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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체제가 끝난 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며 스스로 지구라는 교실의 반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관여하지 않는 세계문제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이렇게 미국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의 문제에 관여하게 되면서 미국 스스로도 문제 속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대외관계에서부터 멕시코의 토르티야 가격 상승과 소말리아,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상황 등 세계의 이슈에 발을 내밀지 않은 곳이 없다. 촘스키는 이런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우리가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함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기아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소말리아는 세계의 동정심을 받고 있는 빈국이다. 미국은 소말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적 중요성에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데에 관심을 기울 일 뿐, 가난한 소말리아의 붕괴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거와 다르지 않다는 슐레진저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계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오만을 고발하기도 한다. 이 책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세계 중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촘스키는 52편의 칼럼을 통해 미국의 행동에 대해 되도록 객관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마치 공룡처럼 세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신들의 발자국을 커다랗게 남기고 있는 미국의 행동을 보면 과연 미국에 어떤 정의가 남아있나 회의가 들 정도다. 2009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보통은 세계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노벨평화상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수여한 것은 노벨상 위원회가 이 상을 통해 미국이 앞으로 평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는 해석에 박수를 쳤다. 미국이 아니라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조용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안정’이라는 표현을 빌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를 지향한다. 미국은 세계의 모든 시장이나 자원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다가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런 미국의 ‘안정’에 불안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미국은 그냥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다. 지금 미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쇠퇴를 의미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입김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중국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주 쓴맛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 과도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인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 말고는 다 아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포기할 때 오히려 더 나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어떤 상황도 지지하는데 그 지지는 주로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받는다. 그래서 미국이 자신 있게 외치는 ‘민주주의’는 허무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2차대전 당시 정점을 찍은 미국의 힘은 그 후로 꾸준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기관의 재정적자를 국가가 메워주고, 급등하는 선거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정당의 요직은 기금을 많이 모금한 의원에게 돌아가는 현재의 미국 정치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은 요원하다고 보고 있다. 촘스키는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두 가지로 핵무기 개발과 환경요인을 꼽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행동하라고 말한다. ‘점령하라’ 운동처럼 현재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행동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노학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음은 당연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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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군부정권에 대항하던 민주화의 열기가 들불처럼 번져가던 1985년에 모든 국민이 의문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바로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이다.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학생운동의 반합법투쟁기구인 삼민투위(三民鬪委) 주도하에 서울의 5개대 남녀학생 73명이 연합으로 서울 미문화원을 기습 점거,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2·12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학생들은 전위적 투쟁조직인 삼민투위를 대학별로 결성, 민생문제와 외채문제, 전두환 방미반대 등의 이슈를 내걸고 투쟁을 전개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 계승기간을 맞아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폭로·규탄하기 위해 미문화원 점거농성계획을 세웠다. 미문화원 도서관에 들어간 대학생들은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는 등의 구호를 내붙이고 주한 미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72시간 만에 스스로 농성을 풀고 나와 경찰에 모두 연행됐다. 이 사건으로 10·26 이후에 미국정부가 취한 태도를 공식적으로 비판, 내외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 사건으로 윤성민(尹誠敏) 국방부장관은 국회 국방위 답변형식으로 <광주사태의 전모>를 발표해야 했으며, 워커 주한미대사도 「광주사태는 한국내의 문제로 미국이 책임질 것이 없다」는 해명성의 발언을 하게 되었다. (네이버 참조)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달랐다. 맥아더장군으로 상징화된 미국은 6.25전쟁 시 우리를 도와 북을 물리친 수호천사였으며, 6.25전쟁이후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로 우리의 경제가 도약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믿는 국민이 대다수였던 그 시절에 대학생들이 다른 곳도 아닌 우리의 강력한 우방이라고 믿고 있는 미문화원을 점거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후 반미=공산주의, 친미=민주주의라는 이분법적 등식이 성립되었고, 지금처럼 관영화된 언론들의 왜곡된 보도에 의해 학생들의 데모가 공산주의 논리를 내세운다는 선전보도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었다. 지금이야 미국이 순수한 의도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들이 많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용산 미군기지 이전, 불공정한 한미 협정(SOFA)등에서 보여진 미국의 모습은 그들이 이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웬만한 국민들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의 저자인 노암 촘스키는 언어학자이자 젊은시절부터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자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2세로서 태어난 그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 겸 사회운동가이다. 그는 수없이 많은 논문과 저술을 통해 거대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미국의 제국주의, 자본의 언론 장악과 프로파간다를 신랄하게 파헤친 사회주의자이다. 이 책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그가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칼럼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칼럼들은 2007년 이후 세계사의 한 획이 되었던 사건들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미국 대통령 선거전,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기세, 라틴아메리카의 자경화, 이란과 북한의 핵확산위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략 및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의 정착지 확대, 기후변화의 폐해, 세계 금융 위기, 아랍의 봄,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 ‘점령하라’운동의 저항 등에 대한 것이다. 촘스키는 세계사의 중대한 사건들을 통해 국제적인 사건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추악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칼럼이 어느 누구의 글보다 힘이 있는 것은 그가 사실에 입각하여 치밀하게 조사하고, 밝혀낸 진실을 드러내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가면 뒤에 감추어진 미국의 실체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세계사의 흐름 속에 일어나는 중대한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상식적인 기준에서 판단하고 분석하여 언론과 권력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로 포장된 거짓을 걷어내고 그 모든 사건들이 보여주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미국은 국제적으로 많은 나라와 분쟁관계에 있다. 그중의 대표적인 북한과의 핵문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미국이 강공을 펴면 북한도 거기에 맞받아친다. 어쩌면 북한이 지금처럼 계속 강성일변도로 미국을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 그런 긴장사항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멕시코의 주식인 토르티야(둥글고 얇게 구운 멕시코의 옥수수빵)의 폭등은 미국이 옥수수 에탄올 정책에서 기인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요원한 평화공존, 이란의 핵확산을 빌미로 펼친 이란봉쇄작전, “블랙호크다운”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통해서 보여진 소말리아의 미군의 이야기, 그로 인해 전쟁과 기아의 피폐화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말리아,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된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실은 이라크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미국의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이라는 것, 전쟁 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혼란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라크 문제, 그로 인해 야기된 사담후세인과 알카에다의 연관성, 민주주의의 증진, 테러와의 전쟁 등을 내세워 얄팍하게 이어지던 핑계들, 더군다나 모두가 예측했듯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결과로 테러는 오히려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증대되는 핵위협도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거기에 최근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온 미국의 금융위기 또한 몇몇 위정자들과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 있음을 촘스키는 밝히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 관계된 세계사의 여러 흔적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진실들이 숨어있다. 촘스키는 그의 사실에 근거한 글쓰기로 그 이면에 존재한 미국의 탐욕을 보여준다. 속고 속이는 진실게임, 그 속에 미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다. 오직 그들의 이익과 지배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그들만의 정책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정치가들의 이익도 한 몫 하겠지만.
