리를 00은행장인 조두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곳 마나님은 오랜 병인생활로 가정교사를 음혜하기도 하고 자신 멋대로 나가게 한다. 그것이 그녀가 그녀 자리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피해는 모두가 당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여인네들의 삶에 주목을 하며 읽게 되었다.물론 사랑과 욕망 그리고 돈이라는 것을 따라가기도 했지만 그것들과 얽힌 여인네들의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본다. 안방마님이 병인생활로 정신적으로 날카로워졌다면 그 밑에서 마님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할멈은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이익을 꽤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꾀에 자신이 걸려 들고 만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아닌 돈에 움직이는 기생 옥란의 삶 또한 참 가련하면서도 씁쓸하다. 기생이기에 한 남자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돈에 흔들리며 급류와 같은 삶을 사는 여인네,그녀가 바란 것은 아들의 뿌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지만 결국 자신으로 인해 모든 뿌리를 잃고 만다.
00은행장 조두취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정순,그녀는 돈에 휘둘리지 않고 조두취의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자신의 본분에 맞게 울타리가 되는가 하면 경애가 아무리 언니 동생 먹자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돈의 상하 관계에 자신은 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 맞게 처신을 하는가 하면 조두취의 아들과 딸인 경구와 경애는 뿌리부터 자본가의 자식들이기에 그들이 아무리 남을 위한 것을 한다고 해도 남에겐 그저 자본가의 자본을 가지고 쇼를 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순의 약혼자 민수까지 경애의 차지가 되고 민수 또한 복수심에 경애를 선택하지만 정순은 자신의 본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찔레꽃처럼 경구의 구애를 뿌리치지만 아들과 함께 찔레꽃과 같은 정순을 음탐하는 조두취,정순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크나큰 오류에 빠졌다는 것을 그로 인해 해를 당하기도 하는 조두취의 끝은 찔레꽃의 무수한 가시에 찔린 인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은 1930년대에 쓰여진 애정소설이라고 하는데 지금 읽어도 재밌다.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 있고 그 시대를 읽을 수 있어 두께는 있지만 빠져 들어 금방 읽을 수 있다. 그 시대에는 흔하지 않던 자유연애 자유결혼 구시대와 신세대간의 갈등 돈에 대한 욕망등이 잘 담겨 있다. 부모의 세대는 중매혼이었다면 그들의 자식들은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을 꿈꾼다. 부모들이 부를 축적한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누리고 살고 싶어하고 그들이 이상처럼 농촌부흥이라도 힘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비만 오면 빗물이 줄줄 세던 초가집에서 살던 정순이 고대광실 고래등같은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갔지만 그 집에서 산다고 그녀 또한 부르조아가 될 수는 없다. 그녀의 뿌리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찔레꽃럼 그녀만의 터전이 있는 것이다. 타인의 자본을 내것인양 욕망을 가져서도 안되고 그것에 물들어 가봤자 자신만 다치고 자신만 상하게 된다. 고대광실에서 정순이 얻는 것은 한달 가정교사로 얻을 수 있는,자신의 가족이 굶지 않을 정도의 최저생활비다.
