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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내가 그래도 가장 좋아했던 말은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고로 나는 생각한다.’ 였다. 최근 들어 이 데카르트의 철학이 오히려 우리 존재의 관념이나 존재자체를 얼마나 기계적인 사고로 바꾸어 놓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철학서들을 접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위기의식은 인류 공동체의 종말론과 맞물려 우리의 존재론 자체의 회의가 일면서 시작된 문제가 아닐까한다. 브뤼노 나르노의 《과학인문학 편지》에서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기토)가 인간이라는 유일무이한 세계상만이 존재한다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인해 오늘날의 생태 위기가 초래되었다며 우리는 생각한다(코기타무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의 접근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나와 세계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이원론적 사유방법이고 스피노자는 나와 세계를 하나로 보고 있는 일원론의 사유방식으로 스피노자는 동양적인 철학방법이다. 데카르트는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사유라고 한다면 스피노자는 세계를 작동하는 섭동의 원리중의 하나로 ‘나’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방식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사유방식이다.)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칭했다. 스피노자를 철학자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게 보는 이유는 아마도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서구 철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배척을 받게 되었다. 스피노자가 주장했던 철학은 바로 데카르트가 권력체계의 중심부에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데 반해, 스피노자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평생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권력자들에 대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에티카》는 이러한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책이다. 이 책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매우 독특한 형식의 마음 치유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 지배하였던 이제까지 알고 있던 우리들의 존재 관념들을 깨며 스피노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세워주는 동시에 《에티카》의 여러 아포리즘을 다양한 정신 질환의 해법과 대안으로 제시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단해주는 독특한 철학서이다.
책은 스물여덟 살 백수 청년 김철수가 매일 밤 스피노자와 토론하는 형식의 대화체로 진행된다. 매일 매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과 싸워야 했던 철수 앞에 튀어나온 스피노자와 매일 밤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사회의 문제를 질문하면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구절로 해답을 찾아준다. 책에 나오는 현대인의 병은 이제는 흔한 병이 되어버린 우울증과 불안증, 게임 중독, 강박증, 집착증, 공황 장애, 조울증 , 피해망상 등의 병들에 관한 스피노자의 유쾌한 답변을 통해 과거 우리의 존재에만 집착하였던 데카르트의 사유의 형식이 아닌 관계 맺기에 주목한다. (이것은 과학인문학의 창시자 브뤼노 나르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에서는 아무것도 연역되지 않으며 ‘코기타무스’(우리는 생각한다)에서는 모든 것이 연역될 수 있다라는 설명과 같다.)
스피노자는 기존에 '나'가 중심이었던 삶을 '우리'라는 관계맺기에 주목하며 우리 삶은 외부에서 영향을 미치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현재 내 삶의 형태나 방식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생명과 공존하며 ,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삶은 세상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든다. 이미 익숙해있던 것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관계를 맺는 그 순간 존재했던 것은 새로운 흐름 형식을 띄게 된다. 불의 흐름, 물의 흐름, 음식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시작되고 새로운 정서를 발생시키는 삶의 내부를 바꾸는 새로운 실천과 약속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초월적 원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자기원인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는 이런 현대인의 병들이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욕망에 대해서도 자신의 욕망이 유한하다는 것, 즉 욕망의 유한함을 긍정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 데카르트의 사유방식으로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지젝이 이제 우리는 공동의 것을 염려해야 하며 공동의 것을 위해 싸우라고 하는 말과도 어쩌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닌 우리 모두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일생을 개인의 자유와 투쟁했던 스피노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나누었으면 한다. 스피노자의 유명한 문구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 처럼, 바로 우리모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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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였다. 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감과 탈근대의 철학의 위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주는 몇안되는 철학자가 바로 스피노자이다. 어떤 다른 철학자의 사상에 기대지 않은채 오직 홀로 사색을 통해서 스스로의 철학을 세워나갔던 스피노자는 어떤 이에게는 이단,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치는 새로운 철학을 제공하는 선구자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써 부모님의 많은 유산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신을 부정한 것으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그뿐 아니라 유대교 신자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홀로 렌즈를 세공하며 스스로 철학을 했던 고독하면서도 독창적인 사상을 가진 철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 자연이 신이라는 범신론적인 사상인데 단지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진술이 아니라 실존적인 인간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나는 풀이하고 있다. 