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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키우고 있다. 큰 딸의 사춘기 진입이 예사롭지 않다. 과거에 비해 말수가 줄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짜증을 많이 낸다는 걸 느낀다. 예전 같았으면 꿀밤을 한대 갈겨주었을 텐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흔히 여자아이의 사춘기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고민과 공부 없이 지나치기에는 아빠로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책 몇 권을 골랐다. 우리 시대 가장 잘나가는 젊은 작가 손보미의 신작 『사랑의 꿈』은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왔다.
http://blog.naver.com/gils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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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책을 읽고
사랑의 꿈 연작소설은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구입한지 좀 되었지만 오늘에서야 읽게 되는 듯. 요즘에 일이 바빠서 잘 못 봤지만, 틈틈히 보는 중이다. 사랑의 꿈처럼 혼자 스스로 극복해가는 과정일거라 생각한다. 좀 부족한 점도 있지만요. 사랑하면서 꿈 꿀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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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연작소설 문학동네 출판
연작소설이지만 특이하게 각 단편들마다의 주인공들이 친밀감 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사랑의 꿈>의 엄마, <해변의 피크닉>의 딸, <첫사랑>에서 이사간 이웃의 이야기는 정우맨션이라는 동일한 장소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편모, 이혼, 재혼 가정의 이야기들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아프게 와닿는 장면이나 공감되는 부분은 없었다.
그 중 <불장난>이 기억에 남았다. 여자아이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들이 내 유년기를 떠오르게 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인지도 모르겠던 감정들, 그냥 집에 있을 뿐인데도 평온한 기억들은 소설과 전혀 다른 배경이었음에도 그 시절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렴풋한 사진 한 장처럼 기억에 남은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주는 듯했다. 중간 중간에 그 기억이 정확하게 맞는지 흐리다는 표현들이 많은데 기억하고 싶은 내용으로 그 기억들이 변질되었을 수도 있고, 몰랐으니 그 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순수함 또는 답답함으로 지난 자신의 시간을 옹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님의 소설마다 강조하는듯한 단어 하나가 있다. 문장 속 글씨체가 다른 단어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독파를 하는 다른 분들도 궁금해하는 듯하다. 이 궁금증은 곧 있을 5/18일 줌토크에서 질문을 하기로 해야겠다(^^)
▣ 밤이 지나면
외삼촌 부부네서 사는 ‘나’ 말하지 않는 화자가 어린 마음에 무슨 억한 심정이 담겼길래 입을 닫았을지 초반부터 안타깝고 사연이 궁금해졌다. 아빠 엄마의 이혼으로 죽었다고 말해도 전혀 가슴 아프지 않는 것은 상처를 외면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입을 닫았나? ‘양예은’이 배구공으로 계속 치는 것을 맞기만 했는데 아마 나도 꾹 참고 견뎠을 것 같다. 오기로 맞으면서 말을 절대 하지 않으려고.. 몸이 다치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는 것은 놓치지 않겠다는 쓸 때 없는 오기로..
시간이 좀 지나면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어둠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후회를 떠올릴 때도 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런 것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게 되리라. 마치 어떤 잘못이나 실수도 저지른 적이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P58
▣ 불장난
예전엔 그랬지, 비오는 날 번개가 치면 정전이 자주되어 집에 늘 초가 비상으로 대기해 있었고 그런 날은 가족이 모두 모여 쓸 때 없이 재잘 거리거나 밖에 다른 집은 불이 나갔는지 둘러보는 때가 있었다. 정전된 집에 배가 고파 냉동실의 떡국떡을 촛불에 데워 먹는 모습은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게 했다.