'세상은 물레바퀴다.' 민수네의 어려움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조두취의 딸 경애를 민수가 구해줌으로 인해 세상은 혼자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사는 것이라는 것을 민수의 아버지는 '물레바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민수는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간 자본가들에 맞써 복수하듯이 경애와의 사랑 없는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 험한 세상, 그 속에서 아무 흔들림없이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그 향기를 발하는 정순의 확고한 삶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렇게도 돈이 귀중한 물건인가.민수씨가 나를 버리고 돈을 취한다면 정말 돈은 퍽 소중한 물건이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이 모라라도 문제지만 차고 넘쳐도 문제가 되는듯 하다. 마음이 우선인 사랑에 돈이 개입이 되고 나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마음이 아닌 저울질로 선택하는 사랑에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온전한 사람은 분명 있다. 지고지순하면서도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꽃을 피우는 정순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찔레꽃, 여인네들의 심리묘사도 좋았고 돈에 얽힌 인간의 욕망을 엿본듯 하여 씁쓸하긴 하지만 1930년대를 다시 만난듯 즐겁고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사랑과 돈, 그것이 어떤 색과 향기를 가지느냐에 따라 삶 또한 다른 향기를 보여주리라. 좋은 작품이 묻혀 있지 않고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 기쁘고 구수한 된장찌개 한 그릇 배부르고 맛나게 먹고 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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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봉의 이 소설이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1937년은 물론 1930년대의 시대상을 살펴볼 이유가 있다. 대체 일제 식민치하의 한국인들이 통속적 연애소설에 열광해야 했던가하는 이유와 이러한 소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대는 일제가 군국주의를 강화하던 시기이며, 더구나 작품이 발표되던 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식민지민은 무조건의 희생이 강요되고 삶은 더없이 피폐해졌으며, 민족말살정책이 고강도의 폭력을 동원하여 자행되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애정소설이라니? 하는 의문이 들법하다. 그러나 일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알레고리라고 관대하게 바라본다면, 또한 식민지하에 이루어진 근대화가 낳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습의 파괴에 대한 대결과 갈등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관점으로의 성숙으로 파악한다면 한국문학의 일대 진전이라고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조금은 너그러운 이해로 이 소설을 읽게 되면 신문의 상업화에 따른 전형적 대중통속 소설인 『찔레꽃』이 애욕과 순수사랑이 뒤얽힌 말초적 감성의 자극에 머물지 않고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윤리의 갈등, 자본에 예속되어가는 인간 삶의 자문(自問), 자작농의 소작농으로의 전락과 같은 사회구조적 모순 등을 가로지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3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과 같은‘인생파 작가’들이 파고들던 물질적 소유양식과 정신적 삶의 주관성이 인간의 가치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의 조망이 이 작품에서도 중요한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당대의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이 이미 근대 자본주의로 인한 물화(物化)를 근대화의 모순으로 이해하고 고민하고 있었음을 포착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젊은이들의 애정관계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시대의 현상들을 사건화하면서 식민주의적 근대성이 뿜어내는 모순과 문제들을 발설하고 있다. 중심인물인 스물두 살‘정순’이 가계의 곤궁함을 책임지는 가장의 부담을 안고 은행장인 신흥귀족의 가정교사로 입주하게 되면서 겪는 사랑의 애환에 얽힌 지극히 속된, 진정 통속(通俗)적인 전개를 하고 있다. 돈의 권세를 신봉하는 은행장 조만호의 탐욕스러운 육욕에 대비되어 만성적 심장병으로 누워 남편의 바람기에 히스테리를 보이는 안주인은 남성중심적인 당대의 왜곡된 성문화를 대변하고, 이들의 부에 힘입어 일본의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여행을 다니는 아들 경구와 딸 경애는 삶의 곤궁함, 자본에 예속된 삶을 직시하는 정순과 또 다른 대척에 놓여있다.
정순과 혼인을 언약한 대학생 민수는 이러한 대립 구조에 사회구조의 변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성격을 지니고 애정 전선에 변수 역할을 수행한다. 마을 유지로서 광대한 농토를 소유했던 그의 집안이 연이은 집안의 우환으로 가세가 기우는데, 구시대의 인습으로서 장례 등 제례의 허식과 허례로 인한 과잉의 체면치레를 하나의 원인으로 천명하고 있다. 결국 민수네 농토가 은행의 경매로 인해 기반을 잃고 자작농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농경사회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구조적 전환을 하는 시대적 상황을 기술하고 있는 것인데, 이 사건은 민수와 은행장 조만호와의 악연을 빚어낸다. 경매 기일의 연기를 요청하나 거절당하고, 민수의 연인인 정순의 사랑이 어긋나는 것도 바로 이 사회구조적 변화기에 처해있던 소시민들의 저항할 수 없는 근대화의 폭력성의 한 단면일 것이다.