모든 철학책이 그렇듯이 철학적 진술은 깊고 좁은 사유를 철학적 개념으로 풀어내기에 그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즉 철학을 현대적으로 적용하고 자신의 삶의 기술로써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한 실천철학적 담론이자 적용서이다. 에티카에 적근하는 방식이 신선할 뿐 아니라 실용적이여서 철학의 현대의 삶에 기술이 될 수 있고 치유서가 될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공방 별난'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인문치료와 철학상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젊은 철학자이다. 저자는 철학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치이고 상처받는 이들의 삶의 기술과 지혜를 가르쳐주어 스스로 헤쳐나가는 해법과 외부의 구조적 공격에서 오는 상처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철학이 줄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인문치료법과 철학상담의 가능성에 대한 결과물이다.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28살의 백수 김철수 군. 서울의 대학 철학과를 나오고 나름대로 스펙을 쌓기 위해서 어학연수를 다녀와 8년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그리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근처 고시원에서 근근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삶이 절망스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으며 여자친구는 곧 떠날것 같다. 그래서 술마시고 늦게 들어와 화장실에 앉는순간 바로 앞 거울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거울이 열리고 스피노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철수의 시대와 스피노자의 시대가 시간을 넘어 연결되고 서로 1시간 동안 대화할 수 있는 창이 열린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철수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자신을 스피노자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를 통해서 삶의 고민과 어려움울 토로하기 시작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상담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삶의 기술로써 철학의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극복해 나간다는 형식이다. 소설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읽기와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김철수는 삶에서 읽어나는 상처와 어려움을 하나하나 스피노자에게 털어놓는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조울중,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이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구조가 주는 정신적 질병인 것이다. 스피노자의 처방중에서 정말로 탁월하다고 생각되었던 방식이 있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전수하여 프랑스 심리치료서 펠릭스 가타리는 제도요법이나 분열분석을 만들어 내었다. 일반적인 심리치유자가 상당가들은 내면의 고통과 삶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너의 마음을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도 이러한 전통적인 심리치유에 대한 방법에 무수히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도 내 마음을 바꿀수가 없어서 내 마음의 상처를 떠나보낼수 없어서 무수히 고민하고 아파하고 있는데 단지 그냥 마음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라고? 이러한 상담은 자기 안에 암덩어리를 자기가 잘라내라는 말과도 같이 들렸다. 전통적인 심리적 치유 방법적 진술인 이러한 말은 대단히 비효과적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다른 방식으로 치유에 대한 방법을 말해준다. 그는 단지 마음을 바꾸라는 말하지 않는다. 내재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므로 인간안에 있는 내재성을 바꾸라고 한다. 나는 스피노자가 말한 '내재성'이라는 개념에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인간은 단지 몇가지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꾼다고 바뀌는게 아니였다. 안간의 내면안에 인격과 생각과 경험의 씨줄과 날줄이 오래동안 짜여지고 배치되어서 한 인간의 내면의 독특한 특성이 생긴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내면안에 짜여지고 배치되어진 독특한 특성을 바로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존의 철학자들의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적으로 구별되는 개념과 인간변화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러한 변화의 방식은 당장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애인과 헤어져 아파하고 있는데 단지 생각만 바꾼다고 마음의 태도를 바꾼다고 내가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애인과의 함께 오래동안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나의 내념에 하나의 내면성으로 짜여지고 배치된 내면성은 단 한순간의 다른 생각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그 애인을 통해서 짜여진 나의 내면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므로서 나는 변화되고 치유될수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내면성'의 개념은 내가 볼때 인간에 대한 매우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인간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생각이나 태도는 바꾸는 피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내면성을 구성하는 관계망과 그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외부를 바뀌어주어 그 외부로부터 인간의 내면성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단순한 하나의 생각으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복잡한 