책을 사줄 어른이 남들의 두 배(물론 정확히 두 배는 아니었다. 1.5배!)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왜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왜 이들은 내가 이렇게 얕은수를 쓰게 만든단 말인가?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바로 이게 내가 느낀 혼란스러움과 상처의 정체였다. P84
내가 그들에게 화가 났었나?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그런 감정은 점차 불장난의 열기 앞에서 힘을 잃어갔다. 다만, 나는 화난 기색을 유지하는 게 불장난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여겼다. P124
다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삶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호들갑스럽게 기대했던 순간들이 그저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P128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착각과 기만,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P130-131
▣ 사랑의 꿈
사랑하는 남자와 딸을 낳았으나 그는 부잣집이었고 자신은 남자의 가족과 어울리지 못했다. 시종일관 할머니의 세심함을 자신에게 투정으로 절망적 기분으로 만드는 아이때문에 짜증이 난다. 시댁에서 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무기력한 자신에서 딸과 함께 독립해보고자 행정실 취직도 하며 달라지려고 하는데, 어느 날 고양이를 차로 치고, 묻는 과정에서 예전 딸을 버리고 싶었으나 버릴 용기도 없었던 자신이 떠올랐고, 이 고양이를 묻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는 듯 하다. 콤플렉스를 숨기지 않고 자신있게 드러내는 공주연과 자신이 속하지 못했던 시댁과 왕래를 하는 딸을 보면서 주인공은 질투를 했던 것일까. 표제의 소설이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심드렁한 말투 속에는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조바심과 반감이 숨어 있었다. 반감. 하지만 그애가 왜 반감을 가진다 말인가? 그애가 대체 누구에게 반감을 가진단 말인가? 그게 마땅한 일인가? 그녀는 그애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그냥 본능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시험에 들게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며 덫을 놓지만, 정작 그런 후에는 아무도 그 덫에 걸려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나약한 이율배반 같은 것. P136
그래. 그녀는 딸을 떠나고 싶었다. 그 당시 그녀는 절대로 ‘딸을 버린다’는 표현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건 자기기만이나 허영심, 혹은 죄책감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아, 물론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P168
어떤 사람들은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절대 멈추지 못한다. 아니, 자신이 하려는 일이 진실로 미친 짓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일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그 일을 완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P180
▣ 해변의 피크닉
이혼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아빠의 죽음이후 엄마와 사는 어린 여자아이. 반쪽짜리 삼촌과 여자친구를 할머니와의 해변의 피크닉에 초대하고 디저트를 먹는 장면에서 모두가 본 마음을 숨긴채 가짜의 웃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어리다고 해서 단어를 모른다고 해도 그 흐르는 분위기는 알 수 있으니까.
비약. 건너뛰는 것. 그건 어머니의 신념이 작동하는 방식이었고, 단순한 눈가림이나 위장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때때로 어떤 진실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런 식의 건너뜀이 필수불가결했다. P193
우리를 몇 번이고 크게 웃도록 맹렬히 격려한 건, 우리 스스로를 그 이야기 속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열망이 담긴 본능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그 더럽고 지저분한 세계를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 자신은 그 세계 바깥에 있고 싶다는 열망이 반영된 행위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 열망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었다. P241
▣ 첫 사랑
정우맨션에 사는 중학생 소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새아빠와 막 태어난 동생.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춘기 여자 아이의 마음이 잘 보였다. 하지만 편지의 이름만 보아도 두근두근 가슴뛰던 턱님이 첫 사랑인지 과외 선생님이 첫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우지끈하며 땅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새로운 대륙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별안간 떠오르는 과거의 편린들. P253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때때로 진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있는 힘을 다해 손에서 탈탈 털어내지만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입안으로 가져가고야 마는 과자 부스러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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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보미 작가님의 연작소설 사랑의 꿈을 봤는데요 손보미 작가님은 젊은작가상 최다 수상 작가이고 2022년에는 불장난으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네요 각 단편 속 인물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작품이 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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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님의 <사랑의 꿈> 리뷰입니다. <사랑의 꿈>에 실린 단편 <불장난>을 인상깊게 읽어서 다른 '십대 여자아이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었어요. 