자신의 딸보다 네 살이나 어린 가정교사 정순의 뽀얀 목덜미와 여체의 탐닉을 그리는 조만호의 심욕은 추함 그자체이다. 또한 그의 육욕을 채우는 대상으로서 기생 옥란의 물질적 욕망이나, 조만호의 병약한 아내의 죽음이후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조만호를 갈취하는 침모(針母)의 기만성은 황금만능의 물질주의가 이미 식민지민들의 정신을 얼마나 깊숙이 갉아대고 있는지를 묘파(描破)해내고 있다. 즉 자본주의 물결과 같이 이식되기 시작한 식민사회의 근대화는 물질적 욕망의 끊임없는 부추김과 새로운 물질적 노예와 자본 계급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말봉의 연애소설이야말로 당시 해체되던 경향주의 문학과 모더니즘 문학의 전환기라는 시대적 성향이 그대로 스며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야기의 줄기인 사각, 오각, 육각으로 얼기설기 얽힌 남녀의 연애로부터 자유연애와 여성의 정조관념에 대한 파괴적 담론, 구세대에 의해 여전히 주장되는 가부장적 결혼관과의 충돌로부터 옅은 여성주의의 싹을 볼 수 있지만, 신식 여성이라는 조만호의 딸 경애나, 침모, 옥란 등의 발설에서 남성의 권위에 대한 종속적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시대정신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원봉사운동을 하려는 조만호의 아들 경구를 통해 계몽적 확신으로 분열된 주체를 봉합하려는 당대 지식인들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를 대변하기도 하는 등 소설은 당대의 거의 모든 사회적 현상들을 녹여내고 있다. 다만 70여년이란 시간적 간극은 한국 현대소설의 초기에 보이는 미숙한 문장들과 구성들로 독자의 상상력을 침범하여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하는데, 작가의 주장이나 경향을 직접 소설 속에 발설하는 것이 한 예라고 하겠다. 어쨌든 다시금 출간되어 현대 독자들에게 1930년대 근대화에 매몰되어 있던 우리문학의 한 분류를 통해 당대의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위안이고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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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양지바른 곳이나 한줌 햇볕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나 자라는 찔레꽃. 그래서 엄마가 들일 이나 밭에 나가는 촌 아이나 돈 벌러 공장에 나가는 도시 아이나 할 것없이 연하디 연한 질레순이나 지천에 핀 하얀 질레꽃잎을 따먹으며 외로움과 허기를 달랬었다. 일제 강점기 말 '찔레꽃 붉게 핀 남족나라 내 고향'이라 노래한 가수 백난아는 찔레꽃이 흰색이 아닌 붉디붉은 색이라 했다. 어려서도 늘 그 점이 의문이였다. 내가 아는 찔레꽃과 다른 꽃도 있나 싶었더랬다.
화려한 빛깔의 외국꽃에 밀려 잊고 지냇던 찔레꽃과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한 편을 읽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김말봉의 대표작 '찔레꽃' 은은한 향처럼 순박하고 수줍은 여주인공의 사랑이야기다. 이 책이 다른 통속적인 애정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여류작가로서 김말봉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자유연애, 여성해방운동, 신구세대의 가치관의 대립과 성적인 문제는 지금도 사회적 관심과 함께 문제시 되고 있지만 근대 자유연애와 자유로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의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았던 1937년에 쓰여졌기에 사회적이슈가 되었음은 물론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당시 자유결혼을 주장하는 애정소설을 쓴 작가가 김말봉의 용기와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낭만적인 묘사와 특히나 여성의 심리묘사는 이 작품의 인기비결이 아닐가 싶다. 남성 작가들의 작품만 읽어왔던 이들에게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둔 여인의 갈등이나 사랑을 믿는 순진한 은행원 출신의 연인을 배신하고 돈을 쫒을 수밖에 없었던 기생 백옥란의 마음을 이처럼 뒤어난 솜씨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가가 있었까 싶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든 안주인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부잣집 가정교사로 들어가 살게 된 빼어난 미모의 착한 여주인공, 아이들의 가정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침모를 시켜 감시하는 병든 중년의 안주인, 자리에 누운 아내를 대신해 젊고 아리따운 기생과 바람을 피우는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자인 탐욕스런 은행장인 바깥주인, 그는 딸보다 어린 가정교사를 호시탐탐 노리며 후처로 맞이할 엉큼한 생각을 품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세계가 있는 것과 같이 또 저에게도 제 세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도 훌륭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실행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당당히 자신의 의지를 밝히며 집안에서 정해준 그녀를 흠모하는 부잣집 아들도 마다하는 미대출신의 주인집 딸, 그녀와 우연히 마주친 가난한 대학생인 주인공의 약혼자,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집 큰아들과 청순한 가정교사, 얽히고 설킨 이들의 관계는 이러한 상전 밑에서 갖은 아첨을 떨며 살아가던 침모의 음모로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되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