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에세이도, 희망메시지도, 간지러운 명상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치열한 삶, 매일매일이 100%가 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울리는 충격적인 공명이다. (그 어떤 홍보 마케팅도 없이 입소문으로만 독자들이 이 책의 가치를 전달하고 서로 읽도록 권할 수 있을까? 난생 처음 도서 리뷰를 쓰며 그런 기대를 가져본다.)
요즘 명상(meditation)이 유행이라지만 명상이 무엇인가? 단순히 조용한 곳에서 천천히 차마시고 눈 지그시 감고 머리 비우는 것이 명상인가? 진정한 명상은 치열함이고 간절함이며 매우 구체적인 방법론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책은 가르친다.
이 책이 기막힌 이유는, 그 가르침이 단순히 머리로 전달하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전해주는 것 대신, 딱딱한 교리와 지침을 전하는 대신, 저자 장휘옥은 한편의 드라마,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남김 없이 털어놓고 그 체험을 통해 귀한 가르침을 전달한다.
그녀는 교수로 재직 시절 수십권의 책을 낸 천재적인 지식인이었지만 모든걸 버리고 수행의 길을 갔다. 그리고 10여년의 혹독한 수행의 시간. 그녀가 몸으로 체득한 것을 대중들을 위해 가장 쉬운 언어로 풀어놓았다. 그 깨달음의 경지가 진정 솔직하고 낮은 목소리로 써 있기에 그 울림도 크다고 느꼈다.
궁극에는 참선도 우리가 매순간을 100% 치열하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 아닐까. 매순간을 완전히 몰입해서 살 수 있다면 (공부할 때도 100%, 강의실에서도 100%, 먹을 때도 100%, 청소를 할 때도 100%) 그것이 곧 대자유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이 책이 가르치는대로 "이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깨닫게 되는 길일 것이다. 우리에겐 핑계대고 후회하고 두려워할 시간이 없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
|
어릴 때 어줍쟎게 주워 들은 지식으로 일체의 종교를 거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을 무조건 바보 혹은 죄인으로 만드는 데서 출발하여 신 앞에 무력함을 인정하고 굴복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폐단은 현재 특히 한국의 현대 종교에서는 극대화 되고 있고, 무엇보다 자본주의라는 것과 맞물려 패륜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이러니 한 것은, 시간이 지나며 가장 아쉬움을 느꼈던 것 또한 어떤 '종교' 라는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는 것이다. 단지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정신적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그 무엇이 막연하게 어떠한 '종교' 적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선(禪) 수행법, 그리고 이 책의 근간이 되는 '간화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 이 책은 바로 '간화선' 그 자체이다. 과연 새처럼 자유롭고 사자처럼 거침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냥 넋놓고 앉아서 새처럼 되고 싶다 ... 사자처럼 되고 싶다 ... 라는 바램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 저자 장휘옥 원장님의 불교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학자로서의 삶,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그 교리와 하나되기 위해 뛰어드는 치열한 수행의 길. 또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진정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행하기 위한 도량으로, 남해의 척박한 외딴섬 열어 놓은 오곡도 수련원과 그 안에서의 소중한 발견 !
이 책은 그 어떤 수행자보다 더 치열하고 진실된 수행과 인간은 물론 세상 만물과의 교감을 이야기한다. 그간 소위 '힐링' 이라는 것에 치중했던 달콤한 에세이 혹은 그저 이 세상엔 스펙이나 인맥 혹은 재테크 만이 현대인으로 살아갈 덕목이라는 것에 치중하는 자기계발서는 이제 그만 지겹다면 ...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은 결코 녹녹치 않다. 과연 우리가 사는 지금, 서로가 서로를 소외 시키는 이 시대는 각자가 자신과 삶을 대면함에 있어 결코 한번도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그 어떤 자유도 고통없이 온 적은 없었다. 삶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고 번뇌이다. 이 책은 간화선을 통해 당당하고 인텔리전트하게 또 그 누구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며, 누구라도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을 준다. |
|
통영 오곡도 명상 수련원의 장휘옥 원장은 화엄 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하지만 이론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문 선 수행의 길에 들어선 저자는 10여년만에 마음의 평안을 얻고 제대로 된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지만 저자는 어려서부터 불안 장애, 대인공포증, 자살 충동 등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불교와 평생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려서 감행한 자살 시도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목숨을 가볍게 여기던 자신에게 삶의 불씨를 안겨준 책으로 법현 스님의 인도 구도 여행기인 ‘법현전’을 소개한다. 대학 3학년때 읽은 “깨달으면 자유인이 된다.”는 구절 역시 저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교리를 꿰뚫어 대자유를 얻겠다는 생각으로 동국대학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을 한 뒤 석사 과정까지 마친 후 도쿄대학 인도철학과에 연구생으로 들어간 저자는 정식 시험을 거쳐 국비장학생이 된다. 