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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 아무거나 한다 p.94-95 … 나는 오래전에 습작 풍치를 고향집 살구나무 아래 묻었다 데워버릴까 하다가 죽은 사람을 묻듯 땅에다 묻어주고 싶었다 저숨길 노잣돈 하라고 만 원도 함께 묻었다 그러나 습작은 기억에서 사라질 뿐 몸에서 빠져나가지는 않는 듯 나는 그매의 몸으로 여전히 습작을 한다 그의 슬픔과 그때의 헤어짐을 그대로 받아서 연작을 짓는다 다행이다 무엇을 버리는 것이 이렇게 가득할 수 있어서 생활 속에서 이 시집을 읽는다 시인이 어느 시간에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마음으로 빈 종이 앞에 앉아 시를 써내려갔을지를 상상한다. 생활을 꾸려 나가듯 꾸려진 시들은 가까이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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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일상이 깃들어 있는 느낌이다.. 삶의 철학이 한문장 한문장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몸과 마음의 감각을 날 것 그대로 - 매 순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문장들... 제목마저 담백하게 전체를 관통한다.
<어디를 살아도> 당신에게 가는 내 보폭이 핵심 문장이라면 눈먼 그리움은 주석이다 어디를 살아도 부록이었던 인생 너무 많은 희망이 눈을 멀게 했다
불행에 기대는 건 불행의 속살이 가진 미묘한 맛 때문 씹을수록 아리지만 끝 맛에 감도는 감칠맛을 잊을 수 없다
때로는 본문보다 깨알같이 작게 써놓은 주석만 읽다가 하루의 출입구를 닫기도 한다 그 하루는 비린내가 가시질 않았다 어디쯤에서 멈춰야 할 것을 알면서도 지독한 그리움, 독한 회한이 남아 호흡의 질서를 훼방한다
바람이었나 어제 나를 흔들고 지나간 것은 진정 바람이었나 아직도 당신이 남아서 시간의 결 따라 흘러가지 못한다 간이역에서 헤어져 내 앞이나 뒤의 배경이 된 당신이지만 그러나 당신은 내 본문이다 어디를 살아도 선명하다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시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