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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성해나/창비)
이 책은 부모의 재혼으로 만나 4년 남짓 '가족'이라는 이름을 공유했던 네 사람의 이야기다. 잠시 이뤄졌던 가족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건네려던 다정함이 가짜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말도 이야기도, 그리 다정하진 않다.
기하의 아버지는 평생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만 고집하던 사람이다. 새 가족을 맞이하며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디지털 DSLR을 샀다. 변화는 새로운 가족을 기대하는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아토피를 앓는 재하의 흉터를 서툰 포토샵 솜씨로 지우고, 가족 사진을 사진관 쇼윈도에 걸어두었던 아버지. 이혼 후에도 재하의 졸업식마다 찾아가 셔터를 누른 다정한 사람이다. 훗날 재하에게 그 카메라를 쥐여주며 "더 좋은 걸 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맹목적이고 서툰 사랑이었지만, 이 모든 애정이 그에겐 기도였다.
재하 어머니는 기하에게 죽은 친어머니의 자리를 빼앗은 객처럼 느껴질까 봐 늘 조심한다. 친아들과 공평하게 대하려 타미 힐피거 셔츠를 사서 내밀고, 다정하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기하가 기숙사로, 군대로 떠난 뒤에도 그가 좋아하던 콩잎 짠지를 담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전화를 걸어왔다. 끊임없이 거절당하면서도 계속 내어주었다. 평생 온전한 가족을 갖고 싶었던 그녀의 욕심은 이뤄지지 않는다. 조심스럽고 따뜻한 그 품이 모두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19살의 기하는 예민하다. 새어머니에게 결코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저기”, “그쪽”으로 부른다. 홀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세계에 불쑥 들어온 낯선 이들. 가족사진에서 재하가 어깨에 기대자 몸을 뺀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 재하의 병원 진료에 동행했고, 식당에서 재하가 좋아하는 중국 냉면의 뭉친 땅콩 소스를 말없이 풀어주었다. 말로 하지 못했을 뿐,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기하의 방식은 달랐다. 서툴지만 다정한 기도와 따뜻한 품이 기하에게는 조여오는 압박으로 느껴진다.
재하는 친부의 폭력을 감추려 넉살 좋게 굴던 아이였다. 짐이 될까 봐 과장되게 밝은 척했던 11살은, 어른이 된 후 깊은 우울 속에 닫혀버린 청년이 된다. 그 낙차가 이 소설에서 가장 아프다.
15년 만의 재회에서도 둘은 살갑지 않다. 삶이 평탄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주 가던 인릉을 찾은 두 사람은 역광 속에서 누가 기하이고 재하인지 구분되지 않는 두 점 그림자로 남는다. 원망 대신 서로의 얼굴에 드리운 세월의 그늘을 가만히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가족이라는 밝은 빛 아래에 시커먼 점이 된 두 아이.
고베에 정착한 재하는 새아버지가 남긴 낡은 카메라로 다시 일상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는 허물어지고 없는 옛 사진관 주소로 편지를 부친다. 닿지 못할 편지를.
완벽하지 않아서 상처를 주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소중한 인연을 지난 여름에 두고 오기도 했다. 그 실패가 영원한 비극은 아니다. 함께 중국 냉면을 나눠 먹고 서로의 등을 쓰다듬던 서툰 다정의 시간은, 남은 생을 살아가게 하는 작은 이정표로 남는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함께였던, 완성되지 못해 두고 왔지만, 그래도 삶의 귀퉁이가 된 그 여름으로 남는다.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 이상 슬프지 않기를."
재하가 부친 수취인 불명의 편지는, 두고 온 여름을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 안부다.