저자는 도쿄대학 대학원생 시절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은 사연을 전하며 깨달은 자는 눈물도 없이 무감각해야 한다면 불교를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깨달음이란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되찾는 것이므로 수행을 할수록 마음은 더 순화되고 감정은 더 풍부하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30여년전 출가를 권유하신 인홍 스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불도 수행 차원에서 보면 많은 시간 낭비인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불교 교학을 공부해 비로소 실천 수행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출가와 세속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어느 쪽도 소홀히 하지 않는 걸림 없는 무애행”을 사표로 하고 있는 저자가 교수직을 그만 두고 오곡도에 전문 선 수행처를 세운 것은 자신이 불교 공부를 통해 정신적 구속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회 회의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배인 김사업 교수와 함께 세계 곳곳의 다양한 불교 수행처를 둘러본 저자는 간화선 수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 수행이 두 사람의 취향에 적격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들이 처음 임제종 대본산 고가쿠지에서 간화선 수행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이호 방장(方丈) 스님과 독참(獨叅: 정기적으로 스승이 제자를 일대일로 만나 화두에 대해 치열한 선문답을 나누며 제자들의 경지를 점검하고 수행에 매진할 수 있게 이끄는 제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루 한 시간의 수면 시간이 허락되는 집중 수행인 셋신(接心)에 즈음해 방장 스님은 추위와 통증과 졸음을 참는 것을 수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으로 그것은 극기 훈련일 뿐이니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어 중생 구제를 하겠다는 보리심으로 화두를 놓치지 않는 것이 수행이라는 가르침을 폈다고 한다.(지금도 저자는 오곡도 수련원에서 수행 지도를 하며 임제종의 집중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정기적으로 독참을 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무(無)‘자 화두를 받은 저자는 화두는 지식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고 화두를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머리로 답을 궁리하여 짜맞추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이 화두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독참 시간에 몇 마디를 나누던 중 방장 스님의 느닷없는 죽비 세례를 받고 분한 생각을 가졌으나 “분한 마음이 일어나다니. 아직도 (我)가 남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저자는 무자 화두를 참구한 지 몇 년이 지나 좌선 중 어느 순간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영원과 무한을 보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영원, 무한과 분리할 수 없기에 저절로 그 자체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간화선 수행은 진정한 자유를 안겨준 인생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 번의 용기 있는 결단은 멋있게 보이지만 하루 이틀 그 결단대로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 하나 둘 다가오고 용기 있는 결단은 흔들리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퇴로를 끊고 수행을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면 얼마 되지 않아 사회로 되돌아 갔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불교가 추구하는 목표는 부작용 없는 진정한 행복이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차별하는 마음만 없다면 마음은 극락이고 일상은 유토피아인데 문제는 그 차별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괴로움에 대한 영구 치료제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그 과정에서 직접 체득한 깨달음이 없으면 절대로 얻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화두를 참구하고 또 참구하는 어느 순간 불현듯 화두가 뚫리는 순간이 그간 배운 지식, 들은 이야기, 읽은 책, 자신의 과거 고집이라는 창(窓)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고 깨닫는 순간이며 모든 괴로움이 소멸되는 순간이라고 가르친다. 저자는 책을 읽고 얻은 지식이나 남에게서 들은 것은 머리로만 안 것이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며 머리로만 아는 것은 남의 보물이지 자신의 보물이 아니라 가르친다. 이는 남의 보물을 세는 것을 그만 두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저자는 독참을 체험해 보면 선은 스승의 지도 없이는 힘들고 학문은 독학이 가능하지만 선은 독학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독참에서는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인지를 깊이 고민한 끝에 꼭 필요한 설명은 해가면서 독참을 지도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한다. 또한 전문 수행자가 아닌 경우 화두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화두 드는 데 심각한 방해가 되는 망상에 대해서는 수행자의 말을 어느 정도 들어주고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선은 좌선하는 동안만 심신의 편안함을 얻고자 하는 단순한 명상이 아니며 명상이 주는 편안함만 즐길 뿐 인격의 향상이 없다면 결코 선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선은 기능적 몰입이나 자기 망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나를 송두리째 바꾸는 깨달음의 체험 없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가르침이다. 저자는 선에서 말하는 없어야 한다는 ’아(我)’는 집착하는 나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깨닫는 것이란 연기(무아, 무자성)의 이치가 온몸과 마음, 세포 하나하나에 미쳐 저절로 연기의 이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체득(體得)이라고도 한다고 가르친다.