우리와 관계된 칼럼으로는 유네스코가 지지정한 세계자연유산에 해당되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중인 해군기지 관련 칼럼이다. 2011년 1월에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했지만 제주시민과 평화 운동가들의 데모로 그 해 6월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후로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은 목숨과 자유를 위협받으며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저항에 참여했다. 제주도에 건설예정인 해군기지에는 잠수함과 항공모함 및 구축함을 비롯해 미군과 한군국의 전함 20척이 정박할 수 있는 해군기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당면한 군사적 위협인 북한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는 기지이다. 즉 이기지의 가장 큰 목적은 중국의 견제를 위한 미국의 목적하에 건설되는 기지이다. 중국에서부터 약 48키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 해군기지는 중국의 동남아로의 진출을 막고, 중국을 위협하고자 하는 해군기지이다. 이는 한국의 필요에 의해 건설되는 기지가 아닌 미국의 필요에 의해 건설되는 군사기지이다. 가장 평화로워야 할 제주도에 해군기지건설을 추진하는 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긴장감을 드높이고 중국의 군비확장과 일본의 재무장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평화적인 섬 제주도가 군비경쟁의 각축장으로 변질될 수있다. 이렇듯 우리가 진실을 알지 못하면 그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방법을 찾을 수 없다. 1985년 대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진 미문화원 점거사건처럼 제대로 된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면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반미는 무조건 공산주의로 매도될 수도 있다. 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사태는 한국의 군사독재의 배후와 광주의거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목처럼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고 그들과 관치언론에 의해 제공된 왜곡된 정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탈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전 세계의 경찰국가로 인식되며, 지구촌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봉사한다는 미국의 실상이 실은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지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제적인 폭력조직이며, 자신과 동등한 다른 세력의 등장을 용인하지 않는 극도의 편협함과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국가임을 아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감춰진 진실을 올바로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 또한 만들어진 세계 속에 갇혀져 편협화한 허상만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권다툼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그 벗겨진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을 보고 그에 대응해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그 첫걸음을 촘스키는 이 책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이 리뷰는 예스 24의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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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학자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 겸 사회운동가이다. 또한 사회주의자로써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 즉 불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은 그를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양심으로 칭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과 언론, 지식인 사이의 유착의 본질에 강한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내가 처음 촘스키를 만난 것은 [권력에 맞선 이성]이라는 책이었지만 그 후, 그의 저작들을 한권, 두권 읽어가면서 그에게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묘하게도 대학 새내기 때 읽은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지식인]이란 책을 연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힘이 곧 정의인 시대. 우리는 어떤 프로파간다에도 흔들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더불어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비록 불의한 사회라 할지라도 상황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촘스키는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업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떠 안으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그가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칼럼들을 모아 역은 것이다. 그는 5년 동안 일어났던 국제적인 사건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추악한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물론 미국을 비판하는 책들은 넘쳐난다. 그렇지만 촘스키만큼 사실에 입각하여 치밀하게 조사하고, 밝혀낸 진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책은 드물다. 또한 그는 상식적인 기준에서 판단하고, 분석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언론과 권력이 프로파간다를 통해 만들어낸 거짓을 걷어내고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있는 촘스키의 칼럼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들이 얽혀있는 중동문제와 라틴아메리카의 탈미국화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2008년의 금융위기와 환경, 핵, 미국 내 민주주주의 문제, 그리고 새롭게 패권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을 다루기도 하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쓴 미국의 위선을 폭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한때는 세계 모든 언론들의 1면을 장식했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관심도 없는 것 같고, 설사 알려고 한다 해도 진실에 접근 할 수가 없다. 국제사회는 물론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때는 이스라엘까지 합의했던 두 국가론을 이스라엘이 돌연 거부하고, 미국은 이를 줄기차게 지지하고 있다. 세계의 지지, 아랍의 지지를 받는 두 국가론을 거부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미국은, 이스라엘의 어떠한 도발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2007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위한 총선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후보가 당선되자 내전을 유도하고 쿠데타를 지원하는가 하면, 이스라엘과 함께 팔레스타인들에게 충격적인 범죄행위까지 저질렀다. 촘스키는 이러한 미국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들에게 배급할 구호품을 싣고 가는 자유선단에 대한 이스라엘의 빈번한 납치나, 이를 방관하는 미국,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프로파간다를 통해 만들어낸 거짓에 동참하는 서구언론은 이제는 그러한 사실을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폭력, 외교는 이 폭력의 악순환을 합리적으로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중동의 안정을 핑계로 의도적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안정이라는 용어는 국제문제에 대한 담론에서 미국의 지배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이란문제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또 다른 추악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은 마치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인접국인 이란의 핵개발 움직임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미국에 대항하는 이란에 호의를 보이자, 그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이란을 응징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하수인인 이스라엘과 더불어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무법국가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면 누구라도 협박하고 누구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이란 위협론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그들의 야욕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적인 침략행위로 여기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꾸며낸 허구라고 한다. 