내면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것을 또한 스피노자는 '내면적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철수가 스피노자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스피노자는 김철수에게 자신을 아프게 하는 관계망을 하나의 영역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부드럽게 횡단하여 자신의 내면을 형성하는 힘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말하면서 김철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외부의 관계망의 배치를 바꾸어 줌으로써 인간의 내재성을 변화시켜 고정된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재적 이성'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철학적 치유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환경과 외부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재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환경을 함께 바꾸어주어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이 신'이라는 개념이 조금 이해가되었다. 스피노자의 이 진술은 종교적 진술이 아니였다. 그의 진술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인간을 이해해야하는 인간이해를 위한 진술이였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오해했다. 아마도 그를 파문했던 유대교인들도 그를 오해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진술이 단지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치유를 위한 새로운 인간이해의 진술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좀더 스피노자에게 다가간 기분이다. 이제 나도 스피노자를 만나볼 시간이 된 것 같다. 물론 화장실에서가 아니라 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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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 기도문이 떠올랐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 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불황은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 기업은 명퇴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를 만나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합니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습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보여준 다소 난해한 기하학과도 같은 문장들을 '치유의 방법론'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셀리 케이건 교수에게 하는 말인듯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자유인은 죽음을 성찰하지 않으며, 그(자유인)의 지혜는 삶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셀리 케이건 교수가 한 마디 안 하고 지나갈 사람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시원. 그저 앉아서 책을 볼 공간과 누우면 더 이상의 여백이 없는 곳. 스피노자는 이 시대의 외로운 사람들, 때로는 좌절의 무릎을 꿇고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길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매일 밤 성냥갑 같은 고시원의 우중충한 화장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각 질환을 앓고 있는 대상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20대 백수, 학업과 친구들과의 건강한 관계가 힘든 여고생의 우울증, 감시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증, 가족이 나를 구속하고 있다고 믿는 신경증, 몽크와 같은 강박증,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과대망상증, 성적으로 또는 물건에 대한 도착까지 포함하는 도착증,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과 발작의 공황장애, 현실을 외면 또는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것이 중독이 되는 경우, 집착을 넘어 넘어 경계선 인격 장애, 기분의 업 앤 다운이 심한 조울증,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의 관계망상, 광기가 드러나는 분열증 그리고 끝없는 공포감 등.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위의 증상을 몇 가지 브렌딩한 칵테일을 가끔 한 잔 씩 목으로 가슴으로 넘기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평정심을 흩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저자가 이런 증상들을 나열하면서 현학적인 설명만 늘어놓았다면 이 책은 참으로 무거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입니다. 겉으론 매우 평범해보이는 그 사람들입니다. 등장 인물 중 '상시로 우울증 약을 지니고 다니는 소녀'를 만나볼까요? 우울증(憂鬱症, depression)은 병리적인 수준의 우울한 상태를 말합니다.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우울감과는 다르지요. 우울증에 대해선 각 나라마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 미케니즘이 명료하게 밝혀지진 않은 상태입니다. 워낙 그 기저 원인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고 1년생인 이한별. 어느 날 저녁 이 소녀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 놓지만, 편의점 알바의 눈에 소녀의 점퍼 안에 소주로 추정되는 물체가 숨겨져 있다는 의심을 받자 가방을 던져놓고 도망을 갑니다. 가방안에는 우울증 약과 함께 다량의 수면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자를 통해 스피노자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우는 우울증에 대한 처방을 내려줍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내재성의 차원을 갖습니다. 이 내재성의 차원은 관계 맺기의 차원을 의미하며, 관계는 사랑과 욕망을 형성합니다. 부부, 가족, 학교, 감옥, 병원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생각은 그것이 어떤 관계 맺기인가에 달려 있지 개개인의 마음 상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어서 스피노자는 사람은 어떤 관계를 갖느냐, 어떤 식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정서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답니다. 