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는 쉽고 상세하다. 특히 유식 불교를, 머리로는 잘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 힘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교리로 설명하는 대목(226 페이지)은 대표적이다. 신체적 행위와 말 뿐 아니라 형체 없는 생각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저자의 가르침이다. 행위와 영향력은 무의식이나 잠재의식과 비슷하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닌 아뢰야식에 보존된다고 한다.(아뢰야식은 유식 불교에서 말하는 주요 識이다.) 유식은 우리가 수행에 매진하면 어느 순간 번쩍하는 깨달음이 있어 참다운 지혜가 발현되며 그때부터 자신이 쌓아온 나쁜 영향력들이 없어지기 시작한다고 가르친다.(229 페이지) 저자는 선은 현실과 상관 없는 동문서답 같은 말이나 주고받고 차나 마시며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 순간을 쓸데 없는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100 퍼센트 몰두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현실 그대로의 삶이라 가르친다.(236 페이지) 저자는 깨달은 자의 삶은 100 퍼센트가 된 순간의 끝없는 연속으로 진짜 순간을 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없다고 말한다.(244 페이지) 그리고 진정한 선 수행자는 과거에 매달리지도 않고 미래를 두려워 하지도 않는다고 가르친다.(245, 246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선적인 생활은 갈애(渴愛)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겉치레가 없고 허영이 없으며 단순, 담백하다. 그래 자유롭고 당당하다.”(252 페이지) 저자는 매번 “이 좌선이 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앉아야 한다.”(255 페이지)고 가르친다. 그리고 간화선 수행은 마음 속 깊이 뿌리 박힌 불안과 선입견,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벗어나게 함으로써 원래 가진 청정함과 안락을 되찾게 해준다고 가르친다.(28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죽는 순간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307 페이지) 저자는 알지 못하는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309 페이지) 저자는 이 몸이 자신의 몸이라는 집착에서 떠날 수 있다면 몸이 형성되었다가 소멸하고 또다시 새롭게 형성되었다가 또 소멸하는 끊임없는 변화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311 페이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는 저자가 누리는 대자유의 삶을 여실하게 증거하는 책이다. 그런 점들이 큰 감명으로 다가온다. 다만 나는 마음은 있지만 목숨까지 불사하는 치열하고 숨막히는 과정을 걸을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석가모니가 깨달은 수행법이라는 위빠사나 같은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간다. 간화선 성공기를 읽었으니 철학자이자 불교학자인 한자경 교수의 간화선 수행 실패기인 ‘화두’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위빠사나 입장에서 본 간화선에 대한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이은윤 저자의 ‘왜 선문답은 동문서답인가’ 같은 책을 읽을 것이다.(장휘옥 원장은 선은 현실과 상관 없는 동문서답 같은 말이나 주고받고 차나 마시며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말했다.) 균형을 위해. |
|
장휘옥 저자의 강의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해본다.
|
|
어느 날 조간신문에서 " 바다가 알려줬죠, 오늘은 오늘뿐 이라고" 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접했다. 교수직을 버리고 선수행을 10년했다는 인물과 그가 쓴 책에 대한 얘기였는데 책 내용이 몹시 궁금했다. 그러던 중 딸로부터 우연히 책 선물을 받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저자는 도입부분에서 `갈매기의 꿈` 을 인용하면서 생존을 위한 삶 보다는 자유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기 위해 비상을 꿈꾸는 갈매기를 이야기한다. 목숨을 건 피나는 노력과 눈물겨운 인내로 꿈을 실현하고, 다른 동료에게 길을 알려 주는 갈매기의 모습은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과도 같았다. 저자는 이것이 곧 自利와 利他의 행동으로 '대자유인',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유학 길을 택한다.
도쿄대학에서 화엄사상으로 석 박사학위를 6년 반만에 받고 동국대학에서 불교학 강의를 시작하는 얘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교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연 그대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간절히 찾는다. 마침내 남해의 외딴섬 오곡도로 수행의 길을 가게 된 이유였다.
불기없는 차디찬 선방. 찬 기운이 속살을 파고드는 속에서 맨발로 좌선하는 간화선 집중수행ㅡㅡㅡㅡ '무' 자 화두를 참구한 지 몇년후 저자는 좌선 중 우주 공간에서 영원과 무한을 보았고 우주, 대지, 산, 바다, 모든 존재는 다 살아 있고 거대한 생명체였음을 체험했다고 증언한다. '마음은 한 없이 평온하고 머리는 별처럼 총총, 온몸은 산뜻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뒤로는 현실에서 만물이 살아 있음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와는 거리가 먼 내가 선을 체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 대목이었다.
석가모니는 오직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발 붙인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삶. 흔적이 남지 않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평상심이라고 저자는 알려 준다. 좋은 것, 싫은 것, 기쁘고 슬픈 일도 모두 살아 가는 과정임에 불과 하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저자가 쓴 글 중 가장 좋아 하는 귀절) 살라고 한다.
