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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통일을 염원한 구십 인생 천재의 삶
"민족과 통일을 염원한 구십 인생 천재의 삶" 내용보기
서점에서 보고, 분량과 가격 때문에 주저했지만, 결국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 꾸역꾸역 읽었다. 집에 <이슬람 문명>등 몇권의 책이 있었지만, ‘무함마드 깐수’ 사건 때문인지, 그의 삶에 다가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서점에서 책을 들추어 보면서 그의 삶에 연결되는 내 기억들이 연결된 부분이 궁금해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99년 중국에 건너간 후 내가 처음에 관심
"민족과 통일을 염원한 구십 인생 천재의 삶" 내용보기

서점에서 보고, 분량과 가격 때문에 주저했지만, 결국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 꾸역꾸역 읽었다. 집에 이슬람 문명등 몇권의 책이 있었지만, ‘무함마드 깐수사건 때문인지, 그의 삶에 다가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서점에서 책을 들추어 보면서 그의 삶에 연결되는 내 기억들이 연결된 부분이 궁금해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99년 중국에 건너간 후 내가 처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중국 현대사를 바꾼 대장정의 현장이었다. 실제로 첫 여행부터 장정의 출발지인 루이진(瑞金)과 징강산(井岡山)은 물론이고, 윈난 대장정 유적을 답사했다. 하지만 얼마 후부터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중국 내 한국인들의 흔적이었다. 견당사부터 시작해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동포들의 삶과 역사에 관심을 갖고 보려고 노력했다. 관련해 글을 쓰고, 방송을 만들고, 국내 방송사나 신문의 취재를 가이드했다. 그러면서 그 현장이 가진 생생함에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든 정수일 선생은 우리 당대에 그 생생한 현장을 몸으로 부딪혔고, 지금도 그 상흔 속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귀한 읽기의 시간이었다. 아울러 그가 겪은 시간들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한중관계나 중국에 대한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수일 선생은 1934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치면 90살을 바라본다. 그가 살아서 통일을 바라볼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만약 통일의 순간이 있다면 그는 누구보다 빛날 수 있는 인물이다. 그 곡직한 삶이 이 책에 소상히 담겨 져 있다.

책의 첫장은 4차례에 걸쳐서 세계를 돌아다녔던 여정을 표시했다. 모든 대륙을 비교적 자세하게 돌아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가장 긴 여정은 간첩 사건으로 감옥 살이를 하다가 풀려난 후 문명교류사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리더로 전 세계를 주유했던 긴 여정이다. 2006년부터니 그 나이가 72살때부터 12년 동안이나 그 긴 여정을 소화했다. 운을 떠나서 학자로서 그가 답을 찾기 위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가를 증명하는 한 예다.

책을 들면 독자들은 시대인이라는 말부터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정교수에게는 경계인, 이색인, 이중인, 불우한 천재학자, 다중어자, 여행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시대인이다. 이유는 그의 삶이 20~21세기에 이르는 동안 시대의 소명에 따름이라는 화두를 안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는 시대가 부여한 소명에 얼마나 충실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하는 통일을 위한 활동까지를 잘 담고 있다. 책의 앞에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내용을 구구하다 할 정도로 자세히 소개한다. 특히 연일정씨들이 함북 명천에 정착한 과정부터 간도 땅으로 넘어온 여정이 상세히 찾아간다. 결국 이 수고로운 작업은 내 DNA를 찾고자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정교수가 어릴적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을 담은 앞 부분은 나 역시 적지 않게 둘러본 곳이다. 저자의 기록에 따르면 광복 이후 3년간 동베이의 조선인 160만명 가운데, 60만명은 귀국했다. 간도에 눌러앉은 사람은 53만명 정도니, 다른 이들은 동북3성 다른 지역이 각지에서 살았을 것이다. 함북 명천의 생활 근거지가 명확하지 않은 정교수 집안은 간도에 남는다. 책에서 밝히듯 옌변지역은 주더하이나 림민호 선생의 리드로 우리 자치권이 만들어지고, 민족 교육이나 문화예술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조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등 혼란이 이어지니, 명확히 조국에 대한 정체성도 찾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정교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 기회의 문이 열리고, 그는 베이징대학 동방학부에 입학한다. 인문학자로 그는 천재라는 말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실 아랍어를 비롯해 수많은 언어를 해독하고, 그 데이터 들을 구성하는 것은 천재라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어머어마하다.