2026.06.07
#두고온여름 #성해나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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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빛을 걷으면 빛을 읽고 팬이 되어 이번에도 두고 온 여름 셀레는 맘으로 구매해봅니다. 성작가님의 글은 따뜻하고 성실한 향기가 나요. 얼굴만 예쁘신 것이 아닌가봐요 ㅎ 줄거리 보면 웬지 우리 가족 얘기와 비슷할 것 같아 저에게 더욱 많이 와 닿을 것 같아 구매했습니다. 이 책에서 많은 의미를 찾기 바래요. 출근하는 길에 열심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요즘엔 업무에 도움되는 책만 읽어서 제 정신건강을 말랑하게 만들어 볼 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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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빛을 걷으면 빛을 읽고 팬이 되어 이번에도 두고 온 여름 셀레는 맘으로 구매해봅니다. 성작가님의 글은 따뜻하고 성실한 향기가 나요. 얼굴만 예쁘신 것이 아닌가봐요 ㅎ 줄거리 보면 웬지 우리 가족 얘기와 비슷할 것 같아 저에게 더욱 많이 와 닿을 것 같아 구매했습니다. 이 책에서 많은 의미를 찾기 바래요. 출근하는 길에 열심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요즘엔 업무에 도움되는 책만 읽어서 제 정신건강을 말랑하게 만들어 볼 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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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가 주관한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를 한 작가. 투표 이전에는 이름도, 작품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궁금... 해소하려면 작품을 읽어봐야지. -아... 이런 멋진 작가가 있었구나. 아껴가며 조금씩 읽었지만 책장을 덮으니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실제 작품 분량이 140쪽이 되지 않으니... 하지만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밀려오는 여운이 적지 않다. 아! 좋다! -책은 기하-재하-기하-재하의 순으로 진행된다. 당연히 제목은 중심인물의 이름이다. 둘은 형제이지만 엄마도, 아빠도 다 다르다. 즉 재혼 가족이란 말이다. -첫 번째 기하 - 뭐랄까? 가을날의 마른 풀의 서걱거림, 건조한 공기의 느낌이다. 상당히 건조하게 기하와 기하 어머니가 자신의 집(가족이 아니라)으로 편입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표현한다.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기하, 그에게 새어머니의 낯선 친절을 불편하기만 하다. 끝없이 밀어내는 이와 다가서는 이. 긴장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낯선 이물감. 첫 번째 기하를 읽은 느낌이다. -첫 번째 재하 - 경어체. 폭력적인 아버지를 떠나 기하의 집으로 들어온 자신과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새아버지의 따뜻한 배려, 어떻게든 기하의 마음을 열려 노력하는 어머니,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는 나. 새로운 가족을 찾았지만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는 자신과 어머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변 아련한 슬픔에 조금씩 젖어들고 만다. 스펀지에 잉크가 스미듯 밀려드는 슬픔. 첫 번째 재하를 읽은 느낌이다. -두 번째 기하 - 4년 간의 짧은 시간이 흐른 후 가족은 해체된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 맞이한 서른일곱살, (거의 망해가는) 주택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기하. 우연히 스트리트 뷰를 보다 정말 우연하게도 발견한 재하와 재하의 어머니. 기하를 그(들)를 만나러 간다. 꽤 많은 시간의 간극은 두 사람의 성격도, 위치도 바꿔 놓았다. 어딘가 수다스러운 기하를 어색하게 혹은 낯설게 맞이하는 재하. 그 곳에는 어머니의 부재와 경제적 궁핍함이 자리잡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와 같이 갔던 인릉을 다시 찾은 그들은 이전에 두고왔던 아련함과 안타까움과 미련을 끝내 되찾지 못하고 헤어진다. -두 번째 재하 - 일본의 고베로 넘어간 재하. 여전히 낯설지만 조금씩 그 곳에 적응을 해 간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 재하는 조금씩 활력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사진의 피사체 역시 어둡고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대상에서 아름답고 생동감이 있는 대상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누구도 받지 못하는,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는 편지 한 장을 보낸다.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143쪽)' -어떤 책은 책장을 덮고 사르르 눈을 감게 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여운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한다. 성해나의 '두고 온 여름'이 그렇다. 아픔을 간직한 네 사람이 끝내 그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가슴 속에 자리한 말 한 마디를 건네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 옛날 인릉에 두고 온 여름은 성인이 된 다음에 다시 찾은 인릉에서도 끝내 찾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헤어진다.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조금 길지만 마음에 깊이 파고든 문장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들(88쪽)' 이 소설의 핵심적인 문장이자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제시하는 문장이다. 꿈결같은 4년의 시간들. 그 꿈이 비록 행복한 꿈은 아니었을 지라도 두고두고 가슴에 스미어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기억들 그리고 사람들. 분명 같이 한 시간은 홀연히 사라졌지만 생의 순간순간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는 시간들. 그렇게 기하와 재하는 시간을 넘어서 만났다 헤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는 또다른, 두고 온 여름이 남는다. 사실 기하도, 재하도 그 여름에, 그 인릉에 두고 온 것은 없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38쪽)'은 것이다. 그것은 못다 한 말일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한 가족일 수도 있고 닿지 못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푸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가정을 이뤘지만 끝내 하나로 녹아들지 못했던 네 사람.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날카롭게 거부만 했던 기하, 신체적 고통(아토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맞이한 형에게 다가서려 했으나 끝내 벽에 부딪쳐 그냥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던 재하. 