어린 여자아이의 이야기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오히려 그나이대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이기에 심오하고 묵직할 수 있던 관찰과 독백들이 인상깊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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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면」 “나는 아주머니들의 말을 엿들으며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이혼을 했고 자식이 죽었는데, 그녀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대체 어떻게?―이었다. 그리고 동네 남자들을 ‘꼬시려 든다’는 것. 외숙모는 욕설을 내뱉은 후에는 내게 그 말을 들었냐고 되묻곤 했지만, 그런 말―꼬신다든가 바람을 피운다든가―을 할 때에는 별로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내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거라고―잘못―판단했기 때문이었다...” (p.27) 줄표의 안과 밖을 오가며, 주고 받는 티티카카가 만들어내는 소소한 긴장감이 재미있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특징이다. 여하튼 엄마와 열다섯 살의 나이차가 나는 외삼촌 댁에서 외숙모의 보살핌(?)에서 살게 된, 한동안 말을 잃은, 내가 겪는 납치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저 문장 속의 ‘그녀’이다. 나와 외숙모, 나와 영예은 사이의 긴장감은 그녀와 동네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과 비슷한 결이었을까. 어쩌면 납치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의 도망은 그러한 동병상련에서 나온 것 아니었을까. 「불장난」 “...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반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내 얼굴과 선생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누구도 가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그 세계는 터무니없으면서 치명적이고 느긋하면서도 통렬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내 마음속에 꼭꼭 새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생각은 시간이 흐른 후에 착각, 기만, 허상에 불과하다는 판명이 날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그런 기만과 착각,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의 진짜 용도가 될 것이다.” (pp.130~131) 아주 잠시 그녀의 존재가 불분명하여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나의 아버지와 불륜의 관계였다가 나중에는 어머니가 되었고 급기야 장모의 역할을 해야 했음은 잠시 후에 밝혀진다. 그러한 관계의 전이가 이뤄지는 동안 나는 어린 학생이었고, 불량한 학생들을 둘러싼 소문에 호기심을 가졌으며, 어느 한 순간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나 곧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나는 불장난을 시작하게 되었다. 불장난이라는 단어가 중의적으로 가리키는 바가 소설 속에 다양하다. 「사랑의 꿈」 “어떤 사실은 그저 있는 그대로 쓰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된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써서는 안 돼요. 그러니까 그건 언제까지나 당신 마음속에만 있어야 해요.” (pp.150~151) 지방의 유복한 집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딸을 낳았고 이혼을 하고 그 남자가 죽었다. 그녀는 방학이면 그 남자의 엄마가 있는 집에 달을 보내고, 그 엄마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 그녀는 아주 작은 선택들, 아주 사소한 충동의 결과들이 누군가를 들끓게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그런 결정들이 삶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p.185) 「해변의 피크닉」 ”... 그날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어떤 여자를 ‘예쁘다’고 표현하기까지 아주 복잡한 과정들이 수반된다는 점이었다. 그건 단순히 얼굴의 어떤 한 부분―눈이나 코, 입―이 보기 좋다거나, 배열이 잘되었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예쁘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어떤 요소들을 매 순간 초월하는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pp.167~168) 스토리라는 소설의 외곽보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장의 윤곽에 더 눈이 갔다. 「첫사랑」 “여기서 이야기를 끝마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면서도, 더 나아가다가는 자칫 이 이야기 속의 어떤 부분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족을 붙이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에서 나는 이미 졌다.” (p.312) 원래대로라면 이런 사족은 소설의 완성도를 크게 해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주인공에게 파도처럼 덮친 두 개의 ‘첫사랑’(이라고 불러도 될지...)