따라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울감을 만들어내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색다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결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큰 걸림돌이지요. 상대방이 부모일 경우,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의 상사인 경우 등..어쩔수 없이 감당해나가야 하는 관계일 경우가 문제이지요.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욕망은 감소되고 위축되며 우울해질 수 밖에 없지요. 스피노자의 말이 이어집니다. (책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말은 저자 자신의 직설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에티카]에 씌여져 있는 글들을 현대적 해석으로 집어 넣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예속된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색다른 것, 특이한 것이 생성되고 창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변용의 힘이겠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색다른 아이디어가 생기고, 어떤 말이든 자꾸 건네고 싶고, 그 사람과 무엇인가 창조해 보고 싶은 생각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서의 기쁨만이 아니라, 창조와 생성의 욕망이 극대화하는 경우겠지요. 저는 그런 관계의 차원이 공동선에 기반한 민주적 관계망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거나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는 새롭게 배치되고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관계의 차원을 바꾸어야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습니다.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는 셈이죠." 에티카 본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리 19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파괴되는 것을 표상하는 사람은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유지되는 것을 표상한다면 기뻐할 것이다.' 자신의 활동 능력을 촉진하고 증대시키는 것은 기쁨이겠지만, 자신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고 억제시키는 것은 슬픔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쁨을 가져다주는 관계를 찾아나서라는 조언을 해주는군요. 관계의 배치를 바꾼다. 슬픔의 관계를 떠나서 기쁨의 관계 속으로 떠난다. 이 떠남이 결코 셀프서비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럴 때 바로 우리가 주는 위로의 말과 손내밈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틱한 상황만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책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굳이 [에티카]를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티카]를 아직 구경도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책에 그 엑기스가 녹아있으니 그냥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스피노자를 만나보시면 되겠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글들을 읽으면서 '철학' 열차를 탑승한다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단, 스피노자가 우리의 눈물을 닦으라고 건네주는 손수건은 그(스피노자)가 안경 세공을 하다가 건네주는 것인만큼 대충 닦는 시늉만 하시고 꼭 되돌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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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래 보이는 요 책을 통해 서양 철학사를 조금이나마 알게되면서 인상을 받은 철학자가 몇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피노자다.
스피(웬지 서양삘) + 노자(중국삘)로 이루어진 이 애매한 이름으로 인해 난 스피노자가 동양사람인지 서양사람인지도 모른채, 다만 어디선가에서 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위 책 속에 언급된 이분의 철학을 조금 알게되며, 큰 호기심으로 더 공부해보고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해서 집어 든 이분의 저작 '에티카'
책을 펼치는 순간 '디진다 아주' 철학책을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이런식의 말이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다.
'현실적인 지성은, 가량 그것이 유한하건 무한하건 간에 의지, 욕망, 사랑처럼 능산적 자연이 아니라 소산적 자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로 덮었다.
그리고 주위를 좀 쉬운 책이 없나 막 살피는데, 아무리 봐도 쉬워보이는 책은 요 책 '눈물닦고 스피노자'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펼쳐보았더니, 역시 아래 목차에서 보듯이 막 정신질환들이 나와있고, 뭔가 철학 공부라기 보다 '위로 위로 위로','치유 치유 치유' 이런것들로 가득찬 느낌 ㅠ.ㅠ
----------------------------------------------------- 들어가는 말 스피노자, 마음을 치유하다 --------------------------------------------------------------
여기에 한술 더 떠, 그것을 17세기(?)의 스피노자와 21세기 한국 고시원생이 접선을 이루어 얘기를 풀어간다라는 엄청나게 황당한 방식으로 글이 써져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ㅠ.ㅠ
정말 보기 싫었다.
그런데 대안이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진아 도서관에 스피노자 책 중 쉬워보이는 건 이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런데,
그런데,
이 책 꽤 괜찮다.
일단 고시생이 처한 현실및 주변이야기가 현실성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공감하고 다음이 궁금하기도 할 정도로 집중하기 쉽게 되어있다.
형식이 자유로운 소설과 달리, 저자가 하고 싶은 구성에 맞추기 위해 끼워넣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로의 완성도나 흡인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책은 한가지 정신질환을 주제로 하여 그 안에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풀어낸 해법을 제시하는 식으로 챕터가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좀 낯설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적인 스피노자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을 익히는데는 도움이 되었고, 뭐 좋게 생각하자면 그와 더불어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으니 이또한 공부로 생각하면 되리라.