그들의 부모도, 그들도 그렇게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남겨 놓은 채 또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넘어서고 만다. 채워지지 못한 빈 자리는 인릉에도, 그들의 가슴 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뿐. -이상하게도 책을 읽으며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소재만 같을 뿐 분위기는 전혀 다른데 왜 그럴까? 아마도 두 작품이 주는 여운 때문일 것이다. '두고 온 여름'은 섞이지 못하는 가족을,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사랑과 배려로 따뜻하게 새 가족을 맞아들이지만 두 작품 모두 잔잔한 여운을 주는 측면에서는 같다. 아마 그래서일 거라고 스스로 답을 내려본다. -등장인물 모두 슬프고 아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읽고 나서도 더 아련해지는 이유이다. 그들이 행했던 말과 행동들은 저 유명한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처럼 '소리없는 아우성'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서로에게 닿기 위해 무한히 날개짓을 하지만 그것은 소리가 없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혼자만의 아우성이었다. 허나 그걸로 다인가? 그렇지는 않다. 뒤늦은 후회로 다시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직접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받을 수 없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중심 소재인 사진. 사진은 말로써 전하지 못한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는 매체이다. 또 사진은 단지 그 한 장면으로 인해, 그 순간의 포착으로 인해 전후 관계 혹은 장면의 맥락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찍던 사진의 소재가 재하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그들의 어두운 내면이 그대로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새어머니와 같은 프레임에 잡힌 기하의 모습은 일견 평온해 보이나 그 둘 사이의 신경전은 전혀 나타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사진이 의미있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현상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사진은 말하지 못한, 두고 온 그들의 사연을 집약적으로 제시하는 증거이자 역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아리다. 기하와 아버지, 재하와 어머니. 그들이 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영영 관계없는 타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이 보낸 4년의 시간이, 그 구멍 숭숭 뚫린 추억이 가슴에 조용히 밀려오더니 큰 해일이 되어 덮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슬픔과 그리움은, 추억과 후회는 언제 어디서나 보편성을 갖는다. -부디 기하나 재하 모두 안녕하기를...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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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 책 읽고 두고 두고 온 여름 소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많아진 듯 싶다. 꼭 읽고 싶은 책인데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두고 온 여름 책 보면서요 이 책 속에 주인공은 재혼한 가정이기도 하고 한 편은 어렵게 사는 모습이다. 따뜻한 맘 보다 뭉클한 얘기 일수 있다는 생각 들었다. 이 책 속에 주인공은 사진관으로 해서 물러받는 가훈 아닐까 하는 생각 들었다. 재하의 삶은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성공해서 당당하게 사는 건지도 모른다. 두고 온 여름 이야기가 이렇게 결말을 맺을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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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도 아름답고 내용도 너무 좋아요. 책을 읽다 울었다는 지인이 있는데 포인트는 다르겠지만 저도 많이 먹먹했답니다. 서사를 버무리는 솜씨가 남다르시고 한자어가 잘 스며드는 문장을 읽을 때 한번 더 고개를 주억이게 하는 것도 작가님만의 장점이라는 것을 두권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MZ세대의 감각으로 전세대와 잘 소통하는 것도 멋지고요. 작가님을 주변에 널리 소문낼게요. 건강하고 아름답게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힘들면 쉬면서( 통창이 있는 집이나, 고베?도 좋을 것 같아요.) 지치지 말고 오래오래 좋은 작품 많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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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뜨겁게 달군 『혼모노』의 작가, 예스24, 2024년 젊은 작가상 1위에 선정된 작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해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열아홉 살의 기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열한 살의 재하와 가족이 되었다. 새어머니는 기하와 친해지려고 다가서지만 기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재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노력한다는 게 눈에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면 모르겠지만,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 새로운 가족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은 성인이 된 기하가 4년 동안 가족으로 지냈던 재하와 재하 어머니에 대하여 좀 더 다가서지 못했던 후회의 감정을 말한다. 그와 동시에 재하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던 기하 형과 다정한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새아버지를 기억한다. 조곤조곤 말하듯, 편지 형식으로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서술한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에게 ‘저기’ 혹은 ‘그쪽’이라고 불렀다. 반면 재하는 아버지와 금세 친해져서 우리 막내,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기하는 곁을 내주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다시 만나면, ‘잘 지냈니?’라는 말을 할 것 같았다. 늘 혼자 찍던 사진을 재하가 온 뒤 가족사진을 찍어 기하의 사진이 놓인 자리에 가족사진을 두었다. 왜 재하와 재하 어머니께 다정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시간을 지나, 마치 지난 안부를 묻는 듯하다.
