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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가 자신의 어린 시절 열등감과 극복 노력을 이론화한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나도 아들러처럼 열등감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우월감을 추구했던 경험이 떠올랐다는 점에서, 아들러 이론을 바탕으로 내 성격을 분석해보는 것이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러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열등감을 느끼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정상적인 열등감을 보상하지 못하면 열등 콤플렉스가 되는데, 나도 정상적인 열등감과 열등 콤플렉스 각각을 느낀 경험이 있다. 먼저 정상적인 열등감의 경우,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첫 시험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받았던 경험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 시험에는 전에 공부했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내 노력으로 열등감을 보상할 수 있었기에 이 열등감이 열등 콤플렉스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도 중학교 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데, 첫 시험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받자 열등감을 느끼고 전보다 더 부단히 노력했으나 이어지는 시험에서도 내 노력으로 열등감을 보상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변에 뛰어난 친구들, 그리고 전국에 있는 뛰어난 사람들을 이기기 어려웠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획일화된 입시제도와 무한경쟁체제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느끼는 열등감을 절대 보상할 수 없게 만들고 초라함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의 나는 아직 더 넓은 세계와 다양한 삶의 양식을 알지 못했고, 공부가 인생에 전부인 줄 알았기에 내가 느끼는 열등 콤플렉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때 느꼈던 열등 콤플렉스가 대학교 입학 후 1학년 때까지 이어져 나를 괴롭혔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단순히 공부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발표, 글쓰기 등 여러 능력을 갖춰야 했다. 이미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고 뒤에 숨는 데 급급했다.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이 창피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상담학을 공부한 이후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배웠을 때 이때의 경험이 떠올랐고 그때의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러한 생각과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서 잠시 대학을 떠나 다양한 일을 해보았다. 과외, 카페알바, 사무보조 등 여러 일들을 해보며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학교를 벗어나도 여러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생 선배인 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공통적으로 들었을 때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열등 콤플렉스에 균열이 조금씩 균열이 갔었다.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각자도생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고 도움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구나 싶었다. 깨달음 이후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을 하며 고전 책들을 읽고, ESG 대외활동을 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나는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해서 힘든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다 온전한 상담자가 되어 내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나만의 생활양식을 개발하고 실천하고 있다. 다만 아들러가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고 우월감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가 결국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나 또한 열등감 보상 노력에만 너무 몰두하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 사실 지금도 내 능력 이상으로 일을 벌이고 이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마치 브레이크 없는 차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이 가끔 염려스럽다. 아들러의 열등감 이론에 입각하여 나를 분석해보아도,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다른 이론가도 살펴보았다. 수업을 들으며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매슬로의 자존감과 반두라의 모델링 상황의 특징들이 떠올랐다. 매슬로는 욕구 위계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존중 욕구에 대한 매슬로우의 두가지 정의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자신으로부터의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며, 자기가치감의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존중과 존경이며, 지위, 인정, 사회적 성공의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받을 때에만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타인의 인정이 사라지면 나는 나에게 부족한 존재가 된다. 가만히 있으면 나는 계속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주변에 좋아보이는 것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며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며 따라한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에 비해 모델의 행동을 더 잘 모방한다는 반두라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럼 나는 왜 조건적인 자기가치감만 느끼고 self의 목소리보다는 object의 목소리를 따라 사는 게 익숙해진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로저스의 이론이라면 나의 이러한 모습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저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를 실현하고 유지하며 향상하려는 선천적 경향을 지니고, 이에 의해 동기 부여되는 존재라고 하는데, 왜 나는 자기self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에 로저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실현 경향성의 발현을 막는 것이 바로 조건적 긍정적 존중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나 주변 어른의 조건적 사랑이 아이로 하여금 사회의 규범과 기준을 내면화하게 하고, 이에 맞춰 살아가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바람직한 행동과 태도만 표현해야 한다는 가치의 조건화가 삶의 경험을 온전하게 경험하게 하지 못하고, 경직되게 살아가게 한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이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착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고 믿었다. 내가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내 멋대로 행동하면 모두가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떠나갈 것이라는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혼자 남는 게 무서워서,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이제 이렇게 사는 것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스스로도 무조건적으로 존중해주지 못하는 내가 나중에 내담자를 어떻게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으로 존중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무척 괴로웠다. 상담은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어떤 모습이든 가치있다고 여겨주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등 고민이 많았다. 이와 동시에 로저스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의 마음을 보내고 이를 통해 내담자의 자기 실현경향성의 발현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비록 지금은 스스로를 가치있다고 여겨주지 못하는 나도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받고 스스로에게도 연습한다면 언젠가 self의 목소리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고 자기 실현경향성 또한 발현시키며 유연하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누군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셀리그먼이 행복에 대해 말한 것처럼, 나도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내가 하는 공부에 몰입하며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고 소망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