전체적으로 괜찮은 책이고 자신감을 잃고 절망에 빠진 많은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만 책에 나오는 많은 각주를 그 페이지 밑에 배치하면 읽기 쉬울 텐데, 맨 뒤로 몰아넣어 계속 뒷 페이지를 들춰봐야 했던 것은 함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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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간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독서량이 늘어갈수록 책을 고르는 안목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 세대는 물론 모든 연령층에게 자신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좋은 책일수록 읽다가 자주 덮고 자신과 자신의 생을 반추해 보는 사색의 시간을 자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인생에 대한 거대 담론이나 우주론 등 심오하고 고상한 원리를 주로 이야기하는 철학자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철저하게 우리 내면을 탐구하고 있고 그 관찰에 대한 서술도 솔직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런 작고 솔직한 인간의 내면 심리야 말로 일상을 사는 우리의 삶에 친근한 철학으로 다가 오고 그런 점에서 착안하여 독특한 형식으로 서술한 저자의 상상력이 빛났다 본문에서는 대한민국 20대 백수의 불안 : 불안증 , 여고생에게 너무 버거운 짐 : 우울증 , 나를 감시 하는 검은 눈 : 피해망상증 , 가족이 왜 나를 구속할까 : 신경증 , 삐뚤어져도 괜찮아 : 강박증 , 열등감과 패배감이 어긋날 때 : 과대망상증 , 당신 안의 욕망을 긍정하세요 : 도착증 , 나를 갉아먹는 끔찍한 기억 : 공황장애 ,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 : 중독 , 멀러지지 마! 넌 내 거야 : 경계선 인격 장애 ,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끊임없는 반복 : 조울증 ,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 : 관계 망상 ,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 분열증 , 나 지금 떨고 있니? 공포증 .. 이렇게 총 14단락에 걸쳐 우리가 흔히 만나게 되는 정신의 이상 상태를 일상의 쉬운 예를 들어 과연 이런 이상이 어디에서 비롯하였고 그 치유법에 대한 대안으로 마음을 어떻게 가지는 것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정신병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알고 보면 우리의 내면과 무의식에 항상 잠재되어 있으며 그런 잠재된 것들이 어떻게 표출 되느냐가 문제임을 제대로 직시할 때 그 문제가 전혀 심각하게 표출되지 않고 일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설명 한다 그리고 각 단락 마다 새로운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등장하여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야기 속에 각 인물들이 갈등하고 그 갈등의 원인과 과정 해법들에 대해 스피노자가 즐거운 유령처럼 등장하여 아주 쉽게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고 그 명쾌함 속에 스피노자 철학이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스며들도록 구성 되어 있고 한 단락을 읽고 나면 마치 즐거운 콩트나 단편 소설을 한 편 읽고 난 후 그 소설 속 인물에 나를 이입시킨 후 스피노자 선생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고 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매 단락이 시작하기 전 ‘ 도착증 perversion은 이상성욕이나 변태성욕 등 성적 이상도착증에 한정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사물화 현상인 페티시즘fetishism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소유 집착형 사고나 성공주의적 사고에도 도착적 증상이 나타 난다 도착은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기본 심성을 구성하는 작동 방식을 갖고 있으며 매우 흔하며 일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사회병리의 근원 이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 스피노자는 “인간은 왜 예속을 영예로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피학에 대한 단상을 제출하면서 최초로 인간의 욕망 왜곡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 처럼 그 단락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스피노자가 주창한 학문을 중심으로 간략히 설명하고 요약해 놓고 있어서 재미 위주로만 이야기가 흐르지 않도록 한 점이 보기 좋았다 아뭏튼 이 책도 한 번 읽기엔 부족함이 있고 스피노자 철학이 궁금하거나 일상사에서 겪는 정신 병리학적 상황을 만날 때 마다 꼭 꺼내서 다시 읽어 봐야할 책이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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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닦고 스피노자』, 신승철, 동녘, 2012.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명상에 관한 책을 읽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스피노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유명한 말로만 알고 있었던 철학자가 스피노자였다. (사실 이 말을 마틴 루터가 했다는 설도 있긴 하다.)