미국은 이러한 협박과 폭력을 중단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진실을 보지 않기 위하여 의도적 무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런 사실은 종래에는 미국을 파국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함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안마당 이었다. 경제적 수탈과 지역안보라는 핑계로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소수 엘리트들의 독재체제를 지원해왔다. 미국은 전략적이고 경제적인 미국의 목표에 부합하는 민주주의만 지원해 왔으며, 그러기에 미국의 속국의 민주주의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고 한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선거의 결과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으면 민주주의의 승리라 칭하지만, 그것이 아니면 안보를 핑계로 가혹한 응징을 해 왔다. 안보라는 핑계는 국가범죄를 감추기 위한 기본적 합리화라고 촘스키는 말한다. 최근 들어 라틴아메리카는 지역통합, 내부통합으로 미국의 지배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고, 그것은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탐욕스러운 소수 엘리트들과 미국과 밀착된 군부들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지금 인류 모두에게 닥친 중요한 과제는 생존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환경문제와 핵무기의 위협이다. 이중 핵 문제는 해결 방법이 간단하다고 한다. 그것은 핵무기를 모두 없애면 되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국가가 그것에 찬성하고 있지만, 오직 미국만이 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의 핵무기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그러한 오만이 북한이나 이란 등의 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처음과 끝부분에 우리와 관련된 칼럼이 실려 있다. 북한 핵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이다. 촘스키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부시정권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한다. 합의를 멋대로 무시하고, 엉성한 증거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붕괴시키려 한, 부시의 호전성이 빗어낸 일이며, 또한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은 지역안보를 구실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세계 지배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그런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중동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들의 정책을 그들 입맛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론도 아니고, 무기도 아니고 바로 그들이 시키는 대로 놀아나는 꼭두각시 정치인들과의 합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란이, 시리아가 숱한 미국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만의 가치를 지켜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게 한다. 비록 그들이 그들의 국민을 억압하는 전제정권임에도 말이다. 이 책에는 촘스키는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해하여야 하고, 그러한 이해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역사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고 언젠가 촘스키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진정한 변화가 있었다며, 그러한 변화를 위해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선두에는 당연히 냉철한 이성을 무기로 한 지식인들이어야 하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칼럼들은 우리가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통찰을 주고 있다. 또한 이 시대, 이 땅 위에는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성이라는 무기를 어떻게 불의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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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진실된 세계의 모습을 확인하는 데는 노엄 촘스키의 글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특히나 미국과 자본주의에 관해서라면 말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은 위기였고 세계는 아수라장이었다. 2008년 현실화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겪었고 그 여파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 역시 갑자기 마주한 위기의 높은 파고 앞에서 속절없이 휩쓸려 나갔다. 현재 일본의 아베가 국민들의 눈을 원전 사태로 인해 방사능 피폭의 위기가 심해지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서 돌리기 위해 중국과 우리나라를 계속 도발하듯이 위정자들은 언제나 위기로 부터 국민들의 눈을 돌리기 원한다. 더구나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중국의 역량 앞에서 이전까지 누려오던 세계 패권 국가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된 미국은 더욱 그렇다. 그런 미국에게 적들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다행히 적은 넘쳐났다. 이라크를 비롯하여 이란도 있었고 파키스탄도 있었으며 북한도 있었다. 적이 부족할 염려는 없었다. 그냥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2001년의 9.11이 있었기에 다른 나라들을 설득시키는 건 쉬웠다. 있지도 않은 생화학 병기를 빌미로 이라크 전쟁도 벌였던 미국이 아닌가! 그것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다른 나라의 동의까지 손쉽게 얻어가면서. 언론만 약간 도와주면 되었다. 사람들은 미국을 믿었고 미국은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였으니까. 물론 그건 허상이었다. 오래도록 미국이 우리에게 만들어 놓은 프레임 그대로 미국을 바라본 것에 불과했다. 프레임은 언제난 꼭두각시 춤을 추게 만드는 인형사의 실과도 같다.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니까
노엄 촘스키의 글은 칼이었다. 그런 인형사의 실을 끊는 칼. 또 한 번의 미국이 위태로웠던 2007년 부터 2011년까지 언론 지상에 발표한 칼럼들을 모은 이 책,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세계'는 그걸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와도 같다. 시간 순으로 모아진 이 글들은 하나같이 미국이 가진 허위를 낱낱이 까발리고 있으니까. 그 중,2009년 12월 30일에 발표된 오바마, 라틴아메리카의 평화를 지킬까? 칼럼은 압권이다.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버락 오바마이지만 촘스키는 오로지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경우에만 평화를 유지한다는 오랜 전통을 오바마 역시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전통엔 우리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나 우드로 윌슨 그리고 지미 카터도 예외는 아니다. 루즈벨트는 대통령 재임당시 멕시코의 절반을 정복하고 '미국인들이 궁극적으로 멕시코인들을 몰아낸 것은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불가피하고 무척 바람직한 것이었다'고 말했으며, 우드로 윌슨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아이티를 침략하여 수천명을 죽였고 노예제도가 부활되게 하였으며 도미니카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공고히하기 위해 수십년간 고문과 폭력 그리고 빈곤만을 남긴 군부 독재를 조장, 지지했다. 지미 카터 역시 마친가지였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고수하기 위하여 니카라과의 독재를 지원했다. 그는 '니카라과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그건 '단, 미국의 이익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였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악독한 군부 독재를 아낌없이 지원했던 이 어두운 전통은 물론 버락 오바마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온두라스의 쿠데타를 지지했는데 그 쿠데타는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던 마누엘 셀레야 대통령이 인구의 50%나 되는 빈곤층을 위해 최저 임금을 올리는 등 온두라스의 권력과 부를 독점한 소수 계급에게 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누엘 셀레야는 온두라스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일을 했지만 결국 쿠데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온두라스는 여전히 소수 계급만 권력과 부를 독식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쿠데타를 오바마는 지지했던 것이다. 솔직히 이 당시 오바마의 행위를 보면 과연 노벨평화상이 제 주인을 찾아 간 것인가 의심될 때가 많다.
