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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 쓸데없는 죄책감, 그리고 잘못된 선택 운명과 화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 작품의 소개글이 기가 막힙니다. 게다가 정영목 님의 번역까지...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충격과 아쉬움이 담긴 소설입니다. 에브리맨과 울분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지만 이 작품 역시 비교 대상이 높아서 그렇지 매우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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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가독성 ★★★★☆ 소장가치 ★★★★★ 전체평점 ★★★★★
내 마음의 최애 작가가 두 명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네메시스를 읽고 난 뒤로 필립 로스도 최애 작가가 되었다. 처음 읽었던 '울분'에서 정말 울분을 토해내는 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흠뻑 빠졌었는데, 이번 제네시스도 정말로 흠뻑 빠져들었다. 주인공 캔터는 건장한 몸을 가졌지만 심각하게 나쁜 시력으로 인해 원하던 군대에 입대하지 못하고 체육 교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뉴어크의 한 놀이터의 감독이 된다. 남자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야구를 즐기고, 여자 아이들은 근처 골목에서 고무줄 놀이를 한다. 캔터는 그 아이들이 무리하며 놀지 않게 지도하고,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감시한다. 그리고 매년 찾아오는 여름 유행병 '폴리오'. 조금 이르게 시작한 무더위에도 뉴어크엔 폴리오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무결점을 시샘한 것인지 옆 동네에 살던 이탈리아의 불량아들이 캔터의 놀이터에 처들어온다. 그리고는 폴리오를 퍼트리러 왔다면서 곳곳에 침을 뱉어댄다. 캔터는 경찰을 부르고 그들을 겁주어 쫓아낸 뒤 암모니아를 이용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한다. 하지만 이날 이후 놀이터 아이 두 명이 폴리오에 걸려 사망한다. 캔터는 자신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아이들이 폴리오에 걸린 것인가 걱정한다. 폴리오 환자는 조금씩 계속해서 발생했고, 캔터의 약혼자인 마야는 캔터에게 그곳을 떠나 시원하고 안전한 캠프로 와서 일을 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한다. 캔터는 오랜 고민 끝에 캠프로 이직하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생활을 지내던 도중 이곳에서도 폴리오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캔터는 자신이 캠프로 오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뉴어크에 사는 할머니의 전화를 들으며 자신이 놀이터를 더 잘 관리했다면 아이들이 폴리오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또 자책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향한 질책 끝에 폴리오 보균자인지 검사를 맡게 되고, 양성으로 뜸과 동시에 캔터도 오랜 기간 폴리오를 치료를 받게 되며, 겨우 치료되었지만 몸의 반쪽이 불구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가 유행병에 걸려 죽고, 자신 또한 유행병에 걸려 불구가 되는 과정에서 캔터는 계속해서 자책한다. 자신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이 생겼다고 여기고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폴리오에 걸려 부분적으로 마비를 겪으면서 그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데도 그것을 개인적 문제로 스스로 여기면서 한 인물이 어떻게 서서히 망가져가는지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 p.107
이 문장 하나가 이책을 아주 잘 설명해준다고 본다. 어쩔 수 없는 문제에도 개인이 책임감을 가지면 그 개인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읽으면서 지금의 한국 사회는 모두가 '캔터'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성실히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으로 생긴 문제조차도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가스라이팅을 당하다보면 결국 개인들은 '내가 잘못해서'라고 인식하고 타인에 대해서도 '네가 잘못해서'라고 언급해 버린다. 냉철하면서도 인간 내면 깊숙이 잠든 불편한 감정을 아주 잘 이끌어내는 훌륭한 작가임이 분명하다. 반했다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