농밀하게 자란 오리나무 사이에서 한 무리 새떼가 날아올랐다. 능을 완전히 나서기 전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푸른 기운을 띄던 숲이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38페이지)
아무래도 소설의 제목을 암시하는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버지가 자주 출사를 나가곤 하던 인릉을 방문할 때면 홍살문을 빠져나올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남겨둔 거 같은 마음. 누군가가 붙잡는 거 같은 느낌. 아버지에 관한 서운함이 재하 모자를 멀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다정함을 처음 느껴보는 재하에게 기하는 어렵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기하와 재하는 모두 친형제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반추한다. 친형제였다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열한 살의 재하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새아버지에게, 형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든 노력에 마음이 아팠다.
가족인 척하며 산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진짜 가족은 느끼지 못할 감정일 것이다. 비록 4년을 함께 했을 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쌓아두고 있지 않았을까. 먼 훗날 떠올려보며 그때 조금만 마음을 열었다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반면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재하는 그렇게 애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 한편으로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는 상상 말이다. 재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재혼하지 않더라도 형제만큼은 친형제처럼 고민을 얘기하고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로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상당히 냉정했다.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뀐 전화번호를 주지 않고, 그런 줄 알면서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먼 훗날 우연히 마주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해나의 문장이 좋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고, 풀어가는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감동은 배가 된다. 어긋났던 관계를 뒤돌아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열고 대하지 않을까.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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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지은이 성해나, 펴낸 곳 창비, 172쪽]을 읽고
여백이다. 주제는 여백이지 싶다. 사 년 남짓 잠시 가족으로 지냈던 이들의 이야기면서. 등장인물은 기하와 기하 아버지, 재하와 재하 어머니. 그 네 사람이 함께 지낸 공간은 기하 아버지가 이십 년 넘게 운영해 온 사진관이고. 쇼윈도에 걸린 사진, 아저씨 아들내미 맞죠? 그럴 때 아버지는 기하의 머리칼을 마구 흩트리며 웃는다. 창피하냐고 묻는 아버지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누구나 가장 귀하고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것을 눈에 띄는 곳에 두는 법이다.’ 그리 말씀하신다. 그런 아버지가 변하다니,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니...... 기하가 열아홉 살이 되었던 그해, 재하 모자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를 ‘저기’ 혹은 ‘그쪽’이라고만 불렀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가족으로 섞였다는 묘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재하는 아버지를 거리낌 없이 ‘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르는데. 아버지는 중고 DSLR 카메라까지 사셨다, 이제 나도 시류를 따라야 할 것 같다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면서. 그리곤 가족사진까지 찍어 내 독사진들과 나란히 쇼윈도에 걸어두었다. 사진관 앞을 지날 때면 친구들은‘이렇게 보니까 둘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한 마디씩 던졌다. 재하 모자와 살게 된 후 처음으로 함께 하는 외출은 재하의 홍반을 치료하러 가는 아토피 클리닉이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아버지가 운을 뗐다. 인릉은 아버지가 즐겨 찾는 출사지다. 아버지는 재하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 다정히 조작법을 일러준다. 기하, 내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다. 능을 나서기 전, 잠시 뒤를 돌아다본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곤 온 것만 같았다. 이듬해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들어간 뒤로 본가에 들르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입대한 다음부터 그들과의 연락은 더 뜸해졌다.