촘스키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국의 민낯을 샅샅이 드러낸다. 한없이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가 독재로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을 말이다. 그런 미국을 그동안 자유 세계의 희망으로 생각해왔다니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따로 없다. 그만큼 우리가 길들여진 프레임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촘스키의 이 책은 그러한 우리 눈에 덧씌워진 콩깍지를 벗겨준다. 미국이 정녕 어떠한 나라인지 그 진면목을 제대로 보게 한다. 진리는 단순하고 시선은 명확하다. 그리하여 이 책 덕분에 복잡하게만 보였던 세계 정세 역시도 더 간단하게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꽤나 유용한 독서였고 아마 많은 분들에게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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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엄 촘스키, 이름만 들어도, 그가 말하는것만 들어도 가슴 벅차는 순간이다. 촘스키는 다른 많은 책에서도 그의 이름이 인용되고 이 책에서의 미국에 대한 정치적인 분야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이며 역사학자이기도 하고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자이기도하고 운동가이기도 하다. 러시아계 유단인 2세로서 미국인이다. 수많은 논문을 비롯하여 신문기고가 이기도 하고 비평가이기도하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재주와 학식으로 무장한 인물이며 다재다능하면서 그 지식에는 깊이가 있기에 많은 부분에서 그의 논문을 인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인지학이라는 분야와 언어학에서 지금까지 몇가지의 도서를 읽는 중에 촘스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였기에 이미 그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그의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대하기에 마음이 설레이던 순간이었다. 언어학자이기에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언어를 마주하면서 언어와 관련된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자연스럽게 수반되어 그의 지식은 언어의 체계 뿐만 아니라 언어가 만들어지게된 배경과 언어가 발달하게된 역사를 다루게 되었다. 사실 언어학자와 인지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기에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는 조금은 그의 생각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오늘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세계"를 마주하면서 그가 바라라본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오늘날의 미국이 있기까지의 과정과 미국의 정치인들이 행하여온 그들만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정치와 경제계가 세계에서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세계의 최강국이라고 하면 단연 미국이다. 그렇다면 최강국의 국민들 또한 최강국에 걸맞는 최강의 국민일까? 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불균형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는지는 참으로 궁금함 사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들어보는 미국의 정세를 매스컴을 통해 들어보면 미국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은 혈맹이며, 상호 의존 관계에 있기에 그들을 배척하는 소식은 많이 들을수가 없었던것 같다. 우리가 미국의 간섭에 대해 항쟁한 사건은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광주항쟁과 더불어 미국의 국내 정치 간섭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진 이러한 사건들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할것인지에 대한, 국제 정세에서 한국의 위치를 어디에 둘것인지에 대한 미국 정계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어떤 이익이 있는지에 기반을 둔 포석일 수 밖에 없다. 촘스키가 밝히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립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서 미국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 군사력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다는 내용은 오늘날의 세계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협조적인 측면 보다는 손쉽게 약자를 이용함으로써 그들의 숨겨진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국이 오늘날의 세계의 군사력을 좌지우지 하게 된것은 2차 세계 대전후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유럽의 영국이 군사력, 경제력 면에서 최강이었으나 드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하여 오늘날의 미국이 있었다. 세계의 역사속에서 바라보듯이 한 나라가 자신의 파워가 자국에서 팽배해질때는 다른 나라로 옮겨지게 된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자국의 영토로 인정해버리는 행태는 역사적으로 드문일이 아니다. 유럽의 강대국들이 그런 행태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촘스키의 의견은 미국의 파워는 이제부터 쇠퇴할것이라는 의견이다. 첫째로 미국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과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었으나 최근에는 무서운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아시아의 중국의 대두로 서로 경쟁하는 체계가 되었으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입김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그들의 최고의 동맹으로 여겼던 이스라엘을 비롯한 여러 중동국가의 문제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힘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미국으로 봐서는 야간 힘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9.11사태 이후 중동국가에 대한 보복 전쟁과 더불어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군사적 개입등은 미국을 바라보는 중동국가의 의식 뿐만 아니라 세계가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국가는 경제논리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문화와 국민들간의 협의가 중요한데 미국은 어찌보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서로를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있음이 중동에서의 여러 사건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최근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의 미국의 행태만 보아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로 미국에서의 부의 불균형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치 권력이 모든 부를 움켜지고 있는 반면에 국민들의 경제력은 점점 약해지고 실업률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게되고 정치계와 경제계의 인물들에 대한 불신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리더이자 세계의 리더를 자부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에 대한 후원금을 내는 기업들의 의도를 파악해보면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후원금을 낸다는것이 대통령 당선 이후 뭔가를 얻기위한 지참금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대통령을 움직인다면 이는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후원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은행과 무기 생산업체가 이러한 미국의 행보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고 편중된 산업으로는 미국의 국민 모두가 행복해 질 수는 없다. 미국 최고의 지성이 말하는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미국인들 뿐만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주시해야 할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의견이기도 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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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책은 처음이다. 명성때문에 지레 겁먹고 읽지 않았다. 어렵고 지겹고 뭔소리야 할까봐 . 그러나 나의 잘못된 편견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길에 가봤던 것처럼 그길은 잘못된 길이야 , 질척거리고 험할것이라고 내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것처럼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잘못된 판단이 정당한 것처럼 쇠뇌를 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촘스키가 .. 이제는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다들 모른척 참여를 안할뿐 미국의 두얼굴에 대해서는 잘알고 있다. 왜 그렇게 남의 나라의 안위에 신경쓰는지, 이라크, 이란과 끊임없이 간섭하는지 말이다. 검은 물질 -석유 , 자원에 대한 패권, 세계에서 갖는 미국의 지위세력의 약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끊임없이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내고 주위 나라에게 미국의 의견에 동조하라고 강요한다.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촘스키는 기, 승,전결을 통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반입이 금지 되었던 것 같다. 본인이 태어난 나라 미국의 두얼굴을 이렇게 실랄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 싶을정도로 진실되다.