의 귀여움이 이 사족마저 귀엽도록 만들고 만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겪었을 심각한 귀여움의 시기라고나 할까. 「이사」 “... 그러나 그 순간―그녀가 나 때문에 눈물이 난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그녀만큼 나를 사랑한 적은 없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으리라고. 그러므로 그녀가 허언증 환자에 거짓말쟁이라고 할지언정, 아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녀의 매 순간순간은 완벽한 진실에 가까울 수 있었으리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어린아이나 할 법한, 이치에 맞지 않는 망상에 불과했지만, 그날 그 병실에서만큼은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유일무이한 세계같이 느껴졌다.” (p.359) 초등학생인 나를 중학생인 그녀가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를 적당히 속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나의 이사와 함께 이러한 관계는 끝이 난다. 이후 그녀는 나의 어머니에 의해 거짓말쟁이로 치부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그녀의 병실에서 재회한다. 손보미 / 사랑의 꿈 / 문학동네 / 394쪽 /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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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불장난’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손보미라는 작가에 대해 주목하게 되고, 그의 글을 관심있게 읽기 시작한 계기가. 그저 사춘기 소녀의 ‘순정만화’같은 감성적인 내용으로 지레 짐작하고 가볍게 집어 들었지만 ‘불장난’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되고, 12살 소녀의 감상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내면의 갈등과 그로 인한 자아의 성장까지 단순히 성장 소설로만 평가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작품집이 나오면 한번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작가 스스로가 밝히듯 어린 시절 사춘기를 지나온 (초등부터 중3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겹쳐지는)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연작 소설이다. 앞의 내용과 뒤의 작품이 이어지고 모든 작품들이 연관지어지게 생각될 수 밖에 없는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지 못하고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힘을 느꼈다. 약간은 스릴러적인 느낌도 들게 하면서, 또한 묘하게 외삼촌 부부의 학대가 있었나 싶게도 오해하게 만들었던 ‘밤이 지나면’. 여타의 사정으로 엄마와 떨어져 외삼촌 집에 얹혀 사는 열살 소녀의 시각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 그 속에서 철저하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자신들을 위장한 채 살아가는 어른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모습들을 가식과 위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은 바로 그 삶 자체가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일 수밖에 없어서 일 것이다. 조작된 자작 납치극 이후 외삼촌과 외숙모가 보여준 소녀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더 나아가 현실의 팍팍함에 사랑한다는 표현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마음 속에는 누구보다 애틋한 사랑을 주고 있었다는 면을 발견하며 묘한 뿌듯함과 따뜻함을 함께 느꼈다. 손보미라는 작가에게 빠지게 만들고, 다시 읽어도 또 빠지고야 만 바로 그 ‘불장난’.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새 어머니와의 적응과 사춘기를 겪는 반 친구들과의 사이에서의 방황과 갈등을 다루며 열두 살 소녀의 감성과 사고를 정말로 한 순간도 놓치지 못하게 숨가쁘게 보여주고 있다. 집에서도 완전히 마음을 정착하지 못한 채 적응의 과정을 겪고 있고, 학교에서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성장 중인 ‘나’가 ‘양우정’으로 대표되는 소위 노는(?) 아이들의 흠을 잡기 위해 시작한 탐험의 끝의 당황스러움이 나에게까지 미치는 듯 하다. 그리고 그저 웃고 넘어가는 어설픈 광경뿐만 아니라 그만의 수줍음과 당혹스러움을 ‘불장난’이라는 하나의 해소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숨을 쉬지 못하게끔 했다. 요즘 들어 화두처럼 ‘평정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데, 양우정의 당당함과 ‘평정심’. 작가의 말처럼 타고나야 하는 사람들, 선택받은 존재들에게만 가능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평정심’의 또 다른 말이 ‘능청스러움’은 아닐지도 한번 생각해 본다. “분명히, 불길은 허공에서 살아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에 내가 열기에 열기를 더한 거라고, 그건 아주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공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 그 장면은 눈앞에서 선명하고 집요하게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열기를 더해 보고 싶은 요즘이다. ‘딸을 버린다’는 마음의 설정이 충격으로 다가 왔지만, 삶의 힘겨움에 누구든 한번쯤은 마음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라는 확신을 들게 만들었던 ‘사랑의 꿈’. 