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사 년 남짓 살았다는 건 그들이 헤어진 뒤에야 알게 되었다. 쇼윈도에 걸린 가족사진을 떼어내는 것으로 그들과의 사 년은 정리되었다. 간단하고 허탈한 이별. 가족도 아닌데 가족인 척하며 살아야 하는 불만과도, 지긋지긋한 가족 노릇 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던 마음들도. 그럼 재하의 기억은 어떠한가! 새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생경하고 낯설었고. 형은 뾰족하고 예민해 보였고. 대중탕에서 새아버지에게 등을 맡겼던 것, 그리고 가족사진. 모두 처음 경험 해보는 일이었고, 폭력적이었던 친부와 달리 세심하고 자상했다. 처음에는 눈치 없이 형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이런저런 군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형을 쓸데없이 귀찮게 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당부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하의 친부가 벌인 크고 작은 사건으로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사 년 만에 갈라선다. 새아버지는 어머니와 갈라선 뒤에도 졸업식마다 찾아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곤 두툼한 사진첩과 자신이 쓰던 DSLR 카메라를 주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첩을 극진히 챙기셨는데......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 놓는, 사진첩을 덮어 본다. 언젠가 또 그것을 펼치겠지만, 우리 삶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은 한순간을 그리고 싶을 때면. 기하와 재하가 추억하는 사건은 대부분 사진과 카메라에 닿아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이 기우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쓰이지 않은, 기억과 감정에 있다. 여백이라 불리는 그들의 시간과 공간과 기억의 굴절들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 번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기하의 삶에서 재하와 재하 어머니는 궁금했다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모의 이혼 이후 남남으로 살아가던 기하와 재하. 서른일곱 살이 된 기하는 성남 주택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나 벌이는 영 시원찮다. 구글 어스에 머무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졌고, 스트리트 뷰 속에서 우연히 젊은 남자와 중년의 부인을 보았다. 확대된 화면을 본 순간 재하 모자였다. 주름이 늘긴 했지만, 그녀는 마지막으로 본 십오 년 전과 비슷하다. 식당은 기하가 사는 곳에서 차로 삼십 분 떨어진 곳이다. 이렇게 가까이 살았구나. 재하반점은 신도시 초입에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긴 했지만, 눈매는 예전 재하 그대로였다. 오랜만이다. 여길 어떻게...... 그 애는 호들갑을 떨지도,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환대하지도 않았다. 재하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말도 듣는다. 다시 둘은 인릉을 산책한다. 아버지가 준 DSLR 카메라를 메고. 그리곤 재하는 고베로 떠난다고 하였다. 여전히 애매한 형태의 관계와 끝내 감당하지 못한 타인의 무게인 걸까? 그들은 서로에게 완전한 과거가 되는 걸까?
[뒷이야기] 작가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소설이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글을 쓸 때마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다. 그것이 좋아 글쓰기를 시작했고,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깊이 쓰고, 신중히 고치고 싶다. 작가의 말에서도 소설의 마지막 장을 쓸 때마다 내가 두고 온 인물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평온하기를 빈다면서, 그들의 삶이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쉼표로 남아 오래 흐르기를 희원한다, 그리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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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님의 전작을 읽고 두번 째 작품을 기대했는데 역시나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한 문장 한 문장 허투루 쓴 것이 없이 견고하면서도 섬세한 구절구절이 독자의 감정을 마구 흔들어 놓습니다. 그렇다고 과한 표현이 있나 보아도 단어 하나 조차 그런게 없는데 내 마음은 왜 이리 먹먹해지는지 신기합니다. 책장을 덮고 여운이 가시질 않아 하루내내 책 속의 주인공들을 되집는 시간을 보냈답니다.다음 작품 빨리 보고 싶어요. 다른 분들도 성해나 작가 작품들 꼭 보세요 |
| 너무나도 좋은 책이에요. 소설집 빛을걷으면빛에서 보였던 따뜻함과 포근함이 이번 소설에서도 느껴져서 여운이 가시질 않는 것 같아요. 성해나 작가님 소설은 항상 잃어버린채로 살았던 감정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요. 읽고나면 메말랐던 무언가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에요. 문체가 책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쉽세쉽게 잘 읽힐 것 같고 책 디자인도 너무 예뻐서 선물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요! 다음 소설책도 기대가 되는 작가님입니다 ㅎㅎㅎㅎ 좋은 책 많이많이 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