또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분쟁, 가자지구의 몰살 학대에 따른 정책이 이스라엘-미국의 관계로 인해서 더욱더 분쟁이 길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미국의 대통령이들이 묵과한 이유는 이스라엘로 인해서 얻는 미국의 이득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적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본 미국은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나라로 표현되었고 아랍이나 라틴아메리카는 미개하고 마약, 매춘이 득실거리는 나라로 비쳐줘서 꼭 미국이 도와줘야 할 나라처럼 보였다. 이처럼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지금 이시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 촘스키는 국민각자가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국민이 국가정책에 반대할때 국민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다.
민주사회는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파간다를 이용한다. 오바마가 좋아하는 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 의 충고를 인용하면," 필요한 환상"과 "감정에 호소하는 단순화" 로 여론은 조작한다. – 237쪽
더이상 정치인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나라가 아닌 미국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선거유세에 필요한 자금을 많이 기부해주는 기업의 대변인으로 전락해버렸다고 개탄한다. 2008년 금융위기 사태에서 많은 미국의 서민들,중산층은 몰락해서 집을 잃고 직장을 잃었지만 정작 금융위기를 겪게 했던 금융기업들은 구제금융으로 인해 다시 되살아나고 거기다가 스톡옵션에 보너스 잔치까지 하는 게 현실이다. 촘스키는 현재 미국에서 정당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아닌 일당 체제라고 말하면서 기업들에게 어떤식으로 유리한가를 겨루기만 할뿐 민중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선거를 이용한 정치바꾸기, 개혁정치는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엇인가를 바꾸려면 끊임없는 관심과 투쟁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바뀌어진다고 이야기해준다 .
또한 1%부유층(플루토노미 ( putonomy) 과 99%프레카리아트( precariat)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서민층으로 나뉘어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자신들이 이렇게 바뀌어지고 있는 동안 묵과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를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명언 "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 에 중점을 맞추고 세상을 변화하기위해서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공부하고 그다음 가장 중요한것은 행동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세상에 대해 참여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결국은 대중의 참여로 이루어진것이라는 것을 잊지말라고 이야기하는것 같다 .
국민이 깨어 있어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나라가 유지될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선거날에만 하는 도장찍기가 아니라 매일매일 세상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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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라는 이름은 대학 1학년 때(어문학부 소속), 처음 들어봤다. 당시 언어학자로 처음 만난 촘스키의 이론은 너무 버겁고 어려웠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에 3학년이 되어 비판과 토론이라는 수업에서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촘스키를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본 도서는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악의 축이라 규정한 국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의'라는 태도로 응징하지만, 이스라엘이나 본국에 대해서는 이중잣대를 댄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미국을 남김없이 비판해버리는 모습에서 속이 시원할 법도 하지만, 그에 반해 제시하는 해결책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 비판을 할 때는 각종 자료를 근거로 하지만, 상대국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근거없이 추정치를 바탕으로 상대국의 행위를 설명하기 때문에 미국의 과오에 대해서는 쉽게 설득이 되었지만 상대국에 대한 설명은 부족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여든살을 넘긴 그가 아직도 꼬장꼬장한 모습으로 자국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모습에서 꺾이지 않는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삶의 마지막날까지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지식인의 삶에서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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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정치역학은 아직까지는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여 돌아가고 있다고 본다.정치,경제,군사 등 힘의 논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양분되어 왔는데,20세기 후반 동유럽과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 들게 되었다.특히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고르바초프의 글라디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는 전세계가 이념과 사상의 싸움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가 보다 더 시급한 급선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혹은 사회주의) 시장개방을 통해서만이 자국의 경제성장 및 부의 축적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국내에 잠입되어 모든 분야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다.이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희비의 쌍곡선이 엇갈리게 되는데 대부분 부와 권력이라는 소수계층은 웃고 대부분의 힘없는 일반인들은 우는 상(像)이 되고 말았다.신자유주의는 아직도 계속 진행중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미국이 1990년대 걸프(Gulp)전과 1990년대 말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지출하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미국은 중동의 안전을 빌미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변명을 늘어 놓고 있지만 내막은 새로운 힘의 구축과 석유,가스와 같은 자원을 노린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나아가 경제현상이 금융권에 치중되고 노동 집약적인 분야가 제3국 및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 들면서 실업률 증가,기업 및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실행하면서 중산층 이하의 일반인들은 소득대비 늘어만 가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일반인들이 부르짖는 아우성은 '월가를 점령하라' 등 일반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잘 사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미국은 다민족이 모여 살아 가는 미합중국이다.그들은 세계를 제패하려 힘의 논리를 줄곧 부르짖고 있다.당연한 논리이지만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실리를 기준으로 동맹국을 짝짓기 하다가 틀어지게 되면 내치기도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정확한 군사비 지출은 모르겠지만 베트남전,이라크전 등에 쏟아 부은 금액은 어마어마하다.이것을 경제부양에 힘썼더라면 오늘날 미국과 중동과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미국은 겉으로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제스처를 취하지만 자승자박하는 꼴을 자초하고 말았다.자국의 실질적인 경제부양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사건)가 발생하면서 거대한 함선과 같은 미국은 커다란 파고에 의해 이리 저리 쏠리고 있는 형세이다.특히 신자유주의가 기업규제완화 및 경제금융권에 치중하고 부를 갖은 소수계층에게 돈과 물질을 실어 주다 보니 미국은 현재 상위 1%가 99%를 착취 내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들린다.기가 막힌 신자유주의이다.한국 역시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보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은 어느 나라나 존재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는 어디까지나 능력껏 하라는 논리의 잣대만 유효하다.