홀로 아이를 키우며 정해진 날 하루는 마음 맞는 지인들과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며 나름의 조그만 일탈을 즐기던 평범한 직장 여성이 아이를 떠나 ‘도망칠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자 계획했던 그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늘 모임을 주도하고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조정하는 (일정의 가스라이팅처럼) 상대방의 눈을 피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몰래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자 했던 주인공은 스스로 나온 그 밤의 충동적 행위에서 계획과는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가져오는 절박함 속에 드디어 생각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되고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에 집중하며, 특히 자신을 조정해 왔던 그녀까지도 명령하며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게 하는 순간은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전달해 준다. 물론 ‘아이를 버리는’ 계획 자체야 백번 욕을 해도 마땅하지만, 그녀가 그녀 스스로의 주체가 되는 순간에는 어떤 대리 만족과 쾌감까지 느껴본다. 엄격하다 못해 자신만의 질서를 고수하는데 철저한 할머니 댁에서 방학 동안 지내며, 할머니의 세계의 파괴자(?)인 삼촌의 등장으로 겪는 혼란과 갈등, 그리고 형식적 봉합까지를 보여는 ‘해변의 피크닉’. 이 작품 역시 ‘불장난’과 함께 이전에 읽었던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보는 내용은 또 새롭다. 실제 철없게만 보였던 삼촌의 의식과 그저 철부지였던 삼촌의 그녀까지도 외형적 봉합을 위한 숨은 노력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할머니 세계를 파괴하는 빌런 역할의 삼촌이지만 점점 그에게 호기심이 가고,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고, 특히나 어떤 그 시절 겪어야 하는 첫사랑의 기억처럼 마음을 두는, 그런 모든 것들이 이 세계의 절대자인 할머니에게 배신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행위이지만, 기꺼이 그런 배신을 감행하고야 마는 열두살 소녀의 마음이 그저 어린 치기나 한때 누구나 느꼈을 그러한 무모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나는 나중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내 외부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의 핵심에는 허영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소녀가 잘생긴 수학 과외 선생님에게 품은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는 ‘첫사랑’. 그저 잘생기고 명문대생인 대학생 과외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의 감정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설령 입대를 앞두고 술에 절어 후줄근하게 나타남에도 자신만의 ‘환상’을 지키려는 소녀의 마음이 가슴 한켠에 느껴진다. 뭔가 더 나은 신분의 상승을 위해 과외를 시키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소녀는 그 스스로 자신이 설정한 ‘환상’과 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엄마의 마음과 공존하고 있는데, 그 능청스러움과 교묘함이 또한 놀랍기도 하다. 그러면서 동급생 친구가 보내오는 사랑의 감정을 눈치채면서도 애써 부인하며 (현실은 부인하고, 환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자신이 설정한 인식의 틀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귀엽다. 홀로 자신을 키우는 엄마의 수고를 덜기 위해 중학생 언니에게 돌봄을 당하는 나의 모습을 그린 ‘이사’. 일종의 외로움의 감정을 이용해 ‘나’를 마음껏 가스라이팅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어른들의 생각과 사고를 무너뜨리려 하는 발칙한 중학생 언니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에게는 그러한 영악함이라도 필요한 상황의 아슬아슬함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 이성적인 판단에서는 당장 내쫓아야 마땅하고, 나에게 뭐 하나 제대로 돌봐준 적도 없지만 그와 상관없이 ‘나’의 감정을 중학생 언니에게 깊이 쏠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시절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관심’과 ‘사랑’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받아도 받아도 채워지지 않을 그 시절 아이들의 사랑.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도 주어도 모자를만큼 사랑과 관심을 주고 있는 것인지 돌이켜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 중 중학생 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두 팔로 안기고,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경험을 한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가 그려본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한 건 나밖에 없었다.” 나는 나에게 이처럼 솔직해 질 수 있는가? 남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나 또한 ‘허언’의 세계에 발 담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을 그대로 사실로 믿는 정신적 증후군’이 허언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 또한 ‘허언증’에 놓여져 있다. 누구를 위하여 나는 나에게 솔직하지 못하는지, 무엇을 위하여 허언증의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소설이다. ‘나에게 무한히 솔직하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