'매일 매일이 그 날 밖에 없는 유일한 날, 절대적인 날'이라고 여기며 평상심으로 살아 가기를 저자는 강조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
이 책을 읽은지 1주일이 지났는데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서평을 써야 될 지 난감해서 지금껏 미루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뭔가 큰 깨달음을 얻게 해준 책인데 글로 표현하려고 하니 어렵다. 일단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1부는 “나는 누구인가” 지은이에 대한 소개이다. 어린시절부터 청소년기, 불교학과 학사편입, 일본에서의 석박사 과정, 한국에 돌아와서 강단에 선 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선”수행을 위해 오곡도로 떠난 이야기이다. 불교, 선수행을 한다고 하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저자의 대략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니, 우리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평범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굳건히 지키는 뚝심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부는 “수행하는 기쁨”을 화두를 드는 방법, 독참, 울력, 선수행을 심화시키는 가르침 등이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몇번을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오곡도에서 “無”를 화두로 수행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무’자 화두로 수행할 때 마경(수행을 방해하는 망상)에 대한 이야기나 어떻게 ‘무’를 깨달아야 하는지 설명되어 있는지 아무리 글로 자세히 표현하였다고 하여도, 선지식이 부족하고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가 제한적이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3부는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라는 주제로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설명해놓은 부분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언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모든 인간의 행위는 자신의 영역을 남긴다는 부분이다. 어머니가 항상 주의시켰던 부분이었는데, 말이든 생각이든 항상 긍정적이고 이타심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하셨다. 모든 행위는 돌고 돌아서 흔적을 남긴다고 말이다. 내가 당장 괴로워서 죽을 것 같은데 말이든 행동이든 이타심이든 신경 쓸 겨를이 있겠냐고 말대답을 했지만 나의 생각이 짧았다. 신체적 행위(신업), 말(구업), 생각(의업)이 아뢰야식에 보존되어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회사에서 화를 자주 내는데, 순간을 참지못하고 욱 하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자주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아뢰야식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도 항시 삼업(三業)을 주의하여 참지혜를 발견하여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느꼈다. 이 책은 가볍게 읽기 좋으면서 불교 이론과 선수행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초보자들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 두고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
|
불교나 명상 관련 책을 읽으며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일어서 하루하루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 편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멀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못하는 고즈넉한 산속 절에, 향냄새 가득한 법당 안에 조용히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최근 <길 위에서>라는 비구니스님들의 수행 이야기를 담은 책을 재밌게 읽은 터라 다시 불교책을 찾고 있는 중에 <새처러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남해안 외딴 섬에 들어가 수행자이자 농사꾼, 일꾼으로 살며 간화선 수행에 매진해온 한 진솔한 사람이 전하는 대자유의 삶!" 이런 문구가 책 표지에 실려있다. 간화선이란 게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쳐보니 저자가 불교에 입문한 과정부터 차근차근 적혀 있었다. 저자는 머리깍고 출가하겠다는 생각보다, 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학사편입하게 된다. 석사과정까지 마치고는 일본으로 유학까지 가게 된다. 유학가서도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여 6년반만에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다. 교수가 되어 불교학을 가르치다가 직접 수행을 하기 위해 남해안의 오곡도에 수련원을 세우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 '나는 누구인가'의 내용이다.
1부의 내용은 솔직히 미국 하버드나 예일대학교 유학생들이 '저 이렇게 공부했어요.'라고 써내는 유학성공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교학과에 학사편입하고 석사까지 하고 이러저러한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서 세계적인 석학 밑에서 교수님이 불교잡지에 기고하는 원고를 정서하고, 석사과정에서는 매일 논문 다섯장씩 써가는 등 쉴틈없이 공부에 매진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이야기가 줄줄 이어진다. 이런 류의 공부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괜히 열심히 살아야지 자극도 받으면서 좋았긴 하지만, 실제로 어떤 내용을 그렇게나 피터지게 공부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아서 그저 '공부'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불교 교리를 공부한다는 건 어떤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반과 함께 오곡도 수련원을 만들어서 직접 간화선 수행을 하기 위해 그 전에 세계의 유명 불교 수행처에서 수행을 한다.
어려운 말은 이해하기 어려워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일에 100퍼센트 몰입하여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곧 선이라는 메세지는 이해하였다. 한 수행승이 조주 선사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하니, 조주선사가 "아침 죽은 먹었는가?" "그럼, 발우나 씻게나"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내가 좀더 어렸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섥지할 때는 설거지만 하는 등, 순간순간 집중하여 그 순간을 사는 것. 밥먹었으면 무심히 발우를 씻는 것. 선이란 그런 것이라며 실제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저자가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