이 글은 미국의 언어학자,인지과학의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노암 촘스키의 칼럼 모음집이다.2007년 4월~2011년 10에 이르기까지 52개의 칼럼을 약자의 편에 서서 학자로서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미국의 위선과 속내를 고스란히 꼬집어 내고 있다.이 글을 읽기 전에 짐작은 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까지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쓴 이리떼와 같을 수가 있을까 라는 점에서 아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노암 촘스키저자다운 예리하고도 냉엄한 해설은 세계의 정치역학을 그대로 조명해 주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예전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에서 약자,약소국의 정치가들은 보다 각성하여 스스로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힘을 길러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글에 소개된 칼럼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주요 내용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란,이라크,파키스탄 그리고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미국 신자유주의의 폐해 및 중국의 경제부상에 따른 자기편끌어 들이기 술수 등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특히 미국은 중국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G2국가로 부상하게 되자 중국을 정치,경제파트너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국의 정치,군사적인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끌어 들이기를 교묘하게 시도하고 있다.대외적으로는 정치,군사적인 힘의 역학의 논리를 들이대고 있으며,미국 국내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불평등과 시민권 박탈,공직자들의 오만과 기만이 뜨겁게 달구어지면서 '점령하라(Occupy)' 운동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그런데 미국 정부는 국가정책을 반대하는 국민을 내부의 적으로 생각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현상을 목도하고 감지하면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새삼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정치란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제국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인 기도(企圖)와 책략이 농후하다.미국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존재하고 있는데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느 당이든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다.이스라엘을 우방으로 생각하다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척하기도 하고,경제이익을 내세워 중동에 무기를 팔기도 한다.이란의 핵무기 정책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손을 잡기도 한다.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의 치안을 내세워 현대판 NATO국이 손을 잡고 그곳에 진출해 있기도 하지만 해당국들의 국민들은 미국 및 NATO국들이 자국에 들어와 있는 자체를 혐오한다.나아가 미국은 중국의 정치,군사력의 증강이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오면서 동남아 및 인도 등에 경제적 협조 라는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다.미국이 경제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부시,클린턴,부시(부시의 아들),오바마 모두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다.자충수를 두고 말았던 그들은 실질적인 경제부양이 무엇이고 '점령하라'와 같이 일반인들의 들불과 같이 거세게 번지고 있는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기 보다는 부의 분배,일자리 창출,기업 및 의료계의 민영화 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소득 계층의 분포가 피라미드형을 보이고 있는 상황하에서 신자유주의를 계속 밀고 나가고,노령화문제,일자리 창출,의료보험,보편적 복지문제를 소홀히 하게 된다면 미국은 멀지 않아 사회적,국제적으로 커다란 재앙을 자초하고 말 것이다.이러한 현상은 미국을 비롯하여 모든 나라에 영향을 줄 것이며,힘없는 백성들만 주린 배를 더욱 주리게 되고 살아가는 삶은 더욱 의미와 가치를 잃어 갈 것이다.
"정치는 대기업이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은행과 땅과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하고,언론과 홍보 기관을 비롯한 선전과 프로파간다의 수단을 지배함으로써 통제력을 강화하여 사적 이익을 챙기는 기업"에게 권력이 있는 한 정치는 그림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P113,존 듀이-
민주사회는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파간다를 이용한다.오바마가 좋아하는 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충고를 인용하면,"필요한 환상"과 "감정에 호소하는 단순화"로 여론을 조작한다. -P237
1970년대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경제의 금융화는 미국 국내 생산의 공동화(空洞化)를 조장시켰다.상위 1%에게 부의 쏠림 현상이 가중되고 있으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이는 최고경영자,헤지펀드 대표들이다.민주주의란 "국민의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인데 미국이든 한국이든 국민들이 제대로 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게다가 일용직 및 비정규직의 인구의 증가,노동시간 증가,빚과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경영자들은 건강한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탐욕'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그들 나름대로 변명을 하는데,그들의 임무는 이윤과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이것은 합법적인 의무인 것은 사실인데 경영자들의 행위가 경제 전반에 해를 끼칠 가능성마저 무시한다는 점이다.외적 결과는 그들의 관심사안이 아닌 것 같다.그것은 제도적인 이유 때문에 구조적인 위험마저 무시하는 것이다.나아가 현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빅 이슈 중의 하나인 심각한 의료보험 위기는 남의 일 같지 않다.또한 전 세계적인 미래의 숙제인 환경과 에너지 위기는 국민의 여론과 정부 정책간의 간극을 크게 벌려 놓았다.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도 깊에 뿌리 내리고 있다.소수계층을 먹여 살릴 것인가,아니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놓고 한국의 지도층들도 간과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미국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때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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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Making the Future: Occupations, Interventions, Empire and Resistance 부제 -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다 저자 - 노엄 촘스키
이 책은 저자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을 엮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부터 현 오바마 대통령까지 미국의 국내외 정책과 국제적인 이슈를 얘기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저자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2세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에 대해서 상당히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는 것을 읽고 조금 놀랐다. 그는 이스라엘의 몇몇 행동을 범죄 행위라고 표현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쓴 전쟁광의 질주』
이 부분에서는 미국이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 예상과 비슷했다. 저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고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란, 이라크와 북한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국제연합이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미국이었다.