내 사고방식 안에 한동안 제대로 또아리를 틀고 있던 모더니즘적 요소를 겨우 몰아낸 자리에 뜬금없이 들어선 철학자가 스피노자라서 내심 놀랐다.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나를 지탱하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나는 내러티브 상담을 하면서 그런 목마름이 있었다. 기존에 명쾌하다고 나름 받아들였던 칸트 철학에 심한 거부감이 들 때쯤 스피노자를 만난 것이다.
이 책은 동국대에서 철학박사를 하고 많은 저서를 남긴 내 또래의 신승철 박사가 스피노자 철학을 상담에 적용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과 그들의 정신 병리적 문제와 그에 따른 에피소드들을 엮어서 재미있게 쓴 것 같다. 우선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를 직접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상담에 접목할 요량으로 저자는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에 대한 에피소드를 구성하였다. 주인공인 김철수라는 철학입문자가 매일 새벽녘에 350년을 거슬러 나타난 스피노자를 직접 만나서 그날 그가 겪었던 이런 심리 증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질문하고 답을 듣는다. 고시원 좁은 공중화장실 변기에 앉은 김철수와 화장실 거울에서 나타나 보이는 스피노자와의 대화는 꽤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고시원을 중심 무대로 펼쳐지는 김철수와 주변인물들의 삶은 이 시대의 골목 어디서나 튀어나올 법한 루저들의 답답하고 아슬아슬한 일상이라서 실감난다. 저자의 스토리 구성 능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현대인들의 정신 질환에 대한 처방에 과연 17세기 인물인 스피노자의 철학이 먹힐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는 결론이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이 돼라'고 했으며 그 스스로도 별난 철학자의 삶을 살았다. 45년이라는 짧은 삶을 산 네덜란드인 철학자 스피노자는 독신으로 살았으며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상속받지 않고 당시의 첨단산업인 유리세공인으로서의 생업을 유지하며 철학을 한 인물이다.
그가 주장하는 '신체 변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이 많은 우리 시대 도시인들이 관념에 사로잡혀 불안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그는 관념론의 거장 데카르트와 상극이다.
스피노자는 과감히 '되기'를 선택하라고 한다. 고립되지 말고 부드러운 흐름에 따라 삶의 접촉 경계면을 과감하게 횡단하라고 말한다. 한편, 광범위한 불안 증세에 휩쓸린 우리에게 '사랑'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욕망과 광기를 동반하게 되는 사랑이 없어서... 즉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아서 우리는 미쳐가는 것이다.
'내재성'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우리는 내재적인 삶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초월적인 권력의 힘에 예속된다고 보았다.내 삶에 내가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 시대에 대하여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현실을 자유롭게 횡단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월적인 권력이 되지는 말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후대에 등장한 니체의 조증적인 철학과는 대치된다.
'몸과 마음이 평행을 만들어라'는 주장에서 그는 균형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야 한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스피노자가 주장하는 신체변용은 곧 '삶의 변용'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과 무의식의 조성을 바꾸는 것' 즉 강력한 '되기'의 과정이 변용이다.
무의식은 후대의 프로이드가 본격적으로 화두를 던진 것 같지만 실은 스피노자가 원조라고 한다. 프로이드 철학에서 모든 문제는 무의식으로 수렴되며 그 무의식은 과거에 철저히 기반한다. 스피노자의 무의식은 미래형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 관점에서 보면 프로이드처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변용의 흐름을 절단하고 평가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게 만든다. 이것은 초월적 이성이다. 스피노자는 사랑과 욕망의 역능에 따라 변용의 흐름에 기반한 이성, 즉 '내재적 이성'을 강조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저자의 말처럼 '관계의 정서적 심리적 영역이 흐름이 아닌 고정점으로 나타날 때' 문제가 된다. 이때는 관계의 배치 자체를 바꿀 필요도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인은 저자가 정리한 대로 '죽음의 공포가 아닌 삶의 욕망만을 사유하면서 역동적인 생명에너지의 생성과 창조의 주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겠다.우리 삶이 변용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고,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꽉 짜여져 있다고 여겨질 때 온전히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나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산다면 나또한 지구가 멸망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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