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태화강을 거슬러 대곡천 물줄기를 따라 들어간 깊은 골짜기, 그곳의 바위 위에는 350여 개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른바 반구대 암각화이다. 1971년 동국대학교 조사단이 근처에서 불교 유적을 찾던 중 사람과 고래와 상어, 호랑이와 사슴이 조각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회자되며 주목을 받았으나 곧 잊혀졌고, 1990년대 중반 들어 암각화 관련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세계 각지에 있는 암각화나 암채화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이 유적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전호태 울산대 교수가 반구대 암각화의 유적 현황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써온 에세이 형식의 글 중에서 56꼭지를 뽑아 우리에게 이 특별한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구대 암각화 바위 아래 있는 대곡천 암반층은 백악기 공룡의 발자국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곡천 물은 태화강으로 흘러들고 이 물이 울산만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1965년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사연댐이 완공되면서 대곡천 물줄기는 태화강과 끊어졌다고 한다. 관개용수용 댐과는 달리 흘러나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물이 불어나고 대곡천 상류까지 올라와 반구대 암각화는 물에 잠기게 된다. 일 년에 몇 달씩을 물속에서 지내다 보니 암각화들의 경계선이 얇아지고 흔적이 사라지기도 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조각된 것으로 4번에 걸쳐 새겨졌다.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새겨지기 전 뭍짐승인 노루나 사슴이 먼저 새겨진 것은 바다가 대곡천까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기후변화에 따라 내륙 깊숙이 있는 내곡천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고래가 새겨지고 다시 바다가 물러난 후에 맹수들이 새겨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네 번에 걸친 새김을 더듬어가며 그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들을 이야기로 엮었다.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난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세계 유수의 암각화나 암채화, 대곡천 인근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역사시대 벽화고분에 나타나는 그림 등과 비교하며 종교학, 민속학에 따른 해석이기도 하다.
반구대 바위 위에 처음 새겨진 것은 뭍짐승이었다. 선 새김으로 너무 작게 새겨지고 이후에 새겨진 것들로 인해 원형을 잃은 것이 많아 어떤 종류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지만, 띄엄띄엄 몇 마리씩 형상화된 무리는 사슴과 개과 짐승으로 보인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새긴 사람들이 사냥꾼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초기의 암각 이후 새김 주제가 일관되게 사냥이었고, 한반도에서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농경은 청동기시대에 들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인들의 생활반경은 농경인들보다 넓을 수밖에 없었고 신성한 기운이 풍기는 곳에선 무리가 모여 신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새긴 것이 바로 반구대 암석 위에 나타난 그림이라는 것이다. 암각화 작업을 하던 사람들은 당시 샤먼이나 사제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새김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일부 겹치기도 하고 앞선 시기의 결과를 훼손하면서 형상이 더해지기도 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첫 번째 새김이 바위 위에 띄엄띄엄 이뤄졌다면 두 번째 새김은 화면으로 쓰인 바위면 대부분에서 이루어졌다. 대상의 윤곽을 선으로 잡아낸 다음 선 안을 모두 파내는 면 새김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초식동물 무리를 새겼다. 활과 화살을 든 사람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개가 등장하기도 한다. 개가 가축화된 것은 중석기시대이지만 암각화에 등장한 것은 반구대 암각화가 유일하다고 한다. 두 팔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두 손을 크게 편 수족과장형 인물은 샤먼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바위에 암각을 하는 행위는 신앙 대상에게 건네는 그림 기도이기도 하다. 암각화는 거의 영속적이므로 그것을 새긴 사람들은 자신들의 뜻과 내용이 기한없이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면서 그들은 그곳을 떠나고 다른 이들이 찾아왔다.
세 번째 새김의 주제는 고래사냥이었다. 아마 울산만이 태화강 어귀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왔을 것이다. 최소 수백 년에 걸친 여러 차례의 작업 결과로 보이는 암각화에는 57마리의 고래와 배를 타고 고래를 사냥하는 사람, 고래가 왔음을 소리 질러 알려주는 사람 등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는 35종의 고래가 발견되지만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종이 확인된 것은 흑동고래, 북방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들쇠고래, 참돌고래, 범고래 6종이다. 그들은 고래의 머리와 꼬리의 형태로 종류를 구분할 수 있었고, 각각의 고래들이 보이는 특성까지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밖에도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 작살을 맞은 고래, 미완성의 고래가 새겨져 있고, 백상아리로 보이는 큰 상어, 물개, 물범, 혹은 바다사자로 해석할 수 있는 그림 한 점, 바다거북이, 가마우지로 보이는 새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고래와 함께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을과 바다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신석기시대 후기였는지 청동기시대 초입이었는지 모르지만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울산만이 동해 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네 번째 새김은 맹수를 주로 새겼다. 쪼아 새기고 갈기 기법을 사용한 그림은 호랑이와 표범, 큰뿔사슴,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뭍짐승 세 마리, 그리고 덫과 그물이라고 한다. 또 깊고 뚜렷하게 형상화된 사람 얼굴이 있고, 그물 안에 들어 있는 호랑이도 보인다. 사람들이 맹수를 주로 새긴 것은 새로운 유형의 종교화였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신으로 숭배된 맹수들을 바위에 새기고 갈아 더 뚜렷하게 드러나게 했다는 것이다. 앞서 새긴 그림 위에 새 형상을 새로 새기는 일이 여러 차례 거듭되면서 반구대 바위에는 겹친 그림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기법의 차이나 겹쳐 그려진 물상의 차이에 의해 식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해석의 차이를 낳고 때로는 엉뚱한 해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어느 시기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쳐 반구대를 찾았던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이곳도 잊힌 곳이 되었다. 아마 정착생활이 본격화되고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별도의 성소가 만들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마친다.
저자는 이처럼 시간순으로 네 차례에 걸쳐 반구대 바위 위에 그림을 새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위 위에 새겨진 물상들과 그 특성이 주를 이루지만 그들 사이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종교학과 민속학적으로 해석하며 스토리텔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특별한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호소한다. 얼핏 말로만 들어서 알고 있던 반구대 암각화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겹의 기억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난 것도 좋았지만, 기억과 망각과 새로운 기억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혹은 이 땅에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알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읽어볼 만한 책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
| 저자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사랑해 온 유물에 관해 전문적 지식과 개인적 감상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토샵의 레이어를 하나씩 걷어내듯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것들의 의미와 상황을 하나씩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