『속고 속이는 진실 게임: 미국에 민주주의는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 한다.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일반적인 생각에 물음표를 던진다. 국민이 아닌 기업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지운 반면에 금융기업들은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선거자금을 법원이 허용한 이후부터 저자는 기업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인수했다고 말한다.
『세계 최강대국 타이틀전』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얘기를 하면서, 어쩌면 미국이 빚 때문에 중국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시작한다. 또한 중동에 불고 있는 정권 교체의 바람에 대해 언급하고, 또다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그리고 한국 강정 마을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리비아의 예를 들면서, 미국이 과연 진정한 우방국인가 의문을 갖게 한다. 자기들에게 이익을 줄 수만 있으면, 자기들 편을 들어주면 상대가 독재를 하건 인종 차별을 하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넬슨 만델라가 2008년까지 미국 테러리스트 명단에 있었다는 얘기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책을 읽으면서, ‘아, 이 때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아예 안 보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나름 본다고 하는 편인데,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한 숨겨진 의미, 그러니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행간을 잘 파악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왜 A라는 말을 꺼냈는지, 왜 굳이 그 표현을 썼는지 등등. 음모론자가 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물론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도 있지만, 모든 것에 눈을 돌릴 수는 없다. 이 사회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시시콜콜 다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위에서 언급했던 말하지 않은 숨은 의미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확실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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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인문책시렁 383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노엄 촘스키 강주헌 옮김 시대의창 2014.1.6. 말과 마음이 잇닿는 길을 찬찬히 읽다 보면, 사람과 삶이 맞닿는 길을 가만히 읽습니다. 이윽고 말과 사람과 터전이 맞물리는 길을 알아보고, 어느새 사람과 숲이 사랑으로 만나는 길을 걷습니다. 사람과 숲이 사랑으로 만나는 길을 안 걷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사람과 삶이 맞닿는 길을 안 보려 하는 탓이고, 말과 마음이 잇닿는 길을 그냥그냥 지나치거나 대수롭잖게 넘기는 탓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여태 말글지기(언어학자)가 제법 있었으나, 적잖은 말글지기는 담벼락(강단·권력) 안쪽에 포근히 깃들면서 우두머리를 모셨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서지 않고 담벼락 안쪽에 깃든 말글지기는 ‘말·마음’이 어떤 수수께끼인지 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삶’은 어떤 실마리로 맞닿는지는 아예 안 쳐다봅니다. 이들은 ‘사람·숲·사랑’은 도무지 모를 뿐 아니라 그저 등집니다. 말을 말로 마주하고 바라본다면, 집안일부터 어질게 합니다. 집안부터 어깨동무를 이루는 살림길을 여미려고 하지요. 말을 말로 안 마주하고 안 바라보기에, 집안일부터 멀리하거나 등져요. 이러니 마을도 나라도 ‘어깨동무’가 아닌 ‘힘바라기(권력지향)’로 치닫습니다. 그런데 말글길(언어학)만 말과 마음 사이를 마주하거나 바라보지 않아요. 모든 배움길은 언제나 말과 글을 바탕으로 삶을 살피고 살림을 사랑하는 길로 잇게 마련입니다. 참답게 배움길을 여는 이라면 왼오른 어느 쪽에도 안 서요. 참답지 않기에 자꾸 왼길이나 오른길로 가르거나 쪼개거나 나누려 합니다. 모든 풀꽃나무하고 숨결에는 암수가 있습니다만, 왼오른은 없습니다. 모든 풀꽃나무하고 숨결한테 암수가 있더라도 어느 쪽이 높거나 낮지 않아요. 함께 살아가며 어울릴 짝입니다.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는 ‘말글을 여는 마음’을 살피는 눈으로 미국과 푸른별을 살펴본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촘스키라는 분은 왼길도 오른길도 아닙니다. 이분은 그저 ‘사람길’과 ‘삶길’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사람길하고 어긋나면 그놈이 왜 사람길하고 어긋나는지 낱낱이 짚으려고 하지요. 삶길하고 등지면 그녀석이 왜 삶길하고 등지는지 찬찬히 따지려고 합니다. 미국 민주당은 왼길일까요? 아니올시다. 미국 공화당은 오른길일까요? 아니지요. 미국 민주당이나 공화당은 그저 ‘무리(정당)’ 이름입니다. 무리 이름만 쳐다본다면 두 무리가 벌이는 속임짓에 쉽게 사로잡히거나 넘어갑니다. 우리가 그릴 삶과 살림과 사랑은 왼길일 수도 없고 오른길이어서도 안 됩니다. 그저 삶길과 살림길과 사랑길일 노릇이고, 밑바탕은 숲길을 놓을 노릇입니다. 왼길과 오른길이 아니라면 ‘가운길’이라 할 텐데, 가운길은 ‘중용·중도’가 아닌 ‘가운’자리입니다. ‘가운’이란 ‘가슴’이고, 가슴이란 염통이 있는 한복판이면서, 모든 숨붙이가 살아가는 밑동이고, 가슴이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빨강(붉은피)’이지 않아요. 