그는 자신에게 한번 본 것은 컴퓨터가 한 이미지를 저장하듯 기억하는 재생적 환각이라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능력도 있지만,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아서 베이징대학 입학 후에도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고, 이집트 카이로 대학으로 유학가는 한편 고위 외교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도 밟는다. 물론 이런저런 인연으로 중국에서는 아랍어를 처음 통역하는 역할도 맡는데, 저우언라이 총리의 아랍어 통역을 할 정도였으니, 대단한 수재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그는 중국 최고의 아랍 전문 외교관이 되고, 편한 인생길이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북한으로의 환국을 선택한다. 이런 선택에는 대학에서 관심을 가진 국제관계나 문명에 대한 깊은 의지가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책 전반에서 사무엘 헌팅턴으로 대표되는 문명충돌론에 반감을 표시하고, 문명 간의 인정과 화합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가장 정점에는 그가 마지막까지 추구하는 한민족 문명의 힘에 대한 의지가 보인다.

그가 생각하기에 중국 외교는 그런 방향으로 길을 걷는다는 확신을 가진 듯 하다. 저자는 소련이 수정주의에 빠져 아프리카 독립 전쟁을 외면할 때 중국은 그러지 않았고, 자신이 모로코나 알제리 현장에서 뛴 것을 설명한다. 중국이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 등 서구의 편을 들지 않은 것도 그런 취지인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지금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 언론에서 중국의 일대일로를 분석할 때, 표피적으로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착취하는 것만을 보도하기 급급한데, 이런 근본을 안다면 중국과 아프리카 관계를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실제로 2000년부터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 모든 국가들과 같이하는 중국-아프리카 포럼을 통해서 긴밀히 교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어떻든 곡절 끝에 정수일 선생 가족은 19634월에 북한으로 귀국한다. 평양국제관계대학에서 북한의 아랍 교류 기초를 닦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11년 후에 그에게는 남한으로 향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는데, 호사가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차별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남한으로 오는 길을 위해 정수일은 중동, 호주, 동남아 등을 경유해 필리핀에서 국적을 수정하고, 19844월에 한국에 도착한다.

사실 이 여정을 두고, 혹자들은 북한이 최고의 국보를 한국에 선물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남아서 북한과 아랍, 아프리카 교류를 힘썼다면 지금 외교세계에서 판도는 많이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이슬람의 동아시아 전파나 신라-서역 교류사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서 단국대 교수로 임용된다. 이후 정교수가 혜초 등 우리 선조들의 교류 등에 대한 탁견들을 수없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그가 가장 꿈꾸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정교수는 327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민족론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 민족의 미래가 통일에 있다는 것은 역설한다. 사실 민족과 통일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면 중국에서 북한으로 갈 리도, 북한서 남한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없었을 것이다. 특히 통일비용이라는 일본이 지핀 화마에 통일의 의지가 불타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1996년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5년 후 풀려난다. 63세인 1996년부터 5년간 감옥 생활을 하는데, 한국에서 만난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자기의 인생에 대한 의지를 살린 후 자유의 몸이 되고, 어렵게 한국 국적도 취득한다.

정교수의 학문관은 우리 것이 중요하다는 아위중(我爲重)선인의 것을 서술했을 뿐 아니라 새 것을 창작한다는 술이작(述而作), ‘한 우물을 깊이 판다는 천일정(穿一井)이다. 하지만 말이 한 우물이지 정교수가 파고 든 인문의 세계는 동서양 문명 교류를 아우르고, 이슬람에서 유교까지 어마어마한 경계를 갖고 있다.

석방 후에는 무함마드 깐수라는 예명과 간첩 혐의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식계가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았다. 백낙청 선생이나 얼마전에 돌아가신 변형윤 교수 등은 거시기산악회의 멤버로 정교수를 끌어들이고, 다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특히 한겨레 신문의 세계문명기행 특집이 큰 힘이 된다. 정교수로서는 고희가 넘은 73살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이끌면서 실크로드 3대간선과 4대주 집중 답사를 통해 학문적 깊이를 완성한다.

이번 책은 판형도 큰데다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인생담들은 조금은 오가기는 하지만 일생이 시간순으로 쓰여져서 그다지 이해하는데도 어렵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책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독서의 순간이었다. 아울러 고고학을 전공하는 아들이 군대를 제대하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램도 생겼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23.01.07. 신고 공감 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