모든 사람은 ‘숨빛’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숨은 바람이고, 바람은 하늘을 이루니, 어떤 빛깔로도 그릴 수 없는 바람빛인 숨빛이라는데, 하늘과 바다를 이루는 ‘파랑’으로 그릴 수 있어요. 사람이 왜 사람이겠습니까. 사랑으로 하늘바람을 파랗게 들숨날숨으로 누리면서 펴기에 사람입니다. 사람이 왜 사람일까요? 사람만 생각하거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돌과 모래와 물방울과 버섯과 범과 뱀과 벌레와 나비는 다 다르게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사람을 둘러싼 이웃숨결이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결과 고리와 길과 얼개가 ‘사람하고 다를’ 뿐입니다. 사람하고 다르게 생겼기에 무당벌레가 귀엽거나 바퀴벌레가 미울 수 없어요. 사람하고 다른 몸이기에 나비가 예쁘거나 파리가 징그러울 수 없습니다. 이 푸른별에서 저마다 맡은 길을 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람이 왜 사람인지 깨닫습니다. 맨낯을 보아야 참낯을 읽고, 민낯을 알아야 속빛을 알게 마련입니다. 어떤 깃발을 흔드느냐로 그 사람을 따진다면 그야말로 엉터리에 엉뚱합니다. 어느 자리에 서느냐로 그 사람을 쳐다본다면 참으로 헛짚고 허방일 뿐입니다.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는 책이름에 이미 나오듯, 우리 오늘을 우리 손으로 짓는 길을 들려줍니다. 남(왼오른)이 우리 삶을 가꾸어 주지 않습니다. 잘나거나 못나지 않은 우리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을 씨앗으로 심을 때에 비로소 모든 엉터리를 쓸어내고 쓰레기를 치우면서 사랑누리로 바꿀 만합니다. 이놈도 저놈도 똑같이 ‘놈팡이’입니다. “덜 나쁜 놈”을 이제 그만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님’을 찾아야지요. 바로 우리 스스로 ‘님’으로 다시 태어나는 하루를 몸소 짓고 손수 일구면서 사랑집을 이루는 일부터 하면 됩니다. ㅅㄴㄹ 위선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미국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도 않고, 폭력을 포기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34쪽) 오바마도 선거 유세 내내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여 위협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9쪽) 팔레스타인은 가난하고 약하며, 지리멸렬하고 친구도 없는 나라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게는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에너지를 지닌 국가이며, 이집트는 강력한 힘을 지닌 아랍 국가이다. (88쪽) 선거가 끝날 무렵까지 오바마 진영이 받은 기부금은 주로 금융기관과 로비스트를 비롯한 법무법인에서 나왔다. 정치의 투자이론을 고려해 보면 새 행정부의 기본 정책에 대한 몇 가지 결론이 대략 짐작된다. (118쪽) 오바마는 “분명히 말하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약속한다. 우리는 위협에 맞서 자위권을 행사하는 이스라엘의 권리를 언제까지나 지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이 훨씬 잔혹한 위협들, 즉 미국이 지원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와 점령지에서 자행하는 위협들에 맞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140쪽) 오바마 대통령은 온두라스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2009년 6월의 군사 쿠테타를 인정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 및 유럽의 거의 모든 국거와는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197쪽) #Makingthe Future #OccupationsInterventionsEmpireandResistance (2010년) #AvramNoamChomsky +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노엄 촘스키/강주헌 옮김, 시대의창, 2014) 이 책에서 역설하는 것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업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떠안으라는 것이다 → 이 책은 앞날을 남한테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하라고 외친다 → 이 책은 앞길을 남한테 맡기지 말고 몸소 맡으라고 되뇐다 11쪽 우리가 누군가를 위협하면 그는 방어 태세를 갖추기 마련이다 → 우리가 누구를 다그치면 그는 닫아걸게 마련이다 → 우리가 누구를 윽박지르면 그는 지키려 한다 → 우리가 누구를 몰아세우면 그는 내버티려 한다 16쪽 아마겟돈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밀어넣기에 충분한 폭발력이었다 → 죽음밭으로 한 발딱 더 가까이 밀어넣을 만큼 세게 터졌다 → 불바다로 한 발딱 더 가까이 밀어넣을 만큼 크게 터졌다 17쪽 선제공격은 저지할 수 없지만 보복 공격은 억제할 수 있다 → 먼저치기는 막을 수 없지만 앙갚음은 누를 수 있다 → 미리치기는 못 막지만 되갚기는 막아설 수 있다 40쪽 비군사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주먹없이 막을 길은 없다 → 착하게 닫아걸 길은 없다 → 맨몸으로 둘러쌀 길은 없다 41쪽 누가 뭐라 해도 전면적인 침략은 전쟁범죄이다 → 누가 뭐라 해도 크게 쳐들어가니 불짓이다 → 누가 뭐라 해도 확 빼앗으니 불지랄이다 94쪽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축이 일반 국민에서 → 온누리를 거머쥐는 힘굴대가 우리한테서 → 푸른별을 다스리는 힘뿌리가 우리한테서 210쪽 정착촌 확대라는 쟁점은 그야말로 양동작전이다 → 깃들 곳을 넓힌다지만 그야말로 눈가림이다 → 삶터를 늘린다는데 그야말로 거짓말이다 257쪽 제주도 강정마을은 한가한 농어촌 마을이었지만 → 제주도 강정마을은 한갓진 시골이지만 → 제주도